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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야기

75-2. 여동빈 점쟁이로 변신

작성자管韻|작성시간22.07.08|조회수66 목록 댓글 0

75-2. 여동빈 점쟁이로 변신

 

 

 

 

남송 때 비릉시에는 점을 잘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머리에는 푸른 두건을 메고 몸에는 누런 도복을 입고 있었다. 스스로 지명(知名)선생이라 하였다.

비릉군 태수 호도는 지명선생이 점을 기가 막히게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지명선생을 청해서 점을 쳤다. 지명선생이 “당신의 수명은 매우 길고, 곧 당신의 관직에 변동이 있다.

변동 시기는 청명절 전 5일 또는 청명 후 7일이다.”고 하였다.

고을 태수 호도는 청명 5일 전에 과연 그가 자리를 바꾸어 형문군 태수로 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청명 후 7일이 되자 정식으로 이동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호도는 지명선생의 신기막측(新奇莫測) 한 점술에 탄복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으나 이미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호도는 후에 형문군 태수가 된 후 친구한테 남경의 석각에 새겨진 여동빈 상을 탁본한 그림을 받았다. 지명선생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때서야 지명(知名) 두 글자 중에는 지(知)자에 “口”, 명(名)자에 “口”가 있어 두 구(口)자를 합한즉 “여(呂)”자가 아닌가?

호도는 그가 친히 겪은 이일을 자기 문집에 남겨 놓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여동빈이 하루는 구름 따라 북방으로 갔다. 하루는 거지 한 명이 길바닥에서 굶주려 아사 직전까지 간 것을 보았다. 이미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불쌍한 중생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여동빈은 법술을 사용해서 거지를 구해냈다. 그 자리에서 돌을 금으로 만들어 거지에게 주어 살아가도록 하였다. 뜻밖에 황금을 얻은 거지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곧 그 거지는 욕심이 발동하여 여동빈에게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달라고 하였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니!

또 한 번은 여동빈이 기름장사로 변신하여 기름을 팔면서 악양에 갔다. 기름을 사는 사람들마다 더 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한 노파만 기름을 사면서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여동빈은 그녀가 신선공부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제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서 한 줌의 쌀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당신은 이 우물물을 팔면 부자가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 노파는 여동빈이 간 후 우물속의 물이 전부 미주(美酒)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 노파는 우물속의 술을 팔아 일 년 후에 부자가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여동빈은 그 노파 집에 갔는데 마침 노파가 없고 그녀의 아들이 집에 있었다.

여동빈이 “당신들 집은 지난 일년 동 안 술을 팔아 부자가 되었는데, 느낌이 어떠한가?”하고 물었다.

그 노파의 아들은“좋기는 좋은데 단지 돼지 먹일 술 찌꺼기가 없어서 힘들다.”고 하였다.

여동빈이 탄식하면서 “인심이 탐욕스러워 부끄러움도 모른다.”고 하면서 손을 들어 우물 속의 쌀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갔다. 노파가 외출에서 돌아와서야 우물속의 술이 모두 물로 변한 것을 알았다.

 

인간들에게 실망하면서 여동빈은 구름처럼 천지(天地)를 내 집으로 삼아 운유(雲遊)하였다 한다. 여동빈과 얽힌 이야기는 끝이 없으나 이 정도로 그칠까 한다.

 

중생들이여, 시간을 아껴 수행하라

여동빈은 중생들이 명리재색(名利財色)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헛되이 죽음으로 가는 것은 경계한 듯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 후학을 경계하게 하였다.

 

순양여조시(純陽呂祖詩) 순양자 여동빈 조사가 이르시기를

人身難得道難明(인신난득도난명)

塑此人心訪道根(진차인심방도근)

此身不向今生度(차신불향금생도)

再等何時度此身(재등하신도차신)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려워라

사람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나니

이 몸을 이 생애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요

이 인간의 몸 받기가 정녕 어려운데 중생들이여, 정법을 만나 수행을 통해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시라!

간절히 희망하면서 신선 여동빈 편을 마친다.

 

여동빈(呂洞賓)은 798년 당나라 때, 경조부(京兆府; 현재 陝西省 長安縣)에서 대대로 명문가인 집안에 때어나서 어릴 때부터 영리했으나, 과거 시험에서는 세 번이나 떨어졌다 한다. 많은 강남의 아주머니들이 이렇게 예기하죠. ‘우리 아들은 영리한데 노력을 안해서 성적이 안좋아요...’

