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조용한 여인

작성자mono|작성시간04.10.31|조회수131 목록 댓글 1
[제목] 조용한 여인

[페이지] F01

조용한 여인

원제 : Anyuta

원작 : Anton Pavlovich Chekhov

각색 : 최우

[페이지] 001~,002 *원본 페이지누락

[페이지] 003

[장] 1장 클로치코프의 방.

[클로치코프] 이 기관과 기관지는 인후로부터 폐로 공기가 출입하는 통로이며 연골로 이루어져 있다. (반복하여 자기의 기관 부위를 더듬어 본다.) 기관과 기관지는 인후로부터 폐로 공기가 출입하는 통로이며 연골로 이루어져 있다--- . 안쪽은 언제나 습하고 공기와 함께 들어온 먼지나 세균을 걸러 내어 폐 속으로의 침입을 미리 방지한다. 음--- . 이 먼지나 세균은 기관의 안 쪽에 있는 섬모의 운동에 의해 밖으로 배출되는데, 일종의 가래, 가래? 가래는 이와 같은 현상으로 생기는 것이다. 기관은 두 개의 기관지로 나뉘어 양쪽에 폐와 연결되어 있다?--- 음. (반복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기관의 경로를 가슴에 그어 본다.) 기관은 두 개의 기관지로 나뉘어 양쪽에 폐와 연결되어 있다--- .

((추운 겨울이다. 허름한 클로치코프의 자취방. 널브러진 침대의 이부자리, 방바닥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들과 쓰레기 더미들. 클로치코프는 해부학 책을 들고 해부학의 용어들을 암송하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한다. 아뉴타는 창가에 조용히 앉아 있다. 그녀는 남자의 옷에 단추를 달거나 꿰매며 옷 수선에 열중하고 있다.

[클로치코프] (계속 자기의 몸을 더듬으며 확인하려 노력한다.) 폐는 가슴의 좌우 양쪽에 있다. 오른쪽 폐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왼쪽 폐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폐는 약 7억 2천만개의 폐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 7억 2천, 7억 2천 --- 폐포의 표면적은 약 100평만미터에 이른다. (셈을 해 본다.) 폐포의 주위는 모세혈관이 둘러싸고 있다. 흡입된 공기가 이 혈관에 접촉되면 공기 중의 산소는 혈관의 얇은 벽을 통과하여 혈액 중의 적혈구 속으로 흡입된다. 반대로 혈액 중의 이산화탄소는 공기 속으로 녹아 들어가 밖으로 배출된다. (숨을 크게 쉬어 본다.) 폐는 이러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운동을 쉬지 않음으로 해서 생명을 유지시킨다.--- 폐는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운동을 쉬지 않음으로 해서 생명을 유지시킨다--- 최대의 호흡량을 폐활량이라 한다. 평상시의 폐활량은 최대한 들이마셨을 때의 약 1/3정도이다. 폐활량은 연령, 체격, 성별에 따라 다르다. 보통 초등학교 5, 6학년은 약2,000~3,000cc, 성인은 약 2,500~4,000cc 정도이고 성악가나 운동선수들 중에는 약 6,000cc 이상인 사람도 있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뿜는다. 입 냄새가 고약하다.)

((클로치코프, 천장을 보며 눈으로 폐의 생김새를 그려본))

[페이지] 004

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장에는 온통 당구공들이 움직이는 그림이 그려진다.))

[클로치코프] 초구는 우라로 돌리는 게 안전빵이다. 초크를 잘 발라서 삑사리를 방지한다. 큐걸이는 흔들리지 않게. 읕대는 공을 치려는 방향과 일직선이 되도록 하고 툭 밀어 친다. 300이하는 맛세이 금지. 당구의 미학은 시네루와 각도에 있다. 당구의 기술은 쓰리쿠션과 빽식기에 있다. 아! 난 언제나 황오시를 칠 수 있을까? 꿈의 황오시--- (정신을 차리고 아뉴타를 힐끗 본다.)

