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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사단칠정(四端七情)-사람의 이성과 마음에 대하여

작성자管韻|작성시간22.11.14|조회수28 목록 댓글 0

01. 사단칠정(四端七情)-사람의 이성과 마음에 대하여

 

 

 

맹자(孟子, 기원전 372년~289년)의 성선설(性善說)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인간 본성이 선함을 설명하는 예이다. 즉 사단이 도덕적인 감정이라면 칠정은 일반적인 감정(욕망까지를 포함하는 전반적인 것)이다. 주자학에서는 인간 불완전의 원인을 사단과 칠정에서 찾았다. 즉, 사단(四端)에 따르면 선(善)이고, 칠정(七情)에 따르면 악(惡)이라는 것이었다. 칠정은 윤리적 범주가 아닌 인성론(人性論)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초창기 이 사단과 칠정은 서로 상반되는 의미로 윤리적인 것과 비윤리적인 것으로 정통 유교에선 설명하였다. 이황(李滉, 1502년∼1571년)과 기대승(奇大升, 1527년∼1572년) 사이에 진행되었던 사단칠정 논쟁은 주자학(朱子學) 자체가 지니고 있었던 문제점을 전개한 것이다.

 

사단(四端)이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덕(德)의 단초(端初)를 말하는 것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ㆍ수오지심(羞惡之心)ㆍ사양지심(辭讓之心)ㆍ시비지심(是非之心)이며, 각각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칠정이란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으로서 희(喜)ㆍ노(怒)ㆍ애(哀)ㆍ락(樂)ㆍ애(愛)ㆍ오(惡)ㆍ욕(慾)을 말한다. 이것은 맹자(孟子)가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 성리학에서는 맹자의 설을 주자(朱子)가 주석한 내용에 대해, 사단과 칠정이 어디에서 나온[發] 것인가에 대하여 이황이 문제 삼은 것을 출발점으로 거센 논의가 계속되었다. 처음에 퇴계는 추만 정지운(秋巒 鄭之雲, 1509년∼1561년)에게 “사단은 이(理)가 발(發)한 것이요, 칠정은 기(氣)가 발한 것이다(四端理之發七, 情氣之發).”라고 하여, 사단은 󰡐이(理)’의 발(發)에 속하고 칠정은 󰡐기(氣)’의 발에 속하는 것으로 인성(人性)에 있어서 사단은 󰡐본연의 성(本然之性)’이며 칠정은 󰡐기질의 성(氣質之性)’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와 기는 서로 다르며, 사단과 칠정은 그 근원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선악(善惡)이 있게 된다고 하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기대승(奇大升)이 이(理)와 기(氣)는 관념적으로 구분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인 마음[心]의 작용에서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기공방설(理氣共發說)을 주장하여 퇴계에게 질문을 보낸 일이 발단이 되어 『사단칠정분이기왕복설(四端七情分理氣往復說)』이 교환(交換)되었다. 여기에서 퇴계는 자기의 설을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로 수정하게 된다.[退溪論爭] 이 일을 계기로 사단칠정에 관한 논쟁이 활발하게 되어 이이(李珥)가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한 데 대해 성혼(成渾, 1535년∼1598년)이 이황의 견해를 지지하여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재연되었다[표우론쟁(票牛論爭)]. 여기에서 퇴계 쪽을 지지하는 영남학파와 율곡의 견해를 지지하는 기호학파 간에 논쟁이 지속된다.

 

사단칠정론은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 사이에 왕복 편지를 통해 8년 동안에 걸쳐서 활발하고 신중한 성리학 논쟁을 벌였다. 당시 퇴계는 영남 안동에 있었고, 고봉은 호남 광주에 살면서, 서울을 중개로 벌어진 논쟁으로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퇴계는 26세 아래 젊은 유학자 기대승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주장을 고치기도 하였다. 고봉 또한 선생의 학문과 인격을 높이 존경하고, 퇴계의 의견을 대부분 받아들이고 논쟁을 끝맺게 되었다. 사단칠정의 논쟁은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사단(四端, 실마리 단)은 맹자의 공손축(公孫丑) 상편(上篇)에서 나오는 말로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착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네 가지 본성이다.

① 측은지심(惻隱之心) : 맹자는 인(仁)을 꽃피우는 실마리는 남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는 착한 마음.

