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운(渦雲) 소용돌이 구름
18세기 중기에 활동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의 매우 특이한 산수도입니다. 종이 바탕에 26×50cm의 가로가 긴 소품의 그림으로써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화글의 원문과 내용]
嶽日夏雨中 큰 산이 날이 여름이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初臨子 그대를 처음 찾았는데,
畏紙霈墨敗 종이가 비에 젖어 먹물을 해칠까 두려워하였다.
意業行詩 떠오르는 게 있어 시를 짓고
醉後作字如毛雲 술 취한 후 글을 쓰니 털구름과 같고
正䫫此幅也一笑 정말로 해골 같은 그림이라 한번 웃는다.
元靈書 원령(이인상)이 쓰다.
* 意業(의업) : 삼업(三業)의 하나. 무엇을 하려는 생각․뜻․의지․마음 작용.
* 䫫(루) : 1. 새기다 2. 박아 꾸미다 3. (길을 뚫어) 疏通시키다 4. 강철 5. 쇠붙이 장식 6. 촉루(鐲鏤 : 중국에서 유명하였던 칼의 하나) 7. 해골
[감상]
그림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하며 소용돌이치는 하늘의 먹구름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림이 표현된 구도와 화법이 수도(水圖)나 운룡도(雲龍圖)에서 보는 느낌과 일부 비슷한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조선시대 어느 누구의 그림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능호관만의 독특한 구도와 필치로 화면을 구성하였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 적혀 있는 글씨의 내용으로 보아 어느 여름날 능호관이 벗을 찾아 큰 산을 넘어 가다가 비를 만났는데 들고 가던 종이가 비에 젖을까 마음을 졸였다고 말하고 있으며, 벗을 만나 술을 나누다 취한 상태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적으니 그림은 해골과 같고 글씨는 털구름과 같게 되어 웃음이 난다고 적고 있습니다.
가로가 긴 이 그림은 화면의 좌우에 큰 소용돌이가 두 개 일고 있는데, 그 중 오른쪽 큰 소용돌이 속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세 개의 검은 먹구름이 사선으로 수평을 이루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죄수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형상으로 보여집니다.
그림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먹구름은 크게 하나의 원으로 형상화되고 있으니 원(圓)은 무극(無極)의 상징으로 성리학에서 말하는 태허(太虛)와 같은 개념으로 우주 만물의 근원적인 모습으로써 양의(兩儀)가 발생하기 전의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능호관은 슬하에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아이들이 모두 서른이 되기 전에 사망하였고 나중에는 부인마저 세상을 먼저 떠나는 큰 슬픔을 안고 살았습니다.
다시 그림에서 소용돌이 속에 사람 모습의 먹구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 사람 중에 가운데 있는 사람은 여자이고 좌우에는 각각 남자로 보여 지는데, 이들의 상황이 마치 죄인이 참수를 당하기 직전의 모습으로 느껴지니, 이는 능호관보다 먼저 죽은 아들 둘 딸 하나의 세 자식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소용돌이의 큰 원은 우주만물의 근원적인 모습으로써 어머니 자궁과 같은 느낌으로 불교적인 윤회의 의미도 느껴지니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가라는 뜻이 있고, 그림의 왼쪽 상단을 보면 서서 배웅하는 두 사람과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린 한 사람의 모습이 형상으로 드러나 있으니 이는 죽은 자와 이를 데려가려는 저승사자의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세 자식이 먼저 죽고 힘든 생활을 하던 어느 여름 날 비를 맞고 술 한잔 하여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하늘의 먹구름을 빌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에 대한 작자의 비통한 심정과 좋은 곳에 가서 태어나라는 기원의 마음이 들어있는 애닯은 마음을 표현한 역작입니다.
모름지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가는 극한적인 슬픔 속에서 최고의 작품이 탄생하기 마련인데, 저는 능호관의 이 작품이 비록 크기는 소품이지만 어느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고귀한 정신과 비통한 마음이 들어있는 그의 최고의 명작이라고 단언합니다.
내 마음속의 미술(17)
낯설수록 절실한
손철주 미술 칼럼니스트
나는 뻔한 그림이 싫다. 뻔한 그림이란, 자연을 과장하거나 삶을 가장한 그림이다. 과장은 낭만적 허위에 그치고, 가장은 안가한 회피에 머문다. 나는 차라리 낯선 그림이 좋다. 그저 그런 자연이나 삶을, 그저 그렇지 않게 그려서 낯설되, 그 낯설음은 통절한 각성을 일깨운다. 이를테면 이런 그림이 낯설다. 제목이 <와운(渦雲)>이다. 거세게 휘감기는 구름덩어리로 화면을 몽땅 채웠다. 먹구름은 부글부글 끓는다. 우레가 치고 벼락이 떨어져 장대비라도 퍼부을 기세다. 하필 흉흉하기 그지없는 먹장구름을 그린 까닭이 무엇인가.
그림에 사연이 적혀있다.
