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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왜 견인의 교리를 반드시 바르게 알아야만 할까요? XII (변승우 목사님의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 중에서)

작성자소망으로|작성시간26.06.12|조회수12 목록 댓글 0

  ■ 왜 견인의 교리를 반드시 바르게 알아야만 할까요?

 

  (4) 견인의 교리에 근거하여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가십시오!

 

  3) 하늘에 있는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준 본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브리서 11:8-10)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9절)라고 말씀한대로 가나안 땅에서도 이방 땅에 있는 것 같이 장막에 거했습니다. 왜냐하면 설사 약속의 땅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본향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0절)

 

  이 '성'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13-16절에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먼저, 여기서 "이 사람들"은 앞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 전체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과 야곱을 가리킵니다. 

 

  또, 그들이 받지 못한 '약속들'은 하나님의 약속 자체보다는 약속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이 '약속들을 받지 못한 채 죽었다'고 단언합니다. 이러한 진술은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다'는 6장 15절과 충돌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모순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은 그가 죽기 전에 부분적으로 또는 그림자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특히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음으로써 셀 수 없는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부분적으로 이미 받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6장 15절에 언급된 것처럼 아브라함은 이미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들은 아브라함이 죽을때까지 충분히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땅에 대한 약속은 두 가지 면에서 그가 죽을 때까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이삭과 야곱도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그 땅의 소유권을 얻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약속인 하늘 본향에 들어가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약속들을 받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음을 따라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습니다.'(13절) 여기서 '멀리서'는 '거리적이기보다는 시간적이고, 그 관점은 종말론적'(종말론적 관점의 시간적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멀리서 보고 환영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본향입니다(14-16절). 그들의 관심이 이처럼 멀리 있는 하늘 본향이기에, 자신들이 '지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고백했습니다.'(13절) 실제로 그들은 평생을 나그네로 살았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입으로 자신들이 나그네라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창세기 23:4)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세기 47:9)

 

  그런데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가는 모습은 족장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의 저자들은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서 3:20)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베드로전서 1:17)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전서 2:11)

 

  히브리서 저자는 14절에서 족장들이 자신을 나그네라고 한 고백의 중요한 함의를 밝혀줍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이처럼 족장들이 스스로를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고백한 것은 그들이 지상에는 없는 다른 '본향'을 찾고 있다는 반증이었습니다. '본향'은 사람이 태어난 곳으로 실제로 소속감을 느끼는 도시를 뜻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본향'에 대한 갈망은 매우 강렬했습니다. 나그네들은 위험을 무릅쓰고서 본향으로 돌아가려고 애썼습니다. 족장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본향이 지상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지상에서는 고달픈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히브리서 11:15)

 

  여기서 '그들이 나온바 본향'은 아브라함이 떠나왔던 메소포타미아를 지칭합니다. 그런데 족장들이 갈망하던 곳이 메소포타미아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택하기 위해 종을 메소포타미아로 보낼 때, 종에게 이삭은 그곳으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창 24:6). 야곱은 몸소 메소포타미아로 피신하였지만, 그곳을 본향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창 31:3). 그러므로 족장들이 염두에 두고 있던 본향이 지상에 있는 메소포타미아가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에게 심각한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한 번 떠났던 세상(유대교)으로 다시 돌아가서 멸망할 위기에 직면해 있었는데(참조 10:26-31, 39), 그처럼 돌아가는 것은 참된 본향을 갈망하는 나그네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6)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족장들이 갈망하던 '본향'의 정체를 명확하게 규명합니다. 앞서 10절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이라고 설명했던 본향은 이 구절에 나오는 '더 나은 본향 ...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와 동일합니다. 그것은 지상의 것보다 '더 나은 것'으로서, '천상의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족장들이 이처럼 더 나은 천상의 본향을 '사모하고 있다'고 기술합니다. 저자가 여기서 '사모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족장들이 천상의 본향을 얼마나 강력하게 열망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저자가 현재형 동사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흥리롭습니다. 현재형 시제는 천상의 본향을 사모하는 것이 족장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 지속적인 특징이었음을 시사해줍니다. 그들이 더 나은 본향을 늘 사모하였기에,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그들의 신앙고백적 입장이 그들 삶의 전 영역에 항상 실제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천상의 본향에 대한 이처럼 강렬하고도 지속적인 열망을 가진 족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16절)

 

  실제로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다는 사실은(출 3:6, 15-16) 이것을 잘 입증해줍니다(참고. 막 12:26).

 

  둘째,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예비하셨습니다.'(16절)

 

  앞서 저자는 족장들이 고대하는 목표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이라고 했는데(10절), 그 본향을 강렬하게 열망하는 족장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몸소 '한 도시'를 이미 '예비하셨다'고 합니다(참조. 계 21:2). 

 

  이것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아니라 본향을 추구하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하나님입니다. 즉 그들만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 즉 천국에는 오직 이런 사람들만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족장들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저자는 다음 장인 히브리서 12장 22-24절에서 이 도시를 '시온산', '천상의 예루살렘',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시' 등으로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족장들을 위해 예비하신 이 도시가 예수님의 피를 통해 완전하게 된 의인들을 위한 도시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인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그러므로 우리도 족장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 도시를 갈망하며, 지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히브리서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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