② 사양지심(辭讓之心) : 예(禮)를 꽃피우는 실마리는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남을 밀어주는 마음,

③ 수오지심(羞惡之心) : 의(義)를 꽃피우는 실마리는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거짓을 미워하는 의로운 마음

④ 시비지심(是非之心) : 지(智)를 꽃피우는 실마리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

 

칠정(七情)은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에서 나오는 말로, 사람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모든 감정으로 기뻐하고(喜), 화내고(怒), 사랑하고(愛), 두려워하고(懼), 슬퍼하고(哀), 미워하고(惡), 욕심 부리고(慾)하는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한다.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은 사단과 칠정이 이(理)와 기(氣) 가운데에서 어느 것을 위주로 해서 일어나는가, 혹은 서로 떨어져서 일어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토론하였다. 퇴계는 사단과 칠정이 리(理)와 기(氣)가 서로 떨어져서 일어난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이기호발설은 이(理)의 작용과 순수성을 더욱 중요시하는 주리설(主理說)의 입장에 있다. 이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성(理性)이며, 기(氣)는 얼굴 밖으로 나타내는 기질(氣質)이다. 사단은 이가 그대로 일어나는 것이며, 기가 이것을 따라간다. 칠정은 기가 일어나는 것이고, 이는 이것을 타고 있다(四端, 理發而氣隨之, 七情, 氣發而理乘之)라고 하며, 사단과 칠정은 제각기 이와 기에서 일어나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떨어지지도 섞이지도 않는다(不相離, 不相雜)라고 하였다.

고봉(高峰)은 사단과 칠정은 같은 감정으로 이해하면서, 칠정 가운데 있는 착한 마음을 사단으로 보았다. 감정의 일어남은 가끔 이(理)가 일어나는 것이면, 기(氣)도 함께 갖추어지기도 한다. 가끔 기가 일어나는 것이며, 이가 타기도 한다(情之發也, 或理動而氣俱, 或氣感應而理乘. 俱, 함께 구, 乘, 탈 승)라고 주장하였다. 바로, 사단과 칠정 모두는 이와 기가 함께 갖추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고봉은 기의 작용을 더욱 강조하면서, 이(理)의 자발성을 부정하였다. 그리고 이이(李珥, 1537년∼1584년)는 사단과 칠정은 오로지 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며, 이는 일어나지 않고, 기를 타고 있다(理無爲而氣有爲, 故氣發而來)는 주기설(主氣說)을 주장하였다.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은 타고난 이의 순수성을 그대로 지키면서, 칠정의 나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는 수양론(修養論)을 강조한다. 퇴계는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말과 그 말을 타는 사람에 비유해서 설명하였다. 사단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말을 몰아 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칠정은 사람은 말을 타고 있지만, 말이 가고 싶은 대로 맡겨두는 것과 같다. 말은 그냥 두면 어느 곳으로 가야하는 지를 모른다. 말이 가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면, 무엇이 착하고 나쁜지를 알지 못한다. 사람이 말을 제대로 바르게 이끌어서 언제나 바르게 갈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이, 사단이 칠정을 제대로 이끌어주면, 언제나 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

퇴계는 몸과 마음을 언제나 바르게 하기 위한 공경함(敬)의 수양론(修養論)을 강조하였다.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는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진실로 공경함의 태도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學者誠能一於持敬, 제6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라고 하였다. 공경함은 몸과 마음을 언제나 바르게 하기 위해서 오로지 하나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수양방법이다. 따라서 경(敬)의 철학이야말로 퇴계 사상의 핵심이며, 선생이 존경받는 이유도 이 경(敬)사상으로 평생을 일관해서 실천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주자(朱子, 1130년∼1200년)는 “사단은 이(理)의 발현이요, 칠정은 기(氣)의 발현이다(四端是理之發 七情是氣之發)”라고 하였다. 또 주자는, 제자가 “희ㆍ노ㆍ애ㆍ구ㆍ애ㆍ오ㆍ욕은 칠정이므로 그것은 인간 본성에서 발현되어 나오는 것입니다만, 노(怒)는 수오지심에서 발현되어 나오고, 희ㆍ애ㆍ욕은 모두 측은지심에서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물은 데 대하여, “애ㆍ구는 어디에서 발현되어 나오는가? 아마 측은지심에서 발현되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구(懼)는 두려운 마음이 심한 경우이다. 그러나 칠정을 사단에 일대 일로 나누어 배속(비교) 시킬 수는 없다. 칠정은 그 자체가 사단 속을 꿰뚫어 지나가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취지로 칠정은 사단에 배속시키는 문제를 묻는데 대하여, “대략 서로 비슷한 것과 갖다 붙여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거나 “본디 사단과 칠정은 서로 비슷한 점이 있긴 하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주자는 “측은ㆍ수오도 중절(中節, 절도에 맞음)과 부중절(不中節, 절도에 맞지 않음)이 있다”며, “사단은 시시로 발현하는데 거기에 정(正)ㆍ부정(不正)이 있다.”라고 하여 사단도 그 발현에 있어서는 절도에 맞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사단도 인간 본성에서 발현되어 나온 감정이기 때문에 그 나타난 현실태(現實態)를 보면 중절ㆍ부중절과 정ㆍ부정이 있다는 뜻이다.

