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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야기

구영(仇英) 필(筆)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의 역사적 가치 / 장진성(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작성자관운|작성시간17.03.01|조회수2,017 목록 댓글 1


구영(仇英) ()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의 역사적 가치 / 장진성(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 구영 <청명상하도> 仇英 仿張擇端淸明上河圖(요녕성박물관遼寧省博物館)

 

1) 구영仇英(1494-1552), 강소성江蘇省 태창太倉 출생. 實父, 호 십주十洲. 하층민 출신으로 채회彩繪, 칠공漆工으로 생계 유지. 이후 소주蘇州로 와서 직업 화가였던 주신周臣에게 그림을 배움. 전문적인 직업화가로 명성을 날림.

 

2) 현재 그림의 끝 부분에 구영의 관지款識仇英實父製와 그의 인장인 十洲구영지인仇英之印이 보이지만 이 그림은 구영의 진작은 아님. 소주편이라고 할 수 있음.

소주편蘇州片-명나라 때 소주지역에서 다량의 안작贋作(가짜 그림)이 제작 되었는데 이것을 소주편이라고 함.

 

3) 본 그림은 12세기 초에 활동했던 화가였던 장택단張擇端이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북경 고궁박물원 소장)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여겨짐.

- 그러나 이 두 작품 사이에 양식적인 친연성은 별로 발견되지 않음.

- 이 그림의 작자가 장택단의 <청명상하도>를 직접 보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음.

- 장택단의 <청명상하도>를 모방한 여러 작품 중 하나를 이 그림의 작자가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높음.

 

4) 구영 필 <청명상하도>의 수장收藏 내력

 

명대 저명한 수장가인 항원변項元汴(1525-1590) 소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림에 있는 그의 인장印章은 가짜라고 판단됨.

청대 건륭제 시기에 황실 소장품이 됨.

○ 󰡔석거보급속편石渠寶笈續編󰡕에 기록됨. 건륭제 이후 가경제嘉慶帝, 선통제宣統帝의 인장이 찍혀짐.

1922년 자금성紫禁城에서 쫓겨난 마지막 황제(선통제) 부의溥儀(Puyi)는 다수의 그림을 궁궐에서 가지고 나옴 (두루마리 그림 1,285, 서화첩 68)

1932년 부의는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滿洲國의 수도 장춘長春으로 구영 필 <청명상하도>를 비롯한 명작들을 가지고 옴.

19458월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부의는 명품들을 가지고 장춘을 탈출, 일본으로 가려고 함. 심양沈陽에서 부의 체포됨.

부의로부터 몰수한 명품들은 동북인민은행東北人民銀行에 임시 보관된 후 19497월에 신설된 동북박물관東北博物館(현 요녕성박물관)으로 이관됨.

 

 

2. 전 장택단 필 <청명상하도> 수장 내력

 

장택단 1120년대 초에 <청명상하도> 제작

1186년 장저張著의 제발: <청명상하도>를 그린 인물이 장택단이라고 명시함.

원대元代 : 진언렴陳彦廉--1351년 양준楊准--1365년 주문부周文府-원나라 멸망 후

민간에 유전流轉

명대明代 : 주문징朱文徵, 서부徐溥--1515년 이동양李東陽--1524년 육완陸完, 고무굉顧懋宏

--엄숭嚴嵩--1578년 태감太監(내시) 풍보馮保--명나라 멸망 후 민간에 유전

청대淸代 : 육비치陸費墀, 필원畢沅--가경제嘉慶帝

선통제(마지막 황제 부의)--1945년 부의 체포됨-1948년 동북은행에 보관-1950년 동북박물관(현 요녕성박물관)으로 이관--1953년 북경 고궁박물원으로 이관

 

 

3. 구영 필 <청명상하도>

 

1) 장택단 필 <청명상하도> : 청명절淸明節의 풍경? 청명절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이 그림 속에 잘 나타나 있지 않음. 최근에는 이 그림을 청명절의 풍속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태평성세太平盛世,’ ‘평화, 정치적 안정, 경제적 번영을 보여주는 일반적인 이미지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함

- 북송의 수도 개봉開封의 경제적 번영

- 홍교虹橋 : 경제적 번성

- 도시풍속화

 

2) 구영 필 <청명상하도>의 무대는 개봉이 아닌 소주蘇州 지역

- 연날리기, 무대공연戱臺, 교외나들이踏靑, 밭갈이, 사찰 방문, 홍교, 수박手搏, 무예 연습鍊武, 성문城門, 그네뛰기鞦韆, 집짓는 장면, 금명지金明池, 용주龍舟 등 다양한 풍속 장면이 그려짐

- 도시풍속화의 백미

- 구영 필 <청명상하도>는 명청明淸대 도시풍속화의 모델이 됨.

- 다수의 임모본copies이 제작되어 1704년까지 조선에도 이 임모본 중 하나가 전래됨.

 

 

4. 淸院本 淸明上河圖(1736, 臺北 國立故宮博物院)

 

1) 1736년 음력 1215일 건륭제乾隆帝의 황명皇命을 받아 궁정화가들인 진매陳枚(Chen Mei), 손호孫祜(Sun Hu), 금곤金昆(Jin Kun), 대홍戴洪(Dai Hong), 정지도程志圖(Cheng Zhidao)가 완성

 

2) 건륭제 등극 후 태평성세에 대한 희구希求를 주제로 하여 그린 그림

 

3) 전체 5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음: 조용한 농촌 풍경, 홍교虹橋, 성문城門 근처의 상업지구, 송죽헌松竹軒 일대의 풍경, 금명지金明池와 궁궐

 

4) 홍교 근처의 시장과 상업 활동, 선박 운송, 성시城市 풍경, 시정市井의 다양한 풍속이 그려져 있음. 청대 궁정화가들이 구영 필 <청명상하도>와 그 임모본을 참고하여 이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높음 (무대공연, 수박手搏 장면 등).

 

 

5. 서양徐揚 <고소번화도姑蘇繁華圖> (1759, 요녕성박물관)

 

1) 건륭제 1751년 제1차 남순南巡, 소주 지역에서 서양을 발탁, 궁정화가로 기용.

2) <고소번화도姑蘇繁華圖>의 본래 이름은 <성세자생도盛世滋生圖>. 소주 지역의 경제적 번성을 중심으로 태평성대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기획된 그림

- 1759년에 건륭제는 청나라의 숙적이었던 서몽고족을 정벌하고 회부回部를 평정, 복속함. 신강新疆의 탄생

- 청제국 최대의 판도, 태평성대의 도래到來

3) <건륭남순도권乾隆南巡圖卷>, 1764-1770년 서양이 조수助手들과 함께 제작

4) 상업지구, 무대 공연을 포함한 다양한 시정市井의 풍속 표현을 볼 때 구영 필 <청명상하도>와 그 임모본을 서양이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음.

6. <태평성시도> (국립중앙박물관)

- 미스테리mystery 그림

- 구영 필 <청명상하도>를 참고해서 그려졌을 가능성은 높으나 풍속, 인물, 건물 표현을 보면 매우 다른 그림임. 어떻게 이 그림이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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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관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3.01 작년 겨울 중국으로 부터 청명상하도와 고소번화도 2점을 기획전시실 메인홀에 전시하다가 가져갔습니다. 우리나라에 동궐도와 비견될 만 하지만 동궐도에서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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