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도교문화 팔선도(八仙圖) 이야기
팔선도(八仙圖)는 도교의 깊은 이치를 체득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종리권(鍾離權)·여동빈(呂洞賓)·장과로(張果老)·한상자(韓湘子)·이철괴(李鐵拐)·조국구(曹國舅)·남채화(藍采和)·하선고(何仙姑) 등 여덟 신선을 각기 독특한 모습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여덟 신선을 살펴보면, 종리권은 팔선(八仙) 중 우두머리로 연금술을 터득하였다 전하며 배가 나와 배를 드러내고 파초선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여동빈(呂洞賓)은 중국 당(唐)나라 사람으로 종리권을 만나 신선술을 배워 신선이 되었다 한다. 여동빈은 정직한 노인을 위해 우물물을 술로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와 한 도인을 만나 검법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여동빈은 칼을 등에 멘 사람으로 묘사된다.
장과로(張果老)는 당(唐)나라 사람으로 둔갑술에 능하고 흰 노새를 타고 다녔으며 노새를 타지 않을 때는 종이처럼 접어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대나무통 비슷한 어고(魚鼓)나 불사조의 깃털과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장과로는 신혼부부에게 아이를 가져다준다고 전하여 신방(新房)에 이러한 장과로의 그림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한상자(韓湘子)는 여동빈이 전해준 복숭아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신선이 되었다고 전하며 피리를 불고 있거나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철괴(李鐵拐)는 당(唐)나라 사람으로 수도 정진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전하며 보통 호리병을 들고 있는 거지 형상으로 묘사된다.
조국구(曹國舅)는 10세기경의 송나라 사람으로 죽은 사람 위에서 치면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는 음양판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남채화(藍采和)는 한쪽 발만 신발을 신은 여장을 한 남자로 꽃 광주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하선고(何仙姑)는 7세기경 사람으로 천도를 먹고 선녀가 되었다고 하며 연꽃을 손에 들고 있거나 연꽃 위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여덟 신선을 그린 팔선도(八仙圖)는 대부분의 신선도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는 축수(祝壽)의 염원을 담고 있는 그림이라 하겠다.
여동빈(呂洞賓) 당나라 797년 4월 14일에 출생.
학자이자 은자인 그는 팔선의 수장격인 종리권으로부터 도교의 비밀을 배우고 나이 50에 신선이 되었다. 그는 이발사의 수호 성자이며, 병자들이 숭앙하였다. 오른 손에 그는 도가의 먼지털이를 들고 있는데 그의 문장인 검을 보통의 등에 가로 차고 있다. 그는 열 차례에 걸쳐 계속 유혹을 받았지만 잘 극복하여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검을 하사 받았다. 그 검을 차고 그는 곳곳을 여행하면서 용을 베고, 400년 이상이나 세상 여러 가지 형태의 악을 제거하였다.
이철괴(李鐵拐)
신선들 중 가장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데 여동빈과는 달리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에 기록마다 그 시대나 이름을 부회하였고 따라서 통일된 설이 없다. 팔선들 가운데 가장 추하고 괴이한 형상으로 묘사되는데 고사에 따르면 원래는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의 젊은이로, 老子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하기 위해 그의 제자에게 7일간 자신의 혼이 돌아오지 않으면 시신을 불사르라고 했다. 헌데 제자는 자신의 노모가 병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7일 정오까지만 기다리다 시신을 태워버리게 되고 돌아온 이철괴는 어쩔 수 없이 굶어 죽은 거지의 몸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리를 저는 거지이기 때문에 지물로서는 늘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
장과로(張果老)
도교팔선중 세 번째, 그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당서(唐書)에 기재되있다. 장과(張果)라는 사람이있었음은 확실하다. 본시 민간의 강호술사로 알려졌다. 민간에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산서의 중조산에 살았으며, 스스로 말하길 요(堯)시절부터 살기 시작하여 장생불로지법을 행하였다고한다. 무측천이 그를 만나려고 하였으나 장과로는 이미 죽어서 묘에서 장사지냈다고 한다. 때는 한여름철이라서 그가 죽자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무측천은 그말을 듣고 난 후에 당태종과 고종이 불시에 그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산(心+瓦山)의 산중에서 재차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선고(何仙姑)
서기 7세기 하남성 령릉에 살던 어느 소상인의 딸이었다. 초자연적인 복숭아를 먹고 요정이 되었다. 그녀는 홀로 산 속을 돌아다니고 운모가루와 달빛으로 연명하였다고 한다. 그것을 먹고 불로 장수하게 되었다. 한 번을 숲속에서 길을 잃고 고약한 악마로부터 큰 위협을 받았지만, 여동빈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그의 주술적인 칼을 휘둘러 그녀를 구해 주었다. 그녀는 서기 625~705 년 무후(武后)의 궁정으로 부름을 받자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의 문장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연꽃이다. 때때로 그녀는 손에 파초선을 든 채 연꽃 잎사귀를 타고 떠다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표상된다. 그녀는 가사를 돌봐준다.