 

주리학파(主理學派)와 주기학파(主氣學派)

우리나라에서의 사단칠정을 둘러싼 논의는 처음에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벌어졌다. 그 뒤 이이가 기대승의 설을 지지하고 이황의 설을 반대함으로써 그 논의는 확대되어 성리학 논쟁의 핵심 문제로 등장, 사단ㆍ칠정뿐 아니라 이기론(理氣論) 및 정치 사회관에 이르기까지 두 유형의 사고방식의 대립을 보이게까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주리학파(主理學派)ㆍ주기학파(主氣學派)로 학파가 나누어 그 뒤 많은 학자들이 학파적 관심을 가지고 토론하였다. ‘주리(主理)’ㆍ‘주기(主氣)’의 문구는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논쟁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서 각각 도덕론적(道德論的) 입장과 존재론적(存在論的) 입장을 상징하고 있다.

즉, 주리ㆍ주기의 차이의 시원은 인간의 측면에서 자연을 해명하려는 입장과 자연의 측면에서 인간을 해명하려는 입장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다. 이 두 관점의 혼재는 성리학의 본래적인 특성, 즉 자연법사상의 특성으로 흔히 ‘천인합일(天人合一)’ 또는 ‘결물치지(格物致知)’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황(李滉, 1501년∼1570년) 이전에 정지운(鄭之雲, 1509년∼1561년)이 ❮천명도설(天命圖說)❯에서 “사단(四端)은 이에서 발현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현한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라고 하였는데, 이 문구를 이황이 개작하여 “사단은 이가 발현한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현한 것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기대승이 “칠정 이 외에 달리 또 사단이라는 정(情)이 없다.”라는 생각에서 이황에게 해명을 요구함으로써 문제가 발단되었다.

 

그 후 이황은 자기설을 수정하여 “사단은 이가 발현하는데 기가 거기에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현하는데 이가 거기에 타는 것이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대승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질문을 계속하여 논쟁이 수차 계속되었으며, 퇴계 사후에 이이가 기대승의 설을 지지하여 칠정은 사단을 내포한 것이며 사단도 기발이승(氣發理乘)일 뿐이라고 하여 이른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였다.

 

이황은 “대개 사람의 몸은 이와 기가 합하여 된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가 서로 발용(發用)하고 서로 필요로 한다. 호발(互發)하므로 각각 주(主)된 바가 있음을 알 수 있고, 서로 필요로 하므로 서로 그 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칠정 대 사단으로 분별하여 말하면 칠정의 기에 대한 관계는 사단의 이에 대한 관계와 같다. 또 사단도 물(物)에 감(感)하여 동(動)함은 칠정에 있어서와 다름없으나 다만 사단은 이가 발현하는데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현하는데 이가 타는 것이다.”라고 하여 사단ㆍ칠정 논의를 통하여 이ㆍ기가 상호발현[互發]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이황은 주자 학설 중 이와 기는 전연 별개라는 이른바 이기부잡(理氣不雜)의 면을 강조하여 이(理)를 작용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이와 기를 귀천(貴賤) 관계로 파악하였다. 즉, 이황은 이는 이성(理性), 기는 감성(感性)으로 보았으므로 이가 기를 제어하지 못하면 이욕(利欲)에 떨어져 짐승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황은 사단ㆍ칠정을 각각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에 견주어 선악으로 대립시켜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이황에게 있어서는 주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ㆍ기의 귀천 관계 내지 기에 대한 이의 제어라는 의미의 우열 관계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가 우주론에서 이(理)는 작용하는 것으로 본 사고와 표리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즉, 존재론(存在論)적 의미로서의 이ㆍ기를 도덕론(道德論)을 중심으로 보려 하는 것으로 여기에 그의 성리학의 특색이 있다.

