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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열병(Roman Fever by Edith Wharton)

작성자young|작성시간14.01.16|조회수5,511 목록 댓글 12

카페에 기여할 것이 별 달리 없어 제가 작년 말에 번역한 옛날 단편소설 한 편을 올립니다. 몇 분이라도 즐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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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 있는 중년의 미국 여인 둘이 로마의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테이블에서 일어나 높직한 테라스의 난간으로 가서 기대어 섰다. 잠시 마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아래로 펼쳐진 팔라티누스 언덕과 로마 광장의 장관을 바라보는 두 여인의 얼굴에 아련한 흐뭇함이 어렸다.

두 여인이 그렇게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데 아래쪽 안뜰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젊은 여성의 발랄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럼 같이 가.” 그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친구에게 하는 말이었다. “노소녀(老少女)들은 뜨개질이나 하고 있으라지 뭐.” 웃음소리와 함께 앞선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활기찬 음성이 들렸다. “저기 봐, 바바라. 뜨개질 안 하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 첫 번째 목소리가 대답했다. “똑똑한 딸들 덕에 딱히 할 일도 없을 테니 노친네들도 불쌍하긴 하지……” 대화는 여기서 꺾어진 계단에 막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두 여인이 다시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체구가 작고 안색이 옅은 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그들을 조롱하던 목소리가 사라진 계단을 향해 “바바라, 쟤가!”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풍채와 혈색이 좋고, 강한 기와 고집이 느껴지는 짙은 검은 눈썹과 작은 코를 가진 여인이 사람 좋게 웃었다. “딸년들이 우릴 저렇게 생각한다니까.

체구가 작은 부인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꼭 우리만 그렇겠어? 요즘 세태가 그렇지……” 세련된 프레임의 검은 핸드백에서 가는 뜨개바늘 두 개에 꿰인 심홍색 명주실을 미안한 듯 주섬주섬 꺼내면서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요즘 세상이 여유를 많이 누릴 수 있게 해준 건 분명하지만, 난 가끔 이런 풍경을 보는 것마저 싫증이 나니,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정말 모를 일이지.” 그녀의 시선은 다시 발 밑의 장대한 풍경으로 향해 있었다.

검은 머리 여인이 다시 웃음을 터트리고 나서, 두 사람 다 말없이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져들었다. 봄날의 눈부신 하늘이 로마를 정적으로 덮은 듯했다. 점심 시간이 지난 지 한참 된지라 둘이서 넓은 테라스 한 켠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테라스 저쪽에 활짝 펼쳐진 로마 풍경을 감상하느라 머물러 있던 몇 무리의 사람들도 이제 안내책자를 챙기고 팁을 준비하며 떠날 채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사람들마저 떠나자 테라스 위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은 두 여인만을 위한 것이 되었다.

“여기 그냥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혈색 좋고 눈썹 짙은 슬레이드 부인이 근처에 있던 낡은 바스켓 의자 두 개를 난간 쪽으로 밀고 가서 앉더니 팔라티누스 언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이야.

앤슬리 부인이 “언제까지나 그럴 거야, 나한테는.”이라고 맞장구 쳤다. 슬레이드 부인은 앤슬리 부인이 “나한테는”을 살짝 힘주어 말한 것을 놓치지 않았지만, 그거야 옛날 편지 대서인들이 간혹 엉뚱한 데다가 밑줄을 치기도 하던 것처럼 별 뜻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았다.

‘그레이스 앤슬리야 늘 구식이었잖아.’하고 넘기고는 추억에 잠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둘 다 아주 오래전부터 눈에 익힌 풍경이니까. 우리가 여기서 처음 만났을 때가 지금 우리 딸내미들보다 어릴 때였지. 기억나?

“어, 그럼, 기억나고말고.” 아까처럼 영 어색한 억양으로 앤슬리 부인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러더니 “근데 저기 헤드웨이터가 자꾸 우릴 흘끔거리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앤슬리 부인은 옆의 친구보다 자신의 권리와 자기 자신에 대해 훨씬 자신 없어 하는 것이 분명했다.

슬레이드 부인이 “내가 그만 흘끔거리게 해 주지.”라고 말하며 앤슬리 부인 것 못잖게 은근히 화려한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손짓으로 헤드웨이터를 불러서는 그녀와 친구가 로마에 추억이 많아서 괜찮다면 좀 더 머물면서 경치를 감상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헤드웨이터는 그녀가 건넨 팁에 사례를 하고는 얼마든지 머물러도 되며 이왕이면 저녁 식사시간까지 있는 게 어떠냐고 했다. 보름달이 뜰 거라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라면서.

