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
말 그대로 요단강(요르단 강)을 건넌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표현으로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표현이지만 의외로 유럽/미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라고 한다. 아래에 나온 찬송가들을 주로 누군가가 죽었을 때 불렀기 때문에 이런 의미가 형성된 것 같다.
성경에 등장하는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약속된 축복의 땅으로 들어간다 "는 의미이며 그 구체적인 지명은 가나안 지역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가나안 지역은 이스라엘인의 시조인 아브라함이 야훼의 명을 쫒아 정착했던 곳이며 야훼로부터 그의 후손들에게 주겠다는 약속받은 땅이기도 하다. 이후 그의 후손들은 이집트로 이주해 노예가 되었다가 모세의 인도하에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요단강을 건너야 했고, 성경에 기록된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표현되고 있기에 "요단강을 건너다 = 약속된 축복의 땅(가나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구약에서 낙원으로 묘사된 곳이 가나안이라면 신약에서는 새롭게 천국이 주어졌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요단강을 건너다 = 약속된 축복의 땅으로 들어간다 = 가나안으로 들어간다(구약) = 천국에 들어간다(신약)"로 논리가 확장된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적으로 천국은 죽은 다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찬송가 가사에서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는 말은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도 복된 곳인) 천국에 가서 (죽은 자와) 만난다는 의미다. 여기서 요단강 건너다(=죽다)라는 관용구가 나왔다. 단, 해석은 한글본 찬송가를 가지고 풀이한 것이다. 원전이 될 영문판 찬송가 가사에는 요단강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인 1세대가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고[2] 2세대들이나 넘어갔다는 구절에서 '1세대가 모두 죽었다' 는 점에 착안, 거기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요단강 건넌다' 하는 표현에서는 '요단강을 건넌 사람=죽은 사람' 이기 때문. 즉 찬송가 가사에서 비유한 요단강 건너편(천국)을 염두에 두어야 말이 풀리지 '이스라엘인 1세대가 죽었다' 로 해석하면 용례가 맞지 않는다.
다만 아래에 제시된 가스펠곡 커티스 메이필드와 제프 벡도 연주한 곡 People get ready의 가사를 보면, 기독교인들이 죽기 전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었다고 얘기하는 내용인데, 여기서 천국을 요르단으로 간다고 묘사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아래와 같이 노래로 부를 때와는 달리 일상에선 죽음을 가볍게 이르는 용법으로 쓰인다.
협박조로 "요단강 보내버린다" 식으로 쓰기도 한다.
자기자신이 좀 위험한 일을 겪었을 때 "요단강 건널 뻔", "요단강 갈 뻔"이라고 '~ㄹ 뻔'으로도 자주 쓴다. 정말 요단강을 가버리면(..)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ㄹ 뻔했다'라고 쓰는 것이다. "죽을 뻔했다"라고 말하면 너무 진지하니까 약간 익살스럽게 말하려는 목적이 크다.
"~하면 요단강 간다", "요단강 구경" 식의 표현도 자주 쓰인다.
비교적 현대에 생긴 표현으로는 '요단강 익스프레스'라고도 한다. 요단강 급행열차라는 뜻이다.
웹툰 작가 메가쑈킹이 쓴 걸로 유명하지만 사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요단강 익스프레스라는 말은 쓰였다고 한다. '익스프레스'라는 말을 통해서 위 협박의 의미를 강조한 것 같다.
요단강 익스프레스의 진화 버전으로 "요단강 에어라인즈요단강 항공" 가 있다.
비슷한 단어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스틱스 강, 불교의 삼도천, 중국의 황천, 북망산 가는 길 등이 있다. 상당수 문화권에서 강을 건너는 행위가 죽음을 의미하고 있다. 고대가요 공무도하가에서 영화로도 유명해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구절에서 이런 이미지가 발견된다. 즉, 삶과 죽음의 경계로서의 강이 있고, 실제로 강을 건너다가 실족하는 등으로 많이 죽어 안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인 듯. 죽음까지 안 가더라도 어떤 일이 대차게 망했을 때 '물 건너갔다'고 표현하는 것도 유사한 예이다.
'한강 간다'(한강 정모)도 비슷하게 강과 관련된 죽음 표현이지만 맥락은 다소 다르다. 위의 것은 전통적 관념에 의한 것이라면 한강은 실제로 투신자살을 하겠다는 의미에서 나온 표현이다. 때문에 이때는 '한강 건너다' 식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2000년대에 이 때 범람했던 조폭미화물에 이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 예로 온갖 클리셰를 모아서 만든 영화인 다찌마와 리에서도 같은 개념이 패러디되고 있다. 단, 정확하게 '요단강 익스프레스'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고 개념상 같은 대사가 나온다.
국가 요르단과는 표기가 다르기 때문에 요르단의 관련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상상의 강인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다. 의미가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뜻하는 데다가 비슷한 용법으로 쓰이는 삼도천이 상상의 지명이기 때문에 더욱 혼동하기 쉽다. 또한 한자로 표기 가능한 글자들로 구성되다 보니 한자어 지명인 줄로 아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보니 북한이나 연변에는 이런 말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