 

그러나 주자의 “사단은 이(理)의 발현이요 칠정은 기(氣)의 발현이다”라는 명제 및 정지운(鄭之雲)의 “사단은 이에서 발현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현한다.”는 명제는 본래 이ㆍ기를 대략 선악의 의미로 보아 그 개념을 빌려 사단과 칠정을 논하려고 하였던 소박한 입론(立論)이었다. 그런데 퇴계가 이를 “사단은 이발이기수지, 칠정은 기발이이승지(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라고 고침으로써 ‘발(發)’에 더욱 강조점이 옮겨지게 되고, 또 ‘수(隨)’자와 ‘승(乘)’자를 대치시켜 은연중 이(理)를 강조하려는 생각을 표현하게 되어, 결국 존재론적 개념인 이ㆍ기의 개념에 혼란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이황의 이발론(理發論)과 관련하여 고려할 점은 성리학의 심성구조론(心性構造論)인 ‘성이 발현하여 정이 된다(性發爲情)’라는 명제다. 이는 성(性)ㆍ정(情)을 본체와 작용으로 나누어 심성의 구조를 말한 것으로서 성(性)의 본체의 운동이나 작용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이황의 “사단은 이(理)의 발현[發]”이라는 입론에서의 ‘발(發)’의 의미와는 언어상의 큰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이황의 ‘이발론(理發論)’은 왕수인(王守仁, 1472년∼1528년 양명학 창시자)의 ‘심즉리(心卽理)’가 “심을 이에 합치시켜라”라고 하는 수양론(修養論)적 의미가 강한 것과 같이 “이가 기를 제어하여 금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도덕론적 강령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이황의 이러한 주리적 사고는 그 뒤 이진상(李震相, 1818년∼1886년)에 이르러 왕양명(王陽明, 1472년∼1528년)과는 다른 ‘심즉리(心卽理)’ 설을 주창하게 되는데, 이는 주리적사고의 필연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이(李珥, 1536년∼1584년)는 이황이 사단을 이(理)의 발현 즉, 이성적 작용으로 파악한 데 대해 이성적 작용도 작용인 이상 기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이는 무위(無爲)라는 주자의 설을 계승, 존재와 도덕을 일괄하여 이ㆍ기 관계를 이른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로 제시하였다. 따라서 사단과 칠정의 관계는 칠정은 기의 발동의 총칭이므로 사단은 칠정에 포함된다고 본다. 이이는 “사단과 칠정은 본연지성(本然之性)ㆍ기질지성(氣質之性)과의 관계와 같다. 본연지성은 기질을 겸하지 않고 말한 것이며, 기질지성(氣質之性)은 도리어 본연지성(本然之性)을 겸한다.

그러므로 사단은 칠정을 겸하지 못하나 칠정은 사단을 겸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인심ㆍ도심은, 이황에서처럼 대립적이기는 하나, 그것이 사단ㆍ칠정과 같은 대립 관계는 아니라고 하였다.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는 주장에서 이이는 다시 칠정과 사단을 비슷한 것끼리 연결시켜, 측은은 애(愛)에, 수오는 오(惡)에, 공경은 구(懼)에, 시비는 ‘희로(喜怒)의 당연성 여부를 아는 것’에 배속시킨다.

그러나 주자는 칠정과 사단은 비슷한 점이 있지만 그 성격상 나누어 붙이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이의 ‘사칠배속’은 그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의 필연적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지나친 천착(穿鑿)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칠정의 선한 것과 사단은 다르기 때문이다. 사단은 도덕의 표준이라는 성격을 갖는 것이므로 칠정의 선한 것과 같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이는 존재론의 입장에서 도덕률을 규정하려고 하였으므로 ‘천지의 변화(天地之化)’는 바로 ‘내 마음의 발현(吾心之發)’이라고 하여 천지에 이화(理化)ㆍ기화(氣化)의 구분이 없다면 우리 마음에도 이발ㆍ기발이 없다고 하였다. 이이의 이러한 입장은 그의 ‘이통기국(理通氣局)’의 명제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즉, 기(氣)는 물질적ㆍ시간적 유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국(氣局)’이고, 이(理)는 초월적 존재로 보편적 존재이기 때문에 시공(時空)에 국한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통(理通)’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의 ‘기발이승일도설(起發理乘一道說)’은 더 나아가 ‘심시기(心是氣)’를 주장하게 되고, 이 설은 그 뒤 주기학파의 송시열(宋時烈)ㆍ한원진(韓元震) 등에게 계승되었다.

