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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영혼의 깊이, 떠도는 말의 서사, 고독과 슬픔의 노래, -허형만, 박이도, 박태일 시집

작성자시와사람|작성시간10.09.18|조회수999 목록 댓글 0

영혼의 깊이, 떠도는 말의 서사, 고독과 슬픔의 노래,

-허형만, 『영혼의 눈빛』, 문학사상사

-박이도, 『民譚詩集』, 모아드림

-박태일, 『풀나라』, 문학과지성사







1.

평자들이 몇몇 성격이 다른 시집을 평가할 때 흔히 그 내적 질서나 체계를 시인 심상의 단일한 궤적으로 범주화하거나 `은유와 환유의 기표'로써 시적 동질성을 발견하려 한다. 그러나 서로 각기 다른 시세계를 가지고 있을 때는 곤혹스럽다. 그렇다고 편의적으로 부분만을 잘라내어 분석과 해석을 가할 수는 없다. 이럴 경우 부분만 도드라져 보이게 해 전체의 조망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계절에 나온 신간 시집인 허형만의 『영혼의 눈빛』과 박이도의 『民譚詩集』, 그리고 박태일의 『풀나라』는 특히 각개 시인이 추구하는 전체(통합)가 서로 유사하다든가 부분적으로 엇비슷하다고 보기 힘든 경우이다.

세 시집에서 보여준 세 시인의 시적 성취의 지향점을 굳이 찾자면 못 찾을 바도 아니지만, 그러나 억지로 동일성을 찾는데에는 무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좋은시'를 말할 때 그 기준은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크게 말해 `내용과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내용이 새롭다든가 개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규정짓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상상력'과 `언어'이다. 즉 새로운 언어가 참신한 시를 꾸밀 수 있다. 그리고 기존의 형식을 벗어나 참신함을 추구해야 한다.


박이도의 『민담시집』은 서사성을 토대로 우리 시의 한 전통양식을 새롭게 구현해내고 있으며, 박태일의 『풀나라』는 그가 꾸준하게 추구해온 음악성과 더불어 이별과 유랑과 상실과 죽음의 사건, 그리고 이 사건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고독과 슬픔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한편 박이도가 사투리와 엮어내는 화법과 어투를 서사적으로 담아내며 언어의 결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박태일은 시가 노래였다는 기억을 환기시키며 독특하게 서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등 시 외적인 부분에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허형만의 『영혼의 눈』은 서정시의 본령이기도 한 삶의 깊이를 제시하며 성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앞의 두 시인들과 내외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2. 영혼의 깊이

허형만은 시력 30여년 동안 10권의 시집을 펴낸 중견시인이다. 대략 3년만에 시집을 펴냈으니 부지런하게 시를 써온 셈이다. 그가 10권의 시집을 써오는 과정에 8권째인 『풀무치는 무기가 없다』까지는 대체로 그의 현실인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제 8시집 『비 그친 뒤』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보다 깊은 데를 응시하는 마음의 눈으로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혼의 눈』은 인간이 자연과 우주에 비해 얼마만큼 왜소하고 미비한 존재인지를 깨달으며 자연과의 동화를 통해 자기 성찰을 시도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시가 짧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의 고백처럼 말 수가 작아지고 적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볼 수 있다. 그것은 여태까지 끊임없이 내뱉은 발언들이 세상과의 불화에서 오는 마찰음이 크고 많아 자신의 발언이 많았기 때문이지만 『영혼의 눈』은 자신과의 대화이며, 자연과 우주와의 대화인 까닭이다.

삶의 깊이를 제시하며 성찰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혼의 눈』에서는 특히 `겨울'의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고 있으며, `시간'의 의미를 자주 되짚어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겨울'이라는 상황적 공간인 극지(極地)를 설정함으로써 보다 투명하고 서늘한 정신적 표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과 흐르는 시간에는 살아있는 것들이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오는 결과로 궁극적으로는 그가 `영혼의 깊이' 또는 `영원'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앞에서 밝힌 것과의 동일선상에서 볼 수 있는 `비어있음의 충만'이라거나 `빈 것의 영원함'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없음으로 해서 존재하는, 또는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그의 인식의 결과이다.

