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 아빠가 싫어요!
자녀를 바르게 이끄는 법 - 1
휴 파일 지음 / 이윤건 옮김
![]() |
| ▲ 휴 파일(Hugh F. Pyle) 목사의 책 "The Taming of the Teena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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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나는 엄마 아빠가 싫어요!
2. 부모들에게 책임이 있는가?
3. 부모들이 규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4. “자녀를 훈육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5. 지금 즉시 세대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다리를 놓아라!
6. 이것이 우리 십대 청소년들을 바르게 이끄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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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내 백성들아, 내 법을 경청하고 내 입의 말에 너희 귀를 기울일지어다』(시 78:1).
『우리가 그것들을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오는 세대에게 주를 찬양함과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경이로운 일들을 전하리로다. 그가 한 증거를 야곱 안에 세우시고 이스라엘 안에 율법을 정하셨도다. 이는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시어 그들의 자손들에게 알리도록 하신 것이니 이는 오는 세대, 곧 태어날 자손들에게 그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들에게 그것들을 선포해야 하리니 이는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잊지 아니하며 오직 그의 명령들을 지키게 하여 그들의 조상들처럼 완고하고 거역한 세대 곧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들의 영이 하나님과 더불어 견고하지 못한 세대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프라임 자손들이 무장하였으며 활을 지니고 다녔으나 전쟁의 날에는 물러갔도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안에서 행하기를 거절하였으며』(시 78:4-10).
전미 경찰청은 두 손 다 들어버렸다! 미주 신문 기사들은 온통 반항하는 십대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부모들의 좌절 섞인 실패담을 다루고 있는 실정이다. “만의 하나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통제하는 데서 손을 떼는 날에는 곧바로 전 미국의 아이들 한 명당 경찰관 한 명씩이 배치되어야 할 정도다!”라고 말하는 경찰 관계자도 있으니 사태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 나는 엄마 아빠가 싫어요!
청소년 재판을 담당했던 어떤 판사는 자신이 퇴직하면 “나는 엄마 아빠가 싫어요!”라는 제목으로 책 한 권쯤은 너끈히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 적이 있다.
새벽 1시경이면 거리를 배회하거나 데이튼 비치의 술집 등지에서 체포되는 십대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이스터 축제 때가 되면 이 십대들의 대부분이 플로리다 해변에서 거의 나체 차림으로 나다니거나 아니면 싸롱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야한 옷을 걸치고 활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로더데일이라는 휴양지에서는 십대들이 호텔 창 밖으로 코코넛을 내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또 오클라호마나 미시간 같이 이름있는 몇몇 주에서는 교회들이 십대들에 의해서 신성모독을 당하기도 했다. 방화가 일어나고, 상점들은 털리고, 길가던 여성들이 추행당하고,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일들이 바로 10년 동안 우리의 십대 자녀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범죄이다!
<케이블>지에 기고하고 있는 빌 맥키는 이렇게 말한다. “이들이야말로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세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들과의 세대 간 격차는 실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니까요. 그들은 작은 일에도 금새 격분하는데다가 도대체 자제할 줄을 모릅니다. 환각제를 복용하고, 그런 상태로 집에 들어가서도 똑같은 문제를 벌입니다. 또 오로지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반항에 대해서 어느 누가 속 시원한 해결책을 찾아냈다는 얘기는 들은 바도 없습니다. 그들은 기존 질서와 법규를 거스르고 반항하며 또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이 세상에서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을 꼽으라면 모르면 몰라도 아마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학교 교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솔로몬의 잠언은 바로 20세기를 겨냥한 말씀이 아닌가 싶다.
『자기들의 아버지를 저주하고, 자기들의 어머니를 축복하지 않는 세대가 있느니라. 자기들의 눈에는 순결하나, 아직도 자기들의 더러움을 씻어내지 아니하는 세대가 있느니라. 오, 그들의 눈이 얼마나 거만한가! 그러한 세대가 있나니 그들의 눈꺼풀은 높이 들렸느니라. 앞니는 검 같고 어금니는 칼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고 궁핍한 자를 사람 가운데서 삼키는 세대가 있느니라』(잠 30:11-14).
지난 70여 년 동안 이 나라(미국) 국민의 절반 정도가 25세 이하의 젊은이들이었다.
「“서른살 이상 먹은 사람은 절대로 믿지 말라.” 이것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내걸고 있는 슬로건입니다. 좋은 차, 안락한 침실 등등 그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생활의 이기는 다름아닌 바로 삼십대 이상의 어른들에 의해서 제공된 것인데도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맥스 래퍼티의 말이다).
