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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고구려 의학(高句麗 醫學)

작성자관운|작성시간15.01.29|조회수36 목록 댓글 0

 

121. 고구려 의학(高句麗 醫學)

 

 

 

중국 고대 의서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가장 오랜 연대를 우리는 확실히 모른다.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에서는 평원왕(平原王) 3(서기 561) 중국 강남에 온 오나라 사람 지총(知聰)이 한나라의 중요한 의서인 내외전(內外典), 약서(藥書), 명당도(明堂圖) 164권을 가지고 고구려를 거쳐 일본[긴메이왕(欽明王) 22]에 가서 귀화하였다.

 

그러나 이미 그 100년 전, 즉 기원 459년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47년에 일본[유랴쿠왕(雄略王) 3]이 백제[개로왕(盖鹵王) 5]에 양의(良醫)를 구하여 백제가 보낸 고구려 의사 덕래(德來)가 일본 난파(難波)에 살면서 자손대대로 의업을 행하여 난파약사(難波藥師)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은 이미 한()의 의술을 일찍부터 받아들여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고구려 중기까지는 무()의 치료도 상당히 활발했던 듯 삼국사기(三國史記)고구려 본기 유리왕 199월에, 왕이 병들어 낫지 않자 무가 점쳐 보니 왕이 죽인 탁리사비(託利斯卑)의 원혼이 탈을 일으킨 때문이라 하여 그 혼에 사과하니 병이 곧 나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에서는 중국 도교의 신선 사상에 입각한 연()금술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것은 불로장생을 목적으로 하는 비약(秘藥)을 제조하는 과정인데 이것이 화학 발달의 기반이 되었으므로 금속약제의 제조기술도 발달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고구려의 의료제도에 관해서는 확실한 것을 아직 모른다. 그러나 시의제도(侍醫制度)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손홍렬(孫弘烈)에 의하면 중국과 같은 의학교육제도와 의료의 법제화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실제로 노병자(老病者)에게는 나라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했고 노병자를 구호하는 부서가 있었을 가능성이 문헌상에 시사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 의학 [高句麗 醫學] (의학개론 1(의학의 개념과 역사) , 2006.4.10, 서울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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