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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미술의 만남

밀레의 그림과 최승철·추영희의 시

작성자시와사람|작성시간15.08.11|조회수372 목록 댓글 0

밀레의 그림과 최승철·추영희의 시





어린 시절 동네이발관 벽에는 저녁 무렵 들판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 걸려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삭을 줍는 사람들이 그려진 그림과 양치기 소녀와 양떼가 있는 그림도 흔하게 보였다. 이러한 그림들에서 목가적인 농촌의 향수를 물씬 느끼곤 하였다. 그때 본 그림들은 밀레의 「만종」과 「이삭 줍는 사람들」, 「양치기 소녀」였다. 밀레의 그림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일반인에게 매우 친숙하다. 아마 지구상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림일 것이다.
밀레의 농촌풍경들이 서양의 농촌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민족을 불문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것은 농경사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익숙함과 그림 속 주인공들이 사회저 약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인간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선한 마음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까닭이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부들의 삶과 농촌을 그의 예술의 화두로 삼았다. 그의 그림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목가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고생하며 일하는 농부들의 피땀 어린 모습들과 풍경들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그림들에서 우리는 농부들의 숭고한 노동의 가치와 더불어 생명성에 주목해야 한다.
밀레가 살던 19세기 프랑스 화단은 살롱을 중심으로 작품을 발표하며 거기에서 인정받는 화가들이 주류세력으로 프랑스 화단을 이끌어갔다. 또한 역사화와 종교화, 초상화가 그림의 주된 주제여서 밀레와 쿠르베, 마네 등 신진화가들의 새로운 인식과 감각을 지닌 근대적인 화풍은 평론가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밀레도 처음에는 역사화나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그리고 생활을 위해 관능적은 누드화를 그려 팔기도 했지만 결국 그의 마음속에 깃들어있는 진정한 예술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농부들의 일상과 농촌풍경을 그리게 된다.
장 프랑수아 밀레는 1814년 프랑스 셰르부르 근처 그뤼쉬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때 밀레는 셰르부르에서 정식으로 화가가 되기 위해 수련을 하게 되는데 처음엔 초상화가인 무셸에게 사숙하다가 랑글루아를 거쳐 그로의 문하생이 된다. 그러면서 농부인 부모의 일을 돕는다. 스물네 살 때 셰르부르의 시 장학생으로 뽑혀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여 공부하지만 1839년 ‘로마상’에서 낙선해 학교를 그만둔다. 이듬해에 처음으로 살롱전에 응모하지만 초상화 한 점을 빼고는 모두 낙선하고 만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밀레는 초상화를 주문받아 그린다. 또다시 첫 번째 아내 폴린과 파리로 나가 살지만 빈궁한 생활 속에서 그의 아내가 3년 후에 세상을 떠나자 셰르부르로 되돌아와 다시 초상화를 그린다.
이때 그의 화법은 점차 틀을 갖춰나가며 간결하고 힘찬 사실주의적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대체로 단조로운 배경을 바탕으로 모델을 내세워 모델의 내면 표정과 시선을 전면에 부각시킨 것이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훗날 농촌풍경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1845년 밀레는 카트린 르메르와 재혼하여 몇 달 동안 르아브르에서 지내다가 다음 해에 다시 파리로 옮겨가는데 종교와 신화를 소재로 한 몇몇 그림들이 살롱전에서 성공을 거둔다. 그때 그는 농촌생활을 담은 풍속화도 간혹 그리기도 하고, 누드도 그려 나중에 농부들을 묘사할 때 유용하게 활용한다. 그 무렵 그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 코레조와 프뤼동의 전통을 이어받아 18세기 풍의 풍부한 양감과 강한 색조들을 띠는 기법을 구사한다. 이러한 기법은 그의 농부화에 잘 적용이 되어 밀레 그림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1848년 2월 혁명 이후 제2공화국이 수립되자 새로운 사상들의 영향을 받아 역사화가 주종을 이루던 회화장르에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그러자 밀레는 자신의 고향마을의 정경들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듬해인 1849년 정부의 주문 의뢰로 돈을 벌어들인 밀레는 콜레라가 창궐하는 파리를 떠나 퐁텐블로 숲 어귀에 있는 바르비종에 정착하여 1875년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산다. 밀레는 이곳에서 농부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관찰한다. 농부들의 삶은 고달파 보였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숲으로 땔감을 주우러 간다거나 가을걷이가 끝난 뒤 이삭을 줍는 모습이 가슴속에 남는다. 그리고 젊은 여인들이 집안과 들판에서 암소를 돌보거나 양떼를 지키며 하는 갖가지 허드렛일을 화면에 묘사한다.