((아뉴타는 여전히 옷을 수선하느라 정신이 없다. 클로치코프, 다시 책을 들여다본다))

[클로치코프] 호흡운동의 정지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동안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폐는 마치 풍선과 같아서 자력으로 호흡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호흡 작용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근육․늑골․횡경막을 활동이다. 횡경막에는 근육이 붙어 있고 이 근육의 신축 작용에 의해 폐장 내의 공기의 출입을 가능하게 한다. 폐는 횡경막에 달라붙어 있다. 횡경막은 늑골과 흉곽의 운동에 의해 아래로 향하거나 원위치 한다. 횡경막이 아래로 향할 때 외부의 공

기가 폐장으로 흡입되고 횡경막이 원위치 할 때 폐장내의 공기가 밖으로 호출된다. (자기의 몸을 더듬으며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기를 반복한다.) 휴! 잘 모르겠는걸. (아뉴타를 힐끗 본다. 박수를 한 번 친다.) 어이!

((아뉴타는 일손을 멈추고 클로치코프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녀는 살짝 미소를 보인다.))

[클로치코프] 날 좀 도와 줘야겠어.

((아뉴타, 자연스럽게 옷을 벗고 선다.))

[클로치코프] 아! 그냥 앉아 있으면 돼. 지금은 상체만 공부하면 되니까.

((아뉴타, 치마를 다시 입고 반듯하게 앉는다.))

[클로치코프] (혼잣말로) 도대체가 실물 검사가 없이는 아무것도 외워지질 않아. (아뉴타에게로 간다.)

((클로치코프, 아뉴타의 몸을 이리저리 더듬는다.))

[페이지] 005

[클로치코프] 흠--- 여기가 늑골이군. 첫 번째 늑골은 만져 볼 수가 없는 걸. 이건 두 번째 늑골이 틀림없어. 이게 세 번째--- 그렇지 이게 네 번째 맞아. 흠--- (아뉴타에게)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보겠어? 그래. 그대로 있어. 숨을 들이쉬면 이 흉곽이 벌어지고 반대로 이 늑골은 수축한다. (아뉴타에게) 다시 한 번. 그래. 흠--- 이 때 횡경막이--- 횡경막이 어디 있지? 가만히 있어. 왜 꿈틀거리는 거지?

((아뉴타는 클로치코프의 손가락이 차갑다는 몸짓을 한다.))

[클로치코프] 내 손이 몹시 차군. 그렇다고 죽진 않아. 조금만 참아. (책을 뒤적인다.) 횡경막은 복강과 흉강을 분리한다. (아뉴타의 몸을 더듬이며) 여긴가? 요긴가? 잠깐 누워야겠어. 당신은 말라 보이는데도 늑골을 세기가 쉽진 않군. 기관은 어디 있지? 폐는 오른쪽이 세부분이고 왼쪽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세 부분, 이 쪽에 두 부분--- 여전히 볼 수가 없군. 잠깐 그대로 있어.

((클로치코프는 크레용을 찾아오더니 책을 참고하면서 아뉴타의 몸에 늑골, 폐, 횡경막, 기관과 기관지 등을 위치에 따라 그린다. 아뉴타는 꿈틀거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클로치코프] 흠--- 일단 됐군.--- 아냐. 기왕 시작한 김에 더 자세히 그려야겠어. (박수를 친다.) 어이. 치마를 벗어 봐. 오늘 안에 골 학까지 암기를 마쳐야겠어.

((아뉴타는 치마를 벗고 선다.))

[클로치코프] 좋아. (다시 아뉴타의 몸에 금을 긋는다.) 여기가 1번 경추, 이게 2번 경추, 이게 3번, 4번, 5번--- 1번 늑골--- 2번 늑골, 3번, 4번 5번--- 여긴 견갑골, 이게 쇄골 이게 견봉이고--- 여기가 흉골이군. 그리고 여기부터는 1번 흉추, 2번 흉추, 3번--- 여기부터 1번 요추, 2번 요추, 3번 요추, 4번, --- 이건 선골, 미골, 흠. 여기가 장골이고--- 여자의 골반은 남자의 것보다 훨씬 크다. 골반은 생식기를 보호하며 엉덩이의 크기와 허리의 위치를 결정한다. 이게 대퇴골, 요긴 슬개골, 이게 경골, 여기가 비골, 족근골, 종골--- . 휴--- .