뜬금없이 보름달은 웬 보름달이냐는 듯 슬레이드 부인의 검은 눈썹이 한데 모아졌다. 하지만 헤드웨이터가 물러날 때 그녀는 찌푸린 이맛살을 풀며 미소를 지었다. “뭐 그것도 괜찮겠네! 다른 데 간다고 꼭 좋다는 법도 없고. 애들도 언제 돌아올는지 모르고. 도대체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앤슬리 부인의 얼굴이 또 살짝 붉어졌다. “대사관에서 봤던 젊은 이태리 조종사들이 타르퀴니아에 비행기로 가서 차 한잔 마시고 오자고 했겠지. 달이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지 않을까 싶은데.

“그놈의 달, ! 강산은 변해도 달은 여전하구만. 걔들도 옛날 우리처럼 감상적일까?

“걔들 속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앤슬리 부인이 대답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도 서로를 잘 몰랐는지 모르겠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녀의 친구가 소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감상적일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글쎄, 내가 감상적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슬레이드 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회상에 잠겼다. 잠시 두 여인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어도 사실은 얼마나 서로를 잘 모르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둘 다 서로에 대한 치렛말은 술술 읊을 수 있었다. 가령 델핀 슬레이드 부인은 누가 묻거나 하면 이런 식으로 장광설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앤슬리 부인이 25년 전엔 얼마나 예뻤다고요, 말도 마요, 지금도 뭐 기품 있고 매력도 있긴 하지만 옛날 모습을 본다면 정말 못 믿을 거예요. 그땐 조각처럼 예뻤다니까요. 딸 바바라보다 훨씬 예뻤어요. 뭐 바바라 걔가 요새 기준으론 더 인기 있고, 사람들 말마따나 더 잘 나가겠지만요. 어떻게 두 숙맥 사이에서 그런 애가 나왔는지 참 신기하죠. , 그 남편 호러스 앤슬리 씨도 어쩜 그리 자기 아내랑 판박인지. 둘 다 박물관에 옛 뉴욕인의 표본으로 전시해도 될 만하다니까요. 잘생기고, 흠잡을 데 없이 모범적이고. 슬레이드 부인과 앤슬리 부인은 꽤 오래 서로 맞은편에서비유적으로나 실제로나살았다. 이스트 73 20번지에서 응접실 커튼을 바꿔 달면 길 건너 23번지에서 모를 수가 없었다. 슬레이드 부인은 이 나무랄 데 없고 심심하기 그지없는 부부 집에서 누가 나고 들고, 뭘 사고, 여행 가고, 기념일 챙기고, 누가 아프고 하는 온갖 시시콜콜한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다 이것도 그녀 남편이 월 스트리트에서 크게 성공했을 무렵에는 시들해져서, 파크 애버뉴의 부자 동네에 집을 살 때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이제 차라리 주류 밀매소 맞은편에 사는 게 낫겠어. 단속반 들이닥치는 모습 구경이라도 할 테니.’ 그레이스의 집에 단속반이 들이닥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어찌나 재미있는지 (이사 가기 전에) 여자들끼리 하는 점심 모임에서 기어이 그 얘기를 하고야 말았다. 다들 재미있어 해서 이야기는 여기저기 퍼졌다. 가끔 길 건너 앤슬리 부인 귀에까지 전해졌는지 궁금하긴 했다. 아니길 바랐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점잖음을 그리 높이 사지 않던 시절이라 반듯한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좀 삼았기로서니 그게 무슨 대순가 싶었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나고 두 여인의 남편이 몇 달 사이로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경우에 맞게 한 차례씩 조화도 보내고 조의를 표하면서 잠시 동병상련의 친밀감이 다시 생겨났다. 그러다 또 한동안 소원했는데 공교롭게도 로마에서, 그것도 같은 호텔에서 각자 잘난 따님을 모시고 마주친 것이다. 같은 처지가 또다시 둘을 가까워지게 하면서 가벼운 농담도 나누고, 옛날 같으면 딸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느라 지쳤을 텐데 요즘엔 그럴 일이 없어서 도리어 따분할 때가 있다는 등 속마음도 털어놓았다.