이러한 농부들의 가난하고 고달픈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 그림인 「씨뿌리는 사람」은 1850년 살롱전에서 그에게 커다란 명성을 가져다준다. 이 그림은 바르비종에서 그렸으나 고향 그뤼쉬에 대한 회상이 투사되어 있다. 특히 그림에서 풍기는 장엄함은 그저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일상을 기록한 것을 뛰어넘어 성경의 잠언에 대한 회상이 작품 전체에 짙게 배어있다. 1855년에 그린 「접목사」는 베길리우스의 “다프니스여, 네 배나무를 접붙여라. 그러면 네 후손들이 그 과일을 딸 것이니”라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조각과도 같은 엄밀한 구도를 통해 농부와 나무, 그리고 아내와 아이의 상호보완적인 두 군상을 보여준다. 남자 왼쪽으로는 과수원을 그리고 여자 오른쪽으로는 여물더미를 배치한 배경은 「만종」의 구도를 예고한다.
밀레는 산업혁명 후 나날이 변화하는 현대문명에 의해 피폐해지는 전통적인 농촌의 모습들이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마치 민속학자와 같은 시선으로 농촌 생활의 일상들을 증언하고자 했다. 그의 인물들은 힘 있게 그려지고, 넉넉하게 칠해지며, 유연하고 여유롭고 간결한 필치로 불필요한 장식적인 것들을 단순화 시켰다. 이는 주제를 선명하게 하기 위한 그의 장치이다.
1850년 밀레는 살롱전에 「건초를 묶는 사람들」과 함께 「씨뿌리는 사람」을 출품한다. 「씨뿌리는 사람」은 그가 살았던 바르비종의 들판이 아니라 자신의 고향 콩탕탱에 있는 그레빌 둔덕이다. 이 그림에 묘사된 농촌은 비판주의적 색채가 짙다. 씨뿌리는 사람의 손 너머로 그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려는 듯 까마귀 떼들이 몰려와 흩뿌려지는 씨앗들을 덮치고 있다. 이 작품 속 남자는 거친 동작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동작에서 웅장함과 기품이 서려있다. 남루하지만 긍지에 차 있다. 그런데 비평가들 중에서는 씨뿌리는 사람의 푸른색 바지와 붉은색 상의, 그리고 어깨에 걸친 하얀 씨앗주머니의 삼색이 프랑스의 국기를 상징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밀레는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거나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미술단체에도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예술세계에 몰입했을 뿐이다.
1850년 「씨뿌리는 사람」과 함께 살롱전에 출품했던 「건초를 묶는 사람」은 밀레가 농촌을 주제로 한 사실주의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갈퀴를 들고 무엇인가 체념한 듯한 처녀의 모습과 야성적 격렬함을 지닌 남자들에게서는 비관주의가 느껴진다. 격렬함은 짝을 이루어 정신없이 건초를 묶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에서 절정을 이룬다. 헐벗은 곳간 여기저기에 높이 쌓인 건초더미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배경의 단순함은 이 두 남자의 정력적인 동작들, 그 신체적 힘과 긴장을 더욱 강조한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이삭 줍는 여인들」은 세 여자가 힘겹게 가을걷이 뒤에 남겨진 이삭들을 줍고 있다. 그림 뒤쪽으로는 말탄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확을 위한 마무리가 한창이다. 이 불쌍한 여인들은 이삭을 주우려면 시의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했다. 세 여인이 그림 전면에 배치되어, 흡사 파르테논 신전의 돋을새김에서 따온 것 같은 군상을 이루고 있는데 제례의식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려는 듯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다. 낡고 뻣뻣한 옷차림이 이들이 서민 계층임을 강조한다면, 청, 분홍, 황토색의 대조가 개체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밀레는 1856년부터 자신의 작품을 통해 ‘농촌화’라는 장르를 확고히 굳히게 되는데 양치기들을 즐겨 그린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양치기를 그린 그림은 늘 성경을 애독하는 독서가였던 밀레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들 작품은 농촌세계에 대한 환유가 담겨있다. 