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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서말씀

[스크랩] 2026년 6월 20일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작성자정요세비|작성시간26.06.20|조회수26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요아스 임금이 자기에게 충성을 바친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를 죽이자,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임금을 살해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며,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17-25
17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 유다의 대신들이 와서 임금에게 경배하자,
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18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해가 끝나 갈 무렵,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올라왔다.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들어와
백성 가운데에서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
모든 전리품을 다마스쿠스 임금에게 보냈다.
24 아람 군대는 얼마 안 되는 수로 쳐들어왔지만,
유다 백성이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을 저버렸으므로,
주님께서는 그토록 많은 군사를 아람 군대의 손에 넘기셨다.
이렇게 그들은 요아스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하였다.
25 아람 군대는 요아스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고 물러갔다.
그러자 요아스가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을 죽인 일 때문에,
그의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그를 침상에서 살해하였다.
요아스는 이렇게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지만,
임금들의 무덤에는 묻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 걱정하지 마라”(마태 6,25). 예수님께서는 권위 있는 어조로 인간의 가장 깊은 불안을 들추어내십니다. “목숨”은 먹고 살아야 하는 구체적 생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낙관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불안으로 삶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삶에 대한 염려는 삶을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축소시켜 버립니다.
새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삶의 자세를 보여 줍니다. 새는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않지만, 하늘의 아버지께서 먹이시지요. 여기서 초점은 노동을 부정하며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먹이고 입히는 주체가 누구인지 묻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6,27)라고 물으십니다. 불안과 걱정은 우리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 삶을 소진할 뿐입니다. 이방인들과는 다르게 제자들은 참된 것을 찾아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6,33)을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의로움은 마태오 복음서의 황금률이 정확히 알려 줍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7,12).
신앙은 주어지는 오늘을 건네받는 태도입니다. 오늘, 우리 삶은 나의 노력이나 걱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입니다. 누군가가 먹고 입는 문제로 힘들어한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의 의로움을 우리 서로가 챙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어지는 오늘을 걱정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아야겠습니다. 적어도 먹고 입는 것 정도는 걱정하지 않게 서로 챙기면 좋겠습니다.(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주님 나라는 그분의 힘, 그분의 자비와 사랑으로 건설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걱정의 바탕에 어떤 감정이 존재하는지 묵상해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먹을 양식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마실 음료가 없으면 어쩌나? 내 편안한 안식처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내가 더 나이 들어가면서 병고가 찾아오면 어쩌지? 내가 지금 버티고 있는 무대에서 밀려나면 어쩌나?

결국 우리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 그 가장 근저에는 나란 존재의 소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수시로 등장하는 하느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과 반드시 쌍으로 붙어 다니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항상 함께 하겠다!

정녕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세상 재물이 사라지는 것,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지상의 평화와 안녕이 붕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우리 영혼 구원과 관련된 두려움입니다.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인간의 근심과 걱정,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 그분의 자비와 사랑으로 건설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공포심이나 불안한 마음과 더불어 찾고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의 마음 안에는 이미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시기에, 그는 이미 하느님 나라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육체와 재물 자체를 단죄하거나 의식주의 필요성을 부인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분께서 제자들과 오늘 우리 각자를 향해 특별히 경고하시는 바는 목숨과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요 탐욕입니다.

매일의 안정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한 경제적 기반은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침입니다. 미래를 위한 재물의 축척도 어느 정도여야지, 너무 지나칠 때 인간은 재물의 노예가 되고, 언젠가 그 지나친 재물이 오히려 큰 재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진정으로 추구할 보물은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나라요, 그분의 다스림입니다. 내일에 대한 지나친 근심 걱정을 모두 말끔히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고 나머지는 한없이 자비하신 하느님의 두 손에 우리들 인생을 몽땅 맡겨드리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자체 해결해 버리고자 기를 쓰면, 그분께서 활동하실 여지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2023년 ‘Chat GPT’가 세상에 나왔을 때입니다. 컴퓨터가 사람과 대화하는 기능을 보여주었습니다. 복잡한 프로그램을 몰라도 친구와 대화하듯이 질문하면 컴퓨터가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이제 ‘검색의 시대’가 저물고 ‘대화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인공지능과 함께 어느덧 3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도움을 받은 것은 ‘번역’이었습니다. 한국어 강론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든 작업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부탁하면 실시간으로 제가 하는 번역보다 더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번역을 보여주었습니다. 교구의 공문이나 영문으로 오는 메일도 실시간으로 번역해 주었습니다. 저는 번역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었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 계획과 일정 정리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여행 계획을 질문하면 교통, 숙박, 장소를 정리해 주었습니다. 사목에도 도움을 받습니다. 성경 말씀을 찾아 주기도 하고, 제가 쓴 글을 요약해 주기도 합니다. 지도 대신 내비게이션, 운전 대신 자율 주행이 있듯이 인공지능은 이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2029년이 되면 ‘에이전트 인공지능’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인공지능이 질문에 응답하는 수준이라면, 앞으로의 인공지능은 ‘비서’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기업의 임원에게는 부속실이 있습니다. 부속실 직원은 임원의 일정을 정리하고 필요한 자료를 준비합니다. 앞으로의 인공지능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병원 예약도 대신해 주고, 건강 관리도 도와주고, 은행 업무도 처리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분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기 마련입니다.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개인정보와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기술은 늘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칼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해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상속에 대해서 미국은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상대적으로 덜 하는 것 같습니다. 잘 키워주고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들도 부모의 재산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독립하면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식이 재산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만난 이민 2세대들도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재산은 부모님의 것이니 부모님이 알아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재산을 자녀에게 남길 수도 있고, 기부할 수도 있고, 여행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선택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세상의 재물을 많이 물려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더 귀한 것을 물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부모님께서는 말보다 삶으로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부모님은 건강하게 사시다가 하느님의 부르심 속에 선종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봅니다. 자녀들에게 부모의 신앙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신앙 교육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릇과 같습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되고, 보석을 담으면 보석함이 됩니다. 돈과 성공만 담으면 불안과 경쟁으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담으면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먼저 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인공지능은 편리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자동차와 좋은 집도 삶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돈도 필요합니다. 건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우리 삶 안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영혼입니다. 편리함이 커질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많은 정보를 얻을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야 할 것은 단지 재산이 아니라 신앙의 유산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붙들어야 할 것도 단지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이라는 그릇 안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가장 먼저 담을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늘 사랑이 먼저이지요>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사는 것이
먹는 것보다
먼저이지요


