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복 시인의 대표시 모음> '골목길' 외
+ 골목길
나는 뻥 뚫린 큰길보다
작은 골목길이 좋다
도토리 키재기 식의
고만고만한 높이와 크기에
따스한 햇살도 찬바람도
골고루 나눠 가지는
야트막한 집들이
다정히 어깨를 맞대고
고향도 얼굴도 다른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
가난하지만 삶의
기쁨과 슬픔이 한데 엮여
한 폭의 가슴 찡한
풍경화가 만들어지는
골목길이 나는
예나 지금이나 참 좋다.
+ 꽃 가슴의 노래
가슴에
나의 작은 가슴에
하루 한 송이의
예쁜 꽃을 피우리라.
내 가슴은 작으니
작은 꽃 하나를 피우리라
제비꽃이나 토끼풀꽃
노랑 민들레 같은.
이 꽃 하나로
나의 가슴은 밝아지리라
내 하루의 삶에
사랑과 희망의 빛 묻어나리라.
+ 눈물은 왜 동그란가
눈물은
왜 동그란가
세모나 네모 모양이 아니고
왜 동그랗게 맺힐까.
바퀴처럼
도르르 굴러가라고
잠시만 머물다가
흘러가라고
눈물은
방울방울 달리는 거다.
+ 달빛의 차이
이 세상에
잘살고 못살고
빈부의 차이
확실히 존재하지만.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있듯이
달빛 또한
은근히 차이가 있다.
하늘 가까운 달동네에
내리는 달빛은
얼마나 더 밝고
엄마의 품같이 정겨운지!
+ 무너지지 않는다
지상을 거니는 내 생의 발걸음이
가끔은 휘청거릴지라도
하늘을 우러러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라도
쓸쓸한 삶의 뒤안길은 있는 법
살아가는 일이
이따금 실타래처럼 얽혀
몹시 힘들고 괴로운 날에도
살아갈 이유는 남아 있다.
맑은 날이나 흐린 날에도
높이 걸려 있는 하늘
사시사철 변함없이
참 의연한 모습의 산과 나무들
따습고 보드라운 햇살
포근한 달빛의 위로를 받으며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나도 무너지지 않는다.
+ 민들레 압정
내 가슴에 꽂는다
민들레 압정
빠지지 않게
단단히.
생명 있는 것은
어쨌든 살게 되어 있으니
늘 삶의 희망과
용기를 지켜가야 한다는.
앉은뱅이 꽃
노랑 민들레의 말씀을
깊이깊이 새기고
또다시 새기면서.
+ 바람과 햇살과 별빛
꽃잎에 맴돌다 가는 바람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바람에
꽃잎의 몸은 흔들렸으리.
꽃잎에 머물다 가는 햇살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햇살에
꽃잎의 마음은 따스했으리.
꽃잎에 입맞춤하는 별빛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별빛에
꽃잎의 영혼은 행복했으리.
오!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이여.
+ 색깔론
사랑은 빨간 장밋빛
뜨거운 정열로
희망은 연둣빛
새싹같이 파릇파릇
마음은 백목련을 닮아
티 없이 맑고 순수하게
얼굴엔 늘 노랑 민들레나
개나리의 명랑 웃음
목숨의 끝은 연분홍
노을처럼 곱고 순하게
+ 영혼의 안부
저 먼 하늘
어딘가
일곱 빛깔 무지개
살고 있으리.
나의 작은 가슴속
어디쯤
나의 영혼
살아 있으리.
오늘 문득
네가 생각났다
나의 영혼이여
안녕한가?
+ 이슬 이야기
이 몸 작지만
너무너무 작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요.
햇살 한 모금에도
내 몸은 따습고
한 줄기 바람에도
내 몸은 춤을 추어요.
어둠 속에 태어났다가
빛 속에 스러지는 나의 존재
슬픔과 기쁨
나는 모두 알아요.
+ 초록 나무에게
도대체 네 몸속엔
뭐가 살고 있기에
이렇게 좋은 빛깔
펑펑 토해낼 수 있는지.
무슨 생각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이리도 생명의 기운
충만할 수 있는지.
보고 또 보아도
아름다운 초록 나무야
너의 속 너의 영혼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다.
정연복(鄭然福).1957년 서울 출생. 영문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낭만적인 색채의 시를 즐겨 쓴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yeunbok5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