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0 구엘 성지 지하성당(Cripta de la Colonia Guell) 1898~1915
산타 콜로마 데 세르베요(바로셀로나)
바르셀로나 인근의 산타 콜로마 데 세르베요에 있는 구엘 성지 성당의 지하성당은 가우디의 걸작으로 간주된다. 그는 구엘 백작의 의뢰로 1898년에 이 성당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구엘 백작은 이미 건축가인 친구 프란세스크 베렝게르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직물 공장과 관련된 노동자 마을의 도시화 계획 공사를 부탁한 상태였다. 성당은 노동자 마을 변두리에 있는 야산에 들어설 예정이었는데 노동자 숙소와 공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처음에 가우디는 그가 중시했던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 교회를 자유롭게 해석하여 이 성당을 만들고자 구상했지만, 생전에는 결코 그 결실을 볼 수 없었다.
가우디가 이 공사의 설계에서 활용하려고 만든 작업실 천장에 매단 철사 모형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이 성당을 건설하면서 그는 자신이 고안한 건축 기술과 정적 구조 형태를 훗날 성가족 교회에서 더 큰 규모로 적용하기 위해 시험에 몰두했다. 여기에서 그는 원보다는 타원에 가까운 부정형의 알 모양으로 중심에 모이게 한 설계도를 채택했다. 하나로 이루어진 원통의 중심부를 내려다볼 서로 길이가 다른 높고 튼튼한 탑들을 사용해 세로로 전개할 계획이었다. 실증 계산을 함으로써 그는 고딕 건축물에서처럼 부벽(扶壁)이나 한쪽 홍예받이가 높은 아치를 사용 하지 않고 자연계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외피가 무게를 지탱해주는 방식과 유사한 실용적인 내력 구조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이 구조와 그 정적인 수용량을연구하기 위해 그는 납을 채운 자루를 부착한 대마 밧줄로 둥근 천장의 서까래와 서가래 사이의 곡면부를 형성하는 모형을 만들고는 그것을 현장의 임시 막사 천장에 매달았다. 구 후로 유럽의 여러 학자들이 재현하곤 한 이 모형 중에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건축가 호세프 프란세스크 라폴스 이 폰타날스의 1929년 책 속에 있는 사진뿐이다.
여러 가지 색의 납유리로 된 지하성당 창문과 내부의 독특한 기둥들
천장에서 길게 늘어뜨린 밧줄을 통해 가우디는 10분의 1에 축척으로 성당 기둥과 아치의 경계를 정하는 데 사용될 사슬 모양 곡선의 조합을 재현할 수 있었다. 벽과 둥근 천장은 아치르 가로지르는 범포(帆布)로 나타냈다. 납을 채운 주머니는 구조에 가해지는 부하의 무게와 위치를 비례해서 표시했다. 만약 이 모형을 뒤집는다면 연속되는 기둥과 서까래의 순서를 결정하는 부하를 지탱해주는 구성 요소들의 건축학적 골조를 알 수 있다. 가우디는 사진을 찍어 부하를 지탱해주는 구성 요소들의 건축학적 골조를 알 수 있도록 사진은 장식되고 윤색되었다.
이처럼 건물 안과 밖을 보여주는 얼마 안 되는 연구 자료가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거의 10년이나 지속된 연구 기간을 고려하면 자료가 매우 적다. 가우디는 이 연구를 하는 데 건축가 친구 프란세스크 베렝게르, 토목기사 에두아르도 고에트스, 또 다른 건축가 호세프 카날레타의 도움을 받았다.
실제로 건설된 유일한 부분인 지하성당은 건물의 기초가 될 것이었다. 1908년에서 1915년 사이에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관은 유기적으로 보이고, 무지개처럼 미묘한 색조의 차이가 있는 소나무 껍질과 유사한 색 돌로 만들어진 탓에 그 주변과잘 조화된다. 건물의 일부 역시 비탈진 구릉 지대의 지면보다 낮다. 전방의 주랑 현관은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주랑 현관의 기둥에는 단 하나의 돌로 만든 것이나 벽돌을 사용해서 만든 것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리고 모두 사슬 모양 곡선 아치의 윤곽을 따라 눕도록 다양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주랑 현관 지붕은 직선 보간 곡선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기둥에서 출발해 한곳으로 모이는 서까래에 의해 나뉜다.
지하성당의 어둑한 채광은 매우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모든 구역이 신비스러운 동시에 원시적이다. 중앙의 큰 방은 회랑에 둘러싸여 있다. 그 공간의 경계는 벽돌로 쌓은 외벽과 기울어진 기둥에 의해 나뉜다. 꽃잎이나 나비 날개를 연상시키는 모양의 납유리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지하성당의 22개 창문은 안쪽으로 열린다.
거칠게 깎은 견고한 돌덩어리나 벽돌로 기둥, 벽, 서까래, 둥근 천장, 그리고 전통적인 카탈루냐의 건축술에 따라 시공한 부분적으로 겹쳐진 벽돌 외장 등을 만들었다. 네 개의 기울어진 기둥은 각 조각이 기둥받침, 기둥몸, 기둥머리로 사용되는 거칠게 깎은 현무암 덩어리로 만들었다.
신도석 맞은편의 사제석은 가우디의 원 설계와는 다르다. 사제석 뒤에는 예루살렘의 성묘 성당에서처럼 사제석보다 18계단 높은 곳에 위치시키려고 했던 깊고 어두운 회랑이 있다.
형태의 조화(가우디가 직접 설계한 성수반과 신도 좌석, 장궤틀에 이르는 세세한 것들), 그 구조의 의미심장함, 원시적이면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 각양각색의 장식, 색채 장식, 그리고 그 기하학적인 구조로 인해 이 작은 건물은 가우디의 건축 능력과 시학(詩學)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기울어진 기둥과 서까래, 직선 보간 곡선 지붕이 보이는 지하성당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