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논리학에서 유명하게 사용되는 까마귀의 역설(헴펠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 역설은 “모든 까마귀가 까맣다”는 것을 논리학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일단 기호 논리학에 관한 기초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 논리학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생각은 매우 단순하다. 문장은 하나의 표현―값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참인가 거짓인가” 하는 값으로 말이다.
일단 ‘그것’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무엇이거나(p) 무엇이 아니거나(~p ; not p) 둘 중에 하나로 소급된다. 만약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 라는 문장을 말할 경우 이것은 1차적으로 두 가지의 ‘그것’을 만들어 낸다. 바로 까마귀인 것(p)과, 까만 것(q)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참/거짓’이 가미되면 다음의 것들이 추가된다. 까마귀가 아닌 것(~p)과, 까맣지 않은 것(~q) 말이다. 그러면 ‘그것’과 ‘참/거짓’만으로 다음의 4가지로 환원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
(p,q) 까만 까마귀
(p,~q) 까맣지 않은 까마귀 ; 흰 까마귀
(~p,q) 까마귀가 아닌 까만 것 ; 검은 백조
(~p,~q) 까마귀가 아닌 까맣지 않은 것 ; 흰 백조
이 4가지 문장은 까마귀를 기준으로 모든 것에 대한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 항에 속하지 않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 문장은 일종의 함수처럼 작동하여, 변수의 자리에 오는 모든 관계들을 논리적으로 판단 가능하게 만든다. 가령 예를 들면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라는 논거에 관해서 “까만 까마귀”는 참이 되고, “흰 까마귀”는 거짓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흰 백조”따위는 논거로서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 논리학적으로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의 역설을 찾아보자. 까마귀는 까맣다를 논리학적인 형식에 맞춰 변형하면 “p는q이다(p⊃q)”라는 문장이 된다(p는 까마귀, q는 까맣다). 그리고 형식논리학에서 “까맣지 않다면 까마귀가 아니다”라는 대우조건의 문장을 도출해보자. “~q는~p이다(~q⊃~p)”이는 처음의 문장 p⊃q와 정확히 동일한 값을 지닌다. ~q⊃~p가 참이면 p⊃q도 참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까만 까마귀, 흰 까마귀, 검은 백조, 흰 백조는 각각 증거, 반증, 관계 없음, 관계없음으로 기능하는가? 까맣지 않다면 까마귀가 아니다에 까만 까마귀는 동일하게 증거로 기능한다. 흰 까마귀는 동일하게 반증으로 기능한다. 검은 백조는 동일하게 관계 없음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흰 백조는 갑자기 여기서 증거가 된다. 동치의 명제 p⊃q와 ~q⊃~p에 관해서 갑자기 흰 백조는 자신의 증거기능을 변경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잠정적 결론을 가능하게 한다. 언어=기호, 모든 것은 기호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은, 지극히 이상적이고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어느 정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물론 까마귀의 역설은 기호적 엄밀함에 근거한 ‘확실성’의 세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나, 이것이 논리학의 무의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치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서 수학적 공리체계의 증명 불가능성을 증명했지만, 그것이 수학적 세계의 무의미함을 증명한 것이 아니듯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급히 까마귀의 역설을 회의론적 결론으로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역설에 관한 헴펠 본인의 해결책 외, 다른 학파의 해결법은 http://en.wikipedia.org/wiki/Raven_paradox 을 참고.
출처: http://www.dogdrip.net/35360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