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부-천국 가는 길 율법에 대한 잘못된 개념 의외로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율법을 폐하셨기 때문에, 십자가 이후부터는 인류가 율법의 요구에서 해방되었다는 가르침을 설교하고 있다.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율법을 바리새인들이 만들어 놓은 무거운 멍에처럼 나타내고, 율법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고 복음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윗은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라고 말했으며(시 119:45), 또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라고 말했다(시 40:8). 사도 야고보는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십계명을 “최고의 법” 또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하였다(약 2:8. 1:25). 또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지 반세기가 지난 후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면서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라고 선언했다(계 22:14, 한글 성경에는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라고 번역되었지만, 킹제임스나 다른 영어 성경에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는 원어의 의미가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으로써 하늘 아버지의 율법을 폐하셨다는 말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되거나 폐지될 수 있었다면, 사람을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을 폐지하기는 커녕 율법의 불변성을 가장 강력하게 증명해 준다. 하나님의 아들은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사 42:21, 킹제임스 영어 성경). 그리스도께서도 이 점을 분명히 하셨다. “내가 율법을 ....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7,18. 율법은 본질적으로 변하거나 폐해질 수 없는 영원불변한 것이다. 그것은 율법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므로 율법도 사랑이다. 율법의 두가지 큰 원칙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에게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였다(롬 13:10). 어머니가 어린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나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명(명령)을 주는 것이 어찌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저항과 불순종의 기질을 버리지 못한 거듭나지 못한 아이라면, 어머니의 그러한 사랑의 명령을 거절하고 싫어할 것이다. 그러한 명령을 너무나 지겹고 무거운 것으로 느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사랑은 율법을 폐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으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품성이 의와 진리인 것처럼, 율법의 본질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 주의 모든 계명은 의로우니이다”라고 말했다(시 119:42,172). 사도 바울 역시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라는 동일한 간증을 하였다(롬 7:12). 이와 같이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가득 담겨져 있는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에, 반드시 영구적이어야 하며 불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기적이고 반항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지킬 수 없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과 인간과의 불목의 관계를 화목시켜주는 것이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회개와 성화의 역사이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과 본성에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의의 원칙이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써, 창조주와 사람을 분리시켰다. 인류는 더 이상 하나님의 품성을 반사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음과 본성은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과 부딪치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7.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창조주와의 조화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지고 위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음으로써, 율법과 일치한 생애를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새로 태어나는 것인데, 예수께서는 이러한 변화가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율법과 그리스도인 신앙 죄가 들어옴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이 깨어졌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첫째 계단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죄는 불법이라” 요일 3:4.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죄인이 죄를 깨달으면, 먼저 자신의 품성을 하나님의 위대하신 의의 표준에 비추어 살펴보아야 한다. 율법은 의로운 품성의 완전함을 보여주는 거울로서 죄인에게 그의 결함을 분별하게 해준다. 어떤 사람들은 율법을 바리새인처럼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만 적용하지만, 율법(십계명)은 마음의 중심을 살피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율법이 행위와 마음의 중심을 함께 살핀다는 사실을 설명하셨다(마 5:28). 율법이 사람에게 죄를 나타내 보여 주기는 하지만, 죄를 치료해 주지는 못한다. 율법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생명이 약속되고, 율법을 범하는 자에게는 죽음이 선고되지만, 율법 자체에는 아무런 생명력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죄로 인한 사형 선고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킬 수 있으며, 죄인의 성품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성품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죄 때문에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바쳐진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하늘로부터 회개하는 심령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은 율법의 정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늘의 품성을 받아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 단계가 되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양자의 영을 받아서 창조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며, 거듭남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경험을 통하여 사람은 새로운 소원과 새로운 동기를 소유하게 되고, 하나님의 진리와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거나 범하는 삶을 살아도 무방한가? 이 질문에 대해서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고 대답한다(롬 3:31, 6:2).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던 죄인이 거듭남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변화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거듭남의 경험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 위대한 변화가 죄인의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면,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거룩함으로, 범죄와 반역에서 순종과 충성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제,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명은 더 이상 무거운 멍에나 지겨운 속박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드디어 자원하는(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게 된다. 하나님과 멀어져 있던 옛 생애는 끝나고 믿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화목의 생애가 시작된다. 그리하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된다(롬 8:4). 그 때에 비로소 심령 깊숙한 곳으로부터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라는 다윗과 같은 간증을 할 수 있게 된다(시 119: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한다(시 19:7). 율법 자체에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을 가져다 주는 능력이 없지만, 그것은 사람을 의의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4. 