여동빈(呂洞賓)은 실의 속에 각지를 떠돌며 방랑과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다시 과거를 보기 위해 장안(長安)에 와서 주막에 혼자 앉아 술을 마시다가 한 노인을 만나게 푸념을 늘어놓게 되었다. 노인은 그의 고민을 듣더니 옆구리에 있는 삼태기에서 베개를 끄집어내며 “젊은이! 이 베개를 베고 한번 누워보게나, 아마도 좋은 꿈을 꾸게 될 게야.”

자신도 이미 60이 되었는데, 젊은이 소리를 들은 여동빈(呂洞賓)은 속으로 ‘참 이상한 영감이네!∼’ 라고 생각하였다. 배가 고파 주인에게 밥을 시켰더니 주인장은 쌀과 밥 모두 떨어졌고 좁쌀만 조금 있다고 한다. 주인장이 밥을 부탁하고, 애써 미친 노인을 무시하면서 그의 말이 궁금하여 그가 꺼내 놓은 베개를 베고 하늘을 쳐다보고 누웠다. 그러자, 머리가 혼미해지더니,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그는 부잣집 어여쁜 딸을 맞아 결혼을 하고, 세 번이나 떨어졌던 과거시험에도 장원으로 합격하고, 세월이 흘러 출세가도를 달려 재상이 되었다. 그는 정치를 잘하여 백성들에게 현명한 재상으로 존경 받았다. 그러던 중, 그의 출세를 시기한 대신들의 반역을 했다는 모함을 하였고, 황제는 믿을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그를 유배를 보내게 되었다.

 

수 년 후, 그는 무죄가 입증되어 조정으로 복귀하여 예전의 영화를 다시 누렸다. 재물도 넉넉하고 아내는 여전히 현모양처였고, 자식들도 모두 장성하여 유능한 관료로 성장하고..., 그렇게 또 세월이 흘러 은퇴하여 손자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노환이 들었고, 황제가 빨리 완쾌되기를 기원한다고 서신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제는 죽어도 여한 없다고 생각 임종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

 

“젊은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자, 머리 밑에 한 노인이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니, 주막집 주인은 부뚜막에서 아직 좁쌀 밥을 짓고 있었다. 그때야 생각해보니, 50년 동안 누린 영화가 좁쌀 밥도 짖지 못한 시간의 꿈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바라던 인생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제 알았는가?" “그런 인생을 살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찾아보면 어떻겠는가?”

이 이야기가 ‘한단의 꿈(邯鄲之夢)’이란 고사이다. 그 노인은 이미 500세 넘은 종리권(鍾離權)이라는 이름의 신선이었다. 이튿날, 여동빈은 종리권을 따라 종남산(終南山; 서안(西安)시 남쪽)으로 들어갔고, 종리권은 여동빈의 그릇이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10가지 혹독한 시험을 치르는데..., 이것이‘운방십시동빈(雲房十試洞賓; 雲房은 종리권의 자)’이라는 일화이다.

 

마침내 여동빈(呂洞賓)이 10가지 시험을 통과하자, 종리권(鍾離權)은 승선(昇仙)을 하면서 여동빈(呂洞賓)도 같이 가자고 하나, 여동빈은 함께 사는 중생을 모두 구제한 후 신선의 길을 갈 것이라고 승선을 미룬다.‘불교의 지장보살 같은 신선님이시네...’ 그리고,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궁핍한 사람들을 돕고, 병들고 약한 사람을 구제하면서 도(道)를 전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여동빈(呂洞賓)이 수련했다는 선런둥(仙人洞, 선인동)이다.

 

여동빈은 종리권에게 불로장생의 묘약인 ‘용호금단(龍虎金丹)’ 제조법과 ‘천둔검법(天遁劍法)’이라는 악령을 퇴치하는 선술(仙術)은 전수 받았다. 그는 보통 등에 검을 가로 차고 오른 손에 도가의 먼지털이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검(劍)은 탐진, 애욕을 비롯한 모든 번뇌를 끊는다는 진검(眞劍), 혹은 심검(心劍)이라 한다. 먼지털이는 무슨 뜻인가? 역시 모든 번뇌를 먼지 떨듯이 떨쳐 주려는 것이지 않을까?