슬레이드 부인은 똑같이 할 일이 없어졌어도 자신이 느끼는 차이는 그레이스가 느끼는 차이보다 훨씬 클 거라고 생각했다. 델핀 슬레이드의 아내에서 그의 미망인으로 신분이 바뀐 충격은 컸다. 예전엔 늘 (신랑 잘 만난 자부심은 있어도) 자신이 남편 못지않은 사회생활 수완으로 두 사람이 누구보다 돋보이는 부부가 되는 데 한몫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죽자 모든 것이 완전히 바뀌었다. 언제나 국제 소송을 한두 건은 맡고 있는 고문변호사의 아내로 살 때는 하루하루 예기치 않은 흥미로운 일거리가 넘쳤다. 갑자기 찾은 중요한 외국 파트너들을 접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반대로 런던, 파리, 로마 등지로 긴급 출장을 따라가서 후한 접대를 돌려받기도 했다. 파티장에서 등 뒤로 이런 말을 들을 때의 즐거움이란! “뭐? 저기 멋지게 차려 입은 예쁜 여자가 슬레이드 부인이라고? 진짜? 유명 인사 아내 치고 촌스럽지 않은 여자 드문데.

그런 생활을 하다가 슬레이드 미망인이 되자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잘나가는 남편에 맞춰 살 때는 온갖 능력을 다 동원해야 했다. 이젠 딸한테만 맞춰 살면 됐다. 남편의 재능을 빼닮은 것 같던 아들이 어릴 때 갑자기 죽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서로 의지하며 겨우 그 고통을 견뎠는데, 애 아버지가 죽자 아들 생각에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이제 남은 할 일은 딸 키우는 일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니가 워낙 흠잡을 데 없는 딸이라 뒷바라지라고 할 게 별로 없었다. ‘바바라가 내 딸이라면 이렇게 무료하게 지내진 않을 텐데.”라고 부러운 생각이 이따금씩 들었다. 바바라보다 어린 제니는 젊고 예쁜데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걱정이 안 드는 희한한 애였다. 신기하면서도 슬레이드 부인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녀는 제니가 사랑에 빠졌으면 하고 바랐다. 심지어 못된 남자하고라도. 그러면 잘 지켜보다가 문제가 생기면 기지를 써서 구출해낼 수 있을 테니까. 현실에선 어떻게 된 게 제니가 도리어 제 엄마를 지켜보면서 찬 바람 안 맞고 약 잘 챙겨먹도록 돌봤다.

앤슬리 부인은 그녀의 친구와 달리 원체 말수가 적었고, 머릿속에 그린 슬레이드 부인의 모습도 영 자신 없는 붓질로 그린 듯 불분명했다. ‘슬레이드는 엄청 똑똑하지만 제 생각만큼 똑똑하진 않아.’ 정도로 요약될 만한 것이었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몇 마디 덧붙인다면 슬레이드 부인이 젊었을 때 엄청나게 활달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지금 그녀의 딸보다 훨씬 더. 그 애는 물론 예쁘고 영리하기도 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제 엄마의 “생기발랄함”은 없었다. 앤슬리 부인은 이런 유행어를 써먹을 때면 마치 들어본 적 없는 대담한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따옴표 표시를 했다. 제니는 확실히 제 엄마랑 달랐다. 가끔 앤슬리 부인은 슬레이드 부인이 실망스러워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삶이 전체적으로 실패와 실수로 점철된 우울한 삶이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앤슬리 부인은 늘 그녀가 좀 가엾게 느껴졌다.

이처럼 두 여인이 바라보는 서로의 모습은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들여다본 모습 같았다.

 

II

두 여인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두 사람 다 마치 그들 앞의 거대한 필멸의 상징을 마주하고 덧없는 행위를 멈추는 데서 위안을 얻고 있는 것 같았다. 슬레이드 부인은 꼼짝 않고 앉아 황금빛 언덕의 황궁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한동안 핸드백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앤슬리 부인도 이윽고 사색에 빠져들었다. 친한 친구들이 대개 그렇듯 두 여인은 여태 이렇게 말없이 가만히 같이 있은 적이 없었다. 앤슬리 부인은 서로 알고 지낸 그 오랜 세월에서 처음 겪는 이런 상황이 어색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갑자기 대기를 흔드는 깊은 종소리가 로마를 은빛 지붕으로 감쌌다. “벌써 다섯 시네.” 손목시계를 보고 슬레이드 부인이 놀란 듯이 말했다.

