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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곳을 향하여

5부-약속, 특권 그리고 의무

작성자들꽃|작성시간26.06.15|조회수23 목록 댓글 0

 

5부-약속, 특권 그리고 의무




지금 세상은 방종과 쾌락에 빠져 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온 세상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로부터 다음과 같은 위대한 부르심을 받고 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고후 6:17.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자신의 양심이 지적하는 세속적 만족과, 알고 있는 죄악적 습관을 완전히 내버리지 않는 사람이 매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고,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며,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지라도 그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성화와 전혀 상관이 없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부르심에 응하는 사람들에게만,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는 약속을 허락하셨다(고후 6:18). 그러므로 성화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의무의 길이다.

성화는 의무일 뿐 아니라, 특권이다.
 하나님께 속해 있는 사람들이 풍성한 경험을 가지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의무이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높으신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른다는 보장이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져 있다(잠 4:18).

믿음과 순종의 길은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그리스도와 더욱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이러한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락되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 1:9~11.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이 약속하는 이러한 축복과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참된 성화의 의미와 중요성의 왜곡으로 인하여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그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라고 역설하였다(엡 3:16~19). 또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도함으로써, 성도들의 특권을 간구하는 바울의 기도는 절정에 이르렀다(엡 3:19).

믿음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러한 특권을 붙잡도록 만든다. 참된 성화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은사를 바라볼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기꺼이 필요한 은사를 허락하신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 참된 믿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존중함으로써, 참된 성화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드디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약속은 성취된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4:14, 16:24.

교회가 타락하게 된 이유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성경 전체가 말하는 요점이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란 어떤 믿음을 말하는가? 성경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또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특성들은 믿음을 가졌으며, 회개를 하였고, 성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되는 열매이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회는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나타나 있는 의의 원칙들을 저버림으로써, 당연히 풍성하게 맺혀져야 할 열매들이 맺히고 있지 못한 실정에 처해 있다. 교회가 율법을 버린 것, 바로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서 성령의 심오하고 변화시키는 역사를 거의 볼 수 없게 된 이유이다.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된다. 올바른 복음을 바라보아야만, 성경이 약속하는 축복과 변화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회가 율법을 버림으로써, 순종은 바리새인의 낡은 유산으로 취급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은 유대인들만의 법으로 남게 되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살아서 외치고 있는 성경의 증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1~3. 복음 가운데 율법이 마땅히 차지해야 할 정당한 위치를 회복할 때에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 초대 교회가 가졌던 믿음과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서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렘 6:16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의 의미
그리스도인이 죄의식과 영적 흑암 아래 지내는 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머리는 숙였으되 심중에는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것은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난 상태가 아니다. 가족들에게 불친절하고, 사회에서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는 정죄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바쳤다고 말하지만, 마음의 중심에는 세속과 정욕이 가득차 있는 상태는 참된 성화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을 흘리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생애를 사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께로 나아가 마음의 정결함을 받음으로서, 율법 앞에 부끄러움과 가책없이 설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는 간증을 할 수 있다(롬 8:1).



Do you know this?
“온 율법은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갈라디아 5:14.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된 10개의 계명(십계명)을 4개의 글자로 줄인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하라”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인 십계명을 친히 두개의 돌비에 기록해서 주셨는데, 첫째 돌비에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사랑이 4개의 계명에 나뉘어져 기록되어 있고, 둘째 돌비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 6개의 계명에 나뉘어져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 율법”은 “사랑하라”는 “한 말씀”에 함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음 속에 참 사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일에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매우 잘 설명할 수 있는 예화를 한가지 들어보자. 한번은 어떤 교수님이 신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일어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학생: “교수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알고 계십니까?”
교수: “그럼 잘 알고 있지”
학생: “그렇다면, 교수님은 교수님의 아내를 죽이지 않기 위해 서 하루에 몇번이나 결심하십니까?”
교수: “나는 전혀 그런 결심을 하지 않는다네.”
학생: “그러면 아내의 물건을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십니까?”
교수: “전혀 노력하지 않고 있지”
학생: “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날마다 있는 힘 을 다하여 노력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 다. 그러나 그들은 진지하게 맹세하고 결심하고 노력하 지만 한결같이 결국에 가서는 죄를 범하게 된다고 고백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교수님의 아내에 대 한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서 전혀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혀 어렵지도 않다고 대답하셨는데, 무엇 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까?”
교수: “나는 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일세.”
이 간단한 예화야말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랑은 모든 친절과 관대함의 근원이며 희생의 원동력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당신의 아들까지 우리를 위해서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의 마음에 새겨지게 될 때, 죄인은 드디어 멸망에서 영생으로 옮겨지게 된다. 누가 또는 무엇이 사랑을 소유한 사람에게 죄를 짓도록 할 수 있는가?
죄의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투쟁하고 기도해 왔는가? 그렇다면, 모든 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 모든 유혹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만일 그대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이러한 사랑을 얻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얻을 때까지 구하게 될 것이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마태복음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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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신실하게 믿고 교회에 열심히 나가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닌가요?

답변: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 14:12.
성경에 나오는 부자 청년 법관도 신실하였지만, “모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초청을 거절했으며, 사도 바울도 진실로 거듭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신실하게 행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진리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2,3. 그러므로 오직 진리를 발견한 다음 그것을 신실하게 순종하며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만이 안전한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있고, 진리를 거역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양심에 하나도 꺼릴 것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기만할 수 있습니다. 비록 양심의 음성이 그리스도인 신앙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양심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양심에서는 잘못된 음성이 들려오기 때문이죠. 오직 성서적 진리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거듭난 양심만이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를 들려 줍니다.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진리 의 안내판 을 무시한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택해서 아무리 신실하게 걸어간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삶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애가 죄와 부정으로 얼룩쳐 있으면서도 성실하게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인 안일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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