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불교 기독교의 윤회의 차이점은?
<두종교간의 윤회관>
먼저 현제 윤회를 믿고 있는 불교와 힌두교에 대하여 그들의 사상을 먼저 비교해보면,
윤회는 불교에서는 생사관이면서 내세관입니다.
그런데 힌두교에서도 모든 생명은 윤회한다고 합니다.
알다시피 불교의 교조인 석가모니 부처는 무아론과 사성제, 연기법으로써 힌두교의 다신신앙을
부정하고, 우주의 진리와 가치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있다고 주창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윤회와 힌두교의 윤회는 분명 어떤 차이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힌두교의 윤회는 아트만이란게 있습니다.
반면 불교의 윤회는 무명(無明)이 근본원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네 가지 거룩한 가르침이 뭔지도 모르고 여덟가지 바른 가르침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가 무명입니다.
(이론으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네가지 가르침을 깨닫고 여덟가지 바른 가르침을 행하지 않으면 무명에 잠긴 것임)
그리고 이런 상태에 들어가면 아라한이라고 하는 성자가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게 되고
여덟가지 복밭이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힌두교는 윤회할 때 아트만이란 게 있다고 하며
불교에서는 무명으로 인해 나고 죽음에 떠돌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니
이렇게 윤회에 대한 불교와 힌두교의 입장은 다른 것입니다.
힌두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된 종교라고 합니다. 물론 수메르 신화도 비슷한 시기에 성립이 되었지만,
뒤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기독교, 그리스 신화 등의 성립에 영향을 주고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힌두교는 10억이 넘는 인도인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힌두교는 그 속에 너무나 다양한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어서 정의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저는 Atreya 박사의 논문을 근거로 피력해봅니다.
1) 브라만 : 온 우주의 영적인 단 하나의 본질, 모든 것은 이 브라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신(God)이라는 말로도 브라만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다만 브라만의 일부분만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브라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비롯한 모든 물건들도 서로 얽혀 있습니다. 모두 내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서로 사랑과 동정과 친절로서 대해야 합니다. 우주는 물질적, 정신적, 영적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2) 아트만 : 개체도 정신적, 물질적, 영적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브라만이 분화되어 일체에 내재해있는 불변의 실체를 아트만이라고 합니다. 사망은 단지 육체의 죽음일 뿐이며, 정신과 영혼에 대해서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영혼은 육체가 죽은 뒤 다시 육체적 몸을 찾아 들어가 또 다시 육체적 활동을 개시합니다. 그 원인은 정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욕은 다른 사람의 정욕과 행동을 방해하기도 하고 도와주기고 하기 때문에 반드시 보상의 원칙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인과율입니다. 아무도 이 인과율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다.
이상의 설명에서 보시면 불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 우선 브라만이라는 만유의 근원적 실체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불교에서 비로나자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만유의 근원이며 실체가 아니라, 진리를 의인화하여 부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힌두교는 영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것이 윤회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실체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영혼을 아리야식이라고 보며, 그것은 실체가 아니라 무명에 물든 심식 작용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대신에 불교는 진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표현하면 그냥 마음일 뿐이며, 본래 자리인 마음 그 자체는 윤회하지 않습니다.
* 힌두교는 욕구와 희망을 달성하여 행복을 누리고 사회 평화를 실현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생활 목표로 다음 네 가지를 주장합니다. 반면에 불교는 이러한 것들이 윤회하는 원인이라고 보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두 종교간의 윤리관의 관점>
인간을 육체와 정신 두부분으로 나눌 경우, 정신적인 측면을 영혼에 속하는 영역으로 보는 것이죠.
육체라는 것도 사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는 생각입니다.. 처음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란이 되면서 하나의 생명체가 시작되죠. 그 수정란이라는 한개의 세포가 계속 자라나서 성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세포가 어디서 왔느냐 하면 음식의 영양소에서 온것입니다. 음식은 자연계에서 왔구요.
그렇다면 육체라는 것도 그 실체가 없습니다. 육체는 결국 늙어서 죽고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보면 육체라는 실체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뒤집으면 세상 모든 것은 육체를 만드는 요소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정란에는 뇌도 없고 눈코입 그리고 손 발도 없지만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낼수 있는 능력이 있죠. 만약 이런 능력을 영혼의 개념으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영혼이 무슨 귀신처럼 생겼다고 영화같은데서 나오는데 그런 사람모습을 한 영혼이 어떻게 현미경으로 볼수 있는 수정란에 들어갈까요. 만약 그렇다면 영혼은 형체가 없는 것이며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됩니다. 과연 영혼이 무엇인가 하고 곰곰히 관찰하다보면 마음이라는 것에 도달하게 됩니다. 마음이라는 바탕에서 욕망이 나오고 생에 대한 집착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윤회하는 것이죠.
불교에서는 마음과 영혼은 다른 것입니다. 마음은 가장근본이되는 것으로서 그것이 작용하여 만법이 만들어 집니다. 번뇌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생각도 마음에서 나오며 감정도 마음에서 나옵니다.
힌두교에서는 영혼이 불멸이며 윤회하는 주체로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불멸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법무아로서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기때문이죠.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영혼을 무엇이라고 한면 업식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이 있다고 믿고 그런 믿음 경험 습관 을 나 자신이라고 집착하는 의식 덩어리 일뿐이죠.