“다섯 시에 대사관에서 브리지 게임 모임이 있는데.” 앤슬리 부인이 어쩔 거냐고 묻듯이 말했다. 슬레이드 부인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어서 못 들은 게 아닌가 했는데, 잠시 후 슬레이드 부인이 마치 꿈을 꾸다 말하는 것처럼 “브리지라고 그랬어? 가고 싶으면 가고. 난 생각 없어.”라고 대답했다.

앤슬리 부인이 곧바로 “아니야, 나도 가고 싶은 맘 전혀 없어. 네 말대로 옛 추억이 가득한 이 좋은 곳을 두고 뭐 하러.”라고 대답하고 의자에 몸을 파묻더니 슬그머니 뜨개바늘을 꺼냈다. 슬레이드 부인이 옆으로 흘긋 그 모습을 봤지만 그녀의 예쁘게 잘 관리한 손은 그녀의 무릎 위에 미동도 않고 그대로 놓여 있었다.

슬레이드 부인이 천천히 말했다. “난 로마가 상징하는 게 세대마다 어떻게 다른가 생각하고 있었어. 우리 할머니들은 ‘로마’하면 열병을 떠올렸을 테고, 우리 엄마들은 우리가 감상적 로맨스의 위험에 빠질까 봐 한시도 눈을 못 떼던 생각만 났겠지. 우리 딸애들한테야 여기나 메인스트리트 한복판이나 위험하다는 말은 씨알도 안 먹힐 테고. 걔들은 위험만 모르는 게 아니라 우리 때 같은 낭만도 모르겠지만!

기다란 황금빛 노을이 점점 옅어지자 앤슬리 부인이 뜨갯감을 좀더 눈에 가까이 가져오며 말했다. “그래, 우리 엄마들 우리가 어떻게 될까 봐 참 대단했었지.

그러자 슬레이드 부인이 하던 말을 다시 이어갔다. “내 생각엔 우리 엄마들이 우리 할머니들보다 딸들 챙기기 훨씬 힘들었을 거 같아. 로마 열병이 창궐하던 시절에는 어두워지면 못 나다니게 붙들어두는 게 쉬웠을 거 아냐. 그런데 우리 때야 저런 아름다운 풍경이 손짓을 하고, 반항 정신이 충만하고, 해지고 추워져도 기껏해야 감기 걸릴 위험밖에 없었으니 우릴 붙들어놓는다고 꽤나 애먹었을 거야, 안 그래?

앤슬리 부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까다로운 부분을 뜨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나, , . 두 개 빼고. 맞아, 그랬을 거야.” 그녀가 고개도 안 들고 맞장구 쳤다.

앤슬리 부인을 지켜보며 슬레이드 부인은 ‘이런 때 뜨개질이라니! 참 너답다. 생각했다.

슬레이드 부인은 의자에 기대어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시선은 바로 앞 유적지에서 나지막이 길게 뻗은 푸른 광장과 그 너머로 잦아드는 석양에 물든 교회 전면으로, 다시 저 멀리 거대하게 펼쳐진 콜로세움으로 옮겨갔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딸애들이 달빛에 취해 로맨스에 빠지는 애들은 아니라고 해도, 바바라는 그 후작이라는 젊은 조종사 낚아채려고 간 게 틀림없어. 걔하고 같이 있는 한 제니가 낚아챌 가능성은 없지. 뻔한 거 아냐. 혹시 그레이스 앤슬리가 그래서 두 애가 어디든지 같이 다니도록 하는 거 아냐? 우리 가엾은 제니를 들러리로 삼으려고!” 슬레이드 부인이 들릴 듯 말 듯 웃는 소리에 앤슬리 부인이 “응?” 하면서 뜨개질을 멈췄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바바라가 어쩜 그리 매사에 거침없이 승승장구하는지 생각하고 있었어. 그 캄폴리에리 가문 자제는 로마 최고의 신랑감이잖아. 모르는 척 하지마. 너도 잘 알잖아. 근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오해는 하지 마. 어떻게 너하고 호러스 씨 같이 점잖은 사람들한테서 그렇게 활달한 애가 나왔는지 말이야.” 슬레이드 부인이 심술궂게 웃었다.

