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마음 강영은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왜 믿으십니까?” 라고 물으면 아주 다양하고 서로 다른 대답들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대답은 “구원”을 얻으려고, 혹은 “영생을 얻으려고” 이다. 만일 예수를 믿어도 결국에 아무 보상이나 영생이 보장되지 안는다면 정말 지금처럼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문턱을 드나들 수 있을까? 어떤 복음 성가 중에 이런 아름다운 가사가 있어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만일 그곳에 영광의 언덕 위에 날 위한 아름다운 저택이 없다 해도 만일 그곳에 정금거리가 없다 해도 보석으로 꾸민 성이나 문이 없어도 수정 같은 유리바다가 없다 해도 그래도 나는 그곳에 가기 원하네 나의 친구들이 거기 없다 해도 내가 쓸 황금 면류관이 없다 해도 다만 당신의 얼굴을 뵐 수만 있다면... 생명을 버리면서 까지 나를 사랑하신 당신의 얼굴만 뵐 수 있다면 나는 그래도 그곳에 가기 원하네 만일 보상을 바리지 않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면 그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고무적인 일일까 만은 혹 영생을 바라고 믿는다고 해서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살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가난하게 살아 가는 아름다운 교인들을 이기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단언 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로 가득찬 이 악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비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얼굴을 뵈러 가기 원하든, 영원히 사는 천국의 행복을 바래서 가기 원하든, 그 아름다운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한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 것은 바로 ‘거듭남’, 곧, ‘중생’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것이 바로 유대나라에서 책임 있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부와 명예와 많은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듭남에 대해 전혀 알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있던 니고데모에게 그가 예수님을 만나러 왔던 조용한 밤에 예수께서 첫번째로 하신 말씀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듭남을 하나의 환희와 감격스러운 감정의 경험으로만 치부하고 있다. 말씀과 진리의 깊은 깨달음이 없이 또 진정한 죄의 자각이나 회개나 개혁이 없이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에만 치우쳐 마치 뜨거운 신앙의 감정이 거듭남인양 생각할 위험성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물론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모두 회개하고 굴복한, 그래서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그 감격스럽고 눈물 쏟던 경험을 우리는 거듭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기 생애에 있었던 그 경험을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해 놓고 늘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나는 거듭났노라고. 그러나 항상 문제는 거듭난 그 다음이다. 어제 저녁 부르던 그 감동스러운 찬송 소리와 함께 울며 기도하던 동료 교인들이 사라지고 또 다시 지겨운 이 세상에 아직도 남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그 다음날 아침, 그리고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올라 오는 육신의 본성의 모습을 내 자신 속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 어제 나는 분명히 거듭났었는데!...” 그렇다면 참된 거듭남은 무엇이며 거듭남의 경험을 지속하여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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