목축과 양모에 결부된 온갖 허드렛일과 소박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어떤 종교적 차원으로 맺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밀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너무나 유명한 「만종」이다. 이 작품에 대해 밀레는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종」은 내가 옛날의 일을 떠올리면서 그린 그림이라네. 옛날에 우리가 밭에서 일할 때 저녁종 소리가 들리면 어쩌면 그렇게 우리 할머니는 한 번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우리 일손을 멈추게 하고는 삼종기도를 올리게 하셨는지 모르겠어. 그럼 우리는 모자를 손에 꼭 쥐고 아주 경건하게 고인이 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 했지.” 말한 것처럼, 이러한 그의 회상이 아내가 기도하는 동안 남자는 모자를 들고 이 그림의 주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작품은 개인의 신앙심을 찬미한다기보다는 주로 여자가 이끌어가는 농촌 종교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회적 공증이다.
이 작품에서 화면을 밝히는 빛은 왼쪽 상단이다. 그런데 빛은 빛을 등지고 있는 남자를 비껴서 조금 오른쪽에 떨어져 있는 여자에게로 향한다. 옆에 꽂힌 쇠스랑이 일개 노동자로서의 농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반면, 바구니며 손수레 같은 소도구들이 먹을 것을 책임지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양자의 역할분담을 확인시켜준다.
밀레가 농촌화가가 되기 전 선대 화가들이 다루었던 다소 외설스런 느낌이 드는 나부, 관능적인 목가, 사랑에 관한 신화, 그리고 초상화를 그렸지만, 그러나 농촌에 시선을 돌린 밀레는 「감자수확」, 「건초를 묶는 사람들」, 「괭이를 든 사람」, 「그뤼쉬의 거위지기 여자」, 「까마귀가 있는 겨울」, 「나무를 접목하는 농부」, 「농부의 가족」, 「두엄 뿌리는 농부」, 「땔감 줍는 사람들」, 「만종」, 「목동, 저녁의 인상」, 「밭에서 삽질하는 사람」, 「보리죽」, 「빨래하는 여인들」, 「삽질하는 두 남자」, 「소 먹이는 여자」, 「송아지 탄생」, 「실 잣는 여자」, 「씨 뿌리는 사람」, 「앉아서 뜨개질 하는 양치기 소녀」, 「양떼의 귀가」, 「양털 깎는 여자」, 「양털을 손질하는 여자」, 「여름, 이삭 줍는 여인들」, 「추수하는 사람들의 식사」, 「커다란 나뭇짐을 진 사람」, 「키질하는 사람」, 「풀 말리는 사람들의 휴식」, 「하루 일을 끝내고」 등 그림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농부들의 삶과 농촌을 그렸다.
그런데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농촌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어두워 즐겁지 않다. 그리고 그림 속 주인공들 또한 여성들이 거의 주인공들이다. 이는 19세기 초 밀레가 살았던 당시 여성들에게 부가된 노동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밀레는 이것들을 놓치지 않고 거칠고 뭉툭한 붓질이지만 그러나 간략하고 정제된 화면구성으로 주제를 심화시켜 농촌의 리얼리티를 극대화시켰다.
훗날 빈센트 반 고흐는 밀레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밀레에게 무한한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삽질하는 사람과 씨뿌리는 사람들의 크로키는 밀레의 흔적이 너무나 뚜렷하다. 밀레의 「괭이를 든 사람」 얼굴의 잔영이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고흐의 수많은 농부들의 그림에서 밀레의 영향이 느껴진다. 밀레는 고흐뿐만 아니라 인상파의 피사로나 후기인상파의 고갱, 드가, 세잔, 그리고 피카소 등 수많은 후배 화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니 그의 예술의 그늘은 참으로 넓고 깊다.
밀레와 그의 회화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작품으로는 강희근의 「밀레의 집」이 있고, 최승철의 「이삭 줍는 여자」, 추영희의 「만종」, 그리고 박주대의 「만종」 등이 있다. 강희근은 밀레의 집을 방문한 소회와 밀레의 삶, 그리고 그의 그림에서 느낀 감정들을 「밀레의 집」이라는 시로 형상화 시켰다. 최승철은 「이삭 줍는 여자」라는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라는 그림을 통해 시상을 펼치고 있는데, 그림 속의 이삭 줍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까칠한 어머니의 손을 떠올리고, “밑동이 잘린 벌판에서/동면을 마친 애벌레들이/대지를 밀며 끔툴거리”는 따스함을 발견한다. 추영희의 「만종」은 밀레의 「만종」 속의 농부의 모습이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소외계층들의 삶을 오버랩시키고 있다.
이들 작품들 중에서 최승철의 「이삭 줍는 여자」는 비교적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에 반해, 추영희의 「만종」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담아내고 있어 주목된다.
먼저 최승철의 「이삭 줍는 여자」를 살펴본다.


