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기원후 50년 이전~120년 이후) ‘영웅전(英雄傳)’
일상 언어에서 신화는 ‘현실’에 반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절대적 진실’을 표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신화는 태초로부터 생겨났고, 인간 행위의 모델로 사용되는 진실한 역사였다. 신이나 신화적 영웅들의 모범적인 행동을 모방하면서 또는 단순히 그들의 모험을 이야기하면서, 고대 그리스인은 존재의 근원을 발견했고 고대 사회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질을 정립했다.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신들과 신화의 영웅들을 모방하기 위해 노력했고, 신화의 기능은 교육의 역할과 동일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신화적 영웅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모델로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기원후 50년 이전~120년 이후)였다. 그는 역사적 영웅들의 삶을 자료삼아 진정한 모범적인 대전이 될 만한 『영웅전』을 집필했다. 그리하여 『영웅전』의 인물들은 르네상스 이후 19세기 말까지 유럽 교육에 최상의 모델이 되었고, 플루타르코스는 이 작품을 통해 ‘고귀한 덕과 영웅적으로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이상을 전세계에 널리 전파했다.
우리에게 『영웅전』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플루타르코스의 『비교열전』은 서양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0人의 전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양은 실로 방대하며 플루타르코스를 만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하나의 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꾸준히 서양 고전의 원전 번역본의 목록을 늘리고 있는 천병희(단국대학교 명예교수) 교수가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리스 로마 인물 10人을 엄선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번역 출간했다.
그리스 로마 영웅들의 야망과 좌절, 미덕과 수치 그리고 사랑까지 인물을 평가하는 서구적 관점을 세운 도덕주의자 플루타르코스의 고집스런 도덕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시공간적으로 큰 스케일을 엮어내는 이야기꾼, 인물 묘사꾼으로서의 플루타르코스의 매력은 압권이다. 사람의 마음을 다독거려 주는 처세훈, 사물에 대한 어린이와 같은 호기심, 인간미 넘치는 자유로운 잡담 등도 특색이다. 역사가의 시각으로 정치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들의 내면세계와 성격 형성에 초점을 맞추어 영웅의 영웅다움을 기술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그리하여 영웅 이상의 삶을 살다간 한 인간의 인물로서의 특징과 인간사를 밝혀낸다. 이 책에 실린 10명의 영웅들 중 그리스 영웅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뤼쿠르고스(기원전 800년경 활동)는 통제된 사회의 이상적인 모형이자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살아 있는 모델인 스파르타의 입법자로, 스타르타를 스타르타답게 만든 개혁가다. 흔히 ‘스타르타식 교육’이라고 말하는 뤼쿠르고스체제의 의무교육(고전 고대국가 중 의무교육을 시행한 곳은 스타르타뿐이다)의 진면목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솔론(기원전 640년경~560년경)은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인 가운데 한 명이다. 당시 아테네는 빈부 차이가 커서 부채 때문에 땅을 잃거나 노예로 팔리는 사람이 많았다. 귀족과 평민 사이의 항쟁이 격화될 무렵 아르콘(archon)으로 선출된 솔론은 그들 사이의 조정자가 되어 인신과 농토를 담보로 한 채무를 법으로 금지하고 귀족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던 법을 고쳐 신분이 아니라 재산 등급에 따라 관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 후일 민주정치의 초석을 이룬다.
테미스토클레스(기원전 524년경~459년경)는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막강 함대를 살라미스의 좁은 수로로 유인해 수적 우세를 무의미하게 만듦으로써 살라미스 해전을 빛나는 승리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나중에 아테네에서 추방되어 객사하는데, 한 정치가의 성공과 실패에서 민심이란 것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페리클레스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끝까지 민중의 편에 서서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파르테논 신전 등 아름다운 건축물을 많이 건조함으로써 아테네의 면모를 일신하고 ‘페리클레스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신화 속의 아킬레우스가 역사에서 되살아난 듯한 알렉산드로스(기원전 356년경~323년경)는 젊은 나이에 고대 세계 최초의 거대 제국을 세우고 32세의 일기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점 말고도 그리스 로마 시대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패기 넘치는 영웅이었다. 강도 떼처럼 피정복국을 휩쓸고 다니며 약탈을 일삼지 않고도 거대 제국을 건설한 그의 통치력과 인간성, 인격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것이다.
로마의 다섯 영웅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카토는 사치에 물들기 전 옛 로마의 ‘도덕심’을 대표쿇는 인물이다. 검소한 생활, 꾸준한 체력 단련, 불굴의 정신력, 적극적인 정치활동에 힘입어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재정관, 조영관, 집정관을 거쳐 기원전 184년에는 감찰관으로 선출되었으며, 최초의 라틴어 산문 작가로서 라틴 문학에 끼친 그의 영향은 막대하다. 로마의 명문 자제로 태어나 힘들이지 않고 특권층이 될 수 있었던 그락쿠스 형제는 로마 제국의 부와 성과를 가난한 시민에게도 공평하게 나눠주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개혁을 부르짖은 인물들이다. 이 과정에서 원로원 기득권 세력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쓰러져가는데 이들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자 타협을 통해 로마 공화정을 시대상황에 맞게 발전적으로 쇄신할 기회가 무산되고, 그 결과 처절한 내전이 백 년 가까이 지속된다. 근대의 많은 혁명가들의 가슴속에서 부활하는 인물들이다.
