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버지의 생일
서울 변두리의 낡은 주택가, 골목 한켠에 자리 잡은 '행복분식집' 안은 저녁 손님들이
다 빠져 나간 늦은 저녁이라 한산했다. 그 때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사장 미경씨가 주방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인사했다.
손님은 일흔이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들어와서 창가 쪽 구석
자리에 앉았다. 노인은 잠시 메뉴판을 바라 보다 주문했다.
“김밥 한 줄만 주세요”. 그게 전부였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주인인 미경씨는 김밥 한 줄에 마음이 쓰였지만,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김밥을 말면서도 창가에 홀로 앉은 노인의 뒷모습이 자꾸
시야에 걸렸다. 노인은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기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내려보기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를 반복한다.
참 쓸쓸해 보였다. 김밥이 나오자 노인은 두 손으로 젓가락을 들고 서두르지 않고
한 점 집었다.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한 입 베어 문다.
바로 그 때 핸드폰이 울렸다. 화들짝 놀란 노인은 점퍼 주머니에서 낡은 폴더 폰을
꺼내어 화면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눈이 흔들렸다. 딸 혜진이었다.
“여보세요.” "아빠! 오늘 생신인데, 연락이 너무 늦었지? 미안해 아빠, 식사는
챙겨 드셨어요?" 밝은 딸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세 살 배기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맞벌이 하는 딸 혜진이에게는 서울 외곽에 혼자 사는
아버지를 찾아 뵙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고 걱정 마라. 나 지금 친구들이랑 韓牛먹고 있다”.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들뜬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달랑 김밥 한 줄이 놓인 낡은 분식집
테이블, 그러나 노인의 목소리는 마치 고기집에서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것처럼 풍성하게 울렸다.
창 밖에서 이를 보고 있는 딸 혜진은 시치미를 떼고 "휴! 다행이다."
김밥 한 줄만 시켜 드시는 아빠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애써 미어지는 가슴을
꾹꾹 누르며, 밝은 목소리로, "나중에 뵐게요." “그래, 그래라, 너도 바쁠텐데,
이제 그만 끊어라.”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이미 딸이 창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고, 노인은 전화를 접었다.
주방 너머에서 재료를 손질하던 미경씨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멈췄다. 좁은
가게다 보니 다 들린다. 이미 노인의 딸에게서 카드를 건네 받아 계산이 끝난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고, 저녁 메뉴에 쓰려고 넉넉히 준비해 두었던 소불고기용
고기를 망설임 없이 팬에 올리고 불을 켰다.
파와 양파를 듬뿍 썰어 넣고, 지글지글 잘 볶아진 소고기 불고기를 접시에
담고, 거기에 미역국도 따로 끓여 국그릇에 옮겨 담아 홀로 나갔다."어르신 여기요."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노인이 “이게 뭔가요? 저 안 시켰어요.”
하고 놀랜다. 미경씨는 환하게 웃으며 "어르신 생신 축하드려요."
“네? 그걸 어떻게...” "아까 통화하시는 거 다 들었어요. 저희 가게 이벤트로
생일이신 분들께는 서비스로 드려요. 맛있게 드세요." 물론 이벤트는 없지만 노인이
민망할까 봐 애둘러 댔다. “아유 감사합니다. 사장님!” 노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소불고기에서 고기 향과 미역국 냄새가 코끝을 가득 채웠다.
노인은 붉어진 눈으로, 잠시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꼼짝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노인은 애써 고개를 숙이고 수저를 드는데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빠의 이런
모습을 본 딸 혜진이는 쓰라린 가슴을 여미고, 아버지 생일 선물로 따뜻한 내의와
평소 즐겨 드시던 유과 한 봉지가 담겨있는 쇼핑백을 다 잡는다.
남편에게는 ‘그냥 깜짝 찾아간다’고 말했더니 처음에는 말렸었다. 지난 주에
아기가 몸살을 앓았고, 혜진이 자신도 계속된 야근에 반 녹초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오늘이 아빠의 생신이라는 것과 삼년 전, 엄마가 세상을 떠나시고
아버지 혼자 낡은 집에서 살고 계시는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다.
'전화로 생신 축하 드리면 되겠지'하고 생각하면서도 발걸음은 자꾸 아버지
집 쪽을 향했다. 한 시간 반을 전철, 버스로 번갈아 타고 아버지 동네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골목길을 꺾으면 아버지 집을 지나는 바로 그 지점,
분식집 유리창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 안으로 아버지가 그 앞에는 김밥 한 줄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혜진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눈물이 차 올랐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김밥을
드시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에 헤진은 억장이 무너졌다.