낡은 가로등 아래 흔적 없이 왔다가는 발자국들이
뒷골목 싸락눈으로 내리고 나는 밀레의 그림 속
이삭 줍는 여인과 함께 잘 익은 장엄 속을 걸어갔다

시대를 한 번 더 할퀴며 잠들지 못하는 밤
역 광장의 집비둘기들은 둥지로 돌아가
갈비뼈를 부비며 서로의 온기에 기대 잠든다
밀레의 그림 속 이삭 줍는 여인과 함께
창가에 어른거리는 불빛으로 가슴 한 면을 밀어본다
가지 못한 始原 쪽으로 화물칸이 덜컹거리자
흔들거리는 창틀에 어머니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이삭 줍는 여인의 까칠한 손이 내 가슴 위에 얹힌다

장엄 속으로 펼쳐진 벌판에서
뿌리까지 아린 후엔 따뜻한 봄 햇살이
내 발등 위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동면을 마친 애벌레들이
밑둥을 밀치며 꿈틀거리는지
마른 잔기침을 향해 울컥 내미는 흰 손
뒤축의 발자국들이 따뜻해졌다

그림 속에서
이삭 줍는 여인의 까칠한 손이
내 몸을 어루만지는지
점점이 눈송이 되어 내린 자리마다
장엄 속의 씀바귀 냄새
                   -최승철, 「이삭 줍는 여자」 전문