((아뉴타의 몸은 온통 크레용으로 그려져 있다. 아뉴타는 추위에 턱이 떨려 오지만 클로치코프에게 들키기 않으려

[페이지] 006

고 애쓴다.

[클로치코프] 이젠 한눈에 볼 수 있게 됐어. (박수를 한 번 친다.) 어이. 그대로 서 있어. 움직이지 말고, 크레용을 지우지 말고. 난 좀 더 자세히 외워야겠어.

((클로치코프는 다시 책을 펴 들고 암기를 시작한다. 그는 정말 열정적으로 암기하려고 애쓴다. 암기를 하다가 종종 확인을 하기 위해 아뉴타의 몸을 살핀다.))

[클로치코프] 호흡운동의 정지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동안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폐는 마치 풍선과 같아서 자력으로 호흡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호흡작용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근육․늑골․횡경막을 활동이다. 횡경막에는 근육이 붙어 있고 이 근육의 신축작용에 의해 폐장 내의 공기의 출입을 가능하게 한다. 폐는 횡경막에 달라붙어 있다. 횡경막은 늑골과 흉곽의 운동에 의해 아래로 향하거나 원위치 한다. 횡경막이 아래로 향할 때 외부의 공기가 폐장으로 흡입되고 횡경막이 원위치 할 때 폐장내의 공기가 밖으로 호출된다. 따라서 호흡은 강력한 근육작용에 의해 가능해진다. 복근의 팽창으로 횡경막이 아래로 향함으로써 폐장으로 공기를 빨아들인다. 이것이 복근식 호흡이다. 이러한 운동은 마치 주사기의 원리와 흡사하다. 주사기?--- 그래, 그렇군.

((아뉴타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다. 그녀를 모델로 공부를 한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클로치코프는 여전히 방을 맴돌며 암기를 하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조명은 아뉴타만을 비춘다.))

[장] 2장 야뉴타의 기억.

((클로치코프는 방을 맴돌고 있고, 조명은 아뉴타만을 비춘 채로 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아뉴타를 모델로 공부를 마친 남자들의 편지가 음성으로 들려 온다.

[편지1] 그리운 아뉴타. 날 기억할 지 모르겠군요. 부디 이 편지를

[페이지] 007

받거든 답장을 주길 바래요.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군요. 3년---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가 없어요. 참 내 이름은 이바노프요. 기억하죠? 당신이 아니었으면 난 지금처럼 의사가 되어 있지 못했을 거요. 당신은 내 성공의 은인이요. 당신을 통해 얻은 지식은 평생토록 잊지 못할 거요. 요즘은 환자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요. 요새도 낙태하려는 미혼모들이 많아요. 한심한 일이오. 생명의 탄생은 참으로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조화요. 난 많은 아기들의 탄생을 도우면서, 또는 죽음을 도우면서, 그 때마다 탄생의 환희와 죽음의 비애를 동시에 느낀다오. 참. 난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있어요. 아뉴타, 혹시 아기를 가지거든 내 병원으로 와요. 당신 아기의 탄생을 기꺼이 도와주리다. 아! 난 벌써 8 개월 된 아기가 있어요. 결혼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같이 사는 여자가 있어요. 우린 곧 결혼을 하게 될 거예요. 청첩장을 보낼 테니 우리의 결혼식에 꼭 와 주길 바래요. 벌써 진찰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군요. 시간은 인정 사정이 없지요. 곧 환자들이 밀어닥칠 시간이에요. 벌써 입구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는군요. 아뉴타, 이 편지 받거든 꼭 답장을 줘요. 난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럼 안녕히---