‘여름 장맛비를 맞으며 그대를 찾아갈 때, 종이와 먹물이 비에 젖어 못쓰게 될까 걱정했지요. 시 한 수를 쓰고 싶었지만 술 취한 뒤에 글씨를 쓰니 구름이 덩어리진 듯합니다. 그림이 이러 하니 웃음거리외다.’
화가는 짐짓 딴소리한다. 시를 쓰려고 맘먹었는데 술김에 붓을 들자 구름이 되어버렸다? 제 아무리 술 핑계를 댄들 저 음습한 구름이 그냥 그려질 리 만무하다. 가슴에 울혈이 지지 않고서야 나올 턱이 없다. 그린 이는 18세기 문인화가 李麟祥(1710~1760)이다. 이인상은 취한 자의 실언처럼 둘러대고 있지만 내력이 간단치 않다.
명문거족 출신인 이인상은 집안의 명성과 달리 불우했다. 서출이라 종육품 미관말직을 지낸 서러움이 뼛골에 사무쳤다. 경륜 높고 문자속 깊지만 그 뜻을 펼 수 없는 세상은 한탄과 좌절로 점철된다. 자신도 병에 시달렸지만 아들 셋, 딸 하나가 모두 병사하고 아내마저 먼저 세상을 버렸다. 아내에게 바친 그의 제문(祭文)이 비장하다. “나는 기구한 팔자로 태어나 곤궁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소. 앞으로는 말수를 줄이고, 세속의 교제를 끊고, 번다한 세상사를 정리하겠소.”
우리네 인생사를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장면
그가 남긴 시 한 구절은 이렇다. ‘세상이 혼탁해서 나를 알아주지 못함이여, 잃고 얻는 것이 아침저녁에 달렸구나.’ 내 보기에 이 그림은 한스런 삶에 대한 씻김굿이다. 그림은 요동친다. 응어리진 가슴앓이가 시커먼 구름으로 뭉쳤다가 깊은 시름이 장맛비처럼 쏟아져 내릴 전조다. 잃고 얻는 것이 아침저녁에 달렸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이 구름이 피었다 지는 한순간과 무엇이 다른가. 저 구름에서 쏟아지는 비로 세상의 혼탁한 먼지를 씻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이인상이 먹장 같은 근심을 숨기며 살았고, 그 근심이 구름 속의 비가 되어 세상을 적시는 광경은 우리네 인생의 파란과 해원이 펼치는 드라마틱한 한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운>은 구름 하나로 곡절 많은 인생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하되 남의 인생에서 빌려온 소재가 아니라 자기의 일생에서 끄집어냈기에 진정이 보이는 그림이다.
좋은 그림은 너도 나도 좋아하지만, 너도 나도 좋아한다고 좋은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데 모두가 좋아하기를 바란다면 나는 그 그림 그리기를 한심하게 여긴다. 본 듯해서 익숙한 그림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편안한 그림은 안락의자와 같다. 앉으면 눌러앉게 된다. 낯선 그림은 불편하다. 그래서 바늘방석이다. 앉으면 벌떡 일어나게 하는, 경각(警覺)효과가 있다. 설혹 그것이 그린 자의 독단과 편견에 가득 차 있더라도 삶에서 깨우친 불편한 진실이 녹아있다면, 보는 자의 공감을 얻는 데 모자람이 없다. 나에게 미술은 낯설수록 절실하다
[2011.05]
이인상(李麟祥)像
작자 미상, 종이에 채색, 51.0×33.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東垣 기증)
능호관 이인상(1710~1760년)은 영조 11년(173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음죽현감이 되었다가 관찰사와 사이가 나빠져 사직, 음죽현(陰竹縣, 경기도 이천 지역) 서쪽의 설성(雪城)에 종강모루(鍾岡茅樓)를 짓고 은거하였다.
시, 서, 화, 삼색이라 칭해진 조선왕조 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화가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해오는 이인상상은 초본(草本) 형식으로서, 복건에 야복을 한 좌안7분면의 반신상이다.
이 초상화의 필자가 누구인가는 알 수 없으나, 화상에 상당히 교(巧)하고 또한 이인상과 친숙한 사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까닭은 18세기의 여타 초상화에 비해 이 초상화는 피부가 지닌 보편적 육리문(肉理文) 사출(寫出)보다는 대상인물 자체의 골격이나 정신묘출(神精描出)에 더 진력하였음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눈의 형용, 왼쪽 이(耳)와 중이의 덧그린 흔적, 양 미간(眉間)을 약간 찌푸린 모습 등은 오랜 숙시(熟視) 끝에 나온 진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인상상 외에도 상당한 수효의 대신들의 초상화 초본들이 전해오는데, 그 중에는 2, 3, 4등의 숫자가 적혀져 있어 득의치 못할 경우 누차 초본을 내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초상화에서의 초본은 한결같이 정본보다는 필선이 짙고 세찬데, 이들 초본에서 기량의 차이가 오히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인상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