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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 소개

당신의 방 / 장이지

작성자김중일|작성시간26.06.12|조회수12 목록 댓글 0

구름의 음악으로 쌓은 계단 끝에

당신의 방은 매달려 있습니다

제가 가진 물감들을 아무리 뒤섞어도

그 방의 색을 묘사할 수 없는,

아니, 물감을 섞으면 섞을수록

더 그릴 수 없는 시간 위의 방이 있습니다.

 

당신이 외출하고 없는 시간을 걸어올라가

그 방에서 뭉게뭉게 피어나는 음악을 듣고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술을 마시고

유토(油土)로 세상에 없는 별들을 빚고

어느새 달빛이 지구 위로 쏟아질 때

밟을 때마다 구름의 음악이 짙어지는

계단을 따라, 다시 그림자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지하철을 타고 직장엘 다니고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쇼핑을 하고

드라마를 보며 밥을 먹고

가끔 기쁘고 가끔 아픈

진짜 삶을 흉내 내다가도 . . . . . 

 

당신, 당신은 왜

저를 이렇게 작고 약하게 빚어놓았습니까?

당신의 하얀 손끝에 맺히는 가내수공업적인 슬픔,

유토로 빚은 갈라진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당신의 방을 생각합니다.

그 유선형의 방이 눈을 찢고 흘러내려서는

지상의 어둠으로 한없이 스며들며 할 때.

 

구름의 음악이 낱낱이 무너져

당신의 방이 몇 번이고 부서지는 악몽의

마른 프레임에서

저는 유토로 빚은 인형처럼 말이 없는 인생.

당신에게로 갈 계단을 잃어

망가지려는 인형의 갈라진 꿈입니다.

 

 

ㅡ  연꽃의 입술 / 장이지

문학동네시인선 011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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