먹기 위해 사는 듯한
사람이 많더라도


사람이라면
먹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먹어야지요



사랑하는 것이
사는 것보다
먼저이지요


살기 위해 사랑하는 듯한
사람이 많더라도


사람이라면
살기 위해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기 위해 살아야지요



사는 것보다 먼저인
사랑하는 것이
사는 것보다 다음인
먹는 것보다
먼저이지요



사랑이
먼저이지요

 

 

 

오늘의 성인

 

성 실베리오 (Silverius)

활동년도 : +537/538년

신분 : 교황,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실베리우스, 씰베리오, 씰베리우스

교황 성 호르미스다(Hormisdas, 8월 6일)의 아들이었던 성 실베리우스(또는 실베리오)는 이탈리아 중부 프로시노네(Frosinone)에서 태어나 로마(Roma)의 부제가 되었으며, 교황 성 아가피투스 1세(Agapitus I, 4월 22일)의 서거 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정치문제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고, 소아시아 리키아(Lycia)의 파타라로 납치된 사실도 있었다. 그 후 그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도움으로 석방되었으나, 반대파에 의하여 재차 납치되어 나폴리(Napoli)의 팔마롤라 섬에 갇혀 있던 중 기아로 숨졌다. 일반적으로 유배지에서 사망한 교황들의 유해가 로마로 이송된 것과는 달리 성 실베리우스 교황의 유해는 유배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교황의 무덤은 이후 순례 장소가 되어 많은 기적들과 치유가 이루어졌으며, 11세기부터는 칼케돈 공의회의 정통 신앙을 옹호한 순교자로 공경을 받았다.

 

성녀 플로렌시나 (Florentina)

활동년도 : +636년

신분 : 수녀원장

지역

같은 이름 : 플로렌띠나, 플로렌씨나, 플로렌티나

카르타고(Carthago)에 정착하여 살다가 549년경 서고트족(Visigoths)의 침입으로 도시가 파괴되자 세비야(Sevilla)로 이주한 에스파냐계 로마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플로렌티나(또는 플로렌시나)는 후에 성인이 된 에스파냐의 성 이시도루스(Isidorus, 4월 4일), 성 레안데르(Leander, 2월 27일) 그리고 성 풀겐티우스(Fulgentius, 1월 16일)와 형제지간이다. 그녀는 카르타고에서 출생해서 세비야에 정착했으며, 수녀원을 설립하고 원장이 되었다.

복녀 미첼리나 (Michelina)

신분 : 과부

활동지역 : 페자로(Pesaro)

활동연도 : +1356년

같은이름 : 미켈리나

부유하고 이름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미켈리나 메뗄리는 12세 때에 리미니의 말라떼스따 가문의 아들과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였지만 그 남편과 사별하여 과부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어린 아들 하나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마음이 안정될 수는 없었다.

그때 미켈리나는 프란치스꼬 재속 3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로 보내고, 애긍으로 생활하였으며, 밤이면 은혜로운 사람들이 베푸는 곳에서 쉬곤하였다.

그러던 중에 아들을 잃게 됨으로써, 그녀는 이 세상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다.

그녀는 철저한 고행과 기도생활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나병환자들을 돕거나 온갖 자선활동으로 지친 몸으로 주님과 하나되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임종이 가까와 올 즈음에 그녀는 로마 순례를 했는데, 이즈음에 그녀는 56세의 일기로 운명했는데, 전통적으로 그녀의 축일이 오면 램프불을 밝힌다고 한다.

그녀가 문전걸식할 때에는 아무도 불을 밝혀주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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