밀레는 「이삭 줍는 여인들」을 여러 번 그렸다. 이 중에서 1855년 것과 1857년 것이 많이 알려졌는데, 1855년 것은 배경에 수확한 곡물을 남자들이 들판에서 낟가리를 쌓는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져있고, 1857년 것은 넓은 들판에 많은 농부들이 곡물을 추수하여 낟가리를 쌓거나 옮기려고 마차에 싣고 있는 모습이다. 화면 오른쪽 끝에는 감독관이 말 탄 채 들판에 서있다. 그림의 모델들은 밀레가 지켜보던 샤이들판의 여인들이다.
그런데 이들 작품들은 하늘과 들판 모두가 오렌지 빛이다. 노을이 물드는 황혼 무렵일 수도 있겠지만 밀레는 일부로 화면의 배경을 누런 오렌지 빛으로 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작품 말고도 농촌 들판을 그린 작품들 대부분의 배경이 누렇기 때문이다.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이삭 줍는 여인들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을 뿌옇게 한 가지 색조로 통일시킨 것이다. 누런 오렌지 색조는 그림 속 여인들의 노동을 신성시하기 위해 거칠지만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배경의 오렌지 색조는 밀레의 마음속에 깃든 신성함의 표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루 일과가 끝나가는 황혼의 시간은 왠지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킨다. 마음이 착해져서 고향을 그리워하듯 시원(始原)을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최승철의 시작품에서 화자는 “밀레의 그림 속 이삭 줍는 여인과 함께/ 잘 익은 오렌지 빛 속을 걸어갔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밀레의 그림 속의 절기는 늦가을이지만 최승철의 시에서의 시간은 “뒷골목 싸락눈으로 내리”는 겨울밤이다. 그 밤에 눈이 바람에 흩날리는데, “역 광장의 집비둘기들은 둥지로 돌아가/갈비뼈를 부비며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잠이 들었”지만 화자는 잠들지 못하고 “밀레의 그림 속 이삭 줍는 여인과 함께/창가에 어른거리는 불빛을 가슴 한 면으로 밀어 본다” 여기까지 시를 읽다보면 화자가 실상은 눈 내리는 겨울 길거리를 이삭줍는 여인과 함께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 걸려있는 밀레의 그림 「이삭 줍는 여인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림을 보면서 그림 속의 이삭 줍는 여인들과 “잘 익은 오렌지 빛 속을 걸어”가고 “창가에 어른거리는 불빛을 가슴 한 면으로 밀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화자는 그림을 보면서 상상을 펼치고 있다. 화자는 그림을 통해 “가지 못한 시원(始原)”쪽으로 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때 “흔들거리는 창틀에 어머니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가라앉는다” 화자의 어머니는 농부였을 것이다. 그림 속 이삭 줍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손이 까칠해졌을 어머니가 생각이 나 이삭 줍는 여인과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쉽게 말해 밀레의 그림 속 이삭 줍는 여인은 어머니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이삭 줍는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화자는 “이삭 줍는 여인의 까칠한 손이 내 가슴 위에 얹힌다”고 진술할 수 있는 것이다.
밀레의 그림 속 이삭 줍는 여인과 어머니가 동일성을 이루는 이 모습에서 화자는 잠시 얼굴이 뜨거워졌을 것이고 이삭 줍는 여인의 까칠한 손에서 어머니가 들에서 일하다가 돌아와 자식의 몸을 만지는 감촉과 같았을 것이다.
화자가 밝힌 것처럼 그림 속의 “오렌지 빛”은 “장엄”하다. 이삭 줍는 여인처럼 어머니도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노동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쏟아지는 황혼의 들판은 “오렌지 빛 장엄”을 연출하는데, 화자가 어머니를 생각하고 신성한 노동을 생각하는 그 시간은 눈이 내리는 겨울밤이다. 겨울밤에 화자는 “뿌리까지 아린 후엔 따뜻한 봄 햇살이” 자신의 “발등 위에 닿을 수 있을 것”으로 희망을 기대한다. 어쩌면 화자는 지금 인생의 겨울을 지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들녘에도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자신에게도 봄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들판에 겨울이 한창이지만 그러나 “밑둥이 잘린 벌판”도 “동면을 마친 애벌레들이/대지를 밀며 꿈틀거리는” 것이어서 화자는 “마른 잔기침을” 해대고 있지만, “울컥 내미는 흰 손”을 느끼고 “뒤축의 발자국들이 따뜻해”진다.
밖을 여전히 바람에 눈이 흩뿌리는 겨울밤이지만 “그림 속에서/이삭 줍는 여인의 까칠한 손이” 화자의 “몸을 어루만지는지” 봄을 꿈꾸는 화자는 “점점 눈송이 되어 내린 자리마다” 봄을 상징하는 “씀바귀 냄새”가 난다.
밀레의 그림 「이삭 줍는 여인들」을 겨울 밤 자신의 집에서 바라보며 어머니의 숭고한 노동을 생각하다가,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온다는 희망을 생각하자 온 몸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끼는 화자의 마음은 희망적이고 훈훈하다. 밀레의 그림과 시인의 상상력 함께 버무려지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노동의 신성함을 생각해내며, 마침내 자신의 꿈을 꾸는 시인의 상상력이 매우 절묘하다.
최승철의 작품에서 그림과 시인의 상상력이 엮어지며 긍정적인 의미를 낳은 것에 반해, 다음 추영희의 「만종」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고 있어 서로 대조가 된다.


밀레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버린 저녁종
한 때의 유물 같은 평화로
낡은 종탑에서 타종되는 하루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들에 닿았다 돌아오는
저녁 거느린 종소리 아름답다
할 뻔 했다
밤새 종 안으로 웅크려 들었다가
생육하고 번성한 것들 하루 내 생사
시퍼렇게 내미는 새벽종
희망의 입구라
할 뻔 했다 대책 없이
굶주린 땅 죽어가는 아이의 눈도 목격한 햇살
주르르 흘린 혈변 같은 저 노을 또한 아름답다
할 뻔 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만든 뜻 따라 생육하는 말로
붙여진 온갖 것들 번성할수록
종소리와 종루의 헐어진 속들 위장약을 틀어넣으며
절룩절룩 붉게 돌아오는 저녁
마지막 생기를 불어 축복하던 피조물들 그 뜻대로 부디
낡은 종탑 반대편 땅에서도 은은한 소리로 저물어
번성하는 포성과 울음 대신 삽을 꽂아놓고 조용히
손 모으고 있는 가난한 부부와 아이들
밀레의 만종으로 다시 그려진다면
오래된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오는 종소리
이젤을 넘어뜨리고 경건하게 부활하는 저녁
저 혈변이 천사의 거룩한 피가 되겠는지
                                      -추영희, 「만종」 전문 