당신으로부터 성공을 얻은 이바노프로부터

[편지2] 안녕? 아뉴타. 나야, 파블로. 난 드디어 졸업시험을 통과했어. 그것도 차석으로.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난 더 열심히 공부를 할거니까. 모두 당신 덕분이야. 아뉴타가 내 모델이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몰라. 다른 모델들은 말도 많고 부끄럼도 많아서 다른 애들은 모델과 싸우느라 제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더라구. 어떤 녀석은 공부 때려치우고 모델하고 실림 차렸대. 역시 공부하기에는 아뉴타가 최고야. 지난번 한 모임에서 난 아뉴타를 실컷 칭찬했다고. 지금은 누구의 모델이 되어 있는지. 혹 못된 놈이 아니길 바래. 아차. 지난번에 보낸 편지는 받은 거야? 답장이 오질 않아서 말야. 난 방을 또 옮겼거든. 전에 살던 집은 너무 형편없었어. 당신하고의 계약이 끝난 뒤로는 더욱 형편없게 됐지. 어떻게 된 건지 알려주겠어? 어떻게 지내는지, 감기는 다 나았는지--- 궁금해 죽겠어. 편지 받으면 꼭 답장 보내고, 건강해야 돼. 아뉴타, 알았지? 다음엔 내 여자 친구 얘길 해줄게. 이름은 안나이고, 헝가리 출신이야. 또 편지할게. 안녕.

[페이지] 008

바블로로부터

[편지3] 아뉴타. 이 편지가 당신의 손에 닿기를 바라며--- . 벌써 스물 여섯이 되어 있겠군. 나야, 마야코프. 제기랄, 글씨가 엉망이군. 이 편지가 벌써 57번째야. 그 동안, 우리가 만난 지, 아니, 헤어진 지 5년이나 지났군. 잘 지내? 아직도 그 지긋지긋한 모델인가 뭔가를 하면서 이 남자 저 남자 수발을 들고 있나?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불쌍한 여자! 당신은 왜 그 짓을 포기하지 않는 거지? 당신이 말없이 사라지지만 않았다면 우린 지금, 함께 살고 있을 거야. 난 당신을 사랑했었으니까. 제기랄, 하지만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았지, 그렇지? 그러면서도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했어. 아무 대꾸도 없이 말야. 제기랄, 도대체 당신은 말을 안하는 거야, 못하는 거야? 그때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나만 바보가 돼 버렸잖아. 당신이 옆에 있어 주었다면 난 지금쯤 유능한 의사가 되어 있었을 거야. 그런데 왜 말도 없이 떠나간거지? 난 당신이 떠나고 2년간이나 당신을 찾아다녔어. 알아?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우린 잘 지냈었잖아, 늘 웃으면서. 내가 뭘 잘못한거지? 푸--- 이 주소도 간신히 알아낸거라구. 하지만 당신은 늘 여기 없더군. 푸--- 난 더 이상 그 잘난 의사가 아냐. 때려치웠어. 지금은 고향에 내려와서 그림이나 그리고 있다고. 이젠 당신 얼굴이 자주 떠오르진 않아. 이 편지가 마지막이야.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내 머릿속에서 '아뉴타'라는 사람은 지워지고 말 거야. 제기랄, 이제 잊어버리면 그만이야. 안녕. 사랑했던 여인 아뉴타. 난 당신 얼굴을 그리고 있어. 난 잘 있어. 이건 마지막 편지야, 마지막. 난 잘 있다고.

화가가 되어 버린 마야코프로부터

((조명은 점점 어두워지고 음악이 사라진다.))

[장] 3장 클로치코프의 방.

[클로치코프] 좋아, 됐어! 이 정도면 됐어. 잠시 쉬어야겠군. (박수를

[페이지] 009

한 번 친다.) 어이 좋아, 쉬어. 그리고 커피 한 잔--- 참, 커피가 다 떨어졌군. 아냐, 됐어. 우선 좀 쉬어. 하지만 크레용을 지우면 안돼. 곧 다시 시작할거니까.

((아뉴타의 몸은 거의 굳어져 감각조차 둔해졌다. 그녀는 여전히 떨려 오는 턱을 떨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뉴타는 가운을 입고 욕실로 간다. 클로치코프는 천장을 넌지시 바라본다.))

