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진(陳軫) 좋은 모략을 가슴속에 품고도 자신의 견해를 갖지 못하다
진진은 전국시대의 이름난 종횡가(縱橫家)이자 천하가 알아주는 웅변가로 외교모략 방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뚜렷한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못했고 한 국군에게 충성하지도 못했다. 오늘은 저 국군을 위해 꾀를 내고, 내일은 이 국군을 위해 계책을 세우는 등 그는 평생 동안 정치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초 진진은 장의와 함께 진나라 혜문왕에 의해 중용되었다. 두 사람 모두 외교모략과 웅변의 고수였다. 이는 달리 말해 두 마리의 호랑이가 같은 산에 함께 살 수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혜문왕의 총애를 얻으려 했다. 장의는 혜문왕 앞에서 대놓고 진진을 헐뜯었고, 진진은 자신의 충정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혜문왕은 결국 장의를 상국에 임명했고, 진진은 초나라로 도망쳐 몸을 맡겼다.
초나라는 진진을 반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를 자신이 도망쳐 나온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사신이 되어 위나라를 지나게 된 진진은 위나라의 실력자 서수(犀首)를 만나고자 했다. 그러나 서수는 진진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 서수는 다름 아닌 공손연(公孫衍)으로 위나라 진양 사람이다. 그는 평소 장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마침 진나라가 장의를 상국으로 기용하자 기분이 몹시 상해 있던 터였다.
면담을 거부당한 진진은 "긴히 할 말이 있어 당신을 찾았는데 만남 자체를 거부하니 내일을 넘기지 않고 떠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제서야 서수는 진진과 면담을 받아들였다.
"당신은 왜 술을 좋아하십니까?" 서수를 만난 진진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달리 할 일이 없어서 그렇소." 뜻밖의 질문에 서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할 일을 만들어주고자 하는데 괜찮겠소?" 진진이 제안했다. "어떻게 말이오?" 서수가 진진 쪽으로 몸을 당기며 관심을 보였다. 자신의 제안에 서수가 관심을 보이자 진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의 위나라 상국 전수(田需)는 제후들을 모아 동맹을 맺고자 하는데 초나라 회왕이 그를 신임하기는커녕 되레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먼저 위왕을 만나 연·조 두 나라의 국왕이 당신과 친분이 있어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와 할 일도 없는데 자기들 나라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나 나누자고 요청하니 당신을 이 두 나라로 보내달라고 하십시오.
"잠시 뜸을 들인 진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위왕께서 승낙하시면 많이도 말고 대략 30대의 수레만 차출하여 당신 뜰에 모아놓은 다음 공개적으로 연·조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간다고 공포하십시오.
"서수는 진진의 말을 따랐고, 위왕은 예상대로 서수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연·조 두 나라의 외교관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즉시 귀국하여 자기 국왕에게 사실을 보고했고, 두 나라는 바로 사람을 보내 서수를 맞이하도록 했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초나라 회왕은 크게 화를 내며 "전수가 우리나라와 동맹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어째서 서수가 연·조에 사신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속인 게 아닌가"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애당초 전수를 믿지 않았던 초왕은 이 일로 전수를 더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다.
다른 한편, 제나라는 서수가 북방으로 가서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정보에 역시 사람을 보내 서수를 초빙하여 중책을 맡겼다. 사신의 임무를 띠고 위나라를 떠나기도 전에 서수는 벌써 제·연·조 세 나라의 공동 국상을 상징하는 도장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진진은 그제서야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진진의 모략을 보면, 그 자신은 정치적으로 주관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늘 상대에게 맞추어 자신의 생각을 전개했을 뿐이다. 진나라에서 장의와 총애를 다투었을 때도 진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며, 초나라에서는 사신으로 파견되었지만 역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의 모략은 뛰어난 점이 적지 않았지만 일종의 생존수단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 번에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다
진진이 진나라에 도착해보니 마침 혜문왕에게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 한·위 두 나라가 1년 넘게 싸우고 있었는데, 혜문왕은 조정 신하들에게 진나라가 나서 두 나라의 싸움을 말려야 할지를 놓고 의견수렴을 했다. 하지만 의견은 거의 반반으로 갈라졌다. 혜문왕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진진이 나타난 것이다.