율법이 없으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성성과 순결함, 그리고 자기 자신의 죄와 부정직에 대해서 올바른 관념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죄에 대하여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고 회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따라서, 율법을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죄책감을 갖지 못하게 되며, 자신의 속절없는 상태를 알지 못하고, 속죄의 은혜가 담겨져 있는 그리스도의 피를 절실한 마음으로 감사할 수도 없게 된다. 그리고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나 생애의 개혁도 없이, 구원에 대한 헛된 소망을 가지고 무력한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살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피상적인 회개가 습관화되고, 단 한번도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연합한 경험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교회 안에서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한 채 서성거리고 있다. 거룩함(성화)에 이르는 길 현대 기독교회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결과, 거룩함(성화)에 대한 여러가지 잘못된 가르침들이 교회 안에 일반화 되고 말았다. 잘못된 교리는 잘못된 경험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실생활에 있어서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온다. 안타깝게도, 성화에 대한 잘못된 교리가 교회 안에서 매우 인기있는 가르침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명백하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거룩함(성화)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중요한 교리 중의 하나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말하였으며(살전 4:3), 또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 ... 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다(살전 5:23). 성경은 거룩함(성화)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요 17:17). 바울도 교인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롬 15:16).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무슨 일을 하심으로써 그들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 요 16:13. 또한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라고 기록하였다(시 119:142,151). 사람은 성경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구현되어 있는 의의 대 원칙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율법의 의미와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거울과 같으므로, 그러한 율법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거듭나서 정결하게 되어야만 하며, 의로운 율법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아갈 때에 형성되는 품성 또한 거룩하여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면에 있어서 완전한 품성의 모본을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5:10, 8:29).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거룩한 율법의 원칙과 일치하는 품성과 생애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성화(거룩함)이다. 성화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을 마음 속에 받아들임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권면하였다(빌 2:12,13). 그리스도인 역시 죄의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악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대신에 항상 그것에 대항하여 “피흘리기까지 싸”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죽기까지 죄와 싸울 것을 촉구하였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 대항치 아니하고” 히 12:4.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딤전 6:12. 성령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도우심이 필요되는 곳은 바로 이 싸움이다. 연약한 사람이 믿음의 손을 뻗어서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붙잡을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는 승리의 간증을 할 수 있다(고전 15:57). 성경은 성화의 과업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죄인이 회개하여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시작된다. 이 때부터 그리스도인은 “완전한 데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말하였다(빌 3:13,14). 베드로도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성화의 과정을 계단으로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 1:5~10 Do you know this?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로새 2:14,16 위에서 언급한 골로새서 2장에 나오는 말씀이야말로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가장 많은 오해가 얽혀 있는 성경절일 것이다. 이 말씀과 함께 에베소서 2:15의 말씀을 근거로해서 “십자가에서 율법은 폐지되었다”라는 가르침이 온 기독교회에 편만해 있다. 정말, 십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그 용도가 폐지되었는가? 이 문제를 다루기 앞서, 우리는 성경에 십자가에 의해서 폐지된 율법과 폐지되지 않았고, 또한 폐지될 수도 없는 율법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십자가에서 폐지된 율법은 모세가 두루마리책에 기록한 의식 율법이며, 폐지되지 않은 율법은 하나님께서 친히 손으로 돌비에 기록하셨던 영원불변의 율법 즉, 십계명이다. 1. 의식 율법 (의문의 율법)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소에서 유지되어야 할 의식의 형식에 대한 율법을 주셨는데, 모세는 이 의식 율법을 책에 기록하였다. 이 희생제도에 관한 의식 율법을 신약 성경에서는 의문의 율법(ceremonial law)이라고 부르는데, 십자가에서 폐지된 율법은 바로 이 의식 율법을 뜻한다. 구약시대의 성소에서 이루어졌던 동물의 희생제도에 대해서 기록한 의문의 율법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서 제사 제도의 목적과 그 완전한 의미가 실현될 때까지만 존재하도록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 더 이상 양을 잡아 죽이는 희생제도가 불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의문의 율법을 그리스도께서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고 기록하였던 것이다(골 2:14). 골 2:14~17까지의 전체 내용을 읽어보면, 여기에 나오는 “의문에 쓴 증서”는 십계명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절기에 속해 있는) 안식일들(sabbaths)”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성소 제도의 의식 율법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율법에 두 종류의 율법이 있는 것처럼, 안식일에도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십계명의 4째 계명인 제칠일 안식일(영원불변)이고, 다른 하나는 의문의 율법에 속한 유월절이나 장막절 등의 절기 안식일들(십자가에서 폐하여짐)이다. 2. 십계명 :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두 돌판에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인데, 이것은 성소의 두번째 칸인 지성소 안의 법궤 안에 거룩하게 보관되었다. 이 십계명은 하나님의 도덕적 품성과 그분의 뜻이 기록되어 있는 도덕률(moral law) 이다. 이것은 총 10개의 계명으로 되어 있는데, 전반부에 있는 4계명에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사랑이 기록되어 있고, 후반부 6계명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덕과 사랑이 기록되어 있다. 십계명에 대해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고 기록하였고(시편 119:89),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고 선언하셨다(마태복음 5:17~18). 그러므로 십자가 이후에 기록된 로마서에서도 사도 바울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말했던 것이다(로마서 7:12). 구세주의 죽음은 의문의 율법을 종식시켰지만, 도덕적 율법인 십계명에 대한 인류의 의무는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인류에게 내려진 율법의 정죄를 속하기 위해서 하늘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만 했다는 사실은 율법(십계명)의 요구와 그 권위가 결코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해 준다. 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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