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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국의 언어와 역사-페데리코 마시니

작성자Alkafirun|작성시간14.12.28|조회수102 목록 댓글 1



근대 중국의 언어와 역사

저자
페데리코 마시니 지음
출판사
소명출판 | 2005-11-20 출간
카테고리
외국어
책소개
근대 중국의 언어와 역사를 연구한 책. 중국어 어휘의 형성과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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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뉴스 한 꼭지를 보다가, "유치원"이 "일제잔재"라서 "유아학교"로 명칭을 바꾸겠다는 법안을 제출한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41228095708368

언론 기사는 종종 독자들을 낚기 위해서, 또는 언론 자체의 성향때문에 사실관계를 교묘하게 비트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바꾸자는게 해당 정치인이 주장하는데로 "일제잔재"이기 때문일까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았죠.


일제 강점기에 처음 사용된 유치원 명칭이 계속 사용되고 있어 민족자긍심 회복을 위해 


법안 제출의 취지가 설명된 대목을 읽어 보니, 과연 그러합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네요.

그래서 저는 부득이하게 또 본의 아니지만,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주장"을 하는 누군가를 까는(...) 글을 쓸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제의 잔재"란 표현은 어떤 것을 배격하기 위해 편리하게 사용되는 딱지붙이기에 제격입니다.

(특히 특정 단어가 일제잔재니 쓰지 말자란 소리가 심심하면 나옵니다)

누군가가 OO은 일제의 잔재다란 주장을 처음하면, 그것이 완전히 해명되기 전까지는 일제의 잔재로 경원시되고,

나중에 해명이 되어도 처음 유포된 것이 완전히 뒤집어지지는 않을 때도 있지요.


그럼 먼저 일제잔재(日帝殘滓)란 게 무언지 알아봅시다.

일제는 일본제국주의의 준말이고, 잔재는 남은 찌꺼기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식민지시대 때 한반도를 지배했던 제국주의 일본세력이 남기고 간 찌꺼기(말이든 문화든)라고 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럼 과연 "유치원"이 정말로 일제잔재일까요?


유치원의 역사를 찾아보니, 유치원이란 개념과 제도를 처음 만든 사람은 유아교육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독일의 교육자 프리드리히 프뢰벨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분은 취학전 아동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는데, 정원사가 식물의 본성에 따라 물이나 햇빛 가지치기를 해주듯이, 아동들도 그 본성에 따라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는 교육관을 가지셨더군요. 그래서 그러한 아동을 위한 환경조성을 위한 개념(및 시설을) Kindergarten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독일어로 "아이들의 뜰"(정원)이란 뜻이죠. 이 단어는 프뢰벨이 직접 만들었고 영어에서도 독어를 그대로 가져다가 Kindergarten이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독일(당시 프로이센)제도를 모방해서 1876년 동경여자사범학교에 부속유치원을 설립한 게, 유치원이란 단어가 처음 사용된 용례라고 합니다. 그러니 일단 "유치원"이란 개념및 문화현상은 일제가 "창조"한, 일제 "고유"의 찌꺼기 문화는 아닌 셈입니다. 하긴 애초에 기사에서 유치원 자체를 없애자고는 안 했죠.


그렇다면 남는 건 결국 유치원(幼稚園)이란 단어 자체에 대한 시비 밖에 없습니다.

이건 다시 다음 두 가지로 해석가능합니다.


1. 일제가 유치원이란 단어에 뭔가 사악한(...) 의도를 담은 것이다 

2. 그냥 일본에서 만든 명칭이기 때문에 


1.은 제가 방금 생각한 거지만 좀 그럴싸?해 보입니다. 유치원에 들어가 있는 단어 유치를 주로 부정적인 뜻으로들

많이 쓰니까요. 저 녀석은 유치해. 너 참 유치하다. 실제로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유치하다란 단어에는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란 뜻이 있기 때문이죠. 혹시 조선아이들이 수준이 낮고 미숙하게 자라라고 지은 명칭 아녀?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데 사실 그런 의도라면 자기들도 자기 애들(일본애)한테 유치원이란 단어를 똑같이(...) 쓰진 않았을 겁니다.


아무튼 원어인 Kindergarten이 아이들의 뜰이란 뜻이기 때문에, 동산,뜰이란 뜻의 원(園)을 쓴 건 문제가 없습니다.