삼종기도(三鐘祈禱)는 가톨릭에서 하느님의 독생자의 강생과 성모마리아를 공경하는 뜻으로, 매일 아침·정오·저녁에 세 번 종 칠 때마다 드리는 기도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밀레는 어린 시절 들에서 일하다가 삼종기도의 종소리가 들리면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할머니의 뜻에 따라 기도를 했다고 고백하였다. 이러한 의미가 투사된 밀레의 「만종」은 삼종기도 중 가장 나중인 저녁 무렵 들판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종소리와 함께 기도하는 농부 부부의 모습이다.
추영희의 「만종」에서 밀레의 「만종」을 기억하는 화자는 “한 때의 유물 같은 평화로/낡은 종탑에서 타종되는 하루”라고 말한다. 그래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들에 닿았다 돌아오는/저녁 거느린 종소리 아름답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화자는 다음 행에서 “할 뻔 했다”고 말하며 그렇지 못한 현실임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밀레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버린 종소리”라고 작품의 서두를 연 것이다. “밀레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버린” 저녁종인 만큼 화자가 인식하는 현실은 부정적이다. “밤새 종 안으로 웅크려 들었다가/생육하고 번성하는 것들 하루 내 생사/시퍼렇게 내미는 새벽종/희망의 입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또다시 “할 뻔 했다”며 부인한다. 역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로 인해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또 다시 “대책 없이/굶주린 땅 죽어가는 아이의 눈도 목격한 햇살/주르륵 흘린 혈변 같은 저 노을 또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가, “할 뻔 했다”며 역시 부정한다. 이처럼 화자가 ‘~할 뻔 했다’는 식으로 부인한 것은 밀레의 「만종」의 배경인 하늘에서 하루를 거두는 일몰의 햇빛이 들판을 밝혀주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들판을 비쳐주는 햇빛은 “굶주린 땅 죽어가는 아이의 눈도 목격한 햇살”이기에 들판을 비추는 햇살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생육하고 번성” 하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온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는 닷새째 되는 날 하느님께서 “바다에는 고기가 생겨 우글거리고 땅 위 하늘 창공 아래에는 새들이 생겨 날아 다녀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큰 물고기와 물속에서 우글거리는 온갖 고기와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지어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하느님께서 이것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새끼를 많이 낳아 바닷물 속에 가득히 번성하여라. 새도 땅 위에 번성 하여라!”(창세기 1장 20~23). 창세기에는 또 다시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창세기 1장 27~28)하고 하느님이 지은 것들이, 특히 자신의 형상대로 빚은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한다.
그런데 “생육하고 번성하라 만든 뜻 따라 생육하는 말로/붙여진 온갖 것들이 번성할수록/종소리와 종루의 헐어진 속들 위장약을 틀어넣으며/절룩절룩 불게 돌아오는 저녁”이라는 것이 화자의 현실인식 태도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축복이어서 “피조물들은 그 뜻대로 부디 ”축복받기를 소망한다. “번성하는 포성과 울음 대신 삽을 꽂아놓고 조용히/손 모으고 있는 가난한 부부와 아이들/밀레의 만종으로 다시 그려”지기를 소망한다. 이처럼 화자가 인식하는 현실은 평화롭지 못하다. 이러한 현실인식 때문에 만약에 밀레가 다시 살아와 또다시 「만종」을 그린다면 “오래된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오는 종소리/이젤을 넘어뜨리고 경건하게 부활하는 저녁/저 혈변이 천사의 거룩한 피가 되겠는지”를 묻는 것이다. 밀레의 그림 속에서 들려오는 평화로운 저녁 종소리가 오늘은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그림 속의 붉은 저녁하늘 조차 “혈변”으로 보이는데, 밀레가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면 그 “혈변”조차 “천사의 거룩한 피”가 되겠는지를 우리 모두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밀레의 「만종」을 X선으로 투과시켜보면 기도하는 부부 사이에 놓은 바구니 자리에 작은 관이 있다고 한다. 밀레가 이 그림을 처음 그릴 때 죽은 아내의 시신을 담은 관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을 지우고 그 위에 바구니를 그려 넣은 것을 추영희 시인은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랬기 때문에 「만종」이라는 시에서 모순된 현실을 담아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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