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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역사

6부-시작되는 홍수

작성자들꽃|작성시간26.06.18|조회수23 목록 댓글 0

6부-시작되는 홍수

 

 

홍수가 임함

그런데, 노아의 가족이 방주로 들어간지 팔일이 되는 날에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다. 나지막한 천둥소리와 번갯불이 뒤따랐다. 얼마 안가서 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것을 전혀 목격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들의 마음은 공포에 휩싸였다.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노아가 옳았던 것일까, 세상은 멸망당할 운명에 있는 것일까? 하고 수군거렸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내리는 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짐승들은 무서워서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그들의 귀에 시끄러운 울음소리는 그들 자신의 운명과 사람의 운명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그 때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창 7:11)렸다. 물은 구름 가운데서 큰 폭포들을 이루어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강들은 범람하여 골짜기로 넘쳐 흘렀다. 형언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땅에서 물이 솟구쳐 나왔으며, 큰 바위들은 수백피트 공중으로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지면서 땅속 깊이 묻혔다.

 

백성들은 그들이 만든 것들이 파괴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들의 화려한 가옥과 아름다운 정원과 우상을 세워두었던 삼림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로 인하여 파괴되고, 그 파편들이 멀리 그리고 넓게 널려 있었다. 사람을 제물로 드려오던 제단들은 파괴되고, 그 숭배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에 떨며, 그들의 부패와 우상숭배가 그들의 멸망을 초래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폭풍우가 점점 더 거세지자 수목, 건물, 바위, 흙이 사방으로 날아가 흩어졌다. 사람과 짐승의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폭풍우의 노호(怒號)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했던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미칠 듯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방주를 향하여 손을 뻗치며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애원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양심이 각성되어 사람들은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분께 열렬하게 구원을 호소하였으나 그분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셨다.

그 무서운 시간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이 그들의 멸망을 초래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형벌이 무서워서 그들의 죄를 인정했지만 진정한 통회의 정신이나 죄악의 가증스러움은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심판이 물러갔더라면, 그들은 다시 하나님께 대한 반항의 생활로 되돌아 갔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불의 홍수로 소멸하기 전, 하나님의 심판이 지상에 내릴 때,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그들의 죄가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점에서 범죄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멸시한 것이 그들의 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옛 세계의 죄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진정한 회개는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자들은 절망 중에 필사적으로 방주를 부수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고자 애썼으나 견고하게 건조된 이 방주는 깨어지지 않았다. 어떤 자들은 방주에 매달려 있다가 밀어닥치는 물결에 휩쓸려 가거나 바위와 나무에 부딪혀 그들의 손을 놓칠 때까지 방주에 매달려 있기도 하였다. 사정없이 불어대는 바람을 맞고 거대한 방주 전체가 진동하였으며 물결이 칠 때마다 뒤흔들렸다. 안에 있던 짐승들은 공포와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그러나 폭풍우 가운데서도 그것은 계속 안전하게 떠 있었다. 능력이 탁월한 천사들이 그것을 보호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폭풍우 가운데서 짐승들은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려는 듯이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어떤 사람들은 짐승들이 좀처럼 죽지 않으며 불어 오르는 물을 피하여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리라는 것을 알고, 힘센 짐승들 위에 그들의 자녀들과 자신들을 붙들어 매었다. 어떤 사람들은 언덕이나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에 자신들을 단단히 붙들어 맸다. 그러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거기 자신들을 묶어 매었던 사람들과 함께 소용돌이치는 파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안전하게 보이던 곳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졌다. 물이 계속 더 높이 불어오르자 사람들은 제일 높은 산으로 피난하였다. 가끔 사람과 짐승이 발 디딜 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 싸우다가 둘 다 휩쓸려 갔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간 사람들은 서서히 물에 잠기는 세상과 끝없는 대양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종의 엄숙한 경고가 더 이상 조소와 희롱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그 죄인들이 그들이 무시해 왔던 그 구원의 기회를 얼마나 사모하였을까! 한 시간의 유예의 시간을, 또 한 번의 긍휼의 특권을, 그리고 노아의 입술에서 나오는 초청을 다시 듣기를 그들이 얼마나 애원하였을까! 그러나 자비로운 긍휼의 음성은 그들에게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공의 못지않게 사랑도 하나님의 심판이 죄를 제어해야 할 것을 요구하였다. 복수의 물결은 마지막 피난처를 휩쓸었으며, 하나님을 멸시하던 자들은 깊은 물 속에 빠져 죽었다.

 

홍수와 세상 끝

이 세상은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당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벧후 3:5-7)셨다. 또 하나의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다. 세상은 다시 황폐케 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에 휩쓸릴 것이요, 죄와 죄인들은 멸망당할 것이다.

 

홍수 전 세계에 멸망을 불러들인 죄들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그분의 율법은 무관심과 멸시를 받고 있다. 지금 이 세대는 노아 시대만큼이나 크게 세속화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마 24:38,39)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먹고 마신 것으로 홍수 전 사람들을 정죄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의 육체적 필요를 공급할 수 있는 땅의 소산들을 그들에게 풍부하게 주셨다. 그들의 죄는 주신 분께 감사드림없이 이 선물들을 취한 것과 식욕을 자제하지 못하고 방종함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타락시킨 데 있었다. 결혼하는 것은 그들에게 합법적이었다. 결혼은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있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최초의 제도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분은 결혼 제도에 대한 특별한 지시를 주셨으며 이것을 거룩함과 미로 옷 입히셨다. 그러나 이 지시는 잊혀졌고, 결혼은 왜곡되어 정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되어 버렸다.