맥스 래퍼티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수년 동안 공립 학교의 교육감을 지낸 바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 세대는 태만하고 거부된 세대이지요. 오늘날 모든 것이 그들에게 풍족한데도 그들은 뜨거운 코코아, 비타민, 알약, 바비 인형, 무료대학 학위 등등이 자기들에게는 그렇게 충분치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카웃 단을 지도하는 것이며, 청소년 경기 때마다 심판을 보는 것이며, 가정 상담원을 후원하는 것이며, 또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이끄는 것까지, 이러이러한 많은 일들에 우리 부모님들 대다수가 애쓰면서도 결코 기진맥진 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해결책일까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어떤 어머니에 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잠시 인용하면 이렇다. 「내 아들이 행복하고 안전한 것, 이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랍니다.」 반면 이 어머니의 열네 살 난 아들은 이렇게 대꾸했다. 「전요, 우리 엄마가 내 행복에 대해서 그만 좀 얘기하셨으면 해요. 그런건 제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거든요. 엄마의 잔소리는요, 정말이지 저를 미치게 한다구요.」
또 열다섯 살 난 아들을 둔 어떤 아버지는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아들과 저와의 관계는 한마디로 실수연발의 비극과 같습니다. 나는 아들의 친구이지요. 그렇지만 아들은 저를 자기의 적으로 간주합니다. 아들한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저를 무시합니다!」
이와 같은 딜레마는 이 한 컷의 만화가 잘 대변하고 있다. 그 만화는 한 십대 소년이 옷 한 벌을 사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소년은 거울 앞에 서서 그 옷에 만족하면서 판매원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우리 부모님이 이 옷이 맘에 든다고 하시면 다시 바꾸러 와도 되죠?」
「박테리아를 보호하라. 이것이 바로 많은 아이들이 지닌 유일한 문화이다.」라는 말은 그 만화에 달린 문구이다. 또 이런 문구도 있다. 「여러분의 십대 딸로 하여금 뜨거운 물에 손끝도 대지 않게 하라. 접시가 지저분하든말든 상관말고 그대로 놔두라!」 십대 소녀들 대부분이 제일 흥미있어 하는 것은 바로 설거지를 끝낸 구정물이다! 이러한 말들은 이들 비뚤어진 세대를 대변하는 적절한 표현이지 않은가?
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불순종하고 반항하고 도전하는가? 왜 우리의 가정에 이처럼 끊임없이 불화가 있어야만 하는가? <다음에 계속> BP
목차
1. 나는 엄마 아빠가 싫어요!
2. 부모들에게 책임이 있는가?
3. 부모들이 규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4. “자녀를 훈육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5. 지금 즉시 세대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다리를 놓아라!
6. 이것이 우리 십대 청소년들을 바르게 이끄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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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내 백성들아, 내 법을 경청하고 내 입의 말에 너희 귀를 기울일지어다』(시 78:1).
『우리가 그것들을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오는 세대에게 주를 찬양함과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경이로운 일들을 전하리로다. 그가 한 증거를 야곱 안에 세우시고 이스라엘 안에 율법을 정하셨도다. 이는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시어 그들의 자손들에게 알리도록 하신 것이니 이는 오는 세대, 곧 태어날 자손들에게 그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들에게 그것들을 선포해야 하리니 이는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잊지 아니하며 오직 그의 명령들을 지키게 하여 그들의 조상들처럼 완고하고 거역한 세대 곧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들의 영이 하나님과 더불어 견고하지 못한 세대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프라임 자손들이 무장하였으며 활을 지니고 다녔으나 전쟁의 날에는 물러갔도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안에서 행하기를 거절하였으며』(시 78:4-10).
전미 경찰청은 두 손 다 들어버렸다! 미주 신문 기사들은 온통 반항하는 십대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부모들의 좌절 섞인 실패담을 다루고 있는 실정이다. “만의 하나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통제하는 데서 손을 떼는 날에는 곧바로 전 미국의 아이들 한 명당 경찰관 한 명씩이 배치되어야 할 정도다!”라고 말하는 경찰 관계자도 있으니 사태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 나는 엄마 아빠가 싫어요!
청소년 재판을 담당했던 어떤 판사는 자신이 퇴직하면 “나는 엄마 아빠가 싫어요!”라는 제목으로 책 한 권쯤은 너끈히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 적이 있다.
