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뷔에서 바라본 생트빅투아르 산
1882~85년경, 캔버스에 유채, 65.4×81.6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생트빅투아르 산(La Montagne Sainte Victoire)만큼 프로방스를 상징하는 단일 모티프는 없다. 생트빅투아르(거룩한 승리)라는 명칭은 1세기의 프로방스의 영웅 마리우스(Marius)가 이민족의 침입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르크 골짜기의 소나무 숲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이 황량한 바위산은 세잔의 작품에 40번 넘게 등장한다.
벨뷔(Bellevue)에 있는 누이동생 로즈의 집에서 그린 유명한 풍경화에서는, 저 멀리 떨어진 산과 그 자락의 구릉들과 화가가 서 있는 비탈 사이에 골짜기가 끼여 있다. 바깥 세상에 대한 명백한 감각도 없고, 시점을 정확하게 나타내 주는 것도 없다. 이 파노라마 속에서 골짜기는 울긋불긋한 경작지와 여기저기 모여 있는 집들, 구불구불 뻗어 있는 길과 먼 곳을 달리는 고가철교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격리된 외딴 곳처럼 보인다. 움직임도 없고 사람도 없다. 집들은 수 세기 전에 지어진 것들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순화되어 있고, 철교는 아직도 인근 도시 외곽에 서 있는 고대 로마의 수도교를 흉내내고 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멈춰 서 있는 정적인 인상을 주지만, 물감의 물리적 성질과 강렬한 색채 -사용된 색은 초록색과 황토색, 바위와 하늘의 회청색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가 그것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파노라마는 높은 곳에서 자연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그 느낌은 우리가 자연의 웅장함에 대해 느끼는 경외감과 팽팽한 긴장관계에 놓인다.
이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화면 중앙에 외따로 서 있는 소나무다. 조금 뒤에 그려진 다른 그림들은 골짜기와 가까운 비탈 아래쪽에서 바라본 풍경인데, 거기서는 나무와 가지가 시야를 방해하지 않고 단순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하늘을 묘사하는 붓질이 전경의 나뭇가지와 겹쳐져 공간감각을 혼란시키고 그림 전체를 평면화하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나무줄기의 중간쯤에 돌출한 가지가 특히 돋보인다. 게다가 나뭇잎 오른쪽의 복잡한 윤곽을 따라 검은 선들이 짧게 스케치되어 있고 캔버스가 노출되어 있어서, 마무리가 덜 된 것을 암시한다. 다른 작품들 가운데 오늘날 런던의 코틀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세잔은 이 그림을 친구인 시인 조아킴 가스케(J. Gasquet)한테 줄 때 자기 이름을 서명했다. 따라서 세잔도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관례적인 마무리가 덜된 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캔버스는 베이지색 바탕칠 구실을 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전체 구도를 통합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중앙의 소나무는 다른 기하학적 특징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수직선으로 근경과 원경 간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또한 이 소나무는 철교의 강력한 수평선과 결합하여, 모든 것을 십(十)자라는 단순한 도형에 복속시킨다. 게다가 우듬지(나무줄기에서 가장 꼭대기 부분)의 모양과 위치는 양쪽 하단에서 연장된 삼각형의 꼭지점을 암시한다. 따라서 그림은 균형과 대칭이라는 전통적인 -심지어는 르네상스적인- 개념에 따라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을 실물 그대로 묘사한 진정한 자연주의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두 가지 해석에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세잔이 주로 기본형에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한 학자들은 그의 많은 작품에 나타난 비슷한 기하학을 추적했고, 다른 학자들은 그의 그림을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과 체계적으로 비교했다. 작지만 기본적인 시간의 산물인 프로방스 땅 자체에 눈을 돌리면 이 두 가지 분석은 서로 배타적이 아니라, 생전에도 세잔은 고전주의 풍경화의 창시자인 17세기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5~1665)의 후계자라고 불렸다. 하지만 1904년에 동료 화가인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 1868~1941)는 세잔이 “화가는 자연을 통해, 즉 감각을 통해 다시 고전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세잔의 전설에 이바지하지만, 그의 고전적인 야심은 젊은 시절의 편지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고, 많은 작품을 통해 입증된다. 특히 미역감기 연작은 가장 확실한 증거다. 1877년 인상파전에 출품한 ‘미역감다 쉬는 사람들’은 이 주제를 다룬 초기 작품들 가운데 가장 완벽하고 야심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세잔이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습작을 했고, 등장인물들을 그 후의 작품에서도 수없이 재활용한 것으로 미루어ㅡ 그의 미역감기라는 주제에 평생 몰두한 것이 분명하다.
(제인스 H. 루빈, <인상주의>, 한길아트, 1998. 389~391)
“산은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구릉을 뻗치고 있고 바로 아래에 육교가 걸쳐 있다. 전면에서 그 안쪽으로 길이 나고 집들이 간간이 있어 중경의 넓이를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전경에 우거진 나무들이 있고 단 한 채의 집이 사각으로 놓여 있다. 중앙의 소나무는 화면을 좌우로 나누어 놓고 뻗쳐 있는 나뭇가지로 하여금 장식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오렌지색과 녹색의 대조 관계는 매우 강렬하며 산허리나 하늘에는 엷은 보라색이 있어 빛처럼 밝은 분위기를 더한다”
세잔, '미역감다 쉬는 사람들‘, 1876~77, 캔버스에 유채, 82×101.2cm, 펜실베니아 메리온, 반스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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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뷔에서 바라본 생트 빅투아르 산’은 자연과 평행하는 일종의 조화를 생각하고 전적으로 자연의 질서를 추구하던 시기인 古典的 構成期(1878~88)에 그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초기에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들과 마찬가지로 산이 주제로 전면에 부각되지 않고 원경으로 처리되어 있다.
構圖 分析圖
큰나무가 화면을 2등분하여 좌우로 가르며 그 사이 원경으로 생트 빅투아르 산이 보이고 있고, 또 고가철교를 중심으로 하여 지평선이 지나면서 상하로 화면을 가른다. 이렇게 화면을 좌우상하로 4등분한 사이로 위로는 ‘상트 빅투아르 산’ 정상을 꼭지점으로 하고 철교를 지나는 지평선을 밑변으로 한 삼각형이 형성되고, 또 아래는 1/4을 가르는 잡목의 연결선을 밑변으로 하고 철교와 큰나무가 만나는 점을 꼭지점으로 한 또 다른 삼각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삼각형이 위아래로 서로 마주하면서 아래 삼각형의 밑변에서부터 시선을 끌어당겨서 철교까지 이르게 하고 위 삼각형의 밑변에서 시작하여 ‘생트 빅투아르 산’ 정상으로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선은 큰나무를 중심으로 좌우로 흘러 먼 창공으로 뻗어 무한으로 보내고 있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이어지는 대각선의 불안정을 중앙의 큰나무가 받쳐주고 있으며 오른쪽의 짙은 중경의 산기슭이 보조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의 구도는 원근, 중경, 근경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전통적인 원근법을 사용하여 화면의 공간감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때(1885년경)까지만 해도 세잔의 작품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구성기(構成期)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편춘우 ‘세잔느의 생 빅투아르 산 연구’, 1990, 단국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5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