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동아시아 이야기

청화와 유리홍

작성자管韻|작성시간19.07.08|조회수144 목록 댓글 0


청화와 유리홍

 

 

 

 



 

 

원대의 청화백자

 

중국자기의 역사는 유구하여 청 람 백등 색상으로 청화백자는 세계최고의 도자기로 원초의 청화자는 최고의 매력으로 인정된다.

2005712일 원청화자가 귀곡자하산도라는 자관이 런던의 박배회에서 1400만파운드에 거래되는데 중국위안화로 2.3억위안으로 최고를 갱신하였다.

중국예술품박매의 최고가로 원청화자는 세계각국에 수출되나 명의 건국후 명성은 사라진 것으로 서양각국의 학자들의 연구가 이루어지는데 1929년 영국의 논문중 명대이전의 청화자병이란 논문으로 도자사상 원청화자의 최초의 고증으로 유명한데 영국인 홉슨으로 대영박물관의 도자전문가이다.

1900년대초 대영제국의 전성기에 해외문화재는 대영박물관의 전람품으로 많아 그중 원청화자의 가치가 최고로 평가된다.

명대의 태감으로 유명한 왕진이 설립한 북경의 지화사는 가묘로 청화운문용문상이자관은 한쌍으로 원지정11년작품인데 민국시절 전란시 절도가 되어 영국의 중국예술기금회로 흘러간다.

청백람화가 문식으로 8층인데 상형의 귀가 붙은 자관으로 쌍이병이라 하고 명문이 62자가 새겨져 신주로 옥산현 순성향 덕교리 형당사에서 만든 화로병이란 지정시의 명문이다.

63.4센티의 높이로 상공제품으로 강서성 무원현 영순묘의 전통적 오현신인 호정일원사에 바친 것으로 원지정 111351년의 작품으로 불교의 욕불일에 제사공품으로 장문진이 바친 것이다.

합가청결 자녀평안을 위한 불교의 제사에 공봉한 것으로 기도품인데 원멸망 17년전으로 다음해에 농민군들이 영순묘를 훼손한다.

원조중후기의 청화자로 경덕진요에서 소제한 것으로 원청화의 존재와 산지를 밝혀주는데 중요한 역사학술가치가 있는데 인류문명사상 가장 경염한 자기라고 한다.

미국학자 보프는 터어키 이란등을 고찰후 청화자의 존재와 가치를 고증하는데 예일대학출신으로 중국문화연구의 중심지로 중국사에 관심으로 나중에 컬럼비아대 교수가 되는데 하버드대에서 청화자로 박사학위를 하고 최고의 중국전문가에 속하는데 학습을 위해 중국하북성의 탄광에서 차량을 운전하며 중국문물을 연구한 중국통이다.

원대자기는 징기스칸의 제4자인 툴루이의 후예들이 이리한국을 봉지로 받아 1611년 국왕인 압바스 살비가 이란에 존재하는 1162건의 중국자기를 아더비얼청진사에 기증한다.

후에 이자기가 이란의 국가박물관에 수장되어 보프가 터어키의 이스탄불(동로마와 오스만제국의 수도)에 들러 고찰하고 이란으로 간다.

오스만투르크는 500여년간 이스탄불의 토푸카비궁에 도읍하여 다량의 자기를 보유하고 중국자기가 2만여점이나 수장되었다.

케말파샤의 터어키공화국 성립후 황궁의 자기는 황궁이 국가박물관이 되어 이관된 것으로 보프는 2차대전에 참전후 귀국전 이곳을 고찰한 것이다.

청화자의 수장현황을 고찰한 것이 목적으로 궁전이 박물관이 된 이후여서 터어키의 40점 이란의 32점 청화자를 연구하였다.

1950-1956년사이에 논문으로 연속발표하여 14세기형청화자연구라는 저서를 간행하고 유형을 확정한다.

14세기청화자의 특징은 4개로 1)기형특징은 크고 후중한 몽고초원문화와 중아 서아문화의 결합형 자기로 자반이 60-70센티나 된다.

2)태질유는 세니한 고령토로 청백한 반저의 바닥이 원시적으로 아무런 태질이 없다.

3)색채면에서 매우 농염 포만한 특징으로 대반은 꽃이 포만하고 농염한 모양이다.

4)문식이 풍부다양하여 동물 식물 인물 산수가 풍부하게 그려져 아랍의 식물도문과 아랍문자가 새겨져 있다.

보프가 관찰연구후 14세기의 청화자는 일률적인 제작모형으로 결론을 내리고 14세기형이라고 논증한 것이다.

이시기는 청화자의 발전기로 명대의 영락시기의 청화자로 발전 계승한 것이라 결론을 내린다.

당시 몽고제국은 세계경영으로 원청화자는 이시기에 중아 서아등에 풍미하여 화풍서신현상을 일으킨 것으로 청화가 동서교융의 500년 문화를 주도한 것으로 밝혀준다.

원의 막북철수후 원청화자는 명대에 훼손되어 중국본토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는데 이란 터어키등에 다량으로 남고 자기산업의 서구화가 이루어져 학술 역사가치가 높다.

원청화자는 중국에 근원을 두는데 62자의 명문에 나타나 1980년 강서 고안에서 청화자기창고가 발굴되어 23점의 원청화자가 대량으로 발견된다.

그중 14세기형은 6점으로 매병으로 중국전통 육예인 禮 樂 射 御 書 數로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다.

강서 고안출토의 9점의 고족배중 한점이 한자로 씌여져 당시 몽고귀족의 수장품으로 밝혀진다.

