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貞觀政要)-오긍(吳兢, 670년~749년)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당태종(626년~649년 재위)이 23년에 걸친 치세 동안 위징 등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정관(貞觀)’자체가 당태종 시기의 연호다. 8세기 초에 오긍(670년~749년)이라는 역사가가 정리, 편찬했다. 동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고대 역사를 거울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득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제왕학 서적이지만, 당나라 초기의 사회 제도와 문화를 이해하는 사료도 된다.
오긍이 8세기 초에 정관정요를 썼음은 분명하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논란이 있다. 현재의 통설은 오긍이 709년 당중종에게 한 번 정관정요를 바쳤고, 729년 당현종에게 약간 다르게 다듬은 판본을 다시 한 번 바쳤다는 것이다. 당송 시대에 이미 서로 다른 판본들이 돌아다녔다. 현재 유통되는 것은 대체로 15세기 명나라 때 정리한 판본에 근거하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관정요 판본이 1370년(홍무 3)에 나온 것일 정도라 어쩔 수가 없다.
등장인물들이 먼치킨들인 데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주로 다루므로 동아시아 제왕학의 바이블이자 끝판왕이라고 불린다. 덕분에 동양 세계에서는 국왕과 신하들의 필독서였고 그만큼 애독한 사람들도 많다. 간단히 예를 들어 보자면...
당나라 현종, 문종이 애독했다. 특히 당현종은 치세 전반에 개원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이룩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안록산의 난이 일어날 정도로 말아먹긴 했지만...
당나라 선종은 아예 주요 문구를 발췌해서 만든 병풍을 만들었다.
금나라 세종은 이 책을 인쇄까지 했다. 인쇄술이 아직 최신기술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청나라 건륭제도 이 책을 매우 좋아했다. 이 사람도 당태종 뺨치는 사람.
고려 광종도 애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 세종은 대군 시절 이 책을 읽으려다가 태종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에도 막부 도쿠가와 이에야스, 메이지 덴노를 비롯한 에도시대 쇼군, 덴노들도 정관정요를 열심히 읽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시진핑 등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도자들도 애독했다고 한다. 그래놓고 한다는게 고작 검열과 인권탄압특히 마오쩌둥 어록은 사실상 공산당판 정관정요라 봐도 될 정도.
사실 제대로 된 동아시아 국가의 군주치고 읽어 보지 않은 이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국가주의적 요소가 제법 들어있고 유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에 유학자들 가운데에서는 대학연의가 차라리 낫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긍(吳兢, 670년~749년)-하남(河南) 개봉(開封) 사람으로 당나라 고종(高宗) 총장(總章) 3년(670)에 태어나 현종(玄宗) 천보(天寶) 8년(749)에 생을 마감했다. 중종 때 우보궐(右補闕), 기거랑(起居郞), 수부낭중(水部郞中) 등을 지냈으며, 현종 때는 간의대부(諫議大夫) 겸 수문관학사(修文館學士), 위위소경(衛尉小卿), 좌서자(左庶子)를 역임하는 등 근 30년간 관직 생활을 하였고 사관으로서 『측천실록(則天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20권, 『중종실록(中宗實錄)』 20권의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