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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야기

당나라 군대

작성자관운|작성시간17.12.03|조회수529 목록 댓글 1


당나라 군대

 

 

 

 


 

 

 

그야말로 개판 5분 전을 자랑하는 막장 군대를 일컫는 말. 한마디로 '오합지졸'.

 

그런데 실제 역사상의 당나라 군대는 전체 중국 왕조를 통틀어서도 역대급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당시 동아시아 최강군이었다. 대기병 전술의 발전으로 소수의 보병으로 다수의 기병을 제압하는가 하면, 북방 유목민들의 장점을 받아들여 기동력을 살린 경기병대를 출현시키고, 나아가 아예 사방에서 데려온 이민족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당시 동양의 거의 모든 병종의 장점을 모았다.

 

그리고 이러한 저력은 조그마한 태원 한 구석에서 시작해서 10년 남짓한 기간에 중국 대륙을 통일한 것도 모자라서 북쪽으로 유목제국, 서쪽으로 중앙아시아, 남쪽으로 베트남, 동쪽으로 고구려 및 백제를 제압하고 일본까지 박살내는 등의 전과로 증명된다. 물론 7세기 말쯤 되면서 조금씩 삐걱거리고 안사의 난, 황소의 난 쯤 되면 당나라 군대가 레알 당나라 군대로 전락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당나라 군대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은 고구려 원정 당시의 수나라 군대와, 당 멸망 이후 이를 계승한 송나라 군대다. 수나라의 경우 억지로 긁어모은 오합지졸에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지휘체계도 중구난방인 등 문제 투성이었으며, 송나라 군대는 일단 장수들부터가 문신들보다 큰 차별을 당했다. 물론 문치국가였던 중국고대국가의 특성상 문신보다 무신이 차별받은 것은 있었던 일이지만 송나라 때는 정말 전왕조인 당나라 절도사들의 난을 참고삼아 군인들의 지위를 크게 낮춰 버렸다. 허나 오히려 이 때문에 외부의 위협인 금나라 여진 기병 120기에게 수천명이 털려버리는 풍선 효과를 낳고 말았다. 또한 온갖 질 나쁜 불량배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등 군 전체의 질적 저하가 심각하였으며 군 기강이 개판인 상황이었다.

 

다만 송나라 군대는 우리 민족과 별다른 마찰이 없었고, 수나라 군대는 발음 구조상 받침이 있는 당나라 군대의 발음이 더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묻힌 듯하다. 어쨋든 한족왕조의 강한군사력과 영토및 지배영역 순으로 따진다면 '>>>>>진 순일것이다.'

 

2. 어원

 

 

시초에 관한 설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럴 듯한 가설로는 다음과 같다.

 

 

고구려 유래설 : 비록 고구려가 668년에 나당 연합군에 멸망당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 고구려는 당나라를 맞아 큰 승리를 거두었고 하니 고구려 입장에서 당나라 군대 이미지는 오합지졸로 보였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박근형 저 <중국 읽어주는 남자>란 책에는 이 당나라 군대란 속어의 유래를 고구려에서 찾고 있다.

 

 

남북국시대 신라 유래설 : 특히 신라의 경우 일단 나당전쟁에서 승리했으니 형편없는 약군으로 인식한 것. 물론 지금이야 각국의 군사력을 객관적으로 파악이 가능할 정도로 정보가 충분하기에 당시의 당군이 질적으로 크게 떨어지는 군대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보의 양과 질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피상적으로 대국인 당나라가 신라에게 패했으니, 신라 입장에서는 당나라의 군대 이미지는 실제와 관련없이 형편없는 오합지졸로 인식했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게다가 실제와는 무관하게 적을 조롱하는 문화는 그리 드문 게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또한 그 후 나당전쟁을 겪지 못한 후세의 신라인들이 안사의 난, 황소의 난 등에서 당나라 정부군이 무력하게 패배하고 이민족이나 의용병의 힘으로 겨우 안정을 찾은 것을 황해 바다를 건너오는 소문과 자치통감 등 중국 사서를 통해 접하면서 당나라 군대에 대한 이미지는 더 악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라군도 몇백년이 지나 후삼국시대 직전까지 가면 약군이 되기는 하지만, 당나라가 안사의 난으로 골골거리기 시작할 8세기 때 신라는 여전히 전성기였고 9세기 초반까지도 김헌창의 난을 정부군으로 신속하게 진압하는 등 신라보다는 당나라가 더 일찍부터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정조가 경연에서 당나라 군대의 연패에 대해 논하는 것을 보면 이때 이미 '당나라 군대'의 이미지가 잡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는 신라에서 유래 되었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군기가 빠진 군대에서는 총을 쏴도 탕소리가 아니라 하나빠진 당소리가 난다고 당나라 군대라고 부른다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용어라는 설.

