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에도 슬픔이)
그는 오늘 치과에 갔다. 이제 이빨도 갈수록 제 역할을 못한다. 먹는 것이 고역이다. 먹어야 살기 때문에 먹는다. 그런데 음식물을 씹으면 이빨이 아프다. 의사는 잇몸에 염증이 생겼다고 잇몸 치료를 해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대한 버티다가 정 안되면 임플란트 시술을 하자고 한다. 환자는 의사 말을 잘 따라야 한다. 잇몸 치료가 끝나자, 입안을 헹구라고 하여 헹구고 입안에 있는 오물을 뱉으니 핏빛 물이 쏟아져 나왔다.
핏빛 물을 보는 순간 그는 고등학교 때 이빨 사건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축구를 즐겨 하였다. 축구를 잘 하다가 공이 높이 뜨는 순간 서로 먼저 공을 잡기 위해 머리 두 개가 부딪혔다. 그 순간 그의 앞니에 피가 흘렀다. 그의 앞니가 부딪혀 부러지고 피가 난 것이다. 그 뒤로 이빨은 그에게 항상 아픔으로 남아 있다.
그는 집에 오면서 오늘 피를 보아 기분도 울적하고 그러니 영화나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영화를 볼까 하다가 요즘 대세를 타고 있는 ‘택시 운전사’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영화관에 가는 동안 광주의 추억이 떠올랐다. 무등산의 모습이 아련하게 보였다. 어렸을 때 무등산을 보는 순간, ‘큰 바위 얼굴’을 생각하며 날마다 무등산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본 무등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아늑했다. 고등학교 때는 무등산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다.
그러나 광주는 그에게 즐거운 추억만을 남겨 주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마련인데, 전쟁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에게 전쟁의 체험과 유사한 체험이 있었다.
518
항상 생각은 나지만 어떤 때는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부끄럽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기가 두렵다.
하지만 그는 오늘 전쟁의 체험과 유사한 체험 속으로 빠져들기로 마음먹었다.
영화를 빙자하여.
그 놈의 피를 보았기 때문일까?
영화관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몰려 있다. 시간 시간마다 ‘택시 운전사’는 상영되고 있었다. 아마도 수요가 많아서.
‘택시운전사’는 8월 12일 현재 관객 수 650만을 돌파하며 천만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그는 ‘택시운전사’를 부러워했다. 부러워하면 진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
옛말이 딱 맞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그는 한 달 전에 ‘개무살’이란 책을 출판했는데, 한 달 만에 겨우 50권 팔았다.
영화 제목대로
‘택시 운전사’가 등장한다. 택시 운전사는 평범하다. 그저 돈 벌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평범한 가장으로 등장한다.
택시 운전사는 돈을 벌기 위하여 외국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간다. 외국인 기자는 518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에 간다.
외국인 기자는 광주에 가서 이런저런 현장을 목격하고 취재한다.
광주 현장의 모습을 영화로 보는 순간
그는 타임머신을 타고 후진을 거듭하여 1980년 5월 18일로 날아가고 있었다.
영화의 장면들과 그의 과거 체험이 겹쳐지기도 했다.
영화의 장면들과 그의 과거 체험이 멀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의 지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영화가 진행되고 사건이 진행될수록
그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면서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군인이 민간인을 총으로 쏠 수 있느냐?
더구나 우리나라 군인이 우리나라 백성을.
영화니까 꾸민 장면일 것이야?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그는 과거의 역사가 떠올랐다.
제주 4 3 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아니야. 실제로 군인이 총을 쏘았을지도 몰라.
군인은 빨갱이를 죽인다는 심정으로 총을 쏘았을지도 몰라.
아니면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 정신에 따라 명령대로 총을 쏘았을지도 몰라.
영화는 점차 종착역을 향해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그리고 외국인 기자는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뉴스를 발표하면서 끝을 맺는다.
우리나라에서 축구 감독을 뽑을 때 외국인 출신을 선호한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사람으로 감독을 뽑으면, 지연이나 학연이나 혈연에 얽매여 축구선수 선발을 공정하게 못한다고 판단한다.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518에 대하여 왈가왈부한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영화 제작자는 이 점을 노리지 않았을까?
518에 대해서도 외국인 기자가 취재한 것을 보여주면
공정하게 취재했다고 믿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그는 마음이 아팠다.
그의 지인들은
죽거나
감옥에 갔거나
부상당하거나
경찰서에 가서 맞거나 하였는데.
그는 아직까지 오래도록 살아있구나.
그는 이빨 잇몸 치료하면서 본 핏빛 물에 대한 감정을 희석시키려고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 보면서 영화 속의 부상자의 피를 보면서 오히려 감정이 더 엉클어진 느낌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해가 죽어서 무덤(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늘에 슬픔이 가득하였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가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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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전사>를 보고
사진1 – 해의 죽음(석양)
조용필 - 단발머리 (택시운전사 OST)
https://www.youtube.com/watch?v=gnCuPBIL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