자존심 상할까 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혜진은 분식집 문 앞에 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안을 향하여 손짓을 했다. 마침 주방에서 고개를 든 미경씨와 눈이
마주쳤고 미경씨가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혜진은 낮은 목소리로 "저기 혼자
계신 어르신께 소불고기 하나 추가로 해드릴 수 있을까요? 계산은 이 카드로 해주세요."
혜진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미경씨는 놀라 물었다. "손님 왜 우세요?
아시는 분이세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혜진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저분이 제 아버지세요.
그리고 오늘이 아버지 생신이세요. 제가 못 온다고 했거든요. 깜짝 찾아 뵈려고 왔다가
유리창 너머로 보니..." 혜진이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떤다.
미경씨가 권한다. "직접 들어가서 하시면 더 기뻐하실 것 같은데..." "아빠가 자식 앞에서
너무 부끄러워 하실 것 같아서요. 제가 봤다는 걸 아시면 드시다가 체하실 것 같아
부탁드립니다." 하고 혜진이 간곡히 부탁한다. 미경씨는 그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아버지를 걱정하는 딸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얼굴에
코끝이 찡해졌다. "알겠습니다. 잘 전해 드리겠습니다."
혜진이 고개를 숙여 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미경씨한테 음식 값을
지불한 혜진이 뒤돌아 골목길 안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아빠의 초라한 모습에 눈물이 쏟아질까 바, 그렇게 소불고기와 미역국이 나온 이유였다.
노인은 소불고기와 미역국을 받고는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젓가락을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 데이블 위로 올려진 주름진 손등 위로 무언가가 툭 떨어진다. 눈물이었다. 노인은
황급히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나 한 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작은 어깨가 한없이 들썩거렸다. 미경씨는 조용히 물 한잔을 가져다 놓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울다가, 코를 훌쩍이다가, 다시 소불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식사를 마친 노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려 했다.
“여기 얼마예요? 네, 김밥 값만 받을게요, 어르신." “그러면 안 되는데...”
"이벤트니까요!" 하며 미경이 웃었다. 노인은 미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한 번
깊이 숙였다. “고마워요 사장님...” "어르신도 건강하시고, 또 오세요."
노인은 가게를 나섰다. 하늘을 올려보다가 천천히 골목길을 접어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삐걱거리는 낡은 철제 계단을 올라 집 앞에 서서 자물쇠를 풀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이었다. "아빠 생신 축하 드려요!" 형광등이 켜진 좁은 현관 너머
딸 혜진이 서 있었다. 두 손을 앞에 모으고 눈이 벌건 채로 그러나 환하게 웃는다.
“아니, 너 웬일이냐? 못온다고 하지 않았냐”?
노인의 목소리가 깜짝 놀란 듯 높다. "아빠 보고 싶어서 왔지, 전철과 버스로
오느라 늦었어" 혜진이 웃으며 말했다. 코가 빨개진 것이 울었다는 티가 났지만
노인은 모른 척했다. “그래 내 새끼, 잘 왔다 잘왔어...” 노인은 등을 다독인다.
칠십 평생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손이었지만 온기가 있었다. 혜진이 쇼핑백을
내밀었다. "아빠 선물, 내복과 아빠 좋아하는 유과야." “왜 이런 걸 사왔어...
돈도 없으면서...” "아빠! 친구들이랑 잘 먹고 왔어?" 노인은 잠시 멈칫 했다.
“그래, 기분 좋게 잘 먹고 왔지”
"다행이다. 아빠 나도 배고픈데, 아빠가 뭐라도 해줘." “뭐 해줄까? 아빠 된장찌개
밖에 못 끓이는데..." "된장찌개 좋아, 아빠가 끓인 된장찌개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거든..." 노인은 웃었다. 부엌으로 들어서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혜진은 눈을
감았다. 분식집 창문 너머로 보였던 아빠의 가날픈 어깨와 지금 앞치마를 두른
아버지의 어깨가 겹쳐졌다.
부끄러운 생일, 혼자인 생일, 그러나 거짓말로라도 딸을 걱정시키지 않으려 했던
父情, 그리고 그 생일 끝에 찾아온 된장찌개 냄새와 딸의 목소리, 부엌에서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이렇게 생일 케익이 없고, 생일 축하 노래가 없어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행복한 생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딸을 가진 이 시대 아버지들의 행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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