 

 

군기가 빠져 싸우지는 않고 매일 꾸벅꾸벅 졸기만 하는 모습에서 닭나라 군대 당나라 군대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 당나라를 닭나라로 잘못 이해하는 유머는 예전에도 있어왔다.

 

 

그 외 일본에서 청일전쟁 당시의 한심했던 청군이나 국민당군을 일컬어 당나라 군대라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 표현은 한국에서만 쓰이는 표현이자 관용구라 사장된 가설. 일본은 에도시대까지도 중국을 당나라라고 불렀으며 그렇기에 일본에서 당나라 군대는 곧 중국 군대를 의미했다. 그리고 왜구들이 겪은 중국(원명) 군대의 형편없는 수준을 감안하면 당나라 군대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비하적인 표현이 되기 쉬웠을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인식이 우리나라로 전파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당나라 군대란 말 자체가 한국에서만 쓰는 속어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유래했다거나 일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3. 사용 일례

 

 

한국 내에서는 주로 공군 등 군기가 타군에 비해 약하다고 알려진 군을 비하할때 사용해왔고, 근래에는 논픽션 매체에 등장하는 막장 군대들이나 다른 나라 군대의 막장 행각을 깔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자유로운 군기를 가진 것처럼 묘사되는 해외의 군대 드라마 등을 깔 때 많이 사용된다. 한국군의 경우 요즘 군인들 군기가 엉망이라고 까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저 위의 군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부 다 막장은 아니다. 애니에도 제대로 된 군대가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고, 공군 역시 일반화할 수 없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고학력 등의 이유로 징집제임에도 불구, 병사 개개인의 능력은 상당히 좋은 편이이나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군 등에 비하면 훈련 강도나 숙련도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웹툰 마린블루스에서 예비역인 성게군이 소대 최고 맞선임이 된 쭈꾸미군에게 요즘 신병들 이야기를 듣고 당나라 군대라고 비유한다. 다만 이는 "자기 땐 그러지 않았는데~"라는 특유의 군대허세와 똥군기도 섞여있으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말 것. 애초에 저 수많은 규칙들을 "왜 지켜야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갈구기만 하는 선임들도 많다.

 

한편 이라크 내전에선 이라크군이 ISIL 상대로 매우 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라, 오합지졸 소리를 듣고 있다. 심지어 모술에선 800명이 쳐들어오자 3개 사단이 그냥 증발해버렸고, 결국 모술은 ISIL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이건 2015년 전의 이야기고 현재는 두들겨 맞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황금사단을 필두로 하여 승승장구중이다. 우크라이나 내전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이는 중인 우크라이나군도 같은 취급이다.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이탈리아군과 유고슬라비아군이 당나라 군대 포지션이었다.

 

아프리카 전선에 막 투입된 미 제2군단 역시 카세린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스러운 모습을 왕창 보여주면서 대패.이 보고를 받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우리 애들, 싸움할 줄은 아나?"며 탄식했다는 소문이 있다. 영국군은 위에서 아래까지 "양키들은 연합군 안의 이탈리아군"이라며 비웃었고...이에 투입된 인물이 다름아닌 (자칭) '한니발의 환생' 조지 S. 패튼.

 

2차대전의 이탈리아 군대도 일부를 빼면 당나라 군대라고 놀림받는데, 사실은 히틀러 부러워서 발 동동 구르는 무솔리니를 위해서 목숨걸고 남의 땅에서 죽으라고? 내가 왜? ...에 가까웠다.

 

중화민국 공군 고문으로 도착한 클레어 리 센놀트도 이 꼬라지인 중국 공군에 학을 뗀다. 그래서 등장한 게 플라잉 타이거즈.

 

군축으로 인해 약체화된 대다수의 서유럽 군대들이 이 범주에 속하는 막장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자세한 건 독일군의 군사 분야 문단을 참조하자.

 

한국의 속담 가운데에 이와 얼추 비슷하면서도 뜻은 조금 다른 "죽어나는 건 조조 군사"라는 말이 있다.

 

솔로부대(...)를 당나라 군대라 부르기도 한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부대원들이 탈영을 시도하기 때문이라고...