 

현재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그 자체로는 합법적인 것이 지나치게 방종되고 있으며 식욕은 자제됨 없이 방종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취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그들의 이름은 존중받는 교회 녹명책에 올려 놓고 있다. 부절제는 도덕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들을 마비시키며 보다 저급한 정욕들에 탐닉하는 길을 준비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관능적 욕망을 제어할 도덕적 의무를 느끼지 못하고 색욕의 노예가 된다.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위해서, 이 세상과 이생만을 위하여 살고 있다. 사치는 사회의 각계 각층에 퍼져 있다. 그 사치와 허영을 위하여 성실성을 희생하고 있다.

 

속히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공의를 굽게 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한다. 그리고 “노예들과 사람의 영혼”이 아직도 매매되고 있다. 사기와 뇌물수수와 도둑질은 높은 곳에서나 낮은 곳에서나 정죄 받지 않고 활개를 치고 있다. 신문 지상에는 살인에 대한 기사로 가득 차는데 그 범죄들은 너무나 잔인하고 까닭없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본능이 말살된 것같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잔학 행위들은 너무도 흔히 발생되기 때문에 그것들이 논평의 대상이 되거나 경악을 일으키는 일도 거의 없다. 무정부주의 정신이 각국에 퍼지고 있으며,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폭동들은 일단 통제를 벗어나면 세상을 재난과 황폐로 채우게 될, 갇혀있는 정욕과 무법과 불의의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현 사회는 성경에 기록된 홍수 전 세계의 상황으로 신속히 빠져 들어가고 있다. 지금도, 소위 그리스도교국이라고 공언하는 지역에서 고대 세계 죄인들의 멸망을 초래한 그 흉악하고 무서운 범죄들이 날마다 저질러지고 있다.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홍수 전에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회개하여 임박한 멸망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노아를 보내어 세상을 경고하셨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가 가까워짐에 따라 주께서는 그 큰 사건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당신의 종들을 보내시사 세상을 경고하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애를 살고 있으며, 이제 그분은 긍휼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성한 계명에 순종하도록 그들을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께 대하여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를 버리는 자들은 모두 용서를 받는다. 그러나 죄를 버리는 데는 너무나 큰 희생이 요구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도덕적 정부의 순결한 원칙이 그들의 생활과 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의 경고를 거절하고 그분의 율법의 권위를 부인한다.

 

홍수 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단 여덟 사람만 노아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다. 120년 동안 의의 설교자는 다가오는 멸망에 대하여 세상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의 기별은 거절과 멸시를 당하였다. 그 시대뿐만 아니라 현 세대도 그럴 것이다. 입법자이신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를 벌하시기 위하여 오시기 전에 범법자들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도록 경고를 받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경고는 헛될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 3:3,4)고 할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우리는 바로 이 말을 공공연한 불신자에게서 뿐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설교단을 차지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거듭 듣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온 세계가 회개하고 의인이 1천년 동안 왕노릇 할 것이므로 놀랄 이유가 전혀 없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만물은 태초에 있었던 것같이 계속된다. 쓸데 없이 걱정하는 사람들의 흥분시키는 기별에 아무도 불안해 하지 마시오.” 그러나 천년기에 대한 이같은 교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의 가르침과 조화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인자의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셨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그분은 세상의 상태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바울은 끝날이 가까워 올 수록 악이 증가되는 것을 보리라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딤전 4:1). 그 사도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딤후 3:1)라고 말한다. 그는 경건의 모양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발견될 놀라운 죄의 일람표를 제시한다.

 

홍수 이전 사람들은 저들의 은혜의 기간이 마쳐지고 있을 때 흥분시키는 오락과 연락에 몰두했다. 큰 영향력과 세력을 가진 자들은 아무도 마지막 엄숙한 경고에 감명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계속 환락과 쾌락에 몰두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종들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하고 있는 동안 세상 사람들은 오락과 쾌락 추구에 여념이 없다.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만들고 다가오는 멸망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인 진리들로 말미암아 감명을 받지 못하게 하는 흥분적인 일들이 계속된다.

 

노아 시대의 철학자들이 세상이 물로 멸망을 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처럼 오늘날도, 세상이 불로 멸망을 당하는 것은 자연 법칙들에 모순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거하고자 노력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자연계를 만드신 하나님, 그 법칙들을 제정하시고 통제하시는 분은, 당신께서 만드신 것들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쓰실 수 있으시다. 위인들과 현인들이 물로 세상이 멸망당하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득의에 차 있을 때, 백성의 두려움이 진정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노아의 경고와 예언을 무시하여 기만으로 여기고 그를 광신자로 바라보았을 때,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다가왔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창 7:11) 조롱하던 자들은 홍수에 엄몰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뽐내던 모든 철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혜는 어리석다는 것과 크신 입법자는 자연의 법칙보다 위대하시다는 것, 전능하신 분은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킬 수단이 없어서 어쩔줄 몰라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너무도 늦게야 발견하였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6,3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철학적 이론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공포를 떨어 버리고, 종교 지도자들이 평화와 번영의 장구한 시대가 올 것을 가리키고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이 심고 집짓고 잔치하고 연락하며 하나님의 경고를 거절하고 그분의 사자들을 조롱하며 그들의 사업과 향락에 몰두하고 있을 때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살전 5:3)할 것이다. (www.sostv.net 살아남는 이들 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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