(학원의 院하고는 다른 뜻의 글자입니다) 문제는 아이들을 "유치"로 번역한 게 적절한가의 문제인데, 사실 이 문제는

고전문헌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현대어에서 유치는 주로 유치하다란 뜻의 명사로 쓰이지만, 예전에는 어린 아이를

가리키는데도 쓰였습니다.


 春澤情狀, 國人所指, 宜乎不病自斃, 若其無知幼稚, 有何嫉惡?

 김춘택의 정상(情狀)은 온 나라 사람들이 지탄하는 바이니 병이 들지 않고도 제 스스로 죽어야 마땅하겠지만, 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에게 무슨 미워할 것이 있겠는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유치란 단어로 검색한 결과입니다. "유치"가 어린아이란 뜻으로 쓰인 한국고전문헌의 예죠.

이상의 예를 통해서 Kindergarten은 원래 독일학자가 창안한 개념이고, 그 개념을 근대에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에서 만들어진 유치원이란 단어가 어원상 큰 문제는 없음을 아셨을 겁니다. 사견이지만 사실 굳이 바꿔본다면 유아원幼兒園이란 단어도 괜찮은 거 같습니다. (이 단어는 찾아보니 중국대륙에서 유치원이란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딱히 일제의 사악한(...) 음모나 의도같은 건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사에서 그런 설명도 없고요.


그렇다면 결론은 결국 일본에서 만든 용어이기 때문에 일제잔재이고, 배척해야 한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기사에 나온 의원분은 사무총장의 총장(總長)이란 단어도 교육(敎育)이란 단어도 같은 논리로 일제잔재로

배척해야 맞습니다. 일본에서 만든 용어일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요. 어디 그 뿐일까요. 의원議員이란 단어도 같은 논리로 일제잔재일 확률이 높습니다. 왜 이런 점은 지적 안 하는지 아니면 못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서론이 매우 길었습니다만, 이런 식의 자의적이고 무논리한 단어배척논리에 혹시 혹 하실까봐 상당히 전에

읽었던 이 페데리코 마시니의 <근대 중국의 언어와 역사>란 책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책은 사실 어휘교류사 내지는 문헌을 통한 최초 어원의 추구를 다루고 있는 내용이어서 해당분야에 관심없는 대부분의 분들에게는 그렇게 재미있거나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저자가 중국어를 전공한 이탈리아인 학자이고, 사실

한국의 일종의 언어적 일제잔재 떡밥에 관하여 직접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인 입장에서 중국과 일본의 어휘및사상교류사를 다루는데, 처음 읽는 독자분들은 내가 알고 또 흔히 쓰는 단어가 이렇게 만들어졌다니!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현대 한국어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한자어들이 이 시기에 중국/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들이거든요.  

사실 현대 한국어에 뿌리박혀 배제 불가능한 이른바 일본제 한자어의 면면에 대해서는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에서 일부 언급된 바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심지어 이들 일제 한자어들을 제외하면 현대 한국인은 "외마디 말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까지 표현되어 있죠. <근대 중국의 언어와 역사>에서는 새롭게, 일제 용어로 알고 열심히 배척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중국에서 먼저 번역되어 있던 용어더라란 허탈한 상황도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실 서양과의 접촉과정에서 먼저 용어 번역을 시작한 것은 중국측이었고, 일본도 근대화 초기에 중국측에서 먼저 번역된 책을 읽고 자기들 용어를 만드는데 많이 참고했다란 것입니다.


사실 중국과 일본도 근대화 과정에서 서로 적대적 관계였지만, 사상적 교류와 그에 따른 어휘와 용어의 상호교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죠. 개항 이전 일본이 얻었던 서구 정보의 상당수가 청에서 번역된 번역서에서 나왔고, 일본이 본격적인 번역작업을 시작하면서 역으로 중국에서 일본용어를 수입해간 사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는 번역이 본래 뜻을 담기에 적절했는가 아니었는가가 문제이지, "누가" 번역했기 때문에 배척해야한다는 논리는 그다지 설자리가 없습니다.


결국 엄밀한 어원고증없이,또한 그 표현을 배제해야 하는 정당한 사유없이 단순한 반일감정으로 일본에서 만들어지거나 들어온 용어라고 몰아 배척하는 한국 일부의 풍조와 주장이 얼마나 부질없고 사상누각의 주장인지 다시금 느끼게끔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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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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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stroboy | 작성시간 14.12.29 평소에 관성에 의해 비판없이 갖는 편견 중에 하나인데, 좋은 지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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