 

여동빈(呂洞賓)에 대한 민중의 인기와 신앙은 송(宋)대에 시작되어, 금(金)대에는 전진교(全眞敎)의 5조(五祖)의 한 사람이 되었고, 원 세조(元 世祖= 쿠빌라이)에게 진군(眞君)으로, 원 무종(元 武宗)에게 부우제군(孚佑帝君)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또한, 청(淸)나라 시대에는 음력 4월 14일 여동빈(呂洞賓) 탄신일인 되면 사람들은 신선고(神仙糕)라는 5색 떡을 먹었으며 그를 기렸다 한다.

이 같이 그가 오랫동안 도교 팔선(八仙)중 가장 인기 있는 신선으로, 또한, 신선의 대표로 흠모되어 오고 있는 이유는 다른 신선은 자기 혼자 신선이 되었으나, 그는 민중 구제를 위해 민중 속에서 살면서 소원을 이뤄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얼마나 인기가 있던지… “개가 여동빈을 보고 짖다니, 좋은 사람을 몰라본다.”(狗咬呂洞濱, 不識好人心.) 라는 유행어가 있었다고 한다.

 

과연 중국인들은 여동빈(呂洞賓)이란 자를 얼마나 알까? 그가 수련했다는 선런둥(仙人洞,선인동) 앞에서 유심히 사람들을 관찰하고, 참배를 마친 자에게 그를 아는지 물어 보기도 하였다. 결과는 80% 정도는 안다고 한다. 그 정도면 아직도 인기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세상에 때로는 걸식하는 사람으로, 때로는 늙고 쇠잔한 영감으로, 때로는 누추한 중으로 수시로 모습을 나타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가름질하고 도를 전했다고 하는데, 그의 인기를 반영하듯 그에 관한 많은 행적이 전해 내려온다.

 

후베이성(湖北省)의 어느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큰 다리 위에서 한 부인이 동냥을 하고 있었다. 너무 가련하게 보이는 그 부인에게 지나는 사람들은 한 두 푼씩 동전을 던져 주었다. 하루는 허름한 도복을 걸친 한 도사가 그 앞을 지나다가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 돈이 많으신데 나에게도 좀 나눠 주십시오.”

“도사님이 갖고 싶은 만큼 가져가십시오.”그러자 도사는 동냥 그릇에 담긴 동전을 모두 쏟아서 가져갔다.

이틀 뒤, 그 도사는 다시 부인에게 와서는 똑같이 돈을 달라고 했다.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도사는 동전을 모두 털어갔다. 하지만, 그 부인의 얼굴에는 전혀 불쾌한 기색도 없었다.

며칠 지난 후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 동냥하던 부인이 막 자리를 거두려고 하는데, 또 그 도사가 나타나 돈을 달라고 하였다. 부인은 이번에는 답했다.”다는 안 되고 조금은 남겨 놓으세요.”

“나는 전부 가져가야겠습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저도 몇 푼은 있어야 늙은 시어머니 저녁을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번 두 번이나 전부 가져갔는데 그 때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안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번에도 나는 전부를 가져가야겠습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부인은 이번에는 완강히 거절했다.

“그때는 도사님께서 일찍 오셨기에 다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땐 아직 구걸할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해가 저물어 나도 돌아가야 하기에 다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럼 부인은 힘들게 동냥한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왜 나에게 다 주었습니까?”

“그야 원래 그 돈이 내 돈이 아니지요. 남이 나에게 베푼 것이니, 저도 남에게 베푸는 것이 마땅하지요. 더구나 도사님들은 선심으로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시고...”

“매일 여기에 나와 동냥을 하시는지요?”

“아닙니다. 다음 날 먹을 양식이 없을 때면 잠깐씩 나와 앉아 있습니다.”

“집에는 누가 계시는 지요?”

“남편은 병으로 죽었지요. 제가 전생에 착한 일을 한 적이 없는지 자식도 없고, 늙으신 시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십니다.” 부인은 덤덤하게 말을 마치고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도사는 놀라서 물었다.

“아니! 일어서서 걷지를 못하십니까? 그 몸으로 매일 기어서 이 다리까지 왔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반신불수의 몸이었습니다. 저보다는 늙으신 시어머니가 계셔서….”

‘이처럼 착한 며느리가 이처럼 고생을 하다니!...’도사는 주머니에서 가진 모든 돈을 꺼내어 부인에게 건넸다.

