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양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옷도 근대 서구에서 유래된 이른 바 서구근대식 속옷으로 셔츠류와 팬티류를 기본적으로 입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키모노 등 이른 바 [와후쿠]를 할 때에는 역시 이에 맞는 속옷을 갖춘다. 이 때 입는 속옷류는 다음과 같다.
일본의 속옷
일본인들이 즐겨 있는 속옷의 종류로는 장속옷, 반속옷, 피부속옷, 일본식 속곳, 훈도시 등이 있다.
● 장속옷
장 속옷은, 양복으로 치자면 와이셔츠에 해당된다. 키모노를 입었을 때 보이는 것은, 옷깃과 소맷부리 정도인데, 옛부터 남자의 키모노는 보이지 않는 곳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소재는 순백색 비단이나 지지미 등이 일반적이다.
● 반속옷
반속옷은 장속옷 대신에 이용하는 길이가 짧은 속옷으로, 매일 평상복으로써 일본식 옷을 입는 사람에게는 편리한 품목이다. 반속옷을 입을 때는, 본래는 일본식 속곳(속치마)과 편성해 장 속옷과 같이 해 입지만, 대부분은 남자용 속옷과 편성하도록 되어있다. 특히 하반신에 일본식 속곳을 붙이면 옷자락 중재가 잘되어 입는 기분도 좋다고 한다.
● 피부속옷
피부 속옷은 직접 맨살 위에 입는 속내의를 말한다. 양복의 속옷과는 달리 피부에 밀착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식 옷을 입을 수 있고, 벗거나 입기도 간단하다. 피부 속옷은 키모노를 입을 때, 맨 밑에 입기 때문에 당연히 땀받이 역할도 수행한다. 이 땀받이 역할은 피부 속옷의 기능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겨울에도 땀을 흘리기 때문에 보온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땀으로 속옷이나 키모노를 손상시키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 주는 기능을 한다.
● 일본식 속곳
일본식 속곳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속치마이다. 일본식 속곳(속치마)이라고 하면, 여성 전용의 화장(和裝)속옷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지만 남성용도 있다. 구조적으로는 여성용과 똑 같으며, 크기와 색깔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일본식 속곳은 보통 반속옷과 편성해서 장 속옷 대신에 입는다.
● 훈도시
훈도시는 일본식 옷에 최적인 남성용 속옷이다. 훈도시는, 습기가 많은 일본 기후 풍토에 적절한 속옷이라할 수 있다. 그 기능성과 장착감은 다른 속옷에는 없는 독특한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훈도시 종류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훈도시라 불리는 것에는 크게 3가지로 6척 훈도시, 엣츄우(越中) 훈도시, 망태 훈도시가 있다.
일본인을 연상할 때 춈마게 즉 일본식 상투머리, 게타와 함께 떠오르는 것이 바로 훈도시이다. 현재 일상생활에서 훈도시를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것이 지닌 장점들 때문에 새롭게 주목 받는 전통물 중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일본적 의상문화 중 속옥의 상징이며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훈도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훈도시
어원
확실한 정설은 없지만, 훈도시에 대한 어원으로는 [대륙 도래설]과 [남방 도래설]이 있다. 엣츄우 훈도시는 [대륙 도래설]이, 6척 훈도시는 [남방 도래설]로써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대륙 도래설의 훈도시는 중국에서는 [독비(犢鼻) 훈도시]이라고 일컬어지며, 그 이름은 일본의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독비 훈도시는 송아지 코 부분이 훈도시를 잡은 남성 국소와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또, 남방도래설의 6척 훈도시는, 오키나와 남쪽 섬 사람들이 6척 길이의 샅가리개를 닮은 속옷을 착용한 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섬에서 6척 훈도시의 치수를 재는 방법과 일본 본토에서 전승되는 방법이 같다는 것 때문에, 남쪽에서 도래되었다는 설을 가지고 있다.
