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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정부의 나신을 보여주는 .......』

작성자안길주|작성시간11.10.28|조회수62 목록 댓글 0

『자기 정부의 나신을 보여주는 .......』

 

 

Eugène Delacroix 작
(1798-1863)

 

부르군도 공작에게 자기 정부의 나신을 보여주는 오를레앙 공작/들라크루아 (1825~1826년)작

32*25, 마드리드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소장

Louis d'Orleans Showing his Mistress, 1825-26,  oil on canvas,

Fundación Colección Thyssen-Bornemisza, Madrid.

 

 

 

불륜을 들킨 남자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장면을 그린 작품입니다.

 

남의 배우자를 탐한다는것은  남녀공히 벌을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만  그 순간의 몸서리

 쳐지는 스릴 과 쾌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것이 범인들의 생리랍니다.

 자기 상사인  부르군도 공작(까만모자)의 아내에게 빠져 서로 깊이 정을 나누던 오를레앙

 공작(흰깃털의 붉은 모자)은 어느날 의심을 가득품은 상사 부르군도의 기습적인 방문을

 받게 됩니다.

황급히 피할 방도를 마련하려 했으나 전혀 숨을곳도 비상탈출구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다급해진 오를레앙 공작은 침대 시트를 들어 올려 여자의 얼굴은 가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잔뜩 의심을 품고 쳐들어온 부르근도에게 오를레앙은 이렇게 말했을것입니다.

"정히 의심이 가신다면 직접 눈으로 확인 해 보십시요.

제 정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여 그녀의 신분은 노출할 수 없다는것만은 신사로서

 양해하여 주실줄 압니다. 자,  그럼 보십시요!"

그러면서 시트로 얼굴까지 덮고 있던 여인의 상체가 아닌 하반신쪽을 걷어 올립니다.

부르군도 공작은 자신의 아내인 것 같다고 의심은 들지만 얼굴을 보지 못해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합니다.왜냐하면 자신의 아내와 잠자리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나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는 처지가 된것은 자신의 아내의 나신을 정확히 모르는자신을

 부하인 상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큰 이유라고 합니다.

만일 얼굴만 가리고 있는 여인이 부르군도 공작 과 전혀 관계없는 정부라면 하는 상상을

해보니 끔직한 생각이 듭니다.

과연 타인에게 자기의 사랑하는 연인의 알몸을 스스로 보여줄 수 있을까???

요즘의  현실에선 상상해볼 수도 없는 상황 입니다만 하여간 이야기가 그렇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전자에 제가 말씀드린 오리발....☆

공중목욕탕에 불이 나서 급히 밖으로 대피할때 남자는 아래를 여자는 가슴을 가린다는

대답에 얼굴을 가리는것이 상책이란 유모어도 생각 납니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는 여자의 얼굴을 가리고 몸은 보여줌으로서

 위기를 모면하고 있는 오를레앙 공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웃고 있는 부르군도 공작의

모습은 아내의 불륜을 파헤쳐 보려다가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하고 벌거벗고 있는

여자에게 오히려 매력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자기의 아내인줄도 모르고..........

결국 그는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 하고 돌아섭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확한 상황을 판단치 못하고 호기심이 먼저 발동되는 우둔한 남자

들의 속물근성이 여지없이 들어나는 순간 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많은 남성들이 미인계에 당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비약인가요? 

 

 

 

프랑스의 화가 들라크루아(Delacroix, Eugène 1798.4.26~1863.8.13)

1798년 4월 26일 샤랑트현() 생 모리스에서 출생하였다. 명문가 외교관의 아들로

명석하고 정열적인 상상력을 타고났다. 16세에 고전파 화가인 P.N.게랭에게 그림을

배웠고, 1816년 관립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때부터 루브르미술관에 다니면서

P.P.루벤스, P.베로네세 등의 그림을 모사하였고, T.제리코의 작품에 매료되어

현실묘사에도 노력하였다.

1819년 제리코가 발표한 《메두사호()의 뗏목 Raft of the Meduse》은 그에게

낭만주의를 수립하는 결정적인 감격과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1822년 최초의

낭만주의 회화인 《단테의 작은 배》를 발표하였다.

 

 

1830년 7월 28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대표작 

 

 메두사호()의 뗏목 (Raft of the Meduse) 


 알제리 여인들

  

 사르다나팔르의 죽음(Death of Sardanapalus) 

 

Detail

 

  이그림은 "사르다나팔루스의죽음 "이다.

사르다나팔루스는 폭군으로 악명높던 고대 아시리아의 왕이다.

그는 적들에 의하여 성이 함락되기 직전 금은 보화로 가득찬 자신의 침실에 노예와

 애첩들, 그리고 아끼던 말과 개들을 모아 다 죽이고 저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관능적인 열정과 병적인 절망이 혼합된 이국적 이야기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낭만주의자들을 흥분시킨다.그리하여 베를리오즈는 칸타타를 작곡하고, 바이런은

 희곡을쓰고 들라크루아는 그림을 그린다.

 

그림 "사르다나팔루스의죽음 "은 사선구도를 이루고 있는데,

사선은 역동적인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구도다.

그리하여 빛은 마치 왼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고 있는듯하다.

흐르다가 오른쪽아래에서 가장 동적이고 충격적인 이미지로 튀어 오른다.

 뒤에서 칼을 찌르는 무사, 그순간 고통으로 뒤틀리는 관능적 여인의 몸을

빛의 차갑고도 끈끈한 혀가 핥고 있다.

유심히 보면 빛은 왕의 얼굴 앞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화면을 지배하는 이빛은 다름아닌 사르다나팔루스왕의 시선인 샘이다.

화면을 가득채운 격동과는 달리 너무나 고요하고 서늘한 시선, 그리하여 오히려

 그것은잔혹한 시선이다.

그 시선은 죽음을 넘겨다보고 있다. 아니 죽음을 욕망하고 향유하고 있다.  


단테의 작은배(The Barque of Dante)  


 Still Life with Lobsters 


 Heliodorus Driven from the Temple
 

 Arabian Horses Fighting in a Stable  

 

 Greece on the Ruins of Missolonghi 

  


Medea,
1838, oil on canvas, Musée du Louvre, Paris
 

 


Apasia,
1824, oil on canvas, Musée Fabre, Montpellier. 

 


Woman with a Parrot. 1827 
 

 


Andromeda, 1852.

 
Female Nude Reclining on a Divan,
1825-26, oil on canvas, Musée du Louvre, Paris. 
 

 


자화상(Self-Portrait)
1837, oil on canvas, Musée du Louvre, Paris.
 

 


음악; Il n`y a pas d`amour heureux (행복한 사랑은 없다네)

/ Francoise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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