허형만의 시에서 쉽게 만나는 `겨울'의 심상은 앞에서 밝힌 것처럼 가장 극한 상황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영혼을 그려내기 위해 설정한 시적 장치이다.


① 비행기에서 가까이 바라본/天山 만년설 보고다봉은/순백의 면사포를 쓰고/수줍은 듯 다가오는 신부였다/창공을 거느리고 날아드는/한 마리 순수의 새였다/저 순수의 눈빛과/순백의 이마,/마침내 나의 품 안으로/바르르 떨며 안기는/단 한 생의 절정이었다

-「天山雲山」 전문


② 남창계곡으로 오르던 길은/흔적 없이 사라지고/오직 녹은 눈 녹는 눈 공양으로/제 몸을 씻는 겨울 산//에 들어선 나도 씻어라/씻는다 해 떨어진 포구의 갈대들/소금물에 제 몸 씻으며 꼿꼿이 선 채로/컴컴한 한밤을 견디다 스러지듯//겨울 산에선 나도 없다 지나온/시간도 미망도 없다 오직 영하의/차고도 깨끗한 바람

-「겨울 산에서」 전문


①의 「天山雪山」은 화자가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천산 봉우리의 만년설이다. 알다시피 만년설은 녹지 않은 눈으로 화자는 `天山'을 썩지 않은 영혼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순백의 면사포”를 쓴 “수줍은 듯 다가오는 신부”의 모습으로 은유해 `순수'의 상징으로 설정하였다. ②에서도 ①의 `만년설'과 같이 “눈 녹은 물”, 즉 `눈'을 “차고 맑은 영혼”, 혹은 `더럽혀진 영혼을 씻는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즉 겨울산에 오르다가 “오직 녹은 눈 녹는 눈 공양으로/제 몸을 씻는 겨울산”을 바라보며 더럽혀진 마음을 눈 녹은 물에 씻는다. 결국 ①에서 맑은 영혼의 상징인 신부(만년설)를 안으며 시인의 자아는 일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수를 경험하게 된다. ②에서는 눈 녹은 물에 몸을 씻는 겨울산처럼 화자 자신도 더럽혀진 마음을 깨끗이 씻게 되는데, 그렇게 하여 순수해진 “겨울 산에서 나도 없”으며 “지나온/시간도 미망도 없다 오직 영하의/차고도 깨끗한 바람”만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결국 위의 두 작품은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눈(雪)을 통해 눈처럼 희고 맑은 영혼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눈이라는 자연물은 영하의 온도에서 만이 존재하는 것이어서 `따뜻함', 즉 게으르고 편안함 속에서는 `순수한 영혼'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인은 `겨울'이라는 극지(極地)의 환경을 설정해 `순수한 영혼'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빈 산」 연작시에서는 아예 `겨울산'을 `빈 산'으로 설정해 매편마다 `겨울'의 의미가 갖는 `극지'의 의미를 보다 극대화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비워냄', 즉 `가벼움'을 `충만'의 실존으로 담아내고 있다.


① 한 生을 비워내는/산, 새 울음 대신 바람이 운다//겨울이 가까이왔음을/산이 먼저 안 탓이다//한때 눈부셨던 목숨/영생은 없느니//나 또한 핏속 흐르는 빛살/비워낸다 흰 구름 흐른다

         -「빈 산 1」 전문


② 저 아래 계곡쯤에서/물 흐르나 보다 귀가 맑다//몸이 왜 이리 가벼운지/먼 산등성이 솜털까지 다다르겠다//이제 한겨울이 와도/내사 마음 닫을 일 없겠다-「빈 산 2」 전문


③ 한 생애가 눈에 덮여 있다/시간의 오솔길도 오늘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다//무거웠던 미명의 영혼 씻어내고자/계곡물에 손 담그니 정수리가 찡하다//온 우주가 으스스 떨려오는지/저 푸른 하늘엔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빈 산 6」 전문