새벽 1시경이면 거리를 배회하거나 데이튼 비치의 술집 등지에서 체포되는 십대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이스터 축제 때가 되면 이 십대들의 대부분이 플로리다 해변에서 거의 나체 차림으로 나다니거나 아니면 싸롱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야한 옷을 걸치고 활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로더데일이라는 휴양지에서는 십대들이 호텔 창 밖으로 코코넛을 내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또 오클라호마나 미시간 같이 이름있는 몇몇 주에서는 교회들이 십대들에 의해서 신성모독을 당하기도 했다. 방화가 일어나고, 상점들은 털리고, 길가던 여성들이 추행당하고,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일들이 바로 10년 동안 우리의 십대 자녀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범죄이다!
<케이블>지에 기고하고 있는 빌 맥키는 이렇게 말한다. “이들이야말로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세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들과의 세대 간 격차는 실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니까요. 그들은 작은 일에도 금새 격분하는데다가 도대체 자제할 줄을 모릅니다. 환각제를 복용하고, 그런 상태로 집에 들어가서도 똑같은 문제를 벌입니다. 또 오로지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반항에 대해서 어느 누가 속 시원한 해결책을 찾아냈다는 얘기는 들은 바도 없습니다. 그들은 기존 질서와 법규를 거스르고 반항하며 또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이 세상에서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을 꼽으라면 모르면 몰라도 아마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학교 교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솔로몬의 잠언은 바로 20세기를 겨냥한 말씀이 아닌가 싶다.
『자기들의 아버지를 저주하고, 자기들의 어머니를 축복하지 않는 세대가 있느니라. 자기들의 눈에는 순결하나, 아직도 자기들의 더러움을 씻어내지 아니하는 세대가 있느니라. 오, 그들의 눈이 얼마나 거만한가! 그러한 세대가 있나니 그들의 눈꺼풀은 높이 들렸느니라. 앞니는 검 같고 어금니는 칼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고 궁핍한 자를 사람 가운데서 삼키는 세대가 있느니라』(잠 30:11-14).
지난 70여 년 동안 이 나라(미국) 국민의 절반 정도가 25세 이하의 젊은이들이었다.
「“서른살 이상 먹은 사람은 절대로 믿지 말라.” 이것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내걸고 있는 슬로건입니다. 좋은 차, 안락한 침실 등등 그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생활의 이기는 다름아닌 바로 삼십대 이상의 어른들에 의해서 제공된 것인데도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맥스 래퍼티의 말이다).
맥스 래퍼티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수년 동안 공립 학교의 교육감을 지낸 바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 세대는 태만하고 거부된 세대이지요. 오늘날 모든 것이 그들에게 풍족한데도 그들은 뜨거운 코코아, 비타민, 알약, 바비 인형, 무료대학 학위 등등이 자기들에게는 그렇게 충분치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카웃 단을 지도하는 것이며, 청소년 경기 때마다 심판을 보는 것이며, 가정 상담원을 후원하는 것이며, 또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이끄는 것까지, 이러이러한 많은 일들에 우리 부모님들 대다수가 애쓰면서도 결코 기진맥진 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해결책일까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어떤 어머니에 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잠시 인용하면 이렇다. 「내 아들이 행복하고 안전한 것, 이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랍니다.」 반면 이 어머니의 열네 살 난 아들은 이렇게 대꾸했다. 「전요, 우리 엄마가 내 행복에 대해서 그만 좀 얘기하셨으면 해요. 그런건 제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거든요. 엄마의 잔소리는요, 정말이지 저를 미치게 한다구요.」
또 열다섯 살 난 아들을 둔 어떤 아버지는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아들과 저와의 관계는 한마디로 실수연발의 비극과 같습니다. 나는 아들의 친구이지요. 그렇지만 아들은 저를 자기의 적으로 간주합니다. 아들한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저를 무시합니다!」
이와 같은 딜레마는 이 한 컷의 만화가 잘 대변하고 있다. 그 만화는 한 십대 소년이 옷 한 벌을 사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소년은 거울 앞에 서서 그 옷에 만족하면서 판매원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우리 부모님이 이 옷이 맘에 든다고 하시면 다시 바꾸러 와도 되죠?」
「박테리아를 보호하라. 이것이 바로 많은 아이들이 지닌 유일한 문화이다.」라는 말은 그 만화에 달린 문구이다. 또 이런 문구도 있다. 「여러분의 십대 딸로 하여금 뜨거운 물에 손끝도 대지 않게 하라. 접시가 지저분하든말든 상관말고 그대로 놔두라!」 십대 소녀들 대부분이 제일 흥미있어 하는 것은 바로 설거지를 끝낸 구정물이다! 이러한 말들은 이들 비뚤어진 세대를 대변하는 적절한 표현이지 않은가?
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불순종하고 반항하고 도전하는가? 왜 우리의 가정에 이처럼 끊임없이 불화가 있어야만 하는가? <다음에 계속> 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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