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동아시아 이야기

중국신화의 복희와 여와

작성자管韻|작성시간21.01.23|조회수884 목록 댓글 0

중국신화의 복희와 여와

 

 

 

 

 

 

 

다음은 한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산동지역 사원에 있는 벽화이다. 위의 도상과 비슷하지만 가운데에 자식으로 보이는 존재(신농)가 있다. 한나라 이전에는 이러한 복희여와도는 발견되지 않는다.

 

 

세라피스와 동일시 본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상징은 뱀이다. 지팡이를 감싸는 뱀은 세계보건기구(WHO) 휘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세라피스는 오시리스(Osiris)와 아피스(Apis)의 합성신(合成神)으로 우신(牛神), 명부(冥府)의 왕 또는 의술의 신이라고도 생각되었다.

 

 

인도 남서부 할레비두 호이살라슈바라 사원의 나가(Naga) 부부 / (10~14세기)

 

 

뱀의 형태로 표현된 티케(Agathe Tyche)로서의 이시스, 아가토다이몬(Agathodaemon)로서의 오시리스 혹은 세라피스 / 그레코로만 시대

 

 

중국 신장(新疆) 투루판에서 출토된 ‘복희여와도(伏羲女娲圖)’인데, 8세기 중엽 당나라 시대의 작품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투루판 지역의 대표적인 고분 유적인 아스타나 무덤에서 발견된 이 그림은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를 소재로 삼고 있다. 그림의 중앙에 두 신이 서로 마주본 자세로 표현되어 있는데, 왼쪽이 여신인 여와, 오른쪽이 남신인 복희이다. 두 신은 각각 컴퍼스(規)와 구부러진 자(曲尺)를 들고 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상반신과는 달리 하반신은 뱀과 형상으로 꼬여 있다. 배경에는 해와 달, 별자리가 그려져 있어,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를 재현하고 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요소가 혼합된 투루판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남신 복희와 여신 여와의 모티프는 인도나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복희, 여와라는 테마가 중국이 아닌 남방 문화에 의해 형성되어 중국으로 전래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중국의 소수 민족들도 여와을 신으로 모시는 풍습이 있다. 투르판 아스타나(阿斯塔那)의 묘실 천정에 부착되어 있었던 복희 여와도는 중국 내륙에서도 출토 예가 없다.

 

복희와 여와의 이야기는 세계 곳곳의 인간 탄생 신화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와가 흙으로 사람을 빚어낸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강물에 흙을 반죽해 사람을 만들었다는 내용, 성경에서 하나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코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었다고 한 내용과 닮아 있다. 홍수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데우칼리온 부부 이야기, 성경에서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닮아 있다. 여와 신화는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신화로 이해되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치세에는 이집트인의 종교와 통치자(마케도니아인)의 종교를 통합하는 노력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방침은, 외래의 지배자를 저주하는 이집트의 배타적인 신을 짓밟고, 양쪽 모두로부터 숭배되는 신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문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문은 상 이집트에서의 신앙이 독실한 신으로 그리스인의 지배력이 강한 하 이집트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또한 그리스 사람에게는 동물의 머리를 가진 우상은 별로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 스타일의 인간의 모습을 한 우상을 선택하여 아피스와 동일하다라고 선언했다. 그것이 아세르-하피(Aser-Hapi, 즉 오시리스-아피스)라고 불려 세라피스가 되었다. 그리고 이 경우의 오시리스는 카(영혼)만의 존재가 아닌 완전체로 여겼다.

 

 

 

전설 속에서는 복희와 여와는 오누이가 되기도 하고 부부가 되기도 하는데, 이런 전설들은 그 유래가 오랜 것으로, 한나라 때의 석각(石刻) 그림들과 벽돌 그림들 그리고 서남 지방의 묘(苗) · 요(瑤) · 동(侗) · 이(彛) 등 소수 민족들 사이에 전해지는 전설을 보더라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을 가진 신화들 중에서 그 유래가 오래된 것으로 대표적인게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화’이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구도로서 오시리스, 이시스, 호루스의 삼위일체와 복희, 여와, 신농이라는 삼황(三皇)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저승의 신이자 부활의 신인 오시리스와 치료와 번성, 화육(化育)의 신능을 지닌 이시스의 교미형 도상, 그리고 그 가운데 자리한 호루스의 형상은 이집트 및 지중해 전역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존재이다. 또한 그레코로만 양식의 오시리스와 이시스 도상은 중국의 복희 ・ 여와의 도상과 부분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도상은 인도나 투르판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복희 ・ 여와의 도상은 역사의 전 시기, 세계 도처에 편만하게 존재했던 문화 요소로서, 보다 넓은 문명교류사적 시야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복희와 여와가 들고있는 직각자와 콤파스는 프리메이슨의 상징이기도 하다. 프리메이슨은 스스로를 플라톤의 ‘수호자’ 그리고 그 원형인 이집트 사제의 계승자로 여겼단다.

