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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문화예술

02. 파이프 오르간 이야기

작성자관운|작성시간16.01.26|조회수196 목록 댓글 0


02. 파이프 오르간 이야기

 

 

 

 


 

 

이 글에서는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논의는 가급적 피하고, 일반적이면서도 교회에 도움이 되는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우선 오르가니스트와 오르간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파이프오르간 해설과 한국에서의 오르간 음악의 역사를 언급하려고 한다.

 

 

1. 파이프오르간 해설

 

어느 시인이 예찬하기를 파이프오르간을 '악기의 왕'이라 했다. 자연의 모든 소리가 다 들어가 있는 파이프 오르간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클 뿐만 아니라 역사도 오래되었다. 이러한 오르간은 하프시코드와 피아노를 포함한 건반악기의 시조가 되었다. 손 건반은 손으로, 발 건반(페달)은 두 발의 앞굽과 뒷굽을 사용하여 연주한다. 쇠줄을 두드리거나 튕겨서 소리를 내는 피아노나 하프시코드와는 달리 오르간은 바람을 파이프() 속으로 통과시켜 그 진동으로 소리를 낸다. 피아노 건반은 한단이지만 파이프오르간의 손 건반은 보통 2단 이상으로 (한단짜리 작은 오르간도 있다) 큰 것은 6-7단의 손 건반(manual keyboard)을 갖기도 한다. 음색은 파이프오르간 고유의 소리(Diapason, 또는 Principal) 외에도 다른 악기의 소리를 모방한 스톱(stop)들이 연주대에 있어서 연주자로 하여금 그 조정이 가능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세종문화회관의 파이프오르간은 손 건반 4, 발 건반 1, 스톱 수 98개의 큰 규모로 되어 있다. 여러 건반과 수많은 스톱들이 각각 파이프들과 연결되어 작동하는 방식으로 '기계적(수동적) 연동장치'(tracker action)'전기적 연동장치' (electric action)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오랜 전통을 지닌 방식으로서 섬세한 연주를 할 수 있으며, 후자는 즉시로 작동되며 또 파이프와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관계가 없어 편리하나 손가락의 섬세한 터치의 전달이 불가능하다는 흠이 있다. 세종문화회관의 파이프오르간에는 두 개의 연주대가 설치되어 있다. 파이프 앞에 있는 것은 기계적(수동적) 연동장치이며, 무대 위의 것은 전기적 연동장치이다. 독주용으로는 파이프 앞의 연주대가 사용되며, 합주용으로는 무대 위의 연주대가 주로 사용된다. 모든 악기의 가치가 소리의 우수함에 있다고 할 때 오르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파이프()이다. 파이프는 목재(목관)와 금속(금관) 두 가지로 제작되는데 금속제는 납과 주석(tin)을 주성분으로 한다. 주석은 녹슬어도 별로 변색해 보이지 않으며, 녹이 슬어도 오히려 부식으로부터 보호하는 막 역할을 하게 되므로 오랜 세월을 보존할 수 있어서 옛날부터 파이프오르간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파이프의 길이가 길고 큰 것은 낮은 소리를 내며, 짧고 가는 것은 높은 소리를 낸다. 그 음역은 9옥타브로서, 최저 음은 C2로부터 시작되며, 높은 음은 관악기 중 가장 높은 음을 내는 피콜로보다 1옥타브 이상 더 높은 C6까지 이른다. 뉴욕의 Radio City Music Hall에 있는 오르간 파이프는 모두 벽과 원형 천장 안에 장치되어 있다. 파이프가 보이지 않는 천장에서 울려 퍼지는 String, Celeste 계열의 신비스런 소리는 마치 천상의 음악처럼 황홀하게 들린다. 역시 뉴욕에 있는 세계적인 St. John Divine 대성당에는 성전 문 바로 위에 State Trumpet 파이프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것이 울리면 너무나도 우렁차서 그 큰 성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귀를 막을 정도이며, 최후의 심판 나팔소리처럼 느끼게 한다. 32' Bombarde라는 큰 파이프들은 세울 자리가 없어서 발코니 마루아래에 뉘어 놓는 일이 많다. 이것이 울릴 때에는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은 흡사 땅이 진동하며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같이 파이프오르간은 다양한 방향에서 울려나오는 다양한 음색으로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파이프오르간에서 한 가지 음색을 내는 파이프의 그룹을 한 음렬이라 부르는데, 대체로 한 음렬에 한 스톱이 연동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파이프 수가 몇 개인가, 몇 음렬인가 또는 몇 개의 스톱이 있는가에 따라 그 오르간의 크기를 평가하게 된다. 20스톱 이하는 소형, 40스톱 내외는 중형, 60스톱 이상은 대형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오르간은 파이프 수 8,098개와 98개의 스톱으로서, 베를린 필하모니 홀의 오르간, 일본 NHK홀의 오르간과 같은 독일 Schuke 회사 제작으로서 물론 대형 오르간인데, 우리 것은 일본 것보다 월등하게 크며, 동양에서는 가장 큰 것이다. 파이프오르간의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수많은 파이프들이 어떻게 소리를 내느냐는 것이다. 파이프를 울리게 하는 것은, 바람과 그 압력인데, 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풀무질을 해야 하며, 바람을 파이프들이 그 위에 설치되어 있는 바람상자까지 끌어넣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 옛날에는 사람의 힘을 동원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영국의 Winchester 오르간은 70명의 장정이 풀무질을 하였다고 한다. 오르가니스트는 정장하고 연주를 하고 있는 동안, 보이지 않는 뒷방에서는 수많은 힘센 장정들이 땀을 홀리며 풀무질을 해야만 했다. 물론 지금은 전기모터로 바람을 일으키며, 풍압도 정확히 조정된다. 음량은 파이프의 크기만이 아니라 풍압의 크기에 따라서도 크게 좌우된다.