“이거 얼마 안되지만, 아마 시어머니와 오랫동안 먹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도사님! 그 돈이 어디 도사님 돈이겠습니까?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착한 분이… 이런 고생을… ’도사는 이렇게 생각하며, 부인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나시오.”

부인은 덤덤한 얼굴을 하며 도사가 내민 손을 잡고, 도사의 예기대로 일어서려 하였다. 얼굴은 잠시 약간의 고통스런 표정이었으나 곧 바로 평온을 찾고, 차분하고도 엄숙한 얼굴로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여기 그대로 서 계세요. 내가 물을 한 모금 떠다 드리겠습니다.” 도사는 급히 다리 아래로 내려가 그릇에 물을 떠 들고 왔다.

“부인, 이 물을 마시면 모든 병이 다 나을 것입니다.”그 부인이 물을 다 마시자, 다시 도사는 말했다.

“자 나를 따라 걸어 보세요.”부인은 한 발자국씩 걸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도사는 부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허리에서 자루를 하나 풀어 놓으며 말했다.

“이 자루 속에 들어있는 돈은 모두 부인 것입니다.”

“도사님!, 존함이 어찌되십니까? 이름이라도 알려 주십시요.” 부인은 도사의 도포를 잡고 매달렸다. 도사는 어쩔 수 없이..

“나는 여동빈 입니다.” 그 부인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할 때 이미 여동빈의 종적은 오간 데 없었다.

성경책의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 중 일부분 같기도 하고,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들었던 옛날이야기 같기도 하고, 꽤 친숙하게 들린다. 어쨌던, 여동빈은 아직도 곳곳에 덫을 만들어 놓고, 아직도 우리를 시험한다고 한다.

 

여조양백자비문(呂純陽百字碑文) - 여동빈 도교 문서

양기망언수 강심위불위(養氣忘言守 降心爲不爲)

(氣를 기르고 말 없음으로 지키며, 마음을 가라앉혀 不爲가 되게 한다.)

무릇 道와 眞理를 닦는 공부를 하는 자는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性과 命 두 가지에 밝아야만 한다. 性은 性의 근원을 지니고 있으며 命은 命의 커다란 띠가 있다. 性의 근원은 맑고 깨끗하여야만 하며 命의 띠는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命의 띠가 굳은 즉 元氣가 충만해지고 氣가 충만하면 精이 스스로 더하여 질 것이다. 性의 근원이 맑은 즉 元神이 안정되고 神이 안정되면 氣가 스스로 영험하여질 것이다.

命의 띠란 무엇인가? 眞息이 그것이다. 性의 근원이란 무엇인가? 心地가 그것이다. 나의 스승이 사람을 가르치시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늘 말씀하시길 氣를 기르고 마음을 다스리라 하시니 이것이 바로 공부의 참된 비결이었다. 그러므로 氣를 기르고 말 없음으로 지킨다. 말 없음으로 지킨다는 것은 바로 氣를 기르는 참된 비결인 것이다. 養氣忘言守의 다섯자 중에서 忘과 守의 뜻하는 바는 아래와 같다. 대개 말을 잊는다는 것은 그 입을 닫고, 하여야 할 말도 안하는 것이 아니고 不言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精과 神을 함양하여 굳게 하고, 깊이 가라앉혀 안으로 지키니(內守), 내부의 감정(情)과 외부의 상태(境) 두 가지 모두를 잊어 다른 이의 말에는 無心하여 지고 말은 스스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마음을 보존하여 입을 다물고 말하기를 그친다면 입은 굳게 닫혀 不言하게 되고 氣는 깊이 갈무리 되게 되나 반대이면 마음에 病이 생기게 된다. 지킨다 하는 것은 이 氣(깊이 침잠된 氣)를 지킴이고 지키는 이는 어떤 神(精神)이 지키는 것이다. 어느 곳을 지키는가? 道德經에 이르길 “말이 많으면 막힘이 많아 中을 지킴만 못하다.” 하였다. 中이란 神·氣이며 돌아가 회복하는 곳(歸復之處)이며 사람의 大中極이다.