최근 경덕진의 고고발굴로 원대청화자편과 요지가 발굴되고 호전요지는 원대용요가 있고 낙마교요지에서 자편이 많이 발견되었다.

주산요지에서 청화자 자편과 기물이 많이 발견되어 경덕진에서 생산된 것을 확정한다.

원청화팔릉매병은 하북성 보정에서 1964년 발굴되는데 八稜으로 제작이 어려운 기형이고 보정에서 원청화유리홍대개관이 다시 출토되어 42.3센티로 화문과 회화가 농염한데 능소화그림은 돌출한 문식으로 루공이 개별적으로 된 것이었다.

한쌍으로 북경의 고궁과 국가박물관에 따로 진열중인데 원청화의 문식화문의 특징은 崇白尙藍으로 청백의 의 위에 남색의 문식을 그린 것이다.

청화자몽고포 청화자는 러시아 알마아타시 박물관에 있는데 마상유목문화를 자기에 반영한 것이다.

청화자는 농경과 초원문화 동방과 서방문화 동아와 중서아문화의 교류의 결과물로 기물상의 산물이다.

더구나 문식이 매우 풍부하고 경덕진시 낙평현에는 300여촌에 420좌의 원명청이 남긴 희루가 남아 원대부터 희곡의 성행으로 유명한 곳인데 민요가 남아 희극이 습속이 된 것으로 원청화제작시의 고사가 남아있다.

이고사들이 청화자의 문화내함의 문식으로 남아 중국의 길상물과 화훼도 모두청화자에 그려져 있다.

색채문식도 14세기형원청화자의 특징은 중국의 예품과 상품으로 유통된 것으로 당시 최고의 예술품으로 한시대를 풍미하고 송대의 단일색상의 자기에서 원청화부터 채색자기로 변화하여 신시대를 열어 인물 화조 비금 조수 동식물 전설과 고사가 화문으로 등장하고 명청시 일반되어 발전의 신시대를 연다..

.채자시대의 도래와 신문양으로 원래의 刻 剔 畵 印 帖 塑등 전통수단를 제외하고 彩繪를 자기상에 구현하여 생동한 고사를 남겨 자기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문화의 내함을 남긴 것이다.

원청화는 자기사상 문화사상 중대한 전환과 창신으로 어요자기 발전의 영혼으로 어요문화발전의 생명지원이다.

몽고는 백년중원지배의 우담화로 짧은 시기에 중원에 휘황한 문화를 남기게 된 것으로 놀라운 신문화의 충돌이자 융합과 창조이다.

유리홍 자기는 최상품의 경우 홍콩·런던·미국 경매에서 20억원 가까이 되는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다.

유리홍은 산화동이 고온에서 환원되어 붉게 착색된 것을 뜻한다. 동을 안료로 사용한 예는 당대 호남 장사 동관요의 색채 장식 중 홍채로 나타낸 화문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정식 유하채로서는 원대 유리홍자기가 처음이다.

 

원대 유리홍 자기는 청화자기 제작과 더불어 14세기 들어 크게 유행했다. 특히 경덕진 일대를 포함한 중국 강남지역이 전란에 휩싸여 청화 안료의 수입이 중단되었을 때 유리홍이 이를 대체했다. 따라서 당시 원말 경덕진에서는 전란으로 인해 소마리청을 이용한 자기 제작보다는 유리홍자기가 더 많이 제작될 수 밖에 없었다. 유리홍의 특징은 높은 온도에서 성공적으로 번조(도자기 등을 불에 구워서 만드는 일)되기 어려운 유약이라는 점이다. 또 붉은색보다 회색으로 번조되는 경우가 많았다.

통상 시장에서 국제경매가는 대략 400∼500만위안(10억원)의 범위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원대 유리홍자기의 태토와 유약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첫째 태토는 회백색이고 단단하고 두꺼우며 하얗고 성질이 견고하다. 태질은 동 시기 청화보다는 거친 편이다. 둘째, 기면에 깍은 흔적과 이어붙인 흔적이 보이고, 깎아낸 굽다리에는 칼자국이 있으며, 높은 굽의 안과 굽다리 주위에는 유약이 없다. 셋째, 유면은 청백유를 위주로 하며, 온윤한 광택이 있다. 또한 유약에 있어 초기의 청백색·회백색은 영청유에 속하며 투명한 유리질감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유리홍은 가마 안에서 엄격한 환원분위기를 요구하며, 동은 반드시 환원염 분위기 속에서만 비로소 홍색이 나타난다.

반면 청화는 가마 안에서 일부 환원과 산화가 교차되어도 큰 상관은 없다. 원대 유리홍자기는 순수한 홍색이 나타나기 매우 어렵다. 동은 환원염 소성시 그 정도가 과도하면 색이 어두워지고 중성염 혹은 산화염 상황에서는 오히려 자주색, 푸른색, 녹색을 띤다. 예컨대 용해가 완전히 끝나지 않으면 회색인 쥐색이 나타나고 나아가 암자색을 띤다. 만약 용해 정도가 지나치면 곧 색이 바래서 등황색이나 백색으로 변한다.

원유리홍 자기는 문양장식이 청화에 비해 단순하며 청화장식처럼 빽빽하고 정세하지 못하다. 장식제제 역시 청화자기처럼 정세하지 못하다. 출토 기물인 북경 고궁박물원의 유리홍지토문 옥호춘병은 복부에 획각으로 옥토끼가 전지영지초 사이로 뛰는 광경을 묘사하였으며 입체감이 강하고 화면 속 여러 곳에 동홍으로 장식하였다.

 

첸쩡샤는 '중한고미술협회'이사로 1,000여점의 중국도자기를 두루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C'는 중국도자기(Chinese ceramics)를 뜻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