①에서는 겨울이 되어 산에 살아있는 것들이 사라져 영생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껏 영생하고 있는 산은 겨울이 되어 살아있는 것(무거운 것)을 비워내고 있다. 화자 역시 영생을 꿈꾸며 자신을 비운다. 이 작품에서 `비워냄'은 ②에 의하면 `가벼워짐'을 말하는데 겨울이 되어 “저 아래 계곡쯤에서/물 흐르”는데 “귀가 맑다” 그리고 몸이 가벼워진다. 그래서 “먼 산등성이 솜털까지 다다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겨울의 `빈 산'은 살아있는 것들이 사라지는 공간으로, 사라짐으로써 가벼워지고, 가벼워짐으로 해서 마음의 허욕을 비울 수 있으며 `열린 마음'에 이를 수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이 밖에도 `겨울'의 이미지 혹은 겨울을 시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작품으로는 「天山산맥을 넘으며」, 「겨울 밤」, 「立冬」, 「꽃에게」 등에서도 나타나는데, 겨울이라는 `극지'의 의미를 되살려 `맑은 영혼'과 `영원'을 노래하고 있다.

허형만의 시에서 `겨울'이라는 환경설정에서는 영생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으로 향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내재해 있다. 그래서 허형만은 흘러감으로써 사라지고 마는 유한함을 구획짓는 시간의 속성을 그의 시에서 자주 차용하는데, 이는 그의 의식이 `영원성'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 천 년이 지나고/너른 초원을 달리던 그때의/전사들은 지금 석상으로 서서/동쪽을 향하고 서 있다/태양의 여명이 문밖을 나설 때/마치 산신처럼 하늘로 오르는/설산을 보기 위해, 지금/나도 이끼 검은 석상으로 서서/그 돌들과 함께 동쪽을 향하여 서 있다

      -「석상들은 동쪽을 향하여 서 있다」 부분


② 저 도도한/역사의 눈물을 보라/저 넉넉한/시간의 가슴을 보라/흘러도 흘러도/흐르는 것 같지 않음이여/저 넘치는/황토의 무덤을 보라/저 깊고 깊은/세월의 身熱을 보라

-「黃河」 전문


『영혼의 눈』 제 3부에서는 해외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형상화시킨 것들인데 시간의 상념들이 자주 전개된다. 여기에서 만날 수 있는 상징어는 `시간'이다. 앞의 작품들은 모두 `시간'의 의미를 살피며 `시간'을 초월하여 어떻게 하면 인간이 영원할 수 있는가를 나름대로 갈파하고 있다. 결국 이 작품들은 인간의 시간이 얼마만큼 무의미한지를 노래하고 있다.

①에서는 천 년 전 알타이에서 달리던 투르크전사들도 인간으로서는 결국 시간에 밀려 사라졌는데, 그들이 지금 영생하는 것은 석상으로서 존재하는 것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석상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지만 살아있지 않음으로 해서 살아있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인간의 시간이 무의미하며 영원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편 이 작품에서 석상들이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투르크전사들이 죽어서도 영원할 수 있는 또다른 의미를 지녔는데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영원하다 할 수 있는 태양의 존재를 바라보며 태양을 닮고 싶은, 즉 영원하기 위한 시인의 소망이 반영된 것이다.

②에서는 `黃河'라는 거대한 자연의 영생을 노래하고 있다. “흘러도 흘러도/흐르는 것 같지 않”게 보이는 것은 황하를 하나의 무덤으로 생각하는 시인의 인식 때문이다. 즉 `무덤'은 죽은 자의 상징으로 죽어있음이 곧 살아있다는 의미인데, 결국 시인은 무의미한 인간의 시간을 뛰어넘어 만 영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시집 전체를 통해 발언하고 있다 하겠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허형만 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소리'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다. 시집의 표제 시인 「영혼의 눈」에서 그가 `소리'를 통해 어떻게 `영혼의 눈'을 획득하려는 지를 찾아 볼 수 있다.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 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영혼의 눈」 전문


상식적으로 눈 먼 사람은 사물을 소리와 촉각과 후각으로 인식한다. 밝음과 어둠을 인식하지 못한다. 화자는 눈 먼 가수는 보통 사람들에게 느낄 수 없는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와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을 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눈 먼 사람이 모든 사물을 소리로써 듣고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자는 눈과 귀를 통해 볼 수 있으며 들을 수 있는 자신이 내밀하게 사물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소리로써, 즉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둠이므로 눈으로 보는 밝음을 이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시인이 위의 시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사물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히 시각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 속에 있는 눈으로 보는 것임을 뜻한다. 즉 `소리'로써 `밝음'을 극복하는 `영혼의 눈'을 갖지 못한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다.