남채화(藍采和)
상고시대에 황제(黃帝)의 음률을 맡은 신하로 있다가 인간세계로 귀양 온 사람이다. 항상 노래를 부르고 다녔으며 세상의 눈멀고 귀먹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항상 푸른 남삼(藍衫)을 입었으며 검은 먹으로 물들인 세치정도의 허리띠에 쇠고리 여섯개를 달고 다녔다. 한쪽 발엔 가죽신을 신었고 다른 한쪽 발은 맨발인 채로 걸어 다녔다. 여름에도 옷 속에 솜옷을 껴입었으며 겨울에는 눈 속에서 잠을 잤으나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법을 배웠냐고 물으면 남채화는 남자라고 아이를 밸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나는 십 개월 동안 아이를 회임하였다고 하였다. 늘 성(城)의 시장에 가서 동량을 하였으며 석자 삼척(三尺)정도의 판때기 박자 판을 가지고 다니니 뒤에는 남녀노소가 뒤를 따랐다고 한다
종리권(鍾離權)
팔선중 수장격인 종리권은 기원전 1223~249년 주(周)나라 때에 살았고 불로장생선약의 비밀과 연금술에서의 변성하는 분가루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보통 배를 드러내 놓고 있는 뚱뚱보나 때로는 손에 복숭아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래도 언제나 그의 문장인 부채를 쥐고 있으며 그 부채로 죽은 자의 영혼을 소생시킨다고 믿어지고 있다. "요정 신화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젊고 아리따운 여인과 결혼하여 철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낙향하였다. 하루는 명상을 하며 시골길을 걷고 있노라니 한 젊은 여인네가 무덤가에 앉아 슬피 울면서 이제 막 떼를 입힌 무덤의 흙에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여인이 하는 말이 돌아간 자기 남편이 자기 무덤의 흙이 마르기 전엔 재혼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자기를 뜨겁게 사모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그녀는 가급적 속히 마르기를 바라기에 무덤에 부채질을 하여 숩기를 말리고 있는 중이었다. 종리권은 그 여자를 도와 주었다. 그녀의 부채를 건네 받고는 신령들을 불러 도움을 요청하고 부채로 무덤을 부치니 무덤이 완전히 말라 버렸다. 그 과부는 즐거운 듯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부채를 놔두고 떠나 버려서 그 부채가 종리권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젊은 부인이 그 부채를 보자 그게 어디서 난 것인지 알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자초지종 사연을 듣자 그녀는 발끈 성을 내며 자기 같으면 결코 그런 짓을 하지 못할 것이며, 그런 몹쓸 짓을 한 과부는 필경 후안무치 요물임에 틀림없다고 항변하였다. 이 말을 듣자 이 술사는 그녀의 심정을 떠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강력한 주문을 외니 그는 죽을 사람처럼 되었고 동시에 미끈한 청년의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곤 뭣 모르고 있는 과부에게 사랑한다고 수작을 걸었는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그와 결혼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 아닌가? 젊은 놈팽이가 자기 약혼녀에게 죽은 남편의 골수를 한 잔 가득 떠 달라고 하자 그 과부는 사랑하는 이의 청을 뿌리칠 수 없어 관 뚜껑을 열었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그녀의 죽었던 남편이 갑자기 살아나는 게 아닌가? 그동안 그녀를 열모하던 젊은이도 어디론가 꺼져 버렸다. 어찌나 수치스러운지 그녀는 그만 목을 메어 버렸고, 종리권은 집에 불을 놓아 버렸는데, 부채와 <도덕경(道德經)>만 들고 나왔다고 한다.
