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본문 : 요한복음 13장 34-35절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3장 34-35절).
아주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어느 가정에서 새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받으라고 새장을 베란다에 걸어두었다가 저녁이면 들여오곤 하였습니다. 어미 새는 어느덧 알을 품더니 두 마리의 예쁜 새끼를 갖게 되었으며 그 새끼들은 새장 속에 만들어준 둥지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은 베란다에 새장을 걸어둔 것을 깜박 잊고 영하의 날씨에 밤을 그냥 보내버렸습니다. 아침에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허둥지둥 나가보니 이미 어미 새는 둥지를 몸으로 덮은 채 얼어죽어 있었습니다. 집 주인은 실수로 인해 생명을 잃게 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치며 죽은 어미 새를 집어들었습니다. 아! 그런데 얼어죽은 어미 새 밑에 한 마리의 큰 새와 두 마리의 새끼가 살아 있었습니다.어미새가 자신의 몸으로 둥지를 덮은 채 얼어죽으면서까지 남은 생명들을 사랑한 기막힌 이야기입니다. 어미 새는 점점 차가워지는 몸, 의식을 잃어가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간단합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본체요, 아들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이 피 흘림의 희생을 통한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종교를 보셨습니까? 아니, 어느 종교에서 신이 인간이 되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는 십자가의 희생을 합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은 이것을 믿고 따르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의 기본 정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독교는 앎이 아닌, 삶의 종교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34절 말씀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겸손하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님, 당시의 차별과 편견으로 소외당하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 십자가에 매달려 처참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십자가에 매달고 핍박한 사람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올리시는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그런데 우리는 왜 서로 사랑하지 못할까요? 첫째, 내가 받은 사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7-8절입니다.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감격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나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신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어떻게 내 이웃과 내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에 주저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사랑을 실천할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입으로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감상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별로 크지 않은 석탄 공장이 철길 가에 있었습니다. 그 공장 울타리 뒤로 하루에도 몇 번씩 화물열차가 지나가곤 했는데 공장 주인은 가끔 석탄 덩어리를 삽으로 퍼서 울타리 너머 철길 쪽으로 던지곤 했습니다. 이를 궁금히 여긴 직원이 하루는 사장에게 물었습니다. "왜! 석탄을 담 너머로 던지시는 겁니까?" 주인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사실 철길 너머에 가난한 할머니 한 분이 사시는데, 집에 불을 뗄 석탄조차 살 돈이 없어요. 예전엔 기차가 지나간 뒤 기차에서 떨어진 석탄을 주워서 불을 떼고 살았죠. 이젠 기차가 석탄 대신 기름을 떼는데도 눈이 어두워진 할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석탄을 주우러 와요. 그래서 그 할머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석탄을 조금씩 던져주는 겁니다"
야고보서 22장 14-17절 말씀입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의 실천으로 완전해지고 견고해집니다.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내 속에 있는 믿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낄 때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겠습니까? 본문 35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본문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제자인줄 알게 된다는 조건의 문장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거꾸로 보면 이렇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우리 학교는 서로 사랑합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 학교 모든 구성원, 지역사회 학부모들이 그것으로써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줄 알게 될 것이지만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으로써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모든 사람이 확실히 압니까? 오늘 이 시간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제 마음과 몸을 돌이켜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이제 돌이켜야 함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늘 세 가지 물음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고 합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둘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셋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무엇인가? 그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길은 간단합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바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공동번역) 말씀입니다. "무슨 일이나 사람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하지말고 주님을 섬기듯이 정성껏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