`소리'를 시적 주제로 삼은 작품으로는 같은 시제의 「소리」 두 편을 비롯해 「귀 수술」, 「절간은 고요하고」가 있으며, `소리'를 제재로 삼은 경우도 여러 편이 있다. 허형만의 시에서 `소리'는 “나의 영혼을 맑게 깨우”는 우주의 숨결로 나타난다. 특히 「귀 수술」에서는 `소리'를 통해 `밝음'을 극복하는 시인의 깨달음이 들어있다.

살펴본 것처럼 『영혼의 눈』은 `시간', `비움', `침묵', `소리' 등의 이미지와 의미들이 얽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이승하의 지적처럼 인생의 에움길에서 시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자 하는 허형만 시인의 성찰과 깨달음이다. 즉 `영혼의 눈'을 가져 자신의 삶을 보다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자 하는 구도적인 노력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3. 떠도는 말의 서사

시력 40여년을 쌓고 있는 박이도의 시세계는 그간에 펴낸 『불꽃놀이』(1983), 『홀로 장수의 나루를 바라볼 때』(1991), 『회상의 숲』(1998)에서 맑고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런 연유로 이번 시집은 다소 엉뚱하다거나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우선 우리가 시를 이해할 때 흔히 `서정시'를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가 들고 나온 `민담시'란 우리가 알고 있는 서정시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서정시에서는 화자가 자신의 말에 침윤되어 있어서 시의 형식, 어휘, 표현이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고백의 양식'인데 반해, 민담시에서 화자의 말은 대화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경계 너머에 다른 발언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대화의 양식'이다. 즉 민담시는 `대상을 향한 생생한 충동 속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런 점에서 민담시의 말은 `내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것'이랄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전문학(口傳文學)'인 민담시의 특성은 우리시의 전통양식으로 근대 이후 우리 시의 논의에서 서술성이나 서사성은 주목이 되지 못한 까닭에 시는 `운문이야 하고 서정성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통용되면서 우리시의 편향성과 왜소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번에 들고 나온 민담시는 다소 의외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시단의 상황으로 보아 다소 낯선 `민담시'를 그가 왜 들고 나오게 되었는가. 박이도가 『민담시집』을 쓰게 된 동기와 민담시의 내용과 성격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시집의 서문 `민담시의 어법'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민담 속의 이야기들도 조선시대 팔도에 떠돌던 이야기 중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허다하다. 이 경우 더러는 시일을 두고 구전된 것도 있겠지만 독창적인 이야기일지라도 객관적으로 보면 유사한 것도 읽을 수 있다는 심증을 얻게 된다. 그런 민담들의 이야기 전개방법은 구술자의 시대, 나이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 중에도 지역적인 특유의 사투리로 엮어내는 화법과 어투는 시적 효과를 자아내기에 훌륭한 방법이 된다고 생각했다.

민담시의 소재는 주로 우리나라 민담에서 취하나 불교 설화, 성경, 고사성어, 속담 내지 오늘의 신문 기사까지도 확대해서 취하고 있다.

민담시의 주된 내용은 정치·문화 등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표출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필자의 사회비평적인 칼럼이 민담시로 대신하게 되었다.


앞의 내용으로 보아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민담이 지역마다 다른 사투리, 또는 구술자의 시대나 나이 등에서 조금씩 달라지는데서 독특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데에서  시인이 민담에 관심을 갖게 됐다.그의 시집에 의하면 이번 시집의 제재는 『구비문학 대계』, 『한국의 민담』, 『임석재전집-한국 구전설화』 그리고 중국 민간문예연구회 연변문학편 『민간문학자료집』, 『한국구비문학대계』, 『제주도 민담』, 『전북민담』 등의 설화 및 민담집과 오늘날의 신문에서 국가적으로 관심 있었던 스포츠사건이나 정치인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변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가 민담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처럼 민담이 가지는 형식과 내용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밝힌 것처럼 민담은 지역과 시대와 구술자의 남녀노소에 따라 언어의 질감이 다른데 그는 주목하고 있다.


