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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문화

[사회]일본 속의 유교

작성자KITARO喜|작성시간03.09.19|조회수152 목록 댓글 0
사회의 도덕과 규범을 만들고, 풍토와 문화를 만드는 것은 그 사회의 전반적인 가치관을 지배하는 전통적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조선시대와 에도(江戶)시대에 유교를 주요 통치 이데올로기로 각각 수용함으로써, 현재로 이어지는 유교 문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와 일본은 같은 유교 문화권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일반적인 분위기나 생활면에서 흡사한 점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오렌지와 레몬이라 해야 할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와 일본은 겉모습은 비슷하나 본질적으로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듯하다. 똑같은 사상을 전수받고 지금까지도 똑같이 그 명맥을 유지해 오는 두 나라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이렇듯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일까. 먼저, 두 나라가 유교라는 사상을 받아들임에 있어, 과연 무엇이 '오렌지를 레몬으로 바뀌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는가를 살펴보고, 아울러 우리나라와 일본의 유교 사상의 흐름을 또한 파악해 보고자 한다.

학문의 한 영역이었던 에도시대의 유교

유교 문화권 중에서 가장 유교 사상이 뿌리 깊은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일 것이다. 주자학이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래된 것은 고려 말기(13세기 전후)였다. 고려시대(918∼1392)에는 불교가 지배적인 종교로서 국민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가 배척되고, 특히 주자학에 의해 정치와 경제가 방향을 잡게 되는데 유교 문화는 그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지배적 사상이 되어 왔다. 그런데, 같은 유교 문화권임에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왜 그렇게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국에서는 불교시대(678∼1392)에 이어 조선시대 518년(1392∼1910)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유교의 일원적 사상으로 보전되어 왔으나, 일본에는 이러한 사상사적(思想史的) 경위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에도시대에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주자학을 관학으로 승인함으로써 유교가 공식적으로는 일본의 사상계를 독점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에도시대의 유교 사상은, 265년간 이어져 내려온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질서를 정당화하는 체제상의 가치 규범이었다. 유교 사상은 무사 계급뿐만 아니라, 서민 교육 기관을 통해 민중에게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그들의 일상 생활의 전반을 규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들의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와 중국과 조선으로부터 전래된 불교, 그리고 도쿠가와(徳川)시대의 국가 윤리인 유교가 한데 섞이면서, '신 · 불 · 유'가 서로 상해하지 않고 공존하는 종교 · 도덕의 다원적인 사상 구조를 유지했다.

유교는 도쿠가와시대의 일본인들에게는 단순한 종교나 도덕 윤리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신 · 불 · 유'를 일직선상에 두는 one of them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에서 유교가 지닌 생활 규범으로서의 영향력은 조선시대의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했다. 일본에게는 공식적인 생활 규범으로서 '주자가례(朱子家禮)'와 같은 것이 없었다. 설령 그러한 것이 공포되었다 해도 실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에도시대의 일본의 유교는 '유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에 그칠 뿐이었다. 조선시대의 유교는 주자학만이 유일 절대의 학문으로서 공적인 권위를 지녔지만, 도쿠가와시대의 유교는 주자학 이외의 학문을 배격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주자학뿐만이 아닌 중국에서 들어온 양명학, 일본인 유학자들이 창안해 낸 조래학(俎徠學), 절충학, 실학, 미토(水戶)학 등이 발달하여, 결국 주자학은 도쿠가와(徳川) 막부(幕府)의 공식적인 교학으로서, 유학의 한 학파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에 과거제도가 없었던 점과 크게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만일, 조선과 같이 주자학에 의한 과거시험이 있었다면 '수험용 교학'으로서 주자학은 압도적인 지배력을 발휘하게 되었을 것이며, 과거시험에 의해 등용된 관료단 또한 주자학 이외의 유학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양명학을 비롯한「이단」유교 · 유학을 억압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의 종교와 도덕의 사상 구조가 다원적이듯이, 학문이나 지식의 사상 구조도 또한 다원적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유교 이외의 국학과 난학(蘭学)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었다. 조선이 주자학 일변도(一邊倒)였던 것에 비하면 일본의 학계와 지식인 층은 매우 다채로웠다.

일본의 유교는 근대로 들어서면서 한국과 또 다른 흐름을 보이게 된다. 메이지시대(明治, 1868∼1912)에는 국가 신도와 결속하여 특수한 진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태평양전쟁이 종식되면서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만다.

공통되는 유교문화는 '충 · 효' 가치관

이와 같이, 일본의 유교는 한국처럼 유일 일원적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군림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21세기를 바라보는 현대의 일본에게도 유교 예교제(禮敎制)의 근간인 '충'과 '효'의 가치관만은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같은 유교 문화로서의 우리나라와 일본의 본질적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유교 사상은 조선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유일 일원적 사상으로서 존재해 왔다. 일본과 우리의 유교적 차이의 요인을 정책적 · 역사적인 부분에서 찾아본다면,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는 국시와 이를 굳건히 다져 준 과거제도 등이 유교를 일원적 사상으로 존재하게 하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낳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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