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당신을 만나다니
당신은 맥주를 사러 왔고 나는 라면을 사러 왔는데
편의점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죽기 전에 잠깐 당신을 만날 수 있다니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당신은 아직도
겸손의 손으로 캔맥주를 들고
당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나는
교만의 손으로 컵라면을 들고 그리운 눈인사를 나누며
아직도 사랑하는 척 부모님 안부를 묻는다
작년에 두 분 다 돌아가셨다고
어머니 돌아가신 지 벌써 몇해나 되었다고
공연히 부모님 안부를 나누는 거짓의 입술에
돌아가신 부모님만 또 돌아가신다
이미 우리의 계산은 다 끝났다
우리는 서로의 이익을 계산하다가 돌아서서
결국 무엇이 순익인지 알지 못하고
사랑이 죽음이 되는 시간은 흘러
오늘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다시 만났으나
당신이 산 캔맥주는 당신이 계산하고
내가 산 컵라면은 내가 계산한다
편의점에서 사랑을 판매한다 해도
할인가로 사랑을 살 수 있다 해도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없는 불량품
오늘밤 편의점의 흐린 불빛은
우리가 함꼐 거닐었던 항구의 불빛처럼 쓸쓸하다
잘 가라 우리가 비록 편의점에서 잠깐 만났다 할지라도
부둣가를 밝히는 검은 불빛을 따라
또다시 밤배는 떠나간다
ㅡ 편의점에서 잠깐 / 정호승
창비시선 522호 ( 202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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