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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야기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한 손빈과 방연의 이야기

작성자관운|작성시간17.10.09|조회수308 목록 댓글 0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한 손빈과 방연의 이야기

 

 



 

 

 

 

 

방연 ! 이 소나무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

 

중국의 전국시대에는 각 나라들이 서로 치고 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북부에 자리 잡은 조()나라와 그 중간쯤에 있는 위()나라 그리고 그 아래에 자리 잡은 한()나라는 원래 춘추(春秋)시대에 있던 진()나라가 갈라져서 생긴 나라여서 이들을 합쳐서 삼진(三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전에는 같은 나라였었지만 갈라지고 나서부터는 서로 치고받는 일이 자주 있게 마련이었다. 이들 세 나라의 아래로는 강한 초()나라가 있었고, 동쪽으로는 제()나라가 있어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기원전 354년의 일이었다. ()나라의 혜왕(惠王)이 조()나라를 정벌하려고 북쪽으로 올라가서 조나라의 도읍지인 한단(邯鄲)을 포위하였다. 위나라가 조나라를 합병하게 되면 조나라는 엄청나게 커지므로 이를 막으려고 초()나라의 선왕(宣王)은 즉각적으로 경사(景舍)라는 사람을 파견하여 조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그 다음 해에 또 제()나라의 위왕(威王)도 같은 이유로 전기(田忌)라는 사람에게 조나라를 구원해 주도록 하였다.

 

이 전투의 결과를 보기 전에 먼저 이전에 있었던 일을 보아야 이해가 된다.

()나라의 손빈(孫臏)이란 사람과 위()나라의 방연(龐涓)이라는 사람은 함께 병법(兵法)을 배운 일이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손빈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손자란 손빈을 높여서 부른 말이다. 이 때에는 성에다가 자()를 붙이는 것은 존경의 뜻이다. 공자(孔子), 맹자(孟子), 노자(老子)의 예에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예에 따라서 손빈의 성()인 손()에다 자()를 붙여 높여 부른 것이 손자(孫子)인 것이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병법 공부를 마치고 나서 방연은 위나라에 가서 장군이 되어 출세를 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스스로 자기의 재주는 손빈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며 시기하였다. 끝내 손빈을 해쳐서 없애기만 하면 자기가 당대에 제일가는 병법가(兵法家)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해치려고 마음먹고, 손빈을 자기가 있는 위나라로 초청하였다.

 

손빈이 위나라에 도착하자 온갖 꾀를 써서 손빈을 법률로 얽어매었고, 드디어는 형벌을 내리게 하여 손과 발을 자르고, 얼굴에는 죄인이라는 표시로 묵()을 뜨는 경형(黥刑)에까지 처하도록 하였다. 결국 종신토록 아무 일도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이제 방연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병법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손빈이 살던 제 나라의 사신이 위나라에 왔다. 팔다리가 잘리고 경형을 받은 손빈은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몰래 제()나라 사신을 만나서 자기를 제()나라로 데리고 가 달라고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제 나라 사신은 그를 몰래 수레에 싣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손빈이 돌아오자, 제 나라에서는 귀족인 전기(田忌)가 그를 만나보고 그 재주를 높이 사고 우대하였다. 그리고 자기 나라의 왕인 위왕(威王)에게도 천거하였다. 그리하여 손빈은 위왕(威王)과 이야기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병법에 관하여서도 이야기하자 위왕은 그의 지략(智略)에 감탄하여 그를 스승으로 삼게 까지 되었다.

 

이러한 일이 있었던 마당이므로 제 나라의 위왕은 조나라를 도와주기로 하자, 손빈을 장수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손빈은 자기는 죄를 받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거절하고, 전기를 장군으로 삼게 하고는 스스로는 군사(軍師)가 되었다. 군사란 군사책략가를 말한다. 그러나 팔다리가 잘린 사람이라 걸어 다닐 수가 없으므로 수레에 앉아서 계획을 짜고 꾀를 내는 일만 하였다.

 

출발하기에 앞서서 손자(孫子)는 지금 위나라의 군사들이 조나라의 도읍인 한단(邯鄲)으로 쳐들어갔으므로 위나라의 도읍지인 양()에는 약하고 늙은 병사들만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조나라를 도우려면 두 나라가 싸우고 있는 조나라의 도읍지인 한단으로 갈 것이 아니라, 위나라의 도읍지인 양을 공격해야 한다고 하였다.

 

얼마 후에 위나라 군대는 조나라의 도읍인 한단을 함락시켰지만, 제나라의 군대가 자기들의 도읍인 양()을 공격한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돌려서 와야 했다. 그러나 계릉에 도착했을 즈음에 제나라 군사들은 지친 위나라 군대를 쳐서 크게 패배시켰다. 손자가 동문수학한 방연을 멋지게 이긴 셈이다.