혜문왕은 장의를 상국으로 기용하는 바람에 진진이 초나라로 떠났기 때문에 진진이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좋은 의견을 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에둘러 "그대는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어도 내 생각이 나든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진진은 물음에 대한 답 대신 "대왕께서는 월나라 사람 장신(莊潟)의 고사를 들어보셨습니까?"라며 되물었다. 금시초문이라는 혜문왕의 표정을 한 번 살핀 진진은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월나라 사람 장신은 초나라에서 집규(執圭,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의 작위로 조회 때 옥으로 만든 규를 들게 했기 때문에 집규라 했다)에 임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병이 났습니다. 초왕이 '장신은 원래 월나라 시골 마을에서 아주 말단 관리를 지냈는데, 지금 우리 초나라에서 집규가 되어 출세를 하고 부귀를 누리게 되니 고향 월나라를 그리워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시종은 '사람들은 아프면 흔히 고향 생각을 합니다. 장신은 고향 생각이 날 때면 말도 고향 말로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초나라 말로 대화를 나눕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초왕이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하니 정말 그랬습니다. 지금 제가 초나라로 쫓겨나긴 했습니다만 대왕께서는 제가 사용하는 말이 진나라 말이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하셨습니까?
"진진의 이 말에 혜문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진지하게 자신을 위해 대책을 강구해줄 것을 부탁했다. 진진은 혜문왕에게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했다.
"변장자가 호랑이를 활로 쏜 이야기를 들으셨는지요? 사냥꾼 변장자가 어느 날 소 한 마리를 놓고 싸우고 있는 호랑이 두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변장자가 지체없이 그 중 한 마리를 향해 활을 쏘려 하자 함께 따라 나선 어린 조수가 변장자를 말리며 "지금 저 두 놈이 소를 놓고 싸우기 시작하면 죽기살기로 싸울 것입니다. 그러면 두 마리 모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센 놈이라도 상처를 입고, 약한 놈은 죽기 십상입니다. 두 놈이 다 싸우고 난 다음 상처 입은 센 놈을 죽이면 일거양득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1년이 넘도록 화해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변장자가 호랑이를 쏜 고사와 흡사하지 않습니까?
"진진의 이야기에 혜문왕은 크게 기뻐하며 "정말 기막히군"이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나라는 망하고 큰 나라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이 틈에 진나라는 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뛰어난 외교가 진진. 그러나 확고한 자기 철학이 부족했던 그는 유세가들의 난립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다.지도는 기원전 3세기 초 열국들의 형세도다.
소양에게 사족(蛇足)을 경계하게 하고, 이해관계로 제나라의 난관을 돌파하다
주나라 현왕 46년인 기원전 323년 초나라 장수 소양(昭陽)이 대군을 이끌고 위나라 정벌에 나섰다. 위나라는 장수가 전사하는 등 대패했다. 순식간에 여덟 개 성이 초나라의 수중에 들어갔다. 소양은 여세를 몰아 다시 제나라를 공격하러 나섰다. 이때 진진은 제나라 위왕의 지시를 받고 소양을 만났다. 진진은 소양에게 승리를 축하하는 예의를 올린 다음 몸을 일으켜 이렇게 물었다.
"초나라 법에 따르면 적의 장수를 죽이거나 적을 대파하면 관작이 어디까지 올라갑니까?"
"관직은 최고 무관직인 상주국(上柱國)에까지 오르고, 작위 역시 최고 작위인 집규까지 오를 수 있소이다."
"그 관작보다 더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영윤(令尹) 한 자리뿐이오."
"보아 하니 영윤이 가장 귀한 자리군요. 하지만 조정에는 영윤 한 사람이 군정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어 초왕이 두 명의 영윤을 둘 가능성은 없겠군요.