1

까부랑 노친네가 까부랑 나무에 올라가서/까부랑 띠를 싸넌데 까부랑 가이레와서/까부랑 띠를 먹을래다 까부랑 디깽이루 때리니꺼니/까부랑 까부랑하멘 다라났다

2

까부랑 가이는 어디로 갔을가/까부랑 골목을 지나 까부랑 고개로 넘어갔디/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날 까부랑 고개로/넘어 넘어 가다 꼴까닥!

          -「꼴까닥! 타령」 전문


위의 작품은 1937년 평북 철산군 차련관의 이명선 등이 구술한 것을 『임석재전집』에서 따왔는데 그 원문의 행만 가름한 것(1)이다.“까부랑 띠를 싸넌데 까부랑 가이레와서/까부랑 띠를 먹을래다 까부랑 디갱이루 때리니꺼니” 등에서 평안도 사투리의 어감을 느낄 수 있다.

이재복의 지적에 의하면 민담시의 독특한 형태는 민담을 시에 수용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민담시집』에서 살펴보면 시는 민담을 구술자의 화법과 시인의 화법을 통해 시에 수용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두 화법은 다양한 존재양태를 드러낸다. 이 두 화법의 존재양태에 따라 시의 텍스트가 구성된다. 그것은 시인의 화법이 구술자의 화법에 의해 그 형태 자체가 드러나 있지 않는 경우와 두 화법이 경계가 비교적 분명하게 유지되어 있는 경우로 나타난다. 특히 주목해야 할 방법은 두 화법의 경계가 분명하게 유지되어 있는 경우이다.

아래 작품은 그 예이다.


넷날에 농사꾼 하나이 (……) 무 하나 바티구 송아지 한 마리를 얻어 개지게 됐다.

근체 사람 하나이 (……) 소문을 듣구 송아지 한 마리 바티문 논마디기나 얻어 개지갔디 하구서리 송아지 한 마리를 끌구 사뚜한테 갔다. “사뚜님, 저는 수십 년 소를 맥에 왔년데 금년에는 이와 같이 <&02383>은 송아지가 나왔십니다. 이것을 팔기가 아까와서 사뚜님한테 바틸라구 끌구 왔십니다.” 하구 말했다. 사뚜는 이 말을 듣구 기뻐서 하인을 불러서 “여바라, 요새 무어 들어온 거 없느냐?” 하구 물었다. 하인이 “요전에 들어온 무밖에 없십니다.” 하니끼니 사뚜는 그럼 그 무를 이 사람에게 상금으로 내어주라 했다.


(……)


한 신하가 영감님을 따라 낚시터에 갔디오. 찌기 노는지 마는지 영감님은 조용한 물가에서 정적(靜寂)을 즐기시는데, 느닷없이 `풍-'하고 방귀를 피웠겠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물고기가 안 잡혀 안절부절하던 신하가 얼시구나! 이 시회로다.

`각하 장수하십시오.'

한데 각하는 무엇이라 대꾸를 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부분


위의 작품은 두 개의 텍스트가 존재하는 독특한 형태의 시이다. 전반부와 후반부에 각기 다른 텍스트가 존재하는 이 경우, 전반부의 경우는 구술자의 화법을 살려 민담을 거의 그대로 시에 수용한 경우이고, 후반부의 경우는 시인의 화법을 살려 민담을 모방하고 굴절시켜 시에 수용한 경우이다. 여기에서는 시인은 두 개 의 텍스트로 분리해 구술자의 화법과 시인의 화법을 살리고 있다. 민담을 그대로 시에 수용하면서 시인이 의도한 것을 구술자의 화법이 빚어내는 다채로움이라 할 수 있다. 구술자 및 그들 각자가 놓인 시공간적인 상황에 따라 화법이 달라져 민담이 끊임없이 변형되고 변주되어 하나의 살아있는 텍스트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을 시인은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렇듯 한 작품 안에 두 개의 텍스트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는 「농부와 변호사」, 「I AM CRAZY」, 「개 짖는 소리로 개그한 레노」, 「그린내 전(錢)타령」, 「도둑이 제 발 절인 법 이유」, 「똥 싼 놈이나 잡아 주세요」, 「미테랑의 거짓말」, 「무엇이 무서워 못 오시나요?」 등인데 현실 풍자 및 체제 저항적인 속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 하나 『민담시집』의 매력은 세계에 대한 전복 욕망을 갖고 있는 점이다. 세계에 대한 전복 욕망은 대개 `위치 전도'의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