 

위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파이프오르간은 연주대, 조정장치, 파이프 설치, 송풍장치 등의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보더라도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큰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파이프오르간제작의 새로운 경향은 그저 큰 것만을 위주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기능적으로 정리하여 그 방대한 장치를 효율적으로 집약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종문화회관의 오르간은 20세기의 새로운 파이프오르간 중흥기의 걸작품으로서 우리나라 음악문화 진흥에 새롭고 획기적인 계기를 이룩할 것으로 믿는다.

 

2. 파이프오르간의 역사

 

파이프오르간은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의 Kctesibios가 발명하였다는 Hydraulis(물의 압력으로 파이프의 소리를 내게 하는 장치)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원래 악기라기보다 동네 언덕 위에 장치하여 이웃 동네에 급한 사건을 알리는 신호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장치도 거창하고 소리도 요란스러운 것이었다.

 

이 장치가 물 대신 풀무를 사용해서 공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개량된 것은 기원 2세기 이후의 일이다. 파이프오르간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로마시대 축제 때 또는 개선군을 환영할 때 사용되었다. 교회에서 사용된 첫 기록으로 동방교회에서는 300년대에 건립된 Teodosius의 오벨리스크에 오르간 그림이 있고, 757년 비잔틴 황제 CopronymosCharlemagnePippen왕께 선물로 오르간을 보낸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연주용이 아니라 장식용이었다. 한편 서방교회는 제조기술이 뒤늦게 발전하여 980년에 영국 Winchester 성당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은 풀무 26개를 작동시키는데 70여 명의 장정이 일해야 하는 대규모의 악기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파이프오르간은 교회의 악기로 성장하게 된다. 그 후 13-14세기에 비로소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 시대의 것을 Gothic Organ이라 부른다. 파이프오fm간의 전성기는 17-18세기였으며, Baoque Organ은 악기로서 완전한 것이 되었다. 특히 독일에서는 Schnitger, Silbermann 등 유명한 오르간 제작자들이 우수한 악기를 만들었으며, 오르간의 대가 바흐 (J.S. Bach)를 낳게 했다.

 

19세기의 오르간은 Romantic Organ으로서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한 제작자 까바이꼴(Cavaillé-Coll)이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바로크 시대 독일의 바흐와 더불어 오르간 음악의 쌍벽을 이루는 프랑크(C. Franck)를 낳게 하였다.

 

19세기 말-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는 Theatre Organ 또는 Cinema Organ이라 불려지는 오락용 파이프오르간이 한동안 유행한 일이 있다. 이 종류의 파이프오르간은 현재 거의 그 자취를 감추었고, 전기오르간이 많이 개발되어 이 부문에 대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파이프오르간은 다시 중흥기를 맞이하였다.

 

새로운 음색과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현대음악이 파이프오르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또 현대의 발달한 과학기술로 말미암아 파이프오르간을 더욱 완전하게 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과거의 바로크, 로맨틱의 특징과 더불어 현대음악이 추구하는 모든 기능을 충분치 감당할 수 있는 훌륭한 악기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끝으로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파이프오르간의 상징적 의미에 관한 것이다. 파이프오르간은 예로부터 교회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교구 중의 하나였다. 그 뒤 오페라 극장이나 콘서트홀에도 설치되었으며, 공회당 등 큰 집회장소에는 오르간이 으레 있어야 할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이것은 오르간이란 악기가 문화적인 집회장소의 한 상징으로도 그 존재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발전의 상징인 파이프오르간이 더 많이 설치되어, 우리 국력을 과시함과 아울러 오르간 음악이 더욱 발전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3. 한국 오르간 음악의 역사

 

1) 풍금 (Reed Organ)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교회 최초의 악기는 풍금이었다. 리드(Reed)의 진동으로 소리가 나기 때문에 'Reed Organ'이라 말하지만 발로 굴러 풀무식으로 송풍하기 때문에 'Pumping Organ'이라고도 한다. 물론 처음에는 미국 선교사에게 소개받고 미국 악기를 사용하였지만 한일합방 이후에는 거의 다 일본제 리드오르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광복 후 우리나라에서도 리드오르간 제작회사(백조, 아리아)가 생겨났고, 그 중에서도 '아리아 오르간'은 전국 초등학교와 교회를 대상으로 하여 한동안 이 분야를 독점하기도 하였다.

