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도자기의 진수 경덕진요(景德鎭窯)
의흥이 도도(陶都)로 불리고 있는데 비해, 경덕진은 자도(磁都)로 불린다. 옛날에은, 창남진(昌南鎮)으로 불리고 있었다. 송대의 진종황제(真宗皇帝)의 경덕연간(景徳年間)에, 궁정에 납입하는 자기를 만들게 해 밑면에 경덕년(景徳年)이라고 하는 것으로 경덕과 기관(紀款)을 넣었기 때문에, 그 후에 경덕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景德鎭(중국어 발음으로는 징더전), 중국 강서성(江西省)에 위치한 중국제일의 요업지를 말하며, 이 요업지 전체를 통틀어서 경덕진요(景德鎭窯)라고 한다. 당대에는 [昌南鎭]이라 불렸는데 원래는 제도업을 영위하는 자그마한 시골마을이었다. 북송(960-1126)시대의 경덕황제 시대에 해당하는 경덕연간(1004-1007)에 자기의 제작감독관이 파견되어 뛰어난 자기를 세상에 내어 보임으로써 서서히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자기의 밑바닥에 [景德年間]의 낙관이 찍혀진 이후에 나중에 마을의 이름이 [昌南鎭]에서 [景德鎭]으로 개명되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관요로 손꼽히는데 현재도 수많은 공방과 작가들에 의해 예전의 중국명품들의 방제품이나 생활자기 등을 생산해 내고 있다.
흔히 중국차를 마시는데 잘 이용되는 자사호의 산지인 의흥(宜興)은 도기(陶器)를 대표하고, 경덕진은 자기(磁器)를 대표한다고 하여 의도경자(宜陶景磁)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원. 명. 청 시대를 통해 궁정 물건을 공납하는 가마 관요가 두어져 (일반시장 전용에는 민요가), 중국 국내 뿐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아시아·아프리카·유럽까지 수출을 담당하였다.
현재의 경덕진은, 황산이 가까운 고로 경덕진의 많은 관광객들이 겸사겸사 들르고 있다.
최근에는, 국영의 대공장들이 그 자취을 감추어, 많은 개인경영의 공방이 설립되어 있는 현실이다. 경덕진 시내의 가게에는 별로 고급의 것은 없고, 미술품 클래스의 것을 갖고 싶은 경우, 공방에서 직접 제작을 의뢰해야 한다. 일단, 현대의 작품도 있는 것은 있지만, 경덕진의 경우 대개는, 원 명 청 대의 방품을 전문으로 제작하고 있다.
官窯(관요)
경덕진 시내의 주산이라고 하는데 명 청 시대의 관요가 두어졌다. 관요에서는 엄격한 품질 규정이 있어, 구워진 것을 북경까지 가지고 갈 수 있을 것인지 어떤지를 판정해, 조금이라도 품질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그 자리에서 부수어 버렸다고 한다. 궁정까지 가지고 가는 것은, 몇천개를 구은 가운데, 1~2매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곳의 지면을 파면 연연몇 미터나 자편(磁片)이 파묻혀 있다고 한다.
현재는 발굴 출토한 것을 재생하고 연구를 실시하고 있다. 시내의 자기 박물관도, 원대, 명대의 것은 거의 출토품이다.
경덕진이라고 하면 백자의 태에 푸른 문양이 들어간 이른바 청화가 유명하지만, 실은 그 안료는 경덕진 뿐만이 아니라, 윈난성이나, 하남성, 광둥성, 푸젠성, 베트남등 각지에서 만들어져 있다.
경덕진의 요가 지금까지 세계에서 제일의 평가를 얻어 온 이유의 하나로 고령이라 부르는 재료에 있다.
경덕진은 송대에는 청백자를 만들고 있었는데, 당시부터 흰 자토를 타고 났지만 , 원의 무렵 이 백토가 시들어 이 고령을 사용하게 되면서 경덕진의 자기는 다른 가마를 압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