參同契에서 이르길 “그 兌을 닫고 영주(靈株)를 굳게 쌓는다” 하였다. 兌를 닫음이란 곧 말을 잊음이요 靈株란 곧 神·氣의 뿌리가 된다. 대개가 항상 능히 이와 같이 지킬 수 있으면 마음과 呼吸이 서로 의지하고 子母가 서로 마주보며 神과 氣가 서로 융합되니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계속하면 오래 지난 후에 大定을 얻으리니 조금 지나서 고요함이 極에 달하면 動이 일어나게 되어 眞火로 삶고 찌는 것이다. 金精(鼎)이 구슬을 토해내어 三關을 뚫고 올라 정수리를 통하고 위아래로 끊임없이 흐르니 氣가 그 기름을 얻고 그 묘한 쓰임을얻음이 이와 같다.

道德經에 이르는 사람의 生함이란 陰을 지니고 陽을 안아 沖氣로서 조화를 이룸이라 하였다. 사람 몸 안의 氣 즉 天地의 沖氣를 알아야 한다. 이와같이 오르고 내리고 닫고 엶은(升降闔闢) 항상 天地의 氣運과 함께 하며 서로 유통된다.

 

醫書에 이르길 이러한 氣는 사람 몸을 呼吸으로써 두르 흐르며, 주야로 왕복 810장이며, 한번 내쉬고 한번 들이쉼을 一息이라 하는데 주야로 13500번 息하니 각 호흡은 그 근원으로 돌아간다.

 

莊子에 이르길 眞人은 발뒤꿈치로 呼吸을 하나 사람들은 목구멍으로 呼吸한다 하였다. 발꿈치로써 呼吸한다 하는 것은 마음과 呼吸이 서로 의지하여 그 근원으로 돌아감을 이름이다.

 

옛 仙人이 말하길 ‘옛날에 사부를 만나 구결을 얻었는데 단지 중요한 것은 응신입기혈(凝神入氣穴) 하고 말을 잊고(忘言) 中을 지킴(守中)이라 하였다. 凝神入氣穴하지 않는다면 어찌 근원으로 돌아간다 하겠는가’ 하였으니 이 말을 일러 復命이라 한다. 뿌리를 깊고 굳게 하며 長生久視함의 道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動靜知宗祖 無事更尋誰(동정지종조 무사경심수)

(動靜으로 宗祖를 알고 無事하니 다시 누구를 찾으리오.)

위에서는 氣를 기르고 마음을 가라앉혀 고요히 지키고 내련(內煉)하는 無爲의 道를 말하였다. 그러나 다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이외에도 또 있으니 그 기반을 만드는 것으로 높고 진실한 上仙이 행하였던 연명(延命)의 일이다. 고로 매우 긴요하게 動과 靜 두자로 나타내니 宗을 알고 祖를 알아야만 할 것이다.

대개 金丹의 道는 無爲로써 그 體를 삼고 有爲로는 用을 삼아 動 중에서 약을 캐고 靜 중에서 삶는 것이니 動靜 두자는 어느 한편으로 치우쳐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고로 動을 알고 靜을 모른 즉 기초가 서지 못하니 精을 쌓고 氣를 쌓는 공덕이 없다. 靜을 알고 動을 모른 즉 天機가 합하지 못하니 火爐에 임하고 약을 캐는 要旨를 잃어버린다.

 

요점은 動이 그 宗이 되고, 靜이 그 祖가 되는 것이다. 祖란 性의 祖이며 靜한 즉, 얻게 되고, 宗이란 命의 宗이니 動하지 않으면 세울 수 없다. 性祖를 알면 離宮에서 닦아 定하게 되고, 命宗을 알면 水府에서 玄을 구하게 된다. 이와 같이 두 가지를 닦음이 바야흐로 究竟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바야흐로 그 無事의 때는 말을 잊고 조용히 지키며 일을 막고 조짐을 그치게 하니 無思이고 無爲이다. 고요하여 움직임이(寂然不動) 없고 泰然히 大定을 지키니 이것으로 이미 다 된 것이다.

 

다시 기다려 무엇을 찾겠는가. 어찌 道를 배우는 學人들이 鉛을 찾고 地를 기다리지 않고, 道伴을 모아 가지가지로 밖에서 재물을 구하고 있으니 앉아 있어도 편한 줄을 모른다. 이러한 무리에 참가하길 좋아하니 이를 보는 良工은 가슴만 아프다.