[클로치코프] 80이라--- 짠 80--- 100으로 올리자니 힘 조절이 부족하고--- 휴--- 부단한 연습만이 다마 수를 높여 준다. 페티소프, 그 녀석하고만 치면 물리니--- 원래 150은 놔야 되는 녀석이 아직도 100을 치고 있으니--- 짠돌이--- 나도 웬만하면 다대로 쳐야겠어. 루코, 쓰리코는 내 승부수가 아냐. 가락은 꿈도 못 꾸지. (담배꽁초를 주워 물고 불을 붙인다.) 휴--- 이상하게 내 다마는 꼭 똥창에 처박힌단 말야. 도대체 큐걸이가 나와야 각도를 재든지 하지. 맨 삑사리만 '삑, 삑.' 대니 원--- 시네루와 각도, 그리고 힘 조절! 이것이 삼위일체 당구다. 삼, 위, 일, 체.

((전화벨이 울린다. 클로치코프, 수화기를 든다.)

[클로치코프] 여보세요?--- 아, 짠돌이, 왠일이야?--- 하, 하. 그래? 그건 그렇고 자넨 다마수를 올려야 되지 않나?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그렇다면 100다마면 100다마답게 황오시나 맛세이는 치지 말아야지--- 부탁? 무슨 부탁인데 그래?--- 아뉴타를?--- 두 시간?--- 아뉴타 같은 여자가 자네 모델 감이나 되겠어? 자네도 참 안됐군. 아뉴타 같은 모델을 찾다니--- 그래, 알았어. 마침 쉬는 시간이거든--- 고맙긴, 친구 지간에, 내 기꺼이 빌려주지, 곧 보낼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게---

((아뉴타, 욕실에서 나온다. 창가에 앉아 다시 옷을 고친다.))

[클로치코프] --- 요즘은 무슨 그림을 그리나?--- 바디페인팅?--- '처녀의 유혹'?--- 하, 하, 하--- 자네 작품은 제목 하나는 끝내 주는군, 그래 잘 돼 가?--- 음--- 음--- 하, 하,하. 그렇게 은밀한 곳까지 그림을 그린단 말야?--- 그래서?--- 하, 하, 하--- 그 모델 정말 재미있었겠군. 작업을 직접 보고 싶어지는 걸--- 하지만 난 바빠. 암기할 게 많거든--- 나? 난 해부학을 암기하고 있었네. 의학은 암기하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학문이라서.--- 고맙군--- 하지만 아뉴타는 의학을 공부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모델이라서.--- 내 방? 내 방이 어때서 (방을 한번

[페이지] 010

살핀다.) --- 자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어. 너무 바빠서 말야. 아버지에게 한 달에 겨우 10만원을 받을 뿐이라구. 그러니 그것 가지고는 제대로 생활할 수가 없어.--- 그래, 그건 자네 말이 맞아. 하지만 오늘은 아뉴타가 치울 시간이 없었어. 내내 바빴거든--- 물론 지식인이라면 깨끗하게 살아야지.--- 응, 알았어. 그래, 지금 곧 보낼게. 잠깐만 기다리게--- 응.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박수 한 번을 친다.) 어이. 페티소프에게 갔다 와야겠어. 모델이 필요하다는 군.

((아뉴타, 싫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젖는다.))

[클로치코프] 왜 그래? 그 친구는 예술을 위해 당신이 필요하다는 거야. 부탁을 한거라구. 어떤 허튼 짓을 할 친구가 아니라구. 지난번에도 별일 없었잖아. 두 시간이면 충분하대. 당신 때문에 우리의 우정에 금이 가게하고 싶지 않아. 잠깐만 도와주고 와.

((아뉴타, 일손을 놓고 조용히 일어선다. 외투를 입고 조용히 나간다. 클로치코프는 갑자기 상념에 잠긴다.))

[클로치코프] 뭐, 내 방이 돼지우리 같다구? 그건 내가 돼지처럼 산다는 말이잖아. (주위를 살핀다.) 휴--- 맞아. 방 꼴이 이게 뭐야. 먹을 것이라곤 각설탕 서너개 뿐이잖아. 바닥엔 담배꽁초 투성이고, 침대며 베개는 언제 빤 건지--- 으, 갑자기 구역질이 아는데. (담배꽁초를 찾아 물고 불을 붙인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아.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완벽한 돼지우리군. 돼지, 돼지우리. (담배 연기를 뿜는다.) 이렇게 살다가는 장가도 못 갈거야. 그래, 깨끗하게 살아야지. 깨끗하게.