각 시대별 훈도시
훈도시라는 말은 현재 일본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근년까지 도쿄 등에서는 비어(卑語)라 해서 시모오비(下帶), 혹은 시모노오비(下の帶) 등으로 불리고, 지방에서는 코바카마(コバカマ), 코시바카마(コシバカマ), 사나기(サナギ)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무사(武士) 외에 일반 서민(庶民)들도 훈도시를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의 풍속에 [후로오(風呂) 훈도시]가 있었는데, 당시는 목욕탕에 알몸으로 들어가지 않고, 반드시 목욕탕 전용 훈도시를 하고 입욕했다고 한다. 이 훈도시를 [목욕탕 훈도시]라 하며, 이 훈도시를 싸는 것에서부터 [후로오시키](風呂敷) 즉 보자기란 말이 생겨 났다고 한다. 또, 에도시대에 들어서서는 훈도시 천으로 무명이 널리 이용되었고, 귀족이나 멋부리는 사람들은 지지미, 고운 생사로 무늬 있게 짠 고급 공단을 이용했다고 한다. 훈도시의 대표격인 엣츄우 훈도시는 에도 시대 후기 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다. 엣츄우 훈도시는 에도시대에 목욕탕 훈도시를 잊은 손님에게 코소데를 풀어 요뉴(腰紐)를 붙여 목욕탕 훈도시로 한 것으로부터 엣츄우 훈도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군국(軍國)시대에 들어서 군대의 속옷은 엣츄우 훈도시로 사용되도록 강제되었다고 한다. 징병 검사의 장소에 있어서도 엣츄우 훈도시 한 장의 모습으로 신체 검사를 받은 모습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훈도시와 군국주의는 전시(戰時)중에는 항상 따라 다녔는데, 이것이 현재에 와서는 훈도시의 부활, 보급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노인들 사이에서는 당시의 훈도시를 그리워 해서 사용하고 있는 분도 있으나 꺼림칙한 전쟁 체험을 불식하는 의미에서 훈도시를 그만두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 에도 시대의 풍속화와 풍속화로 보는 훈도시
사진이 없던 에도시대 당시의 회화, 풍속화, 연극이나 그림은 옛 훈도시 사정을 아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특히 에도시대의 풍속화에는 당시의 훈도시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고 한다. 서민이 평상시에 이용하는 훈도시의 색이나 잡는 법 등을 풍속화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 에도막부(幕府) 말기, 메이지 초기에 기록되어 있던 훈도시
에도시대에는 파벌꾼, 임업 직공의 작업복으로 메이지 초기에는 어부의 작업복으로 훈도시(6척)가 이용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훈도시는 그들의 작업복의 하나였고, 보통의 속옷으로써도 훈도시를 대신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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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지유신(明治維新) 후 훈도시가 걸어 온 길
메이지유신, 에도시대까지 훈도시는 남자의 작업복과 같은 역할도 했다. 에도 시대의 풍속화를 보면 훈도시를 당당히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으로 봐서는 적어도 에도 시대까지는 훈도시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의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문명개화(文明開化) 시대에 들어서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일본인 사이에서는 점차 [훈도시는 천하고 보기 흉하다]라는 인식이 싹트게 되었다.엣츄우 훈도시는 종전(終戰)과 함께 쓸모 없는 것이 되고, 팬티가 훈도시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렇듯 훈도시가 꺼림칙한 군국주의의 상징이라고 일본인들에게 인식되어진 이유는 외국인으로부터 받는 압력과 일본인의 변신의 빠름, 더불어 외국에 영향 받기 쉬운 국민성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와 같이 훈도시는 시대와 함께 진화, 쇠퇴해 왔다. 현대에 들어서는 훈도시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사람들은 일본의 전통 속옷이며, 일본의 기후 풍토에 적합한 속옷인 훈도시를 널리 알리고, 부활, 상용화시키기 위해 지금도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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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스마프에 미친 경주의 그레이스 작성시간 04.02.06 하하..언니 그렇네요~(근데..언니 ~왜?침을 질~~~흘리고 있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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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akko 작성시간 04.02.06 정아야. 왜라니... 남자들이 너무 멋있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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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스마프에 미친 경주의 그레이스 작성시간 04.02.06 하하하~언니..넘 웃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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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표준국어대사전 작성시간 04.02.08 남성미란 이런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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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犬夜叉(いぬやしゃ) 작성시간 04.02.14 사진을 보면서 으랏차차 스모부란 영화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