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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문화

이지메(いじめ) 왜 탄생된 것일까?

작성자KITARO|작성시간03.08.08|조회수6,061 목록 댓글 0




'이지메'는 일본어의 '이지메르(いじめる)'즉, '괴롭히다, 들볶다' 라는 의미의 동사가 명사화되어 생겨난 말로, 어떤 특정한 대상을 정해 놓고 전학급 또는 집단이 다같이 괴롭히는 일을 말한다. 괴롭히는 데는 뚜렷한 이유가 없으며, 그 대상은 대개 '약하고 힘없는 존재'이다. 그저 자신들과는 뭔가 다른 구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을 두고 집단으로 괴롭힌다. 가방 안에 죽은 쥐를 집어넣는다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도 하고 뒤에 앉은 아이가 이지메의 대상이 되는 아이를 바늘로 긁어 피가 나게 하기도 한다. 이지메는 대학생과 직장인 사이에도 존재한다. 이 때 이지메의 대상은 주로 중 노년 층이나 여자 직원이 되는데, 욕이나 상소리는 기본이고 도저히 감당해 내기 어려운 분량의 일거리를 부과하거나 회사의 손실을 개인적으로 보상하도록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이지메'는 일본의 이례적인 사회 현상으로서 세계적인 고유명사가 되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수 현상이 일본에서 생겨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분명 어떠한 필연성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 필연성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들 특유의 인성과 역사성, 그리고 최근의 사회적 상황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지메'를 자초하는 일본인

사회학자들은 흔히 일본인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 '응석', '소극성', '집단주의' 등의 성격을 자주 들어 이야기한다. '응석'은 어린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볼 수 있는 아주 일반적인 감정을 말하는 것인데, 성장과 함께 자립해 가는 개인의 성숙을 기대하는 서양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 모친 의존적인 '수동적 애정 희구'와 같은 '응석'이 사회 관계 속에서 조장된다. 응석은 조화로운 인간 관계와 정서적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폐쇄성이나 논리성 결여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소극성'과 맥을 같이 하여 수동적이고도 타인 의존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또 집단주의는 조직 성원의 협동을 강조하는 개념으로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나 '개체와 전체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개념이며, 동료와 함께 있음으로써 안심하는 '동료 사회', '집단 사회'를 지향한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들이 어떻게 이지메라는 집단 괴롭힘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전체를 중시하는 집단주의적인 성향이 너무 강해질 경우, 집단에서 벗어난 개인을 용서하지 않게 되어 집단 내에서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집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대상으로 삼아 이지메를 가하게 되는데, 이것이 수동적이고도 타인 의존적인 '응석'이나 '소극성'이라는 성향과 맞물려, 개인적으로는 상대를 '이지메'하지 못하고 자신을 포함한 집단에 의존하여 그 대상을 괴롭히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만약 이지메의 대상을 괴롭히는 데 동참하지 않으면 그 사람도 이지메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자신은 하고 싶지 않아도 그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이지메를 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집단에 속해 있음에 안심하고 그러면서도 집단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집단주의적 성향이 '이지메'를 낳는 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 속의 이지메

그런데 이러한 이지메의 필연성을 보다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것은 일본의 역사 속에 자리한 '공인(公認)된 이지메'의 모습이다. 일본의 이지메는 역사적으로 볼 때 충분한 이유가 있다. 예로부터 지진이나 화산 폭발, 태풍 등의 천재지변과 화재, 전염병이 많았던 일본에서는 재앙을 면키 위해 신에게 가호를 비는 지금의 마츠리(祭り-축제나 제사)와 같은 집단주의적인 행사가 많았다.

또한 벼농사(稻作)나 농경 생활을 위해서는 집단적인 근로가 필수불가결했다. 마츠리나 집단적인 농경 생활을 통해 일본 특유의 집단 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몸 속 깊이 배어 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을의 집단적인 생활을 무리없이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집단 내의 규율을 엄격히 하고 규칙을 위반하거나 비협조적인 자에게는 집단적인 학대 같은 엄중한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에도시대에는 벌써 이러한 관습이 사회적으로 공인되기에 이르러, 무라하치부(村八分) 라는 풍습과 에타(穢多)와 히닌(非人)이라는 천민을 낳았다.

무라하치부는 마을의 공동 작업에 태만하거나 도둑질 등의 비행을 저지른 자에게 가해지는 집단 응징의 관습이었다. 마을에서 필요한 공동 행사, 즉 농사일 · 혼례 · 수해 · 화재 진압 · 장례식 등의 열 가지 기본 행사 중에서, 불이 났을 때 도와주는 것과 누군가 죽었을 때 함께 장례를 치러주는 일 이외의 여덟 가지에 대해서는 일절 거들떠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따돌려서 소외감을 맛보게 했다.