① 김대중의 소원도 통일

김정일의 소원도 통일

통일 통일 만만세

          -「나의 소원은 통일」 부분


② 한 신하가 영감님을 따라 낚시터에 갔디오. 찌기 노는지 마는지 영감님은 조용한 물가에서 정적(靜寂)을 즐기시는데, 느닷없이 `풍-'하고 방귀를 피웠겠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부분


③ 아아 퇴계 슨생으 하는 짓이란 그야말로 난잡하다 할가, 므라고 할까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읍ㅅ는 짓이드래유. 둘이는 빨가븟고 둘이 엉키으스 방바닥을 헤매고 돌아가며 소위 四十八手, 요새는 五十手라 하지마는, 므 가진 방븝을 다 쓰가면스 아주 유쾌하게 내외간으 情事를 질급게 하드래유.

-「뭐라고?」 부분


위의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비하함으로써 그 위치를 전도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①에서 “김대중”이라고 부름으로써 대통령의 지위는 사라지고 대통령보다 낮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②에서는 `위치 전도'의 강도가 더해진다. “영감님”(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피운” 사실을 발설하는 순간 그의 위치는 천박한 `방귀'의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③의 「뭐라고?」에서도 고매한 “퇴계 슨생”의 밤일(情事)을 발설함으로써 성스러운 존재가 속된 존재로 떨어지게 된다.


4. 고독과 슬픔의 노래

시는 노래였다. 아니 시는 노래여야 한다. 단순히 노래였다는 기억만으로는 오늘날 유행처럼 난무하는 시의 산문화경향을 극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문시 자체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이유없이 시가 길어지고 리듬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이 리듬으로 살아나는 음악성은 산문시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넓은 강의 강물처럼 느리게 흐르다가 갑자기 협곡의 강물처럼 소리를 내며 빠르게 흐르기도 하는 것이 시의 강물이다.

박태일은 그의 시의 출발에서부터 시가 노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 시인이다. 노랫속에서 이중 삼중으로 의미가 재생산되는 노래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일찌기 박태일의 첫시집인 『그리운 주막』 해설에서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세 번재 시집 『약쑥 개쑥』 해설에서 하응백도 박태일의 시가 음수율·음보율·음위율·타령조 등 우리 시의 율격을 이용하여 시를 능숙하게 노래화한다고 분석하였다. 이처럼 능숙하게 구사하는 박태일 시의 음악성은 이번 시집 『풀나라』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먼저 『풀나라』 시집 해설을 쓴 오형엽의 분석을 통해 우리 정형시의 형식을 통해 우리 시의 전통적 율격을 차용한 경우를 살펴보자.


① 월명을/찾아서/월명마을로//

월명이/바라 섰던/한길을 따라//

월명이/물 긷던/찬 샘 옆으로//

         -「월명 노래」 부분


② 오나 가나/오가리/

걷고 말고/지릿재//


망한다/망한다/

세상/망하지 않고//

죽는다/죽는다/

사람/죽지 않건만//

        -「황강 4」 부분


①은 3음보의 율격을 유지하여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각 행의 첫걸음을 “월명”을 배치하여 음위율을 형성한다. 따라서 “월명”을 반복하여 리듬의 가속도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이것은 우리 시인 정형시의 형식을 통해 규칙적인 리듬으로 전통양식의 재현으로 오늘날 현대시가 상실해 가고 있는 음악성을 회복시키고 있다.

산문시에서도 박태일 시의 형식 실험은 적용되고 있다. 쉽게 말해 그의 대부분의 산문시를 읽게 되면 3·4조, 4·4조 또는 3음보나 4음보의 기본율격과 그 변형으로 리듬이 살아난다.

그 예가 될 수 있는 것이 「어린 소녀 왔습니다」이다. 


유세차 갑오 정월 초이틀 임신은 우리 친가 아바 곧 이 세상 버리시고 구원천대 돌아가신 그날이라 앞날 저녁 출가 소녀 수련은 왼손으로 눈물 닦고 오른손으로 가슴 쥐고 엎드려 아뢰오니


(……)


되오소서 되오소서 피고 지는 좋은 날에 다시 한 번 되오소서 어이어이 바쁜 세월 어언간 소상이라 구곡같이 맺힌 정회 깜박 깜박 아뢰오니 아룀이 계시거든 흠향 흠향하옵소서 오호 애재 상 향.