 

차마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일찍이 맹자는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가지니, 이것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해지기를 위해서도 아니며, 마을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며,(어린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나쁜) 평판을 듣기 싫어서 그러했던 것도 아니다.(《맹자》공손추)

우물로 들어가려는 어린아이를 보고 우려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은, 명예나 사귐을 위해서도, 모진 놈이라는 비난을 싫어해서도 아니며, 단지 사람의 마음 자체가 본시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혹은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맹자의 주장은 천지(天地)와 만물(萬物), 인간(人間)을 하나로 꿰는 논리에 바탕 한다.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을 내는 것으로 그 마음(心)을 삼으니, 만들어진 만물이 이로 인해 각기 천지가 만물을 낸 그 마음(生物之心)을 얻어서(만물 스스로의) 마음을 삼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이다.(《맹자》공손추)

사람이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서글피 여겨 가슴 아파하는 마음(惻隱之心)’을 지닌 것은, 사람을 포함한 만물의 마음이 바로 만물을 만든 천지의 마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사람의 본래 마음이 이러하기 때문에 정치할 때도 그 본래 마음에 바탕을 두어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정치를 하면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간단할 수 있는 정치가 당시 현실[전국시대(戰國時代)]의 혼란 속에서 피어나지 못한 것은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 물욕(物慾)에 가려 손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의 본성을 알려주는 네 가지 단서, 사단(四端)

그렇기에 맹자는 천지자연(天地自然)의 마음을 따라 지니게 된 측은지심(惻隱之心), 서글피 여기며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또 같은 맥락에서 수오지심(羞惡之心, 나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나 사양지심(辭讓之心, 자신에게서 떼어내어 남에게 주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은 것을 올게 여기고 그른 것을 그르게 여기는 마음) 중 하나가 없어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람이 이 네 가지를 가진 것은 마치 사지(四肢)를 가진 것과 같다고까지 말했다.

그렇다면 천지가 만물을 낸 그 마음이자,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우러나오게 한 바탕은 무엇일가? 맹자는 이를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맹자의 말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요,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요, 사양지심은 예(禮)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이니, 사람에게 이 네 단서(四端)가 있는 것은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 《맹자》 공손추

 

조선 성리학에서 사서(四書) 해석의 절대 권위로 통하는 주자(朱子, 朱熹, 1130년∼1200년)에 따르면,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성(性, 본성)이고, 그것이 밖으로 표현된 사단은 정(情, 감정)이며, 성(性)을 통합하는 것은 심(心, 마음)이라고 한다. 《심통성정(心統性情)》

 

그런데 주자가 말하는 정(情)에는 사단(四端)외에 칠정[七情, 喜怒哀樂愛惡慾의 일곱 가지 감정] -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의 준용도 포함된다. 인간 심성에 관심이 많았던 주자는 사단과 칠정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기론[理氣論, 理를 우주만물의 존재와 그 움직임에 대한 불변의 이치 내지는 원리로, 氣는 그 만물의 존재와 움직임을 이루는 기운 내지 질과(質科) 정도의 의미로 씀]을 통해 고찰하였고, 그 결과 사단은 이(理)가 발동한 것[理之發], 칠정은 氣가 발동한 것[氣之發]이라 하여 양자를 준별하였다. 이는 결국 도덕적인 감정으로서 사단을 이(理)의 발동으로 규정함으로써, 기(氣)의 발동으로 본 칠정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였음을 뜻한다.

 

사단과 칠정에 대한 주자의 생각은 퇴계 이황(李滉, 1501년∼1750년)에 의해 이론적으로 확고해졌다. 이황에 따르면 사단(四端)은 이(理)가 발동하고 기(氣)가 뒤따른 것[理發而氣隨之]이며 칠정(七情)은 氣가 발동하여 而가 올라탄 것[氣發而理乘之]이었다.