((클로치코프, 부지런히 방 청소를 한다. 청소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상념에 잠기더니 우울해진다.))

[클로치코프] (울먹이며) 돼지우리---

((클로치코프, 소파에 기댄 채 스르르 잠이 든다.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진다.))

[장] 4장 클로치코프의 꿈.

((클로치코프와 아뉴타는 화사한 옷을 입고 있다. 아뉴타

[페이지] 011

는 배가 불러 있다. 둘은 몹시 행복해 보인다. 정열적인 사랑의 음악이 잔잔히 흐른다.))

[클로치코프] 아뉴타, 아뉴타! 우리가 드디어 결혼을 했군. (미소를 짓고 다소곳이 서 있는 아뉴타를 끌어안는다.) 여보. 그 동안 고생 많았어. 난 당신 덕분에 이렇게 의젓한 외과의사가 되었잖아. 이 모든 성공이 당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야. 사랑해. 난 당신을 평생을 행복하게 해줄 거야. 와! 하, 하, 하--- 아기 이름은 뭐라고 하지? 아들일까, 딸일까? 난 당신하고 꼭 닮은 딸이 나왔으면 좋겠어. 나 같은 아들보다는 몇백배 나을 거야. (아뉴타의 부른 배에 귀를 대보기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한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산부인과 의사가 될 걸 그랬어, 그치?

((아뉴타는 만삭이 된 배를 쓰다듬으며 여전히 말없이 미소짓고 있다.))

[클로치코프] 아! 그래, 그게 좋겠어. 나탈리아. 우리 딸의 이름이야, 어때? 맘에 들어?

((아뉴타,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활짝 웃는 얼굴로 서로 포옹을 한다. 클로치코프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조명, 어두워질 때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클로치코프]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며 소리지른다.) 안돼!

((조명 꺼진다.))

[장] 5장 클로치코프의 방.

((잠에서 깨어난 클로치코프는 주방으로 달려가 냉수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창문밖엔 함박눈이 내린다.))

[클로치코프] 안돼, 안되지. 악몽이야. 그 답답하고 너저분한 여자와 결혼을 하다니--- 오! 절대로 안되지--- (생각에 잠긴다.) 프로이드, 프로이드가 어디 있더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책을 찾는다. 책을 바쁘게 뒤적인다.) 음--- 여기 있군. 꿈은 현실의 반영이며, 잠재적 욕망의 표출이다. 잠재적 욕망의 표출? (생각에 잠긴다.) 아니지, 아니야. 난 아뉴타 같은 초라한 여잔 딱 질색이라구. 난 행복한 결혼을 원해. 아름답고 깔끔하고 정

[페이지] 012

숙한, 그런 여자가 내 신부가 될거라구. 그런데 감히 아뉴타 같이 너저분하고 말도 할 줄 모르는 여자가 내 꿈에 나오다니--- (생각에 잠긴다.) 결판을 내야겠어. 그녀는 그저 값싼 모델 일 뿐이야. (생각에 잠긴다.) 그녀와 너무 오래 있었어. 헤어지자고 말해야지. 오늘 당장. 아니 오늘도 길어. 들어오는 즉시. 아뉴타 정도의 싸구려 모델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다시 생각에 잠긴다.) 좀 안됐긴 하지만--- 어쨌든 아뉴타 같은 여자하고는 행복하게 살수가 없어. 아니, 행복하게 살아서도 안돼.

((아뉴타, 추위에 떨며 들어온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 상기되어 있다. 그녀의 얼굴은 물감으로 얼룩져 있다. 클로치코프는 아뉴타를 쳐다보지 않는다.))

[클로치코프] 흠--- .

((아뉴타는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얼굴을 씻는다. 그리고 창가에 가서 앉는다. 그녀는 남자의 셔츠를 다림질한다. 손이 시려 운지 손에 입김을 불기도 하고, 비비기도 한다. 아뉴타는 옷을 다림질하는 데 열중한다.))