앤슬리 부인이 뜨개바늘을 쥔 손을 맥없이 내려놓았다. 그녀는 그녀의 발 밑으로 켜켜이 쌓인 정열과 화려함의 거대한 잔해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하지만 그녀의 작은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마침내 입을 연 그녀는 “얘, 네가 바바라를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슬레이드 부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아니, 과대평가가 아니야. 내가 제대로 본 거지. 어쩜 널 부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 물론 우리 딸애도 정말 훌륭하지. 가령 내가 몸져눕게 된다면 그 애가 날 돌봐주길 바랄 거야. 제니가 딸인 게 더 좋을 때도 틀림없이 있겠지. 그래도 말이야! 난 늘 훨훨 날아다니는 것 같은 딸을 원했어. 그런데 어쩌다 천사를 갖게 됐는지 모르겠어.

앤슬리 부인은 웃음을 터트린 후 들릴락 말락 하게 “바바라도 천산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그런데 걘 그냥 흰 날개 달린 천사가 아니라 팔색조 같은 천사잖아! , 애들은 남자들하고 바닷가를 거닐고 있고, 우린 여기 이렇게 앉아있으니까 옛날 기억이 사무치는구먼.

앤슬리 부인은 다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 친구도 점점 길어지는 저 장엄한 유적들의 그림자를 보면서 수많은 기억을 떠올리는 줄로 알겠지. 하지만 아니야. 쟨 그냥 뜨개질에 빠져있는 거야. 쟤가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어! 바바라는 틀림없이 캄폴리에리 가문 청년과 약혼을 하고 돌아올 거야. 그러면 쟨 뉴욕 집을 팔고 로마에서 걔들 집 근처에 정착하겠지. 쟤도 눈치가 있으니 애들한테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살진 않을 거고. 그래도 훌륭한 요리사를 두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브리지나 칵테일 모임도 갖고, 손주들도 보면서 완벽하게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겠지.

이쯤에서 밀려오는 자기혐오에 슬레이드 부인은 상상의 나래를 접었다.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레이스 앤슬리를 두고 어찌 이리 심술궂은 생각을 한단 말인가! 정말 이 질투심을 고칠 방도가 없는 걸까? 고치기엔 너무 늦었나?

그녀는 일어서서 난간에 기대어 이 시간 무렵의 마법 같은 풍경으로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 풍경은 그녀의 들끓는 마음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악화시켰다. 그녀의 시선이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벌써 콜로세움의 황금빛 옆면은 자주색 그림자에 잠겨있었고, 그 위로 하늘이 아무런 빛이나 색채 없이 투명한 수정처럼 굽어있었다. 오후와 저녁이 중천에 매달려 균형을 이루고 있는 순간이었다.

슬레이드 부인이 돌아서서 그녀의 손을 친구의 팔 위에 얹었다. 갑작스런 손길에 앤슬리 부인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해가 졌어. 안 무서워?

“뭐가 무서워?

“로마 열병이나 폐렴 말이야! 그 겨울에 심하게 앓아 누웠잖아. 너 어릴 때부터 목이 많이 약했고.

“응, 여기 위는 괜찮아. 저 밑 로마 광장 같은 데는 순식간에 엄청 추워지지만, 여긴 안 그렇잖아.

“아, 물론 네가 잘 알겠지. 특히 조심해야 했으니까.” 슬레이드 부인이 난간으로 돌아섰다. ‘저 친구를 미워하지 않도록 한번 더 애써보자’고 다짐한 후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 위에서 로마 광장을 볼 때마다 네 이모할머니 이야기 생각이 나. 맞지? 엄청 사악한 할멈 말이야.

“어, 그래. 해리엇 할머니. 해진 후 여동생을 로마 광장에 보내서 앨범에 꽂을 밤에 피는 꽃을 꺾어오라고 했지. 우리 할머니들은 전부 말린 꽃 앨범을 갖고 있었어.

슬레이드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동생을 보낸 진짜 이유는 둘이서 같은 남자를 사랑해서였다면서.

“글쎄,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래. 해리엇 할머니가 몇 년 후에 실토했다면서. 어쨌든 가엾은 동생이 열병에 걸려 죽은 건 사실이야. 어릴 때 엄마한테 그 얘기 들으면서 무서워했던 기억이 나.

“난 너한테 그 얘기 듣고 무서워했던 기억이 나. 옛날에 우리가 여기 왔던 겨울에 말이야. 내가 델핀과 약혼했던 그 겨울.