 

그런데 이황에게 있어 理와 氣의 관계는 주종(主從), 상하(上下), 우열(優劣)의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이황은 사단(四端), 즉 선한 감정이 칠정(七情), 즉 일반적인 감정보다 우월하고 중요함을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황의 생각은 물론 순수한 학문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만 훈척(勳戚)과 사림(士林), 내지 사림과 사림의 갈등이 이어지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이황이 도덕적인 삶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그러한 도덕적 삶의 가능성을 사람의 심성 안에서 찾으려 한 것이 아닐까 라는 해석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황의 이런 생각은 젊은 기대승(奇大升, 1527년∼1572년)과의 많은 토론을 통해 자극을 받으며 다듬어진 것이었다. 조선성리학의 이른바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이이 율곡(李珥 栗谷) 사이의 논의 들이 이를 대표한다.

 

이이는 우주만물의 이치이자 원리인 理의 운동성을 부정하는 입장이었다. 理란 氣처럼 운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이가 감각(氣)으로 발생한 측은지심을 理가 아닌 氣의 발동으로 이해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이가 理와 氣가 서로 섞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이이나 다른 유학자들이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이는 理와 氣의 관계를 상하(上下), 존비(尊卑), 주종(主從) 등의 대립적, 준별적 관계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理와 氣가 서로 섞일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준별되는 별개의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자연에서 왔으며, 자연과 함께 살다가 자연으로 되돌려 줘야 하는 것이다. 자연하고 살면 행복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으로 전해야지 사람이 개에게 마음을 주면 개가 사람처럼 행동한다. 마음을 잘못 쓰게 되면 눈뜬장님처럼 자신을 볼 수 없게 되고 오직 감각적인 것에만 의존하게 된다. 이는 짐승과 같다는 말이다.

사람이 사유(思惟)하는 것은 사람의 뇌가 작동하는 것으로 “생각이 든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밖에서 안으로 무작위적(離散的)으로 들어옴을 뜻한다. 이는 결국 이성이란 존재가 마음과 소통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마음이라는 존재가 이성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을 제어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의지(비워냄)만이 가능하게 된다. 이(理)는 판단이성(判斷理性)의 도덕적 준칙의 감성적 작용이며 기(氣)는 실천이성(實踐理性)으로 사람이 감각적으로 표출되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 또는 욕구를 말한다. 결국 사람의 마음은 도덕적 이성이 작용할 수도 있고, 감각적 욕구로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다. 사람의 이러한 작용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는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는 이성적인 작용과 마음의 작용이 함께 발현하는 것을 중용(中庸)이라 할 수 있는데 성정(性情)은 이기(理氣)의 발현(發現)으로 이성(理性)에 상응하는 마음에 작용으로 인성(人性) 본성(本性) 또는 감정(感情)을 말한다. 사람의 생각은 디지털적인 인식 작용으로 감각적인 것에 균형을 잡을 수 있지만 몸이 약하거나 나이가 들면 이성이 점점 사라지므로 결국 판단이 흐려지게 된다. 어떠한 실체가 없는 마음에 균형을 잡는 것은 이성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만이 결정하는 것으로 이는 아날로그(Analog)적으로 특성을 보이며 작용에 있어 정신력과 육체의 영향을 받는다. 사람의 마음의 본질은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작용할 때는 뭔가 뜨거움으로 전해지는 무엇이며 관념을 넘어선 존재이며 분별이 가능한 의식하는 존재 “나(自我)”라는 본질로 돌아갈 때 이성의 작용 번뇌(煩惱)도 제어하게 된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무수한 생각들이 공변(公辯)되어 사라질 때까지 참구(參究)하는 존재이다. 마음의 평상심(平常心)을 물 흐르듯이 이어가는 존재(法)가 “부처(佛陀)”이며, 이성과 마음을 통해 일어나는 생각을 지혜로운 마음으로 법(法)을 실천해 나아가는 존재가 “보살(菩薩)”이라 하겠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자신을 포함한 사물의 참된 모습을 밝고 슬기롭게 보아 얻어지는 깨달음)의 마음가짐과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본질을 의심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무아(無我) 또는 자아(自我)로 인식했을 때 비로소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드러난다. 즉 사람의 마음에 가득 차 있는 넓고 크고 올바른 기운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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