[클로치코프] (박수를 한 번 친다.) 어이. 잠깐 이리와 봐. (아뉴타는 일손을 놓고 미소를 지으며 클로치코프를 바라본다.) 당신에게 해야 할 얘기가 있어.

((아뉴타, 쇼파로 와서 클로치코프와 마주 않는다.))

[클로치코프] (스스로 긴장을 하고 있다.) 내 말 잘 들어. 오해가 없길 바래. 목이 마르는군. 물 한 잔 갖다주겠어?

((아뉴타가 물 한 잔을 가지러간 사이 클로치코프는 생각에 잠긴다.))

[클로치코프] (물 한 잔을 단숨에 마시고는) 우리 말야--- 이제--- 말야--- 그만---

((아뉴타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클로치코프를 쳐다보고 있다.))

[클로치코프] (머뭇거린다.) 좀 떨어져 앉아 주겠어? 그리고 나를 쳐다보지 말고--- 그래, 저 쪽을 보고 있어. 그게 힘들면 그냥 다림질이나 계속하고 있던지.

[페이지] 013

((아뉴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창가로 가서 다림질을 한다.))

[클로치코프] 꿈을 꾸었어. 하지만 그건 개꿈이야. (물을 한 잔 따라 마신다.) 당신과 결혼을 했지만 그건 그저 꿈에 불과하다구, 꿈. 알아? 프로이드는 그게 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했지만 난 그걸 믿지 않기로 했어.

((아뉴타는 일손을 쉬고 미소를 지으며 클로치코프의 얘기를 듣는다.))

[클로치코프] (물을 한 잔 따라 마신다.) 난 이제 깨끗하게 살 거야. 페티소프 그 녀석이 나보고 돼지 같대. 맞아, 난 돼지 같이 더럽게 살았어.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선 안돼--- 헤어져야겠어! 휴---

((아뉴타, 순간 몸이 굳고 얼굴이 상기된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서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클로치코프] (아뉴타를 설득하듯이) 당신과 난 안 어울려. 당신도 알지? 우리가 앞으로 같이 산다는 건 정말 불행이야. 우린 서로 사랑하지도 않잖아.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당신도 날 사랑하지 않잖아. 그래, 그러니깐 우리 같이 살아선 안 되는 거야.--- 물론 나도 괴로워. 새 모델을 구하는데 시간이 걸릴 테니까. 누구에게나 이별은 아픈거라구. 만남이 있으니 이별도 있는거라구.--- 헤어지자!--- 당장! (물을 한 잔 따라 마신다.) 시간이 흐르면 미련만 남게 돼. 더 생각할 것도 없어. 그냥 당신이 떠나면 되는 거야. 그래, 그냥 여기서 나가면 되는 거란 말야, 알겠지? 그렇게 해 줄 수 있겠어?--- 아니, 그렇게 해야 돼. 그렇게 하자. 그리고 이건 그 동안 일한 대가야. (얼마 되지도 않는 구겨진 돈을 아뉴타에게 내민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야. 나머지는--- .

((아뉴타, 상기된 얼굴로 조용히 일어선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인다. 아뉴타는 각설탕 몇 개를 클로치코프의 탁자에 올려놓는다. 그녀는 외투를 들고 현관으로 간다. 클로치코프는 아뉴타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뉴타는 현관에 서서 머뭇거린다. 그녀는 클로치코프의 등을 바라본다. 클로치코프, 천천히 아뉴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둘의 눈이 마주친다. 아뉴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뉴타는 외투를 입는다.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간다.))

[페이지] 014

[클로치코프] (퉁명스럽게) 아! 좋아. 그래.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가지 않아도 좋아. (아뉴타를 따라 나간다.) 가든 말든 당신 좋을 대로 해.--- 난 굳이 당신한테 떠나라고 하진 않겠어. 당신이 있고 싶으면 있으라구, 대신 한 달 동안만이야. 아니, 그 이상이어도 우린 어차피 헤어져야 한다는 건 분명해. 그것만 알고 있으면 돼.--- 그래,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구. 그건 당신 자유니까.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내 얘긴 눈이 많이 오니까 내일쯤 떠나도 된다는 말이야.--- 그래 가라, 가. 까짓 거 난 당신이 떠나도 아무렇지도 않아. (방으로 들어온다.) 어차피 우린 같이 살 순 없으니까. 난 다시 암기를 시작하면 그만이야. (창가에 선다.) 휴--- . 눈이 펑펑 내리는군.

