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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야기

낙읍으로 천도한 주 평왕

작성자管韻|작성시간21.10.12|조회수103 목록 댓글 0

낙읍으로 천도한 주 평왕

 

 

 

 

 

견융(犬戎)은 대초원 북방 민족인 융족(戎族)의 한 갈래로 주로 중국대륙의 서쪽 지역에서 활동했다. 중국 역사에서 사실상 가장 오래된 왕조 국가인 주(周, 기원전 1046년∼256년, 서주 기원전 1046년∼771년, 동주 기원전 770년∼256년)나라 시절에 등장해 활약했다.

견융은 주나라는 주 유왕이 절세미녀 포사에 빠져 실정을 거듭하는 한편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툭하면 비상 때 올리는 봉화를 피워 제후들의 신망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다가 주 유왕이 정실인 신후(申后) 및 태자 의구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그녀의 아들인 백복을 태자로 세웠다. 이에 신후의 아버지이자 의구의 외할아버지인 신후(申侯)는 깊은 원한을 품은 채 견융에게 도움을 요청해 주 유왕을 공격하게 했다.

기원전 771년. 주 왕실 내부의 후계다툼이 격화된 가운데 먼저 구원군을 요청해 오자 견융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주나라의 도읍지인 호경(지금의 서안西安)을 함락해 주나라를 멸망시켰다. 당시 주 유왕은 급하게 구원을 얻기 위해 봉화를 올렸지만 제후들은 그 누구도 달려오지 않았다.

그 이듬해인 기원전 770년에 주 유왕의 아들인 태자 의구가 호경을 중심으로 견융이 여전히 세력을 떨치자 주나라를 재건하면서 융족의 잦은 외침을 피해 멀리 동쪽에 있는 낙읍(지금의 낙양)으로 옮겨가 천도하면서 주 평왕에 올랐다. 이렇게 하여 주나라는 이전의 서주 시대를 마감하고 동주 시대를 열어야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후국들의 도움에만 의지함으로서 이후 주 왕실은 이름뿐인 존재로 전락한 채 무력화하고 제후국들이 독립국가처럼 행세하여 춘추전국시대(동주시대, 기원전 770년∼221년, 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를 개막하게 되었다. 이후 숱한 제후국들이 생존과 부국강병 그리고 세력확장을 위해 치열한 책략과 전쟁이 난무하는 혼란의 시대가 오랫동안 전개되었다.

중국 한족은 중국대륙을 놓고 대초원 북방 민족들이 수시로 내려와 침입하거나 약탈한 것은 물론이고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으로 모자라 직접 왕조를 세우거나 중국대륙 전역을 차지해 지배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등장해 중국의 형성사 초기에 괴롭힌 존재가 견융이다 보니 견융(犬戎)이란 이름을 지어불러 뜻 그대로 개 같은 야만인이자 오랑캐 민족으로 비하하여 불렀다. 이후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탓에 지금도 중국이 이들 민족·나라를 가리키는 명칭이 일반화 되어 쓰이고 있다.

이후 견융의 활약을 놓고서도 중국 중심적인 기록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면서 그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호시탐탐 중국을 노리는 호전적인 존재로서 침략, 학살, 약탈 등을 저지른 패악무도(悖惡無道)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당연히 문명이 없는 부족 정도의 묘사로 비하된 것은 물론이다.

 

중국은 고대로부터 중화사상(中華思想, Sinocentrism)을 성립한 이후 그 외부의 세계를 야만인 또는 오랑캐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정복해 교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중에서 북쪽의 적족, 동쪽의 이족, 남쪽의 만족, 서쪽의 융족을 대표적으로 거론되었다.

여기서 나오는 견융은 융족의 한 갈래를 가리킨다. 다만 융족에는 여러 갈래가 있는데, 산융은 서방의 견융과 달리 멀리 떨어진 북방에 위치했다. 중국이 임의적으로 분류하고 민족 명칭을 부여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실관계가 분명치 않아 전혀 다른 민족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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