 

진상요응물 응물요불미(眞常要應物 應物要不迷)

(眞常은 物에 應해야 하고 物에 應함은 迷惑됨이 없어야 한다)

무엇을 일러 眞常이라 하는가? 性祖가 그것이다. 이를 어떻게 밝혀 보는가? 대개의 것는 그 質이 있는데 모두가 허망하여 변하기도 하고 없어지게 되어 영원할 수 없다. 고로 佛經에 이르길 '모든 法은 性이 없다. 오직 하나의 진실된 法界만이 있어 實相이 되는것이다.' 하였다. 고로 진실되고 항상됨(眞常)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眞常이라 하는 것은 物과 함께 하지도 않고 物과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 요점은 능히 고요할 수 있으면 능히 應할 수 있고, 항상 應하면 항상 고요할 수 있어 物에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 능히 미혹되지 않게 된 즉, 物에 應하더라도 그 자취가 없어 眞性이 드러나게 된다. 이를 일러 삶아 충분히 익음이라 하니 有爲의 道를 행하기 시작할 수 있겠다.두 개의 중요한 글자인 眞常에서 眞이란 끊어져 없어지지 않음이요, 常이란 相에 집착하지 않음이니 모두가 긴요한 깨달은 사람들의 말이다.

 

불미성자주 성주기자회(不迷性自住 性住氣自回)

(迷惑됨이 없으면 性이 스스로 머물고 性이 머무르면 氣가 스스로 돈다)

바깥의 境地를 쫓지 않고 對하여 서고 내부에서 이는 情을 잊으니 바야흐로 大定이라 한다. 고로 迷惑되지 않으면 性이 스스로 머무르고 性이 머무른 즉 이미 汞이 머무른다 한다. 汞이 이미 머물게 되면 可히 鉛을 구할 수 있다. 고로 말하길 性이 머물면 氣가 스스로 돈다고 한다. 돈다는 것(回)은 되돌아 옮의 뜻이다. 契(參同契)에 이르길 '金來歸性初'라 하니 還丹이라 한다. 돌아감(歸)이라 하는 것과 돈다(還)함이 다 돈다(回)는 의미가 된다.

 

기회단자결 호중배감리(氣回丹自結 壺中配坎離)

(氣가 돌면 丹이 스스로 모이며, 壺 중에서 坎離가 섞인다)

氣가 스스로 바깥에서 돌면 丹이 따라 안에서 뭉친다. 壺中이란 大丹이 모이는 곳이다. 坎離란 陰陽이 서로 감추어진 卦象이며 鉛汞은 水火의 또 다른 이름이다. 丹法은 烏兎로 藥材를 삼아 반드시 坎을 취하고 離를 얻어야 한다. 鉛을 汞에 넣어 두 가지가 均平하게 配合되니 섞이어 中宮으로 들게 된다. 그런 후에 龍과 호랑이가 울부짖고 제자리(定位)에서玄珠가 나게 된다. 이것이 自住와 自回, 自結을 말하는 것으로 모두 자연의 오묘한 쓰임이요 소위 말하는 有爲 중의 無爲인 것이다. 하나라도 놓을 장소를 고려함은 삿되고 거짓됨에 발 디디어 道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음양생반복 보화일성뢰(陰陽生反覆 普化一聲雷)

(陰陽이 反覆되고 크게 이루어 큰 雷聲이 난다)

이 열 字의 글은 妙하여 말로 하기 어렵다. 대개 陰陽의 反覆은 丹을 만드는 큰 要旨이고, 크게 化하여 천둥소리 난다함은 丹을 만드는 秘訣이다. 소위 天機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모름지기 神仙의 丹法이 모두 음양반복(陰陽反覆)하여 이루는 것이다. 고로 藥材로 말하면 陰중에서 陽을 쓰고 陽중에서 陰을 쓴다 하여 陰陽反覆의 하나가 되고, 交구로 말하면 여자가 해에 머물고 남자가 두꺼비궁(달)에 머문다고 하는 것으로 陰陽反覆의 둘이 되며, 合丹으로 말하면 水을 들어 火를 滅하고 金으로 나무를 친다하는 것으로 陰陽反覆의 그 세 번 째가 된다.