앤슬리 부인이 나지막이 웃었다. “아니, 정말? 나 때문에 무서웠다고? 네가 그렇게 쉽게 무서움을 탄다는 게 안 믿어지는데.

“쉽게 타진 않지. 그래도 그땐 무서웠어. 그땐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무서울 때가 많았어. 무슨 뜻인지 알지?

“나는…… 그래……” 앤슬리 부인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무튼 그래서 그 못된 할멈 이야기가 그렇게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나 봐.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 ‘로마 열병은 이제 없지만 로마 광장은 해진 후, 특히 더운 날일수록, 저녁에 엄청 추워지지. 콜로세움은 더 춥고 습하고.

“콜로세움?

“그래. 밤에 문을 걸어 잠그고 나면 거기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지. 아니, 못 들어가는 거지. 그래도 그 당시엔 다 들어가는 수가 있었어. 마땅히 만날 곳이 없는 연인들이 거기서 밀회를 갖는 일이 많았으니까. 너도 알지?

“난…… 난 모르겠는데.

“모른다고? 갓 해가 진 저녁에 어떤 유적지에 갔다가 심한 감기에 걸렸던 걸 잊었다고? 달맞이 간다고 나갔었잖아. 사람들이 그래서 네가 감기 걸린 거라고 했는데.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앤슬리 부인이 대답했다. “그랬어?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그래. 네가 나았길래 망정이지. 그래도 네 친구들이 네가 감기에 걸리게 된 사연을 의아하게 생각했을 거야. 네가 목 때문에 얼마나 조심스러워하고, 네 엄마도 얼마나 널 챙겼는지 아니까. 그날 밤 늦게까지 여기저기 구경 다녔다고 했지?

“아마 그랬겠지. 아무리 조심스러운 사람도 항상 그럴 순 없으니까. 어쩌다 지금 그 생각이 났어?

슬레이드 부인이 대답할 말을 못 찾은 듯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왜냐면 더 이상 못 참겠으니까!

앤슬리 부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휘둥그레진 눈이 창백했다. “뭘 못 참겠단 말이야?

“뭐냐구? 왜 갔는지 내가 아는데 네가 모른다는 것 말이야.

“내가 왜 갔는지?

“그래. 내가 괜히 아는 체 하는 줄 아나 보지? 너 거기 나하고 약혼한 남자 만나러 갔잖아! 네가 받고 간 편지 내용을 한 자도 빠트리지 않고 말해줄 수도 있어!

슬레이드 부인이 말하는 동안 앤슬리 부인이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그녀의 핸드백, 뜨갯감, 장갑이 어지러이 바닥에 미끄러져 내렸다. 그녀는 마치 유령을 보듯이 슬레이드 부인을 쳐다봤다.

“아니, 아니, 그러지 마.” 그녀가 더듬더듬 말했다.

“왜? 들어 봐, 못 믿겠거든. ‘내 하나뿐인 사랑, 이대로 이렇게 지낼 순 없소. 당신과 단 둘이 만나야겠소. 내일 해가 지면 곧장 콜로세움으로 오시오. 당신을 들여보내줄 사람이 있을 거요. 당신이 두려워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모를 것이오.’ 혹시 편지 내용을 잊어버렸니?

의자에 의지해 몸을 가누고 있던 앤슬리 부인이 의외로 담담하게 친구를 응시하며 대답했다. “아니, 나도 다 외우고 있어.

“서명도 기억하겠네? ‘오직 당신만의 D. S.’였지? 맞지? 그 편지 때문에 해 지고 저녁에 나갔던 거 아냐?

앤슬리 부인은 여전히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슬레이드 부인이 보기에 앤슬리 부인이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작고 고요한 얼굴 이면에서 갈등이 일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감정을 저렇게 잘 숨길 줄이야.” 슬레이드 부인은 부아가 치밀어 오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때 앤슬리 부인이 말했다. “네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어. 그 편지를 당장 불태워버렸는데.

“그래, 당연히 그랬겠지. 네가 얼마나 조심스러운데.” 이제 비아냥거림에 거리낌이 없었다. “네가 편지를 불태웠는데 도대체 내가 어떻게 그 내용을 아는지가 궁금한가 보구나. 맞지?

슬레이드 부인이 기다렸지만 앤슬리 부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 말해 주지. 내가 그 편지를 썼으니까 알 수밖에!

“네가 그걸 썼다고?

“그래!