 

이런 질문 참 곤혹스럽습니다. 대부분 아는 말이고 그럴듯한 어원을 가지고 있을 법한데. 바이러스도 아니면서 변종이 많이 생겨나기도 하지요. 한나라당을 당나라당이라고 비꼬기도 하잖아요.

 

저도 언급하신 글에서부터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노르웨이 오슬로로 국제전화를 걸었지요. 박노자 교수는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의 블로그 글을 인용한 대목이라고 전제한 뒤 자신의 생각을 밝히시더군요. 핵심만 추리면 이렇습니다.

 

 

임의 말씀대로 당나라 군대도 한때 강군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왕조가 그렇듯이 후기로 갈수록 약해지지요. <자치통감>이라는 북송시대의 역사책을 보면, 8세기 중반 이후 약화된 당나라의 군사적 패배를 안타깝게 기술한 대목이 많다고 합니다. 당시 당나라의 주변국, 특히 토번(티베트)과 돌궐(위구르) 등의 침략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는군요. 토번의 공격에 수도 장안까지 함락된 적이 있다네요. 당나라 군이 연전연패의 상징처럼 역사책에 기술되면서 그런 불명예를 쓰게 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 교수의 또 다른 가설은 일본 역사책입니다. 자신들이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 당나라의 약점을 크게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는군요.

 

인터넷에도 유사한 질문과 다양한 답변이 있습니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는 한 언론에 실제 당나라군은 세계 최강이었다며 서기 660년 신라군이 처음 만난 당나라군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소란스러운 부대였던 모양이다. 단일민족으로 군기가 엄정했던 신라군의 눈에는 당나라군이 군기가 엉망인 군대로 보였을 거라는 설을 소개했습니다. 이에 한 블로그(비겐의 군사문제 사진 블로그)에는, 일제시대 일본군이 무늬만 군대였던 중국군을 가라 군대라고 조롱했고 역사적으로 당과 그 이후 중국을 가라라고 표현했던 것이 뒤섞여 당나라 군대의 어원이 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오합지졸 중국군 가라(‘가짜당나라모두 가라로 발음) 군대 당나라 군대가 됐다는 주장인 셈이지요.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우선 한··일만 확인해봤더니 당나라 군대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만 쓰입니다. 중국 역사서에서 기원했거나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말이라면 중국이나 일본에도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중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당나라 군대를 누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를 확인해야 정확한 어원을 알 수 있다는 중국전문가 이남주 교수(성공회대)의 지적에 공감이 갑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있지요. 경제뿐 아니라 군사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당나라 군대운운했다가는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지요.

 

 

 

그런데 실제 역사상의 당나라 군대는 전체 중국 왕조를 통틀어서도 역대급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당시 동아시아 최강군이었다. 대기병 전술의 발전으로 소수의 보병으로 다수의 기병을 제압하는가 하면, 북방 유목민들의 장점을 받아들여 기동력을 살린 월기병대를 출현시키고, 나아가 아예 사방에서 데려온 이민족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당시 동양의 거의 모든 병종의 장점을 모았다.

 

그리고 이러한 저력은 조그마한 태원 한 구석에서 시작해서 10년 남짓한 기간에 중국 대륙을 통일한 것도 모자라서 북쪽으로 유목제국, 서쪽으로 중앙아시아, 남쪽으로 베트남, 동쪽으로 고구려 및 백제를 제압하고 일본까지 박살내는 등의 전과로 증명해준다.

 

그렇게 좀 놀아보다가 7세기 말쯤 되면서 조금씩 삐걱거리고 안사의 난 쯤 되면 당나라 군대가 레알 당나라 군대로 전락하지만(...) 아무튼 역사 전공자가 아닌 한 이 부분에 관심을 갖는 한국인은 적기 때문에 이게 이 용어의 유래라고 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당나라 군대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은 고구려 원정 당시의 수나라 군대와, 당 멸망 이후 이를 계승한 송나라 군대다. 수나라의 경우 억지로 긁어모은 오합지졸에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지휘체계도 중구난방인 등 문제 투성이었으며, 송나라 군대는 온갖 질 나쁜 불량배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등 군 전체의 질적 저하가 심각하였으며 군 기강이 개판인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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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관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2.03 당나라 장안을 궁궐을 지키는 호위무사로 위그르인들을 고용하는 일이 많았는데 당현종과 양귀비가 놀아나던 시기에 안록산(위그르인, 회족)이 난을 일으켜 결국 당현종은 양귀비와 함께 도망을 가다가 결국 양귀비가 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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