 

다시 12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위나라의 장수인 방연이 이웃나라인 한()나라로 쳐들어갔다. 한 나라는 제나라에게 구원하여 달라고 하였다. 제나라의 왕인 위왕은 회의를 소집하고 토의하였다. 어느 사람은 한나라를 돕지 말라고 하였고 어느 사람과 빨리 도와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였다.

 

이때에 손빈이 나섰다. ‘대저 한나라와 위나라가 싸우기 시작하였으니 아직은 지친 상태는 아닌데, 우리 제()나라가 한나라를 대신하여 위나라의 군사를 맞아 싸우게 된다면 이는 우리가 한 나라의 명령을 듣는 꼴이 됩니다.’ 이 말은 재빨리 구원병을 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또 위나라는 한나라를 깨뜨릴 생각을 가진 것이 분명하니까, 한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반드시 동쪽에 있는 우리 제나라에게 자기들의 입장을 호소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한나라와 화친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될 것이고, 이 때쯤 되면 위나라의 군사들도 지쳐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가서 지친 군사를 맞아 싸운다면 크게 승리하고 명성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한나라가 제 나라에게 간절히 호소할 때까지 기다리며 천천히 한나라를 도와주자는 의견이었다. 제나라의 위왕은 이 의견에 찬동하고 몰래 한나라에게 도와주겠다고 통지하였다.

 

한나라는 제나라가 자기들을 도와준다는 말을 믿고 다섯 번이나 싸웠지만 이기지 못하고 급하게 되자, 동쪽에 있는 제 나라에게 자기 나라의 일을 부탁하였다. 그렇게 되자 제나라에서는 다시 손빈을 군사로 삼아서 위나라의 도읍지인 양()을 향해 군사를 발동하였다. 다시 도읍지가 위태롭게 된 위나라 군사들은 한나라를 버리고 회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읍에 남아 있던 태자인 신()을 장수로 삼아서 제 나라 군사를 막게 하였다.

 

이 때에 손빈이 계책을 말하였다. ‘저들 삼진(三晋)의 군사들은 본디 용감하여 우리 제나라 군사들을 겁쟁이라고 얕잡아 보니 적당히 유인해야 합니다.’ 유인작전으로 이기겠다는 것이었다. 제나라 군사들이 일단 위나라 땅으로 들어가자, 손빈은 일단 아궁이를 10만개를 만들게 하였다가 군사를 후퇴시키었다. 다음날에는 5만개만 만들어 놓게 하였고, 그 다음날에는 2만개만 만들어 놓게 하고서 물러났다.

 

이 소식을 들은 위나라 장수인 방연은 기뻐하였다. ‘제나라 군사가 겁쟁이라고 하더니 군사가 도망하여 매일 반씩 주는구나.’ 위나라 장수인 방연은 제나라 군사들이 자기나라 영토 안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중간에 도망자가 많이 생겨서 군사들이 밥해 먹은 아궁이가 매일 반씩이나 주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정예의 병사를 동원하여 보통 이동하는 속도보다 배나 빠르게 제나라 군사를 뒤쫓았다.

 

방연이 이끄는 위나라 군사가 저녁쯤 해서 마릉(馬陵)이라는 곳에 도착할 것으로 계산한 제나라의 손자는 좁고 험한 마릉에 군사를 매복시키면서 군사들에게 소나무 앞에서 횃불이 올라오거든 무조건 그곳을 향하여 활을 쏘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큰 소나무를 하나를 골라서 껍질을 벗겨가지고 그 위에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는다.’라고 써 놓았다.

 

그 후 밤중이 되어 방연은 군사를 지휘하여 마릉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나무 하나가 껍질이 벗겨져 있고 그 위에 글씨가 써 있는 것이 보이자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읽으려고 방연은 부하군사에게 횃불로 그 글씨를 비추어 보게 하였다. 이 때에 손자의 지휘를 받아 매복해 있던 제나라 군사들은 지시를 받은 대로 횃불이 들려진 그곳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자 위나라 군사의 대열은 바로 무너졌다.

 

방연은 손자에게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패배한 것을 뼈저리게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자결하였다. 손빈이 소나무에 써 놓은 대로 된 것이다. 방연은 죽으면서 한 마디 내 뱉었다. ‘드디어 어린 녀석이 이름을 드날리게 되었구나.’ 결국 위나라의 태자인 신()도 제나라에 포로로 잡혔다.

 

자치통감2에 실린 이야기이고, 이 전투는 역사적으로 마릉전투라고 알려진 유명한 것이며, 오늘날까지도 전술전략가로 유명한 손빈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손빈과 방연의 이야기는 전투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도 전쟁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음미해 봄직한 내용이다. 자기 실력을 올리지 않고 남을 시기하려는 사람, 방연 같은 사람들에게는 경종이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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