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국보 제138호 ‘가야금관’은 고령 ‘지산동 45호분’ 도굴품
최근 경북 고령의 대가야 유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애지중지했던 국보 138호 고령금관은 대가야 고분 도굴품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동안 출처가 확인이 되지 않았는데,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하나인 45호분에서 도굴된 것으로 보입니다.
TBC 정병훈 기자의 보도입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138호 대가야 금관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가야본성 칼과 현’을 통해 28년만의 첫 외부전시로 일반에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가야 최고의 금관이지만 출토지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근거 없는 주장에 고고학계가 휘말리는 소동이 일기도 했는데 고령 지산동고분군 중 45호분임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45호분 1호 석실 한 가운데에서 도굴꾼이 쓸어가면서도 빠뜨리고 간 아주 작은 두 종류의 금제장식이 나왔는데 가야금관과 함께 나온 부속금구와 똑같습니다.
부속금구 중 가장 작은 반구형 장식과 대추씨 모양으로 크기나 모양 모두 같습니다.
[신종환 대가야박물관장]
“현재까지 국내 어느 고분에서도 출토된 바 없는데 이러한 유물들이 45호분 도굴된 상태에서 일부 출토가 되었고 이것의 모습이 동일한 형태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금관과 함께 나온 금귀걸이는 45호분 1호 석실 출토 금귀걸이와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석실의 북쪽 바닥에서 나왔는데 원추형의 아랫부분 표면처리만 약간 다릅니다.
[김세기 전 대구한의대박물관장(45호분 발굴참여)]
“45호분 석실에서금제 귀걸이가 나왔고 유리 목걸이에 곡옥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순장자가 누워있던 상태 그대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5호분이 가야고분 중 두 번째로 많은 12명의 순장자가 묻혀 금관이 나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왕릉급 대가야 고분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금관의 출처를 추적 조사해 온 경북대 박천수 교수는 지적합니다.
[박천수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금관 부속금구와 같은 형식의 금제 장신구가 나왔다는 점에서 지산동 45호분은 그렇고요. 두 번째로 지산동 45호분은 왕 또는 왕비능으로 추정되고 있는 대형분입니다."
리움미술관과 고고학계는 가야금관이 대가야의 금관이고 고령 출토품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는데 이제 그 출처가 45호분으로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tbc 정병훈입니다.
2020-01-08 11:45
도굴된 45호분, 내부 모습은?
리움미술관 소장 고령금관이 45호분에서 도굴됐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증거, 더 있습니다.
45호분에서 고령금관과 제작 시기와 양식이 비슷한 유물들이 잇따라 출토됐습니다.
권준범 기자가 최초 발굴 당시 45호분의 모습을 설명해드립니다.
지금 보시는 게 고령군 지산동 45호 고분입니다.
44호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순장묘 형식이 드러난 대가야의 최고위층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1971년 처음 발굴 당시 모습은 이랬습니다.
한 가운데 무덤 주인과 부장품이 묻힌 두 개의 석실이 있고, 주변으로 순장자들이 묻힌 석곽이 배치 돼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국내 발굴단이 처음 이곳을 들어가 보니까, 무덤 주인이 있는 1호 석실이 이미 도굴된 상태였습니다.
석실 위를 덮었던 개석 8개 중에 4개가 두 동강이 나서 석실 안으로 내려 앉아 있었는데요,
도굴꾼들은 동북쪽 벽면 상단을 뚫고 들어가 무덤 주인의 목관 자리인 중앙부 바닥까지 파헤쳐 유물들을 모조리 쓸어갔습니다.
왕관이 있을만한 곳을 집중적으로 노렸단 얘깁니다.
앞서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야금관이 이곳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근거로 전해드렸죠,
도굴꾼들이 흘리고 간 단추모양과 대추씨 모양의 금제 장식도 바로 여기서 수습됐습니다.
또, 리움 측이 소장하고 있는 것과 닮아있는 귀걸이도 중앙에서 북쪽으로 치우친 바닥에서 발굴됐습니다.
역시 리움 소장 보물 570호 금동 말안장 장식과 똑같은 안장테는 남쪽 단벽 아래에서, 그 주변에서는 말을 치장하는 행엽도 9점이나 나왔습니다.
[조영현 대동문화재연구원장(45호분 발굴 참여)]
“어떤 상태로 부장했는지 이런 것까지 알아낼 수 있는데 도굴꾼에 의해 흐트러진 것들은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고 고고학적인 여러 가지 자료들은 모두 인멸된 그런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44호 고분의 순장자가 35명이나 되다 보니까, 금관 도굴 고분으로 추정되기도 했었는데, 출토 유물을 보면 45호 고분과 달리 신라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전혀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TBC 권준범입니다.
2020-01-08 18:10
45호분 출토 증거 더 있어
리움미술관 소장 가야금관이 45호분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증거들은 더 있습니다.
금관은 6세기 전엽에 제작된 것으로 몇 안 되는 왕릉급 고분인 45호분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과 시기적으로 일치합니다.
리움 소장 말안장 장식도 똑같은 게 45호분 석실에서 나왔습니다.
이어서 남효주 기자입니다.
국보 138호 고령금관은 머리를 감싸는 대륜 위에 초화형 장식을 붙였는데 이른 시기에 제작된 금동관과는 많이 다릅니다.