"이어 진진은 '사족'에 관한 고사를 들려주었다. 초나라 사람 하나가 제사를 다 드리고 난 다음 일을 도운 사인들에게 술을 한 잔 내렸다. 사인들이 술을 보니 한 사람이 마시기에는 남고 전부 마시기에는 모자라는지라 땅바닥에다 뱀을 그리는 시합을 해서 먼저 그리는 쪽이 술을 마시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시합은 시작되었고, 그들 중 그림을 잘 그리는 한 사람이 뱀을 멋지게 다 그렸다. 그러고는 왼손으로는 술잔을 가져다 마실 채비를 하면서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뱀을 그리면서 "나는 뱀에다 다리까지 붙일 수 있어"라며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뱀 다리를 다 그리기 전에 다른 한 사람이 뱀을 다 그리고는 술잔을 빼앗았다. 그러면서 "뱀은 본래 다리가 없거늘 어째서 뱀에다 다리를 그리는가"라고 비꼰 다음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먼저 뱀을 그린 사람은 뱀에다 다리를 그리다가 술 먹을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
고사를 다 들려준 다음 진진은 소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당신은 초 회왕을 도와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군을 소멸시키고 적장까지 죽였습니다. 성도 여덟 개나 빼앗았습니다. 그러고도 군대의 사기는 왕성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마치 뱀의 다리를 그린 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세운 전공만으로도 상주국에 집규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제나라까지 공격하려 합니다. 제나라는 당신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고,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명성을 떨쳤습니다. 새로이 공을 세운다 해도 영윤이 될 수 없거늘 어째서 뱀의 다리까지 그리려 하십니까? 전쟁에서 계속 승리한 다음 적절한 시점에서 멈출 줄 모르는 장수는 자칫 목숨을 잃기 십상이며 그렇게 되면 여태까지 쌓은 관작마저 남에게 넘어갑니다. 이런 장수야말로 뱀에다 발을 그린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진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소양은 제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군대를 되돌렸다.
다음으로 주나라 난왕 17년인 기원전 298년 진진은 제나라 민왕에게 삼진(三晋)과 연합할 것을 권유했다. 그때 진진은 위나라에 있었는데,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이에 앞서 진진은 한·조·위 3국을 연합시켜 공동으로 진나라에 대항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때는 소진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성사시킨 합종책이 각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벌써 깨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강국 진이 바로 코앞까지 군대를 몰고 오자 각국은 일치단결하기가 힘들었다. 이에 따라 진진은 동쪽 제나라로 가서 민왕을 설득하기로 했던 것이다. 진진은 다음과 같이 상황을 분석했다.
현재 제·초·연·한·조·위 6개국은 서로 정복 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나라의 힘만 키워준 꼴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힘은 약해졌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동방의 제후국들에게 좋은 전략이 아니다. 산동 6국을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나라는 막강한 진나라뿐이다. 그런데 6국은 진의 위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힘을 빼고 있으니 그 결과는 모두 진나라에게 병합되는 길밖에 없다.
제후국들이 진나라를 위해 서로 정복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진나라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앉아서 이익을 누릴 것이 뻔하다. 진은 이렇게 총명하거늘 어째서 산동 6국은 이렇게 어리석은가. 나라가 망하면 군주는 치욕을 당한 채 죽을 것이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끌려가거나 구덩이에 묻혀 죽을 것이다. 한·위 두 나라가 이미 생생하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다행히 제나라는 아직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았는데 이는 진나라가 제나라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제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보아 하니 제나라의 재앙이 멀지 않았다.
진나라가 벌써 위나라의 강현과 안읍으로 쳐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진이 이 두 지방을 공략한다면 동쪽으로 황하를 따라 내려와 안팎으로 제나라를 공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쪽으로는 초와 위가 고립되고, 북쪽으로는 연과 조가 고립되어 제나라는 어디로부터도 구원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한·조·위가 연합하여 형제의 의리를 맹서하고 함께 강현과 안읍을 지키는 것이 상책이다. 여기에 제나라가 참여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후환이 닥칠 것이다. 삼국이 연합하면 진이 쉽게 위를 공격하지 못하고 남쪽 초를 공격할 것이고, 삼진은 제나라가 합류하지 않은 것을 원망하여 제나라를 공격하고 나서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니 제나라로서는 서둘러 군대를 보내 삼진과 연합하는 것이 최선이다.
진진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입각하여 이렇게 당시 상황을 분석했고, 제나라 민왕은 진진의 분석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고는 흔쾌히 군대를 보내 삼진과 연합하여 공동으로 진에 대항했다.
인물소개
진진 전국시대 후기는 유세가들이 난립한 시대였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기세 속에서 이들은 각자의 논리와 언변을 통해 통일을 위해 또는 통일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저 유명한 사족(蛇足)과 관련한 고사를 남긴 진진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확고한 자기 철학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뛰어난 유세가 대열에 들 수 있을 정도의 자질을 갖춘 외교모략가였다. 그는 박학다식과 기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진 [陳軫] - 좋은 모략을 가슴속에 품고도 자신의 견해를 갖지 못하다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2005.10.20,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