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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곳을 향하여

4부-성화에 대한 오해

작성자들꽃|작성시간26.06.14|조회수21 목록 댓글 0
4부-성화에 대한 오해




참된 성화의 길을 걷고 있는 자의 특성
성화의 과정을 걷고 있는 사람은 겸손한 정신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모세처럼, 무한하신 하나님의 순결함과 완전하심에 비하여 자기 자신이 너무나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
선지자 다니엘은 참된 성화의 모본이다. 다니엘의 긴 생애는 하나님을 위하여 바친 고상한 봉사로 가득차 있다. 그는 천사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으며,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였다. 그는 하늘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었다(단 10:11). 그러나 그는 자신의 순결과 성결함을 주장하는 대신에 자신을 죄많은 이스라엘의 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려 함이니 ...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단 9:18,15.
욥도 폭풍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부르짖었다(욥 42:6). 바울은 “세째 하늘로 이끌려 올라가” 하늘의 영광을 본 후에 “모든 성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말했다(고후 12:2, 엡 3:8).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스스로를 높이거나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으시대는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고뇌의 원인이 자신의 죄였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자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이 생애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악과 약점을 가장 분명히 깨닫고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구세주의 공로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믿음과 행함의 균형이 깨어진 현대 기독교회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는 십자가를 높여야 된다는 말들을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정신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혼돈된 상태에 처해 있다. 십자가를 말하면서 동시에 율법은 더 이상 필요없는 구속물이라는 거짓 가르침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성화에 대한 감정적이고 환상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믿기만 하면 완전한 성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십계명은 폐하여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믿는 순간부터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로부터 해방됩니다. 십계명을 지킬 필요도 없으며, 지킬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정말 그들의 주장은 성서적인가? 그들은 율법에 순종하기 위하여 분투하는 어떤 종류의 노력도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로 몰아 버린다. 그들이 즐겨 말하는 “믿기만 하면 축복은 네 것이다”라는 말은 진리인가? 그러한 주장은 매우 위험한 거짓이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품성, 뜻, 그리고 원칙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어떻게 “성결”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죄와 부정을 의도적으로 붙잡고 있는 죄인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여겨주실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결코 거짓말 할 수 없는 분이시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한 경고를 남겨 놓았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요일 3:7,8.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성경이 요구하는 자아 희생, 절제, 극기와 같은 거룩한 특성을 싫어하며, 그 대신에 언제나 안일함과 세속적인 쾌락과 같이 자신의 흥미를 만족시켜주는 통속적인 교리를 추구하도록 이끈다. 현대 기독교회는 믿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 때문에 깊은 혼수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도 야고보의 믿음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도록 하자. 야고보는 진실한 믿음 안에 존재하는 믿음과 행함의 균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약 2:14~24
성경은 사람을 이상한 미혹에 빠뜨리는 “행함 없는 믿음의 교리”에 대해서 반대한다.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방종과 악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에게 백만불의 유산을 물려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분명, 그 아들은 더욱 더 깊은 쾌락과 방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백만불은 그에게 축복이 되기는 커녕 저주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십자가를 믿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늘의 구원과 축복을 내릴 수 없으시다. 불순종과 부도덕한 삶을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은사를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참람된 억측이다. 참된 믿음은 성경의 약속과 법도 위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계명) 중 어느 한 가지를 고의적으로 범하고 있으면서 거룩해질 수 있다는 거짓 교리로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말라. 어떤 것이 죄인 줄 알면서도 범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는 사람의 양심을 괴롭게 하는 한 음성을 들려준다. 이 때,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기만함으로써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고, 그 결과 하나님께부터 분리되게 된다. “죄는 불법이며 ...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나니” 요일 3:6.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애를 살면서도 거룩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참 모습을 다음과 같이 드러내고 있다.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요일 2:4,5. 바로 이 말씀이 모든 사람의 신앙과 믿음의 진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다.
스스로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성결과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성결에 대한 참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악한 죄의 성질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성결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사랑과 공의가 어우러진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면 할수록,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하여 무지하게 되어 결국에 가서는 자신이 자신의 눈에 의롭게 보이게 된다.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과 생애가 온통 죄로 더럽혀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구원받았다는 완전한 착각 속에 빠지게 된다.