-「어린 소녀 왔습니다」 부분


「어린 소녀 왔습니다」는 제문 형식을 차용하여 출가한 딸이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유세차”로 시작하여 “오호 애재 상 향”, “아뢰오니”, “되오소서”, “하옵소서” 등의 예스러운 어휘를 구사함으로써 곡진한 정서를 형상화시키고 있다.

이렇듯 박태일의 시는 전통의 현대적 변용 또는 재생이라는 차원에서 시의 음악성을 살리고 있다.

박태일의 시가 노래였음을 환기시키며 특히 전통적 정서를 되살리고 있음의 소중한 성과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의미있는 작업은 오형엽의 분석에서 나타났듯이 이별과 유랑과 상실과 죽음의 비극적 사건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고독과 슬픔의 세계이다.


햇살은 닥나무 가지에 앉아/졸음을 나눈다 줄지어/오는 바람에 고드름빛 하늘을 짐작하고/바퀴 없이 뒤집혀진 경운기와/뽑다 만 배추들이 비닐을 감은 채/저녁 연기 깔리는 들판을 본다/무덤이 뽑혀 나간 붉은 구덩이가 셋/여름 떠내려간 강가에 반쯤 묻힌 속옷이 누렇다/비리다 굽이굽이 배곯은 저 창자의 길//철 보아 동무 함께 다닐 일이지/동고비 추윗추윗 해 떨어지면/홀로 슬프다 춥다/춥다.              -「정월」 전문


위의 작품 「정월」은 비록 들판과 산과 강가의 `정월' 풍경을 그려내고 있지만, 유랑민의 슬픔을 비유하여 그려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이 슬프고, 춥고 마치 쓸쓸한 폐허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퀴없이 뒤집혀진 경운기”, “뽑다 만 배추”, “무덤이 뽑혀 나간 붉은 구덩이”, “여름 떠내려간 강가에 반쯤 묻힌 속옷”, “비리다 굽이굽이 배곯은 저 창자의 길”이 보여주는 처연한 정서 때문이다.

다음의 작품들은 각각 유랑민의 떠돎과 상실의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① 사월 오월 안산 당산/조팝 진달래 희어 붉어 비린 속살 포족족 포족족 우듬지마다 여우귀 새순을 달고 골짝 등성이 지리지리 종지리 흩고 날리며 옆눈 없이 내빼는데 허둥둥 지둥둥 마냥 잦은 화냥질이어서 마음은 찔레밭 그늘에도 길을 맡기지//사월 오월 안산 당산/무량무량/꽃지옥 길/울며 울며 지쳐 걸으며.

-「풀나라 기별」 전문


② 세상 서러워도 제 땅에 나라마저 잃어/쫓겨 구르던 마음 곰나루는 여기서 먼 데/붉은 솔뿌리 한 골짝 건너서고/붉은 솔뿌리 한 골짝 건너서고/겹겹 조개무지 다시 텃밭 이루어도/기껏 百濟政丞都彌妻貞烈婦人 그이름 지키기 위해/남아 욕된 것 아닌 줄 그대 아실 일/남녘 바다 바라보며 다시 감긴 눈/그대 바이 뜬 바 없이 두고 온 하늘 더듬나/더는 물러설 데 없이 뺏기고 앗긴/안골 옛 저잣거리 젓독마냥 곰삭은 세월/마음 없으니 머문 이십 년이 매양 하룻잠/살아 서럽네 울컥울컥 솟은 흙무덤 다 고향집 같아/엎어지다 미끄러지다 여태/그대 눈먼 그대로 누워계신가.

-「눈먼 그대」 부분


①은 1연에서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난 생명의 봄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화자의 마음은 “찔레밭” 같은 고통스러움을 안고 있다. 특히 2연에서는 1연에서의 생명의 봄이 무색할 정도로 유랑민의 애환을 제시해 전복시키고 있다. 시절은 꽃피고 새가 우짖는 봄이지만 화자는 그 꽃과 새가 있는 풍경을 지쳐 울며 가고 있다.