 

2) 피아노(Piano)

 

한국교회 초기에는 풍금이 전적인 교회악기였지만 점차 피아노를 사용하는 교회도 생겨나게 되었다. 경건한 예배를 위해서는 파이프오르간이 최선이요, 음색으로는 피아노보다 풍금이 그 대리역을 맡을 만하지만, 음량이 크고 값이 고가라는 이유로 풍금보다 피아노가 좋은 악기라는 미숙한 평가가 한국교회 안에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시대 재정이 넉넉지 못한 한국교회에서는 피아노를 원하면서도 풍금으로 만족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1950년대에 미국의 구제물자가 쏟아져 들어오던 시절, 미군부대 군목들과 교섭하여 고물 피아노를 구제품으로 교회에 들여놓는 한국교회 목사가 많아졌으며, 구제품 피아노를 못 얻어내면 무능한 목사로 낙인이 찍혀 곤란을 당하는 교역자가 생겨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교회의 '피아노 선호' 유행이, 이와 같이 '예배에의 적합성 여부'가 아닌 예배 외적인 허황된 이유에서 일어난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물론 피아노는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 서양을 대표하는 훌륭한 악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피아노'가 예배를 위한 좋은 악기인지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부흥 전도 집회나 빌리 그래함의 옥외 대 집회 같은 대중 집회에 사용된다고 하여 교회예배에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사람을 향한 '전도 집회'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와는 그 기본 정서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피아노 선호의 유행은 한국교회가 풍요를 자랑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한층 더 심해져서 삼익, 영창 등의 국산 또는 야마하 등의 일제 그랜드피아노를 구입하여 전기오르간과 함께 사용하는, 그래서 교회의 악기가 예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어, 뜻있는 사람들의 빈축을 사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3) 전기오르간

 

전기오르간이란 전기적으로 발진(진동)시켜, 앰플리화이어로 증폭,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도록 되어 있는 장치를 말한다. 음반을 틀었을 때와 같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일반 악기와는 다른 기계장치이지만 연주대(console)가 오르간의 구조를 갖추고 있어 전기오르간이라 부른다.

 

미국에서 제작된 하몬드 오르간이 가장 오래 되고 제일 많이 판매된 미국제 전기오르간이었으나, 타 회사와의 경쟁에서 밀려 폐업하게 된 1970년대까지는 가장 인기 있는 대표적 전기오르간이었다.

 

광복 후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처음 들어온 전기오르간은 볼드윈(Baldwin) 회사 제품으론 한국기독교방송국(HLKY-초대음악과장: 곽상수)이 개국된 1963년의 일이었다.

 

6·25전쟁 당시 활약한 해군정훈음악대 이름으로 비공식으로 들어왔던 볼드윈 오르간(KY것과 같은 church model)1955년 양성화되어 서울 영락교회가 구입하였다. 이 오르간을 보고 이대 음대교수로 와있던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풀턴(Miss Fulton)이 선교본부와 교섭하여 가장 큰 연주회 모델(concert model)의 볼드윈 오르간을 이대 대강당에 설치하게 된 것이 1956년이었다. 1955년 가을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이문근 신부가 명동 국립극장에서 해군교향악단과 협연하였는데, 그것이 광복 후 첫 번째 오르간 연주였다면 1957년 곽은수 교수의 연주는 두 번째 것이 되겠다. 다음해 1958년 가을 이대 대강당에서 열린 곽상수의 귀국 첫 독주회는 우리나라에서의 세 번째 오르간 연주회가 된다.

 

기독교방송국, 영락교회, 이대 대강당에 설치된 볼드윈 오르간의 소문을 들은 대한중석회사에서 비공식적으로 볼드윈 오르간의 'Spinet Model'(페달 1옥타브의 소형)20여 대 들여온 것이 1958년이다.

 

연세대 대강당이 1959년에 준공되었는데 그 봉헌예배용으로 급하게 이 Baldwin Spinet Model을 한 대 구입하였다. 이와 같이 6·25전쟁 이후 오르간음악의 초기단계에 볼드윈 오르간과의 인연이 많았다.

 

교회용 전기오르간으로는 미 8군내 'Main Chapel'1980년대 초에 알렌(Allen 오르간이 처음 설치되었으며, 'Seoul Union Church'1970년대 초에 로저스(Rodgers) 오르간이 설치되었다.

이후에 곧 두 회사의 대리점이 서울에 생겨 한국교회에도 'Allen', 'Rodgers' 두 미국 전기오르간이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 'Pipe Speaker'라는 스피커를 눕혀놓고 그 위에 파이프를 설치한 신형 'Baldwin'이 대리점을 열었고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Pipe'를 겸용하는 신형 'Rodgers', 컴퓨터가 내장된 신형 'Allen Organ' 등이 계속 선을 보였다. 후자의 예는 충현교회, 횃불선교센타 등에서 볼 수가 있다. 유럽의 전기오르간도 많이 도입되고 있는데 그 자세한 경유나 품명에 관해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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