두 여인은 마지막 황혼을 받으며 한참 동안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앤슬리 부인이 털썩 의자에 주저앉아서는 “아!”하고 탄식을 뱉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슬레이드 부인은 그녀의 다음 말이나 행동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무 말도, 미동도 없자 마침내 그녀가 먼저 “내가 끔찍한가 보구나.” 하고 말했다.

앤슬리 부인이 손을 무릎으로 떨구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네 생각을 한 게 아냐. 그게 그이한테 받은 유일한 편지여서 그래.

“근데 그걸 내가 썼다고. 그래, 내가 썼어! 하지만 난 그이의 약혼녀였다고! 그 생각은 안 났어?

앤슬리 부인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변명할 생각은 없어. 왜 안 났겠어?

“그런데도 간 거야?

“그래, 갔어.

슬레이드 부인은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작은 여인을 내려다봤다. 분노의 불길은 이미 사그라지고, 도대체 친구에게 쓸데없는 상처를 입혀 무슨 만족을 얻으려 했는지 자책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정당화해야 했다.

“넌 아니? 내가 그걸 알고 널 얼마나 미워했는지. 난 네가 델핀을 사랑하는 걸 알고 있었어. 난 무서웠어, 네가, 네 온화함이, 네 상냥함이. 난 네가 내 방해물이 되지 않길 바랐던 것뿐이야. 단 몇 주만, 내가 그를 믿을 수 있을 때까지만. 그래서 분노에 눈이 멀어 그 편지를 썼던 거야. 나도 이제 와서 왜 이 얘길 꺼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날 그 이후로도 계속 미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앤슬리 부인이 천천히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그 앙금을 내 마음에서 다 털어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고.” 잠시 멈췄다가 슬레이드 부인이 말을 이었다. “네가 편지를 없앴다니 다행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네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도 없어.

앤슬리 부인이 다시 아무 말이 없자 그녀를 내려다보며 기대어 서 있던 슬레이드 부인은 인간적 교감의 따뜻한 흐름에서 단절되는 듯한 기묘한 고립감을 느꼈다. “내가 괴물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

“모르겠어. 내가 받은 유일한 편지가 그이가 쓴 게 아니었다니.

“아아! 너 여태 그이를 못 잊는 거니?

“그 추억을 못 잊는 거야.” 앤슬리 부인이 대답했다.

슬레이드 부인은 계속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충격을 입고 그녀의 몸이 쪼그라든 것 같았다. 나중에 일어서면 한 줌의 먼지처럼 바람에 흩어질 것만 같았다. 그 모습에 슬레이드 부인의 질투심이 다시 불쑥 되돌아왔다. 그 오랜 세월을 그 편지 하나에 의지해 살아왔다니. 그이를 얼마나 사랑했기에 재로 변한 편지의 추억을 이다지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인가! 제 친구와 약혼한 남자의 편지를. 그녀야말로 괴물이 아닌가?

“넌 그이를 나한테서 뺏으려고 애썼던 거지? 그래도 넌 실패했고, 내가 그이를 차지했어. 그게 다야.

“그래, 그게 다야.

“지금 와선 괜히 그 얘길 꺼냈다 싶구나. 난 네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 재미있어할 줄 알았지. 네 말대로 얼마나 오래전 일이야? 너도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네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 내가 알 리가 없잖아. 넌 그 일이 있은 지 두 달 만에 호러스 앤슬리 씨랑 결혼했잖아? 네가 회복되자마자 네 엄마가 피렌체로 널 데려가서 결혼시켰잖아. 다들 좀 놀랐지.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해치우니까. 그래도 난 왠지 알 것 같았어. 욱하는 마음에 델핀이랑 나보다 먼저 결혼해버린 거라고. 철없을 땐 가장 신중해야 할 일을 한없이 어리석은 이유로 결정하곤 하잖아. 어쨌든 네가 그렇게 빨리 결혼해서 난 네가 그리 심각한 게 아니었다고 확신했어.

“그래, 그랬겠네.” 앤슬리 부인이 동의했다.

머리 위의 맑은 하늘에선 황금빛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어스름이 깔리며 어느새 일곱 언덕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발 아래 나뭇잎들 사이로 여기저기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던 테라스에 오고 가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웨이터들이 계단머리 출입구를 내다보고 돌아갔다가 쟁반, 냅킨, 와인 플라스크 따위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테이블도 옮기고, 의자도 가지런히 놓았다. 줄에 매달린 희미한 전등불들이 하나 둘 꺼졌다. 긴 코트를 입은 뚱뚱한 여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서툰 이태리어로 그녀의 너덜너덜한 여행안내서를 묶어뒀던 고무줄을 못 봤냐고 물었다. 그녀는 웨이터의 도움을 받아 점심을 먹었던 테이블 밑을 지팡이로 더듬었다.