②에서 화자는 관찰자 시점에서 녹산 안골 언덕바지의 무덤들을 바라보고 있다. 화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백제에서 쫓겨난 도미와 그 아내가 함께 묻힌 무덤이다. 화자는 아름다운 아내 때문에 눈이 먼 도미의 떠돌이 생활을 생각하며 그의 무덤을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다. 역시 유랑과 상실의 서사를 중심으로 시로 형상화하였다.

오형엽은 박태일의 시에서 이별과 유랑과 상실과 죽음의 사건, 그리고 이 사건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고독과 슬픔의 세계가 대부분 어떤 구체적인 공간, 혹은 결부되어 형상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구체적인 지명이나 장소가 제목에 등장하는 「월명노래」, 「황강 4」, 「용전 사깃골」 그리고 공간이나 장소가 내면에 설정된 「어머니와 순애」, 「광음이 흐르는 물과 같아」, 「어린 소녀 왔습니다」, 「앵두의 이름」 등에서처럼 박태일 시에서 장소 혹은 지명이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황동규는 이 지명이 실제로 손때 묻은 장소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장소 길들임'이라 명명한 바 있고, 김주연은 박태일 시의 공간에 대해 전원시적 요소와 농촌시적 요소가 어우러져 두 가지 모두에 싱싱한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박태일의 시의 장소와 공간을 생각할 때 `바다'와 그 주변, 또는 `강'이 많이 등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황덕도」, 「신호리 겨울」, 「후리포」, 「신행」, 「그 여자 꿈꾸지」, 「눈먼 그대」 그리고 16편의 「황강」 연작시가 그것이다.


① 차라리 하늘을 가두리로 삼아/내외할 것도 없이 깨벗은 황덕도/마른 불가사리 굴쩍 더미로 풀칠한 골목/기울어진 삽짝문을 바깥에서 잠근 채/다시 섬으로 나가는 뱃머리/두 물째 놓친 갈매기 사공이 길을 묻는다/너 어찌 갈래?/이 섬에서 다른 섬으로/이 삶에서 다른 삶으로.-「황덕도」 부분


② 바다 밑 여울이 산갈치를 보여줄지/청어떼를 불러 세울지는 잊기로 한다/젊어 떠돌았던 포구 이름도//숨 가쁜 삼팔따라지 구석 살림마다/물기 도는 줄거움 하 드물었던 아내//허허바다 멀리 마름질한 위로/치렁출렁 오늘은 비/북쪽 머리 제비갈매기가 앞일 묻는다.-「후리포」 부분


③ 바람막이/둑길 탓에/물살은 예사 턱질이다/콩에 팥에 봉산할메/돌림장 채비는 어떠시던가/가랑눈 온다기/왔다 간다 새벽/연호사 풍경 소리.-「황강 5」전문


위의 작품은 바닷가나 강을 배경으로 하던지 그와 관련된 내용의 시들이다. ①은 `황덕도'라는 공간을 삶터로 해 살아가는 황덕도 어민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이 섬에서 다른 섬으로/이 삶에서 다른 삶으로”가 암시하듯이 곡진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생활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는 `삶'은 곧 `섬'에서 `섬'을 찾아다니는 유랑과 고독의 연속임을 말하고 있다.

②에서도 유랑의 역사를 적고 있는데, 비오는 날, 후리포 포구 횟집을 배경으로 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시절 물고기를 찾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화자가 수족관의 오징어나 문어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과거와 오늘을 물으며 지나온 삶을 회상하는 화자는 궁색하고 편치 않았던 자신의 고단한 삶을 드러내고 있다. 역시 바닷사람들의 지난한 삶의 모습 그리고 있다.

③에서는 제목이 암시하는 `황강'의 구체적인 상황이 표면에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황강을 배경으로 하여 사는 사람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즉 “물살은 예사 턱질이다”가 말하고 있듯이 홍수져서 넘치거나 가뭄으로 마른 것이 아니라 알맞게 흘러가며 장돌뱅이 “봉산할메”의 안부를 묻고 있다.

이처럼 박태일의 시에서 바다나 강 등이 시적 소재나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의 내면에 바다나 강의 정서가 잠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시인의 유년의 정서적 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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