‘줄리어스 시저’란 영어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로마의 장군, 정치가 겸 저술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영웅이 되었으며 어떻게 추앙받았으며, “브루투스여, 너마저?”(셰익스피어 사극『줄리어스 시저』에 따르면)라고 말하며 암살되던 그날 원로원 회의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카이사르의 심복이자 클레오파트라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호민관으로서 그의 이익을 대변했으며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직전 그의 진영으로 도주하여 행동을 같이한 영웅으로 기원전 48년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카이사르가 폼페이유스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되자 로마의 사태를 장악하다시피 했으나 탁월한 자질과 유리한 조건을 살리지 못하고 그 뒤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무비유환의 삶을 살다간 반면교사다. 특히 그의 전기는 클레오파트라와의 로맨스와, 로마의 부덕(婦德)의 본보기인 옥타비아와, 탁월한 자질은 타고나지 못했지만 참모들의 조언과 유비무환의 삶을 통해 백 년 동안 지속되던 내전을 종식시킨 아우구스투스의 인물 됨됨이와, 그들 모두를 둘러싼 드라마틱한 역사를 잘 보여준다.
『영웅전』에는 대단한 학식과 연구가 녹아 있다. 영웅들과 영웅들이 살았던 광범위한 시대를 쫓아 매우 폭넓은 출전들이 인용되고 있으며, 이를 수집하는 데만도 플루타르코스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역사가뿐 아니라 일화수집가, 회고록 작가 등이 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는 출전들도 다수 포함하고 있는데 이 덕분에 르네상스 시대의 저술가들과 셰익스피어 등 수많은 작가들이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지식을 『영웅전』에 의지했다. 셰익스피어가 ‘비극적 영웅’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데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또 17, 18세기에 걸쳐 플루타르코스의 저서를 애독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 중 저명한 사람들만 들어봐도 몽테뉴, 몽테스키외, 루소, 프리드리히 2세, 나폴레옹, 괴테, 실러, 베토벤 등이 있다.
『영웅전』은 고대 영웅들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위업을 통해 정의와 선, 진리를 찾아가는 위대한 고전으로, 수많은 위인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정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무엇보다도 그 내용이 흥미진진해 영웅들의 진면목을 만나는 길이 더욱 가까워 보인다.
스티브 잡스 후계자인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은 2011년 초 경쟁사 태블릿PC에 대해 "증기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독설을 날린다. "증기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말을 아시아인들은 그저 그런 독설로만 받아들였겠지만, 이 말은 서양인들에겐 매우 의미 있는 상징이다. 그들이 아끼는 고전 `실낙원`에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밀턴의 `실낙원`을 보면 `허무한 모든 것과 허무 위에다 영광이나 명예, 혹은 어리석은 희망을 쌓아 올리는 자들이 가벼운 증기처럼 떠오른다`는 구절이 나온다.
쿡은 이 말을 라이벌을 비난하는 데 인용한 것이다. 애플을 추종하는 자들에게 이 말은 단순한 비판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을 것이 분명하다. 명저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 그중 하나가 `실낙원`처럼 상징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다루는 명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도 마찬가지. `영웅전`에는 대중이 2000년 동안 줄기차게 사용해온 상징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한다.
`소년들은 장난으로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다.`
`왔노라. 보았노라. 승리했노라.`
`용기를 잃는다는 것은 완전한 패배를 의미한다.`
`시간은 모든 권세를 침식하고 정복한다. 시간은 신중하게 기다려서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에게는 친구지만, 때가 아닐 때 조급하게 서두르는 사람에게는 최대의 적이다.`
이 모든 경구가 `영웅전`에 등장해 2000년 동안 사랑받아온 말들이다.
`영웅전`은 1세기를 전후해 살았던, 그리스에서 태어나 로마인이 된 철학자 플루타르코스가 쓴 책이다. 원래 제목은 `대비열전(對比列傳)`이다. `대비열전`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는 책의 구성 때문이다. 책은 테세우스와 로물루스,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 등 서로 유사점이 있는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을 짝지어 비교ㆍ서술돼 있다. 이렇게 46명이 등장하고, 별도로 4명이 등장하기 때문에 총 50명의 영웅이 주인공이다.
플루타르코스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이전 그리스 로마의 교훈적 스승들은 모두 신화 속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신화를 통해 선과 악을 배우고, 꿈을 키웠고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는 달랐다. 그는 실존했던 인물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영웅들 삶을 기본 자료로 `영웅전`을 집필한다.
`영웅전`은 상당히 사실적이다. 영웅들의 야망과 좌절, 그들의 미덕과 치부까지 흥미진진하게 다룬다. 신이 아닌 한 인간이 실패와 배신을 딛고 어떻게 최고 자리에 올랐는지, 또 누구와 사랑을 했으며 무슨 아픔을 안고 있었는지를 써 내려간다.
`영웅전`의 묘사가 얼마나 치밀했는지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묘사한 부분을 보자.
`알렉산드로스의 용모를 가장 잘 나타낸 조상(彫像)은 리시포스가 만든 것인데, 그것을 보면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기울이고 유난히 눈이 광채를 발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 그는 어릴 때부터 절제력이 강해 열정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인 쾌락이나 재물을 탐내지 않고 용기와 명예만을 추구했다. 그래서 부왕이 유명한 도시를 함락시켰다는 등 보고를 접할 때마다 그는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맥 풀린다는 듯 친구들에게 `얘들아, 아버지가 다 정복해 버리면 우리가 할 일이 없잖니`라고 말하곤 했다.`
눈길을 끄는 건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기 다른 명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의무교육 창안자이자 사회통제 모델을 제시한 뤼크르고스, 귀족만이 정치에 참여하는 법을 없앤 솔론, 영웅에서 추방자가 됨으로써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 사례인 테미스토클레스, 아테네 민주정치를 완성한 페리클레스, 특권층이었으면서도 로마 시민의 평등을 부르짖다 좌절한 그라쿠스 형제 등 `영웅전` 주인공들의 삶은 21세기인 오늘도 색다른 의미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