앞선 5세기 대 금동관은 머리 앞부분만 장식한 반면 이 금관은 앞과 좌우 그리고 뒷부분까지 4개의 초화형 입식을 갖춰 신라 금관의 후기 양식을 닮았지만 대가야 전성기 때 고유의 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윤온식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5세기 말 6세쯤 이르면 대가야의 금관이 초화형으로 정형화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 정형화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죠. 굉장히 잘 만들어졌고요."
함께 나온 금귀걸이는 이 금관이 6세기 전엽 작품임을 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금관의 곡옥은 떨어지고 없는 것을 미술관 측이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45호분 1호 석실에서 곡옥들이 출토되었고 금관과 비슷한 양식의 금동관식까지 나온 것은 금관의 45호분 출토 가능성을 더 높여줍니다.
리움미술관이 금관과 같이 나온 것이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고령 대가야 유물로 소개한 보물 570호 금동말안장 장식도 45호분에서 출토 말안장 장식과 똑같습니다.
같은 말안장의 앞뒤를 각각 장식했던 것처럼 보여집니다.
[박천수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금관의 그 연대가 6세기 전엽이라는 것입니다. 이 지산동 45호분이 신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마구가 있고요. 그 연대가 6세기 전엽이기 때문에 금관의 연대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국보 제138호 고령금관이 고령 지산동 45호 고분에서 나왔음이 분명해 보이고, 그 외 리움 소장 가야 유물 또한 45호분 출토 유물일 가능성이 높아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추가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tbc 남효주입니다.
2020-01-08 11:58
‘고령금관’ 법적으로 국가귀속 가능하다
리움미술관의 국보 138호 고령금관은 도굴품이 분명하지만 문화재청은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선의로 취득했다며 소유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리움 측에 유리한 잘못된 법해석으로, 민법 상 국가 귀속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병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움미술관의 국보 138호 고령금관은 1963년 ‘현풍도굴사건’으로 대구경찰에 붙잡힌 도굴범들이 금관을 고령지방에서 훔쳤다고 진술했지만 이를 구입한 고 이병철 전 삼성회장은 선의취득으로 판결 받아 소유를 인정받았습니다.
2006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문화재청은 법률전문가 의견을 첨부해 국가귀속이 어렵다고 답하면서 선의에 의한 취득이라는 감사자료를 내 리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민법 제249조는 선의취득을 평온, 공연하게 동산을 양수한 경우를 선의로 정의해 밀거래 형식으로 거래된 금관은 도품 즉 훔친 물건 도굴품인 것입니다.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의취득의 경우에는 선의 무과실이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선의가 아니고 또 과실도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선의취득이 될 수 없습니다.”
설령 경매나 공개시장 또는 상인을 통한 선의의 매수라도 도품 즉 도굴된 금관은 이를 구입한 사람에게 지급한 대가를 변상하고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민법 제251조는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법 제255조에서 문화재를 국가소유로 분명히 규정하고 있어 도굴품인 금관의 소유자는 국가이고 국가귀속이 당연하다는 지적입니다.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왕관은 국가소유로 봐야 되고 국가는 반드시 이것을 환수활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소장자 측은 선의취득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제대로 법 적용을 했다면 100% 국가귀속이 가능했을 금관을 문화재청이 리움 측에 유리한 법 해석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금관이 세상에 드러난 지 50년 가까이 되도록 삼성가의 재산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TBC 정병훈입니다.
2020-01-10 14:02
* 앞으로 문화재청의 국보 해설문은 아래와 같이 고쳐야 할 것이다.
국보 제138호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傳 高靈 金冠 및 裝身具 一括)
분 류 유물/ 생활공예/ 금속공예/ 장신구
수 량 일괄
지정일 1971.12.21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시 대 삼국시대
소유자 삼성문화재단
관리자 삼***
경상북도 고령 지산동고분군 중 45호분 1호 석실에서 도굴되어 지금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는 가야의 금관과 부속 금제품이다.
금관은 높이 11.5㎝, 밑지름 20.7㎝로 머리에 두르는 넓은 띠 위에 4개의 풀꽃 모양 장식이 꽂혀 있는 모습이다. 넓은 띠에는 아래위에 점을 찍었으며, 원형 금판을 달아 장식하였다. 드문드문 굽은 옥[曲玉]이 달려 있으나 출토된 뒤에 단 것이라고 한다. 풀꽃 모양 장식은 대칭되는 네 곳에 금실로 고정시켰는데 드문드문 원형 금판을 달았다.
부속 금제품은 원형, 은행형, 꽃형, 곡옥 외에도 금환(金環), 드리개(金製垂飾)들이 섞여 있어서, 부속품들이 금관의 어느 부분에 어떤 모양으로 붙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금관의 풀꽃 모양 장식은 나주 독무덤(甕棺墓) 출토의 백제 금동관과 같은 형식이지만, 경주에서 출토되는 금관과는 다른 형식이라 흥미롭다. 또한 이 금관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금관 장식인데, 끝을 펜촉처럼 다듬은 4개의 풀꽃 모양 장식을 세우고, 그 양 옆에 뿔처럼 튀어나오게 만든 돌기를 달아 굽은 옥을 걸 수 있게 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