슬레이드 부인과 앤슬리 부인이 앉아있는 테라스 구석은 아직 어둡고 사람이 없었다. 한참 동안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침내 슬레이드 부인이 침묵을 깼다. “내가 아마 장난으로 그랬던 것 같아.

“장난이라고?

“여자애들이 가끔 잔인할 때가 있잖아. 특히 사랑에 빠진 여자애들은 말이야. 그날 저녁 네가 거기 어둠 속에서 사람들 눈을 피해 기다리면서, 무슨 소리만 나도 귀를 기울이고, 어떻게든 들어가보려고 애쓰고 그러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혼자 낄낄대던 게 생각나. 물론 그 뒤로 네가 아팠을 때는 마음이 안 좋았지만.

앤슬리 부인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마침내 천천히 친구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그런데 나 안 기다렸어. 그이가 다 준비해뒀으니까. 그이가 먼저 와 있었어. 우린 바로 들어갔고.

슬레이드 부인이 기대어 있던 몸을 곧추 세우고 격하게 말했다. “델핀이 와 있었어? 거길 들어갔다고? 거짓말 마!

되레 놀란 듯한 앤슬리 부인의 목소리가 갈수록 분명해졌다. “정말 왔어. 당연히 왔지.

“왔다고? 네가 거기 있는 줄을 어떻게 알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앤슬리 부인이 생각을 정리하는 듯 망설이다가 말했다. “내가 답장을 보냈으니까. 거기 가겠다고 했거든. 그래서 왔지.

슬레이드 부인이 두 손을 쳐들어 얼굴로 가져갔다. “맙소사! 답장을 했다고? 답장을 할 줄이야……”

“편지를 써서 보내놓고 어떻게 답장 생각을 못 했어?

“그래. 나야 분노로 눈이 멀어있었으니까.

앤슬리 부인이 일어서서 모피 스카프를 목에 두르며 말했다. “여기 춥다. 가는 게 좋겠어. 너한텐 미안해.

뜻밖의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슬레이드 부인이 “그래, 가는 게 좋겠다.”라며 핸드백과 망토를 챙겼다. “그런데 네가 왜 미안한지는 모르겠네.”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앤슬리 부인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콜로세움을 향해 서서 대답했다. “글쎄, 그날 밤 내가 혼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으니까.

슬레이드 부인이 심란한 듯 웃었다. “그래, 그건 내가 졌다. 그래도 그걸 가지고 너한테 배 아파하면 안 되겠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거기다 결국 내가 다 가졌잖아. 그이랑 25년을 함께 했으니까. 넌 그이가 쓰지도 않은 편지 한 장밖에 못 가졌고.

앤슬리 부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테라스 문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고 친구를 돌아봤다.

“난 바바라를 가졌어.” 그녀는 슬레이드 부인을 등뒤에 두고 계단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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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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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young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1.19 산처럼 제니가 바바라보다 어리고 슬레이드 부인도 앤슬리 부인 결혼 후 오래지 않아 결혼했을 거 같으니까 그럴 가능성은 낮을 거 같아요.
  • 답댓글 작성자산처럼 | 작성시간 14.01.19 young 오.... 그렇군요...
  • 작성자injafan | 작성시간 14.01.20 왜 제목만 보고서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소설일거라 지레짐작했나 모르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Brother.^^ (바탕체는 내가 제일 선호하는 글씨체인데...ㅋ)
  • 답댓글 작성자young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1.20 제목이 그럴 만하지. 고대는 아니지만 1934년 발표된 작품이니 오래되기도 했고. Glad u enjoyed it:)
  • 작성자lee856 | 작성시간 14.01.20 며칠전에 들어와서 보고 활자가 너무 작아서 인쇄해서 봐야지 하고 두었다가
    오늘 다시 들어오니 글자가 커서, 어, 이상하다? 내컴이 달라진 건가? 하며 커진활자가 좋아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다 읽고 댓글을 보니 이유를 알겠군요.
    여기서 이렇게 짧은 글을 읽으니 좋네요.
    자주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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