 

이와 같이 전도반복(顚倒反覆)되면 가히 그 천기현묘(天機玄妙)의 지극함을 볼 수 있게 되니 즉 普化란 말 중에 있는 것이다. 邵子의 詩에

홀연야반일성뢰(忽然夜半一聲雷) 홀연히 한밤중에 큰 천둥소리 있어

만호천문차제개(萬戶千門次第開) 만호천문이 다음에 모두 문을 여니지지득무중함유의(識得無中含有意) 무중에 유의가 포함됨을 알게 되어

허군친견복희래(許君親見伏羲來) 허군이 직접 복희가 오는 것을 보네

라 하였다. 땅속 깊은 곳에 뇌가 있는(地中有雷) 괘로 一陽이 發動하는 것이니 소위 爻가 動하는 시기이다. 사람의 몸으로는 冬至에 해당하며 바로 鉛을 구하는 곳이다. 비결을 얻어 수련하면 大地山河가 모두 7개의 보물(七寶)이 된다. 고로 普化가 말하는 一聲이란 先天氣의 다시 시작함이다. 이 가운데에 간단한 符와 訣이 있으니 그 귀한 것은 스승이 배우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 다시 마땅히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비우면 그때를 만나게 될 것이다.

백운조정상 감로세수미(白雲朝頂上 甘露세須彌)

(흰구름이 정상에 모이고 甘露水가 須彌山을 씻는다)

이 열 字는 氣가 도는 징험을 말하고 있다. 대개 先天의 氣는 爻가 動하는 때에 생기는때 이때 검을 운행하여 좇아오니 鵲橋를 건너고 尾宮을 뚫으며 독맥을 돌게 되어 위로는 泥丸에 통해 단지 뭉글뭉글한 것이 느껴지어 마치 흰 구름이 산 꼭데기에 모인 것 같다. 아까의 모인 것들이 玉漿으로 化하는데 그 맛이 甘露와 같아 須彌를 씻고 重樓로 내려와서 中宮에 들게 되니 소위 氣回丹結하는 그 모습이 이와 같다. 須彌는 산 이름으로 佛敎의 須彌이다. 이것을 일러 妙하고 높다 하니 정상의 뜻이다. 紫庭經에 이르길 채취하여서 복용하려 한다면 한 조각의 도움도 될 수 없다 했다. 기운이 다 百會에 모여서 玉漿으로 化하여 입으로 흐르고 그 淸하고 상쾌한 맛을 舌端에 붙이는 의미가 다 이러한 근본인 것이다.

 

자음장생주 소요수득지(自飮長生酒 逍遙誰得知)

(스스로 長生酒를 마시며, 노니니 누가 그 앎을 얻으리오.)

氣가 물로 化하니 달고 맛있어 그 맛을 더할 필요가 없다. 그리하여 마땅히 ‘옥액경장(玉液瓊漿)’이라고 이름한다. 悟眞篇에 ‘長男이 西方酒를 마시니 이것이 長生酒이다’ 라고 하였다. 雪山一味는 좋은 醍호이니 이것이 長生酒이다. 壺 안에서 돌리어 延命酒를 따르고, 鼎 안에서 되돌아오는 혼장을 받아 취하니 이것이 長生酒이다. 이 모두는 홀로 얻게 되는 것이니 다른이와 함께 할 수 없다. 고로 이르기를 스스로 마시며 노닐어 즐거움이 스스로 얻어진다는 의미이다. 무릇 이러한 長生酒는 이미 사람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나, 이러한 즐거움은 또 사람들과 알수는 있지 않는가?

 

정청무현곡 잠통조화기(靜廳無弦曲 潛通造化機)

(현이 없이 연주되는 곡을 고요히 들으며 潛通造化의 기미가 인다)

太上日用經에 이르길 현이 없이 연주되는 곡이란 不言하나 스스로 소리나는 것이고, 두드리지 않으나 그 울림이 있음이다. 무릇 丹이란 몸안에 있어 크게 화합하고 충만하여 넘치게 되니, 눈에는 神光이 있으며, 귀에는 영험한 소리가 들리고, 입에는 단 진액이 있고, 코에는 기이한 향기가 나며, 이치가 지극함이니 다른 것은 필요가 없다.

내 師父의 뜻은 간결한 문장(百字碑) 안에 있으니 쾌히 이 하나를 들어 말하는 것인 즉, 그 나머지는 가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도래이십구 단적상천제(都來二十句 端的上天梯)

(二十句에 다다르게 되면 위로는 天梯에 이를 수 있다.)

내 師父의 百字靈文은 곧 天命의 聖子들이 하늘에 올랐던 사다리가 되니, 배우는 이라면 어찌 이를 외우지 않겠는가? 각 구가 뜻하는 바를 합하고 파악하고 구해서 이제껏 쓰여진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니, 대개 역시 적을 따름이다.