한편 에타와 히닌은 농민 계층이 아예 집단적인 학대를 가하도록 만들어진 천민 집단이다. 농민들로서는 무사들로부터 받는 고통이 무척 심했다. 왜냐하면 농민들은 수확량의 절반 이상을 무사들에게 수탈당해야 했고, 어쩌다 한 번의 실수로도 무사에게 자칫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민은 전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데다 나라의 재정을 유지시켜 주는 조세 수입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러한 고통을 모른 척하고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바쿠후(幕府)는 농민들의 불만을 해소해 주기 위하여 더럽다는 의미의 에타(穢多)와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의 히닌(非人)이라는 천민 집단을 만들어 냈다. 자신들이 농민을 괴롭히듯 농민들 역시 이들 천민을 부담없이 학대함으로써 대리 만족을 느끼도록 한 것이다. 많은 농민들이 이들 천민을 때리거나 욕하고 괴롭히는 것이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농경 사회가 낳은 집단주의적 의식과 역사적으로 공인된 집단 학대의 잔재가 현대의 이지메라는 형태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지메를 부활시킨 일본의 사회

역사적으로 볼 때 집단적 학대는 집단주의적인 농경 사회가 빚어낸 필연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극도의 심각성을 띠고 있는 현대의 '이지메'에는 과연 어떠한 필연이 작용한 것일까? 이지메라는 집단 괴롭힘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된 데에는 어떠한 사회적 요인이 작용한 것일까?

그 첫 번째로는 어린이가 혼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기계나 도구가 범람하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이들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기계가 인간과의 접촉 기회를 어린이로부터 빼앗아, 점차로 대인관계를 미숙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는 '대인 곤란성'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대인관계가 상당히 미숙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해도 접근하지 못하거나 그 표현 방식이 그릇된 방향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하나의 현상이 이지메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렇듯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기계의 범람이 이 '대인 곤란성'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출생률 저하의 폐해를 들 수 있다. 형제의 수가 적거나 없기 때문에, 형제간의 싸움이나 형제간의 결속이 없어 감정을 다스리는 법이나 타인과 함께 공생해 나가는 법을 배우기가 힘들다. 또한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애정을 한 곳으로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아, 자녀는 자기의 불만을 조금도 참아내지 못하는 '내성(耐性) 결여'의 아동이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이지메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이지메를 가하는 측도 당하는 측도 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지메를 가하는 측에서는 마음에 안드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실만으로도 참기가 어려워져서 면박을 주거나 욕설을 하게 되고, 이지메를 당하는 측에서는, 앞서 말한 대인 곤란성과도 이어지는 현상으로서, 친해지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고 노력해봐도 잘 되지 않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기분 나쁜 일을 당하면 금새 기가 죽고 마는 것이다. 이지메의 악순환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부모의 손에 곱게 자라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없는 자녀로서는 이지메를 당했을 경우 좋은 대처 방안을 찾지 못해 어찌할 줄을 모르게 되는데, 이를 지켜보는 동료들로서는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 견딜 수가 없다. 이러한 식으로 집요하게 이지메가 계속되면 내성이 없는 자녀는 결국 등교 거부나 자살 행위로 자신을 내던지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지메를 가하는 측도 똑같은 요인이 작용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바로 '내성 결여'라는 똑같은 원인이 이지메의 가해와 피해를 낳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잉 정보라는 시대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된다. 특히 TV, 신문 등의 매스컴이 자극적이고 센세이셔날(sensational)한 정보를 여러 방면에 걸쳐 흘려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 문제, 그 중에서도 이지메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적극적인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혀 그러한 문제가 없었던 지역에서도 이지메가 다발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매스컴이 모든 지역에서 이지메를 조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회 문제에 있어서 그 선동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 매스컴이지만, 이지메는 청소년과 보다 밀접하게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매스컴의 부추김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상, 이지메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 일본 특유의 인성에 의한, 역사에 의한, 그리고 사회적 상황에 의한 - 필연성을 살펴보았다. 이지메는 지극히 집단주의적이면서도 소극적인 일본인의 성향이 기계화, 출생률 저하 등의 현대적 사회 현상에 맞물려 나타난 일본의 특수한 사회 문제이다.

이지메의 가장 큰 문제는, 이지메가 단순한 집단 괴롭힘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등교 거부, 비행, 자살, 정신 장해 등의 심각한 다른 사회 문제를 파생시킨다는 데에 있다.

일본이 심각해질대로 심각해진 이지메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왕따'라는 이름의 '신종 이지메'가 꾸물꾸물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지메와 같은 현상이 우리나라에 생겨나게 된 것은 일본처럼 역사적으로 이지메와 같은 관습이 있었다거나, 한국인 특유의 인성과 그 사회적 상황이 함께 반응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일본으로부터의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 위에 일본과 비슷하게 돌아가는 기계화나 출생률 저하와 같은 현대적 사회 현상이 그 배경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지메는 이제 단순한 남의 일이 아니다.

이지메가 현대 사회가 낳은 필연적인 산물이라면, 단기간에 종식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본다. 가장 근본적인 개선은 학교와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자녀가 올바른 인간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은 학교와 가정 교육이 담당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 위에 사회와 정부가 - 이지메에 관한 보다 실질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등 - 혼연일체가 되어 이지메 근절을 위한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을 기울인다면 이 사회에서 이지메(왕따)라는 말이 사라지는 그 날이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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