한상자(韓湘子)
서기 820 년경 살았던 당의 유명한 학자 한유(韓愈)의 조카였다. 그의 성품은 방탕하고 구속을 싫어 하였다.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음주를 즐겼다. 세상에서 배운 것으로 선인이 되었다. 20세때에 가족들과 헤어져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 기간이 무려 20년간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당원화년간에 홀연히 장안에 나타났다. 의삼은 헤어질대로 헤어졌고 행하는 바가 괴이하였다. 한유가 그를 학생들과 독서하라고 그를 입학시켰으나 한상자와 한원들과의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도박에 빠지고, 한번취하면 2~5일동안 잠을 잤다. 혹은 가두에 노숙하였다. 한유가 보기에 한심하여 물었다. '사람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 너는 장래 무엇이 되려고 하는냐?' 한상자가 말하길 '나도 일문의 기교가 있지요. 그걸 알지 못하는가요?' 한유는 궁금하여 물었다. 당시 한겨울인 정월초라 매우 추운 계절이었다. 목란이 여러 가지 색으로 피어나게 하였다. 또 화분에 흙을 채워 삽시간에 꽃을 피웠다 한다.이렇게 그는 꽃이 순식간에 자랐다 피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진다. 그는 여동빈의 애제자였는데 여동빈이 그를 초자연적인 복숭아나무로 데려갔다가 거기서 떨어지는 바람에 신선이 되었다. 그의 문장은 퉁소이며 그는 음악가들의 수호성자이다. 그는 나라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퉁소를 불었는데, 감미로운 소리를 듣고는 새들과 금수들도 모여들었다. 그는 도의 가치를 잘 몰라 누가 돈을 주면 땅에 팽게치곤 하였다.
조국구(曹國舅)
송나라의 군사령관이었던 조빈(曺彬,930~999)의 아들이었고, 황비 조후(曺后)의 남동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관복과 관모를 쓰고 있는데, 한 손엔 그의 문장인 한 벌의 카스타넷을 쥐고 있다. 그는 연예직 사람들의 수호 성인이며, 카스타넷은 궁정에 자유로이 출입하도록 허가하는 궁정 패찰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그가 왕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조국구의 동생이 과거에 응시하려 하는 수재의 처의 미색을 탐하였다. 수재를 목졸라 죽이고, 강제로 그 처를 점하였다. 수재의 원혼이 포승(包拯,아마 포청천을 말하겠다)에 소하였다. 포공은 조사를 하여 조국구에게 동생의 일을 고지하였다. 그러나 그일이 수재의 처자를 사지에 방치한 결과가 되었다. 이후 후환을 끊으려 한 것이다. 수재의 처를 이국구가 우물에 빠뜨려 죽인 것이다. 그리곤 조국구는 도망을 쳤다. 포승은 이일을 잘못알았다. 그리하여 조국구에게 소를 걸었다. 조국구는 크게 놀랐다. 수하에게 명하여 수재의 처를 죽도록 때리게하였다. 수하는 그녀를 죽게 하였다. 그리곤 그 시체를 골목길에 가져다가 버렸다. 수재의 처는 깨어나서 포공에게 원한을 울부짓듯 고하였다. 포공은 진정후에 물었다. 거짓으로 병을 얻어 조국구를 내탐하였다. 포승은 명령을 내려 수재의 처자를 출소하게 하였다. 그리고 조국구를 감금하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 거짓 문서를 작성하여 이국구가 개봉부에 오게 하였다. 수재의 처는 다시 원정을 소하였다. 그래서 마땅히 이국구를 뇌옥에 가두었다. 조황후와 송의 인종은 친히 포승에게와서 두아우를 석방시키기를 권하였다. 포승은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명을 내려 형을 집해하게 하였다. 이에 송 인종은 대사면령을 내렸다. 포공은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조국구 석방후에 입산수행하기위해 산림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수도에 힘써 선인이 되었다.어느날 종리권과 여동빈이 물었다. ; '그대는 무슨 소용이 있느냐?' 조국구 말하길 ; ]나의 소용은 도에 있다' 선인이 웃으며 '도가 어디있는데?' 조국구는 하늘을 가르키며 '도는 하늘에 있다' 하자 선인 ; '하늘 어디에?' 조국구는 자신의 가슴을 가르켰다. 종리권과 여동빈은 만족하여 말하길 ; '마음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도이다. 그대는 이미 도의 진의를 얻었다' 그리고는 환진비지(還眞秘旨)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정심수련케 하였다. 오래지 않아 조국구는 신선이 되었다.
조선민화박물관 관장 오석환 http://www.mi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