陸西星이 용렬하고 부족한 해설이나마 붙이는 것은 어릴적 師父의 金丹의 大悟에 관한 가르침을 되새김으로 이 篇을 고찰하게 된 것이다.

만약 文章에만 合하여 감히 거짓을 꾸밈으로, 長生酒를 흐르게 한다면 사람들의 眼目을 열리는 시기에, 극히 거짓임을 알게 되니, 죄를 면할 길이 없도다.

그리하여 道를 좋아하는 倫理를 세우니 찾아보면 얻는 바가 있을 것이며, 바라는 것은 부끄럽지 않으니 내 사부의 가르침이라!

時 降慶辛未五月十有一日

때는 강경 신미년 5월 11일

순양려공백자비종(純陽呂公百字碑終). 순양 여동빈 조사의 백자비를 마친다.

 

당나라 시대, 어느 날 동정호에 달이 휘영청 뜬 밤, 여동빈이 홀로 악양루에 올라 시를 읊었다.

자영(自詠) 스스로 읊노라

독상고루망팔도(獨上高樓望八都) 독상고루망팔도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팔방을 바라보니

묵운산진월륜고(墨雲散盡月輪孤) 묵운산진월륜고 검은 구름 흩어지고, 둥근 달만 중천에 외롭게 떠있다.

망망우주인무수(茫茫宇宙人無數) 망망우주인무수 망망한 우주에 사람은 많고도 많은데

기개남아시장부(幾個男兒是丈夫) 기개남아시장부 사내대장부라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우주공간까지 이어지는 기개를 느끼게 하는 통쾌한 작품이다. 여동빈은 당(唐)시대의 대표적인 도사이며 민간에서는 팔선의 하나로 인구에 회자되었다.

도사 여동빈이 활약하던, 그 당시는 황소(黃巢)의 난으로 세상이 뒤숭숭할 때였다.

그래서 혹자들은 이 시에서 여동빈이 황소의 난을 평정할 사람 하나 없는 현실을 탄식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여동빈이야말로 팔선 중에서 전해오는 일화와 사적이 가장 많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개가 여동빈을 보고 짖다니, 좋은 사람을 몰라본다”

구교려동빈, 부지호인심(狗咬呂洞濱, 不識好人心)라는 것이 있다.

그 정도로 여동빈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여동빈 성명 석자는 세간을 두루 돌면서 중생을 구도한 신선의 대표적 명칭이 되었다.

 

이무기를 단검으로 만들다

앞에서 나온 詩‘수리청사담기조(袖裏靑蛇膽氣粗)’

: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에서 청사(靑蛇)와 관련하여 고사가 전해져 온다. 일찍이 파릉현(현재 악양) 성 남쪽 백학산에는 큰 호수가 두 개 있었는데, 그 호수 가운데

이무기가 있어 민간에 피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던 여동빈이 법술로 이무기를 다스려 단검으로 만들어 항상 소매 속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인간들에게 실망하면서, 여동빈은 구름처럼 천지(天地)를 내 집으로 삼아 운유(雲遊)하였다 한다.

여동빈은 악양에서 동정(洞庭)으로 가 한종리와 같이 한상자(韓湘子)를 도화(度化)하러 갔다. 여동빈은 탄식하며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三至岳陽人不識(삼지악양인불식) 악양에 세 번 이르렀으나 사람들은 알지 못하네)

吟詩飛過洞庭湖(음시비과동정호) 시를 읊으며 동정호를 날아 지나가네)”

 

흔히 도교의 뿌리를 노자로 생각하지만, 노자의 철학과는 별도로 고조선에 인접한 연ㆍ제나라를 중심으로 신선사상이 넓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는 주나라의 제후로서 제나라 왕이 된 강태공이 삼신상제 신앙을 바탕으로 천지일월을 받드는 제사문화를 체계화하여 보급한 까닭이다.

 

이런 신선에 대한 이야기들은 전국 말기에 퍼진 방사술(方士術)과 크게 합쳐져 마침내 단약을 먹어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것을 전업으로 삼는 방사(方士)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한대에 이르러서는 위백양(魏伯陽)의 『참동계(參同契)』를 필두로 선도(仙道)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후 종리권과 여동빈에 의해서 내단법(內丹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이른바 ‘종려금단도(鐘呂金丹道)’가 성행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성명쌍수(性命雙修)를 통한 내단의 성취만이 사람이 신선으로 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광물질을 복용하는 것이나 방중술과 같은 것은 하찮게 취급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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