거룩한 산 제물의 의미
구약시대에 성소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물은 반드시 “흠없는” 것으로 드려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권면을 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이 말씀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다리를 다친 사람은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영적 예배가 이루어지는 곳인 인간의 뇌(마음)는 육체의 건강과 매우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먹고 마시는 일에 조차 주의해야 한다. 먹거나 마시거나 모든 일에 부절제한 사람은 결국 몸의 건강을 해치게 되어서 의지와 정신력의 저하를 가져오고, 지극히 감정적인 성격을 갖게 되어, 하나님께 산 제물이 되어 영적 예배를 올바로 드리지 못하게 된다. 성서적인 성화는 영과 혼과 몸 전체를 다 포함한다.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베드로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경고하였다(벧전 2:11). 방종하는 욕구를 만족시킬 때마다 신체의 기능은 약화되고, 영적-지적 감각력이 죽어가며, 성경 말씀과 성령의 감화에 대하여 예민하고 정확한 반응을 나타낼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인체의 생리적-영적 관계 때문에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권면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겼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후 7:1. 또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열거하면서 절제를 부가하였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갈 5:22~24.
성경 가운데 이러한 분명한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방탕한 부절제 속에서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참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탐식과 음주와 금지된 쾌락을 통하여 그들의 인간성을 추락시키고 있다. 죄에 익숙해 있는 교회는 이러한 부절제를 책망하는 대신에 사랑이라는 값싼 감정으로 덮어주고 있다. 교회는 참된 헌신과 희생만으로는 필요한 자금을 보충할 수 없다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성경이 금하고 있는 것들을 눈감아 주고 있다. 만일 예수께서 오셔서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서 종교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고 있는 연회와 부정한 거래들을 보신다면, 예수께서 일찌기 유대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을 내쫓으신 것과 같이 그들을 내쫓으실 것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몸이 하나님의 성령의 전으로 바쳐진 그리스도인은 해로운 습관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몸 전체는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산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의 몸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유물과 재능도 주님의 것이다. 우리가 가진 돈을 우리 마음대로 낭비하며 살아가고, 우리의 재능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쓰는 생애를 살아갈 때, 어찌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해마다 막대한 돈을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쏟아붓고 있는 동안, 수많은 영혼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죽어가고 있다. 누가 그들의 영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가?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와 헌금이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도둑질 당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는 인색한 사람이 자신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정욕의 제단 위에는 아낌없이 많은 것을 불태운다.
참된 믿음과 참된 성화에 대한 가르침이 왜곡되어 있는 현대 기독교회 위에 부절제와 부도덕의 재앙이 내리고 있다. 교회 안에서 판을 치는 온갖 죄악들 때문에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나설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의 의미
그리스도인이 죄의식과 영적 흑암 아래 지내는 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머리는 숙였으되 심중에는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것은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난 상태가 아니다. 가족들에게 불친절하고, 사회에서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는 정죄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바쳤다고 말하지만, 마음의 중심에는 세속과 정욕이 가득차 있는 상태는 참된 성화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을 흘리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생애를 사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께로 나아가 마음의 정결함을 받음으로서, 율법 앞에 부끄러움과 가책없이 설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는 간증을 할 수 있다(롬 8:1).



7 Guide line

1. 모든 것을 희생하고 버렸을지라도,
자기 자신을 버리지는 않은 사람은 성화의 길을 걸을 수 없다.
2. 자아를 버린 사람은
자신에 대한 평판이나 인기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3. 스스로 공로를 쌓으려고 애쓰는 대신에,
언제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린다.
4. 성화된 그리스도인은
율법 요구에 끌려다니는 지겨운 종의 생활에서 벗어나,
율법을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
5. 성화된 그리스도인은
“그대는 지금까지 죄를 범해왔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용서되었으니, 그대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여
머물러 있으면서, 용서가 주는 위로를 즐겨라”라고
속삭이는 사단의 음성을 거절한다.
6.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매일의 생활 속에서 완전한 순종의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이에는 끊이지 않는
투쟁이 존재한다.
7.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께 완전하고 순수한 순종을 드리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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