((클로치코프는 아뉴타가 수선하던 옷을 한 번 들었다 놓는다. 그는 다시 책을 들고 암송을 시작한다.))

[클로치코프] (빠르게 방안을 이리저리 오가며) 기관과 기관지는 인후로부터 페로 공기가 출입하는 통로이며 연골로 이루어져 있다. 안쪽은 언제나 습하고 공기와 함께 들어온 먼지나 세균을 걸러내어 폐 속으로의 침입을 미리 방지한다. 이 먼지나 세균은 기관의 안 쪽에 있는 섬모의 운동에 의해 밖으로 배출되는데, 일종의 가래는 이와 같은 현상으로 생기는 것이다. 기관은 두 개의 기관지로 나뉘어 양쪽의 폐와 연결되어 있다. 폐는 가슴의 좌우 양쪽에 있다. 오른쪽 폐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왼쪽 폐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폐는 약 7억 2천만 개의 폐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폐포의 표면적은 약 100평방미터에 이른다. 폐포의 주위는 모세혈관이 둘러싸고 있다. 흡입된 공기가 이 혈관에 접촉되면 공기 중의 산소는 혈관의 얇은 벽을 통과하여 혈액 중의 적혈구 속으로 흡입된다. 반대로 혈액 중의 이산화탄소는 공기 속으로 녹아 들어가 밖으로 배출된다. (숨을 쉬어 본다.)

((클로치코프가 암송을 하는 사이, 아뉴타는 조용히 들어온다. 그녀는 눈을 흠뻑 맞았다. 아뉴타는 소리 없이 외투를 벗고 짐을 푼다. 그녀는 담배 한 갑을 클로치코프의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녀는 창가로 가서 다림질을 시작한다. 클로치코프의 책이 여기저기 방바닥에 놓여져 있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연기를 뿜는다.))

[클로치코프] (더욱 열정적으로 암기한다.) 폐는 이러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운동을 쉬지 않음으로 해서 생명을 유지시킨다. 최

[페이지] 015

대의 호흡량을 폐활량이라 한다. 평상시의 폐활량은 최대한 들이마셨을 때의 약 1/3정도이다. 폐활량은 연령, 체격, 성별에 따라 다르다. 보통 초등학교 5, 6학년은 약2,000~3,000cc, 성인은 약 2,500~4,000cc 정도이고 성악가나 운동선수들 중에는 약 6,000cc 이상인 사람도 있다. 호흡운동의 정지는 우리들이 살고 잇는 동안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폐는 마치 풍선과 같아서 자력으로 호흡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호흡작용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근육․늑골․횡경막의 활동이다. 횡경막에는 근육이 붙어 있고 이 근육의 신축작용에 의해 폐장 내의 공기의 출입을 가능하게 한다. (담뱃재를 아무데나 떨고, 담배꽁초는 방바닥에 던진다.) 폐는 횡경막에 달라붙어 있다. 횡경막은 늑골과 흉곽의 운동에 의해 아래로 향하거나 원위치 한다. 횡경막이 아래로 향할 때 외부의 공기가 폐장으로 흡입되고 횡경막이 원위치 할 때 폐장 내의 공기가 밖으로 호출된다. (자기의 몸을 더듬으며 숨쉬기를 반복한다.)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클로치코프, 아뉴타를 힐끗 본다. 박수를 한 번 친다.))

[클로치코프] 어이!

((아뉴타가 조용히 미소지으며 일어난다. 아뉴타가 옷을 벗을 때 조명이 어두워진다. 그녀의 몸은 물감으로 얼룩져 있다.

[클로치코프] 이런 몸이 엉망이군. 우선 몸을 씻어야겠어.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니까.

((음악이 잔잔히 흐른다.))

-막-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신영순 | 작성시간 11.03.17 퍼가요~ 잘 읽겠습니다. 감사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