 

뱀과의 결합은 언제 어떻게? 이것은 광범위한 주제이므로 다른 글에서 정리할 예정이지만, 뱀(serpent 또는 snake)은 신화의 상징으로는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널리 퍼진 것 중의 하나이며, 선(good)과 악(evil)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닝기쉬지다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지하세계의 신이다. ‘닝기쉬지다’라는 이름은 수메르어로 “훌륭한 나무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닝기쉬지다는 뱀 한 쌍이 축을 감고 올라가는 형상의 가장 오래된 상징이다. 이 닝기쉬지다는 헤르메스의 지팡이 카두케우스나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모세의 지팡이보다도 천년 이상 앞선 것이다.

 

 

불교와 힌두교에서도 뱀은 중요한 존재이다. 뱀에 대한 숭배의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곳은 바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이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지키는 존재가 바로 나가(Naga)로 불리는 거대한 뱀 신이다. 앙코르 왕조는 11세기 중엽, 도성 좌우에 거대한 바라이(인공저수지)를 축조해 물 걱정을 해결했는데, 모든 것이 나가의 은혜 덕분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거대한 앙코르와트를 건립하면서 나가 조각을 입구에 세웠다. 앙코르란 말 자체도 산스크리트어로 도시를 뜻하는 나가라(Nagara)에서 나온 것으로, 뱀을 뜻하는 ‘나가’와 ‘산다’란 의미의 ‘라’의 합성어이다.

 

복희 ・ 여와 신화는 중국이란 특정한 문명권에서만 기원, 발전한 것으로 여겼다. 특히 중국학자들은 이것이 중국 문명의 기원과 상징을 담고 있는 위대한 문화 요소로 간주했다. 그러나 도상학적 측면에서 본 복희 ・ 여와의 형상은 오히려 중국 개별 문명의 소산이 아니다. 복희 ・ 여와의 신격 및 형상은 수메르의 닌기쉬지다와 방불한 특징을 보인다. 닌기쉬지다와 복희 ・ 여와는 신격(神格), 형상(形象), 신능(神能)과 같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공통적 자질을 가졌다. 닌기쉬지다의 형상은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이시스 신화 및 도상에서도 확인된다. 저승의 신이자 부활, 소생의 신인 오시리스와 치료와 번성, 화육(化育)의 신능을 지닌 이시스의 교미형 도상, 그리고 그 가운데 자리한 호루스의 형상은 이집트 및 지중해 전역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존재이다. 또한 그레코로만 양식의 오시리스와 이시스 도상은 중국의 복희 ・ 여와의 도상과 부분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도상은 인도나 투르판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복희 ・ 여와의 도상은 역사의 전 시기, 세계 도처에 편만하게 존재했던 문화 요소인 것이다. 이것은 중국이란 개별 문명권 내부의 독자적 문화 요소로 간주되었던 것이 인접하는 개별 문명권으로부터 유래한 외래적인 것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개별 문명을 구성하는 문화 요소의 일부는 관념적으로 형성된 허구적 실체이며, 동시에 인접하는 개별 문명권의 문화 요소를 창조적으로 수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수사신 교미도(人首蛇身 交尾圖)는 한대(漢代) 이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인도 등지에서 출현하였으며, 사신(蛇身)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예는 한대 이전부터 세계적으로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한대 화상석의 복희여와도(伏羲女娲圖)는 이른 시기 문명교류의 흔적일 수 있으며, 이것은 실크로드가 개척되기 시작한 시기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복희여와형 인수사신의 유래는 중국 고유의 용토템이나 뱀토템 숭배를 넘어 보다 넓은 문명교류사적 시야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 점은 또한 실크로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구한다. 일반적으로 실크로드는 중국의 장안에서 서양의 로마를 잇는 사막을 지나는 하나의 ‘길’로 인식되곤 하지만, 최근 연구자들에 의해 실크로드는 사막 뿐 아니라 초원지대와 바닷길까지 아우르고 인도, 동남아시아, 한국의 경주와 일본의 교토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네트워크로 보는 시각이 제시되고 있다. 인수사신 교미도가 나타나는 지역들을 추적하여도 실크로드에 대한 일의적이고 단선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한 시각으로 이 네트워크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런 유연한 시각은 자문화중심주의적 시야를 넘어 교차문화적 시야에서 볼 때 열리는 학문의 풍요로움을 예감하게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