힌두교에서는 나를 이루게하는 '아트만'이라고 하는 것이 있듯이, 이것은 순수한 영혼알갱이 같은 것입니다. 즉, 내가 되게끔 하는 궁극적인 알갱이죠. 흔히 영혼이라고하는 것입니다. 이 순수한 아트만에 더러운 것이 쌓여서 업이 되고 윤회를 한다고 믿는 것이 힌두교사상입니다.
사실 불교의 가르침에는 '나' 라는 것 '아트만'이라는 것이 없죠. 그래서 무아입니다. 그러니 사실 그 위에 쌓일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나'라는 것을 설명할때 '오온(다섯가지 쌓임)' 이라고 한 이유는 그렇게 표현해야 그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기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라는 것을 오온이라고 해도 맞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인식의 변화를 주기위해서일뿐, 무아임을 알아차렸다면 '오온'또한 본래 그 모습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즉, 무아이므로 나를 규정할 궁극적 요소가 없다면, '나'를 구성한다는 '색수상행식'의 색을 규정할 요소도 없고 수상행식 각각을 규정할 궁극적 요소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번뇌가 쌓인다고 말할수도 없고 번뇌로 인해 윤회와 업을 받아야 할 '나' 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체가 바로 열반이죠.
결론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영혼 그리고 육체를 설명드리면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실체가 없는 것이죠. 그렇다고 그림자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구름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일뿐 고정되어 있고 변하지 않고 분리해 낼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림자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꿈속에서는 꿈이 현실같지만 꿈을 깨면 꿈은 꿈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바로 꿈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마음이 만들어 낸 환영같은 것인데 그것을 실재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죠.
힌두교의 아트만은 자아 또는 영혼의 개념으로서 '나'라는 것을 만드는 아주 순수한 작은 알갱이라는 뜻입니다. 그 알갱이에 더러운 것들이 쌓여서 업을 받고 윤회를 한다고 믿었죠. 불교에서는 그런 '자아'를 만들게끔하는 순수한 개개의 알갱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연기에의해 만들어지고 연기에 의해 없어지는 것이죠.
지금 현재 이전의 과거는 모두 나의 전생이고 지금 현재 이후의 미래는 모두 나의 내생이 됩니다.
인연론은 곧 인과의 법칙을 의미하며 윤회란 그 법칙에 따라 자신이 행하고 말하고 생각한 것들에 의해 자신이 결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 내가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나의 운명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받는 것이니 그게 바로 우주의 법칙입니다.
만약 인연론을 믿지 않고 인과의 법칙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세상에 모든 일은 우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니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출세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엉뚱한 것이 나온다는 뜻이며 내가 잘못을 저질러도 죄는 다른 사람이 받으며, 내가 밥을 먹었는데 남이 배부른다는 소리니 이치에 맞지 않게 됩니다.
<불교와 힌두교와 기독교와의 윤회의 상대관계 - 정리>
위에서 말한바대로(정리해보면),
인연론은 곧 인과의 법칙을 의미하며 윤회란 그 법칙에 따라 자신이 행하고 말하고 생각한 것들에 의해 자신이 결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 내가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1. 불교와 힌두교의 영혼과 윤회
<영혼>
1)불교에서는 영혼을 아리야식이라고 보며, 그것은 영혼(육)은 실체가 아니라 무명에 물든 심식 작용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대신에 진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표현하면 그냥 마음일 뿐이며, 본래 자리인 마음 그 자체는 윤회하지 않습니다.
1)힌두교에서는 영혼이라는 것을 실체로 인정하고 이것이 윤회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
힌두교에서는 영혼이 불멸이며 윤회한다고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불멸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윤회>
1)힌두교는 영혼이 불멸이며 윤회를 한다고 말하는데, 윤회할 때 나를 이루게하는 '아트만'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 아트만에 더러운 것이 쌓여서 업이 되어 윤회를 한다고 하는데 이 아트만은 개체도 정신적, 물질적, 영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육체의 사망은 단지 육체의 죽음일 뿐이며, 정신과 영혼에 대해서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영혼은 육체가 죽은 뒤 다시 육체적 몸을 찾아 들어가 또 다시 육체적 활동을 개시한다. 그 원인은 정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욕구와 희망을 달성하여 행복을 누리고 사회 평화를 실현한다고 봅니다.
2)불교에서는 불멸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으며 나' 라는 것 '아트만'이라는 것이 없는 것으로 그래서 무아입니다. 그러니 무명으로(그림자) 인해 나고 죽음에 떠돌게 되는 것(윤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이 윤회하는 원인이라고 보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부처(깨달음)가 되는 것이지요.
2. 힌드교와 불교와 기독교의 영혼과 윤회관(상관관계 요약)
<영혼>
영혼을 불멸의 존재로써 생명의 근본이라고 표현합니다.
1)힌두교에서는 우주적인 본질로 불명의 영혼을 인정을 하고(불멸,)
2)불교에서는 불멸로써의 영혼을 인정 안하고 오직 무명(無明)으로써 마음의 법에 의한 심식 작용이라고 합니다.
3)기독교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영혼이(빛과 흑암으로) 창조되었고 영혼불멸인데 그 영혼은 윤회 과정을
통하여 진화에 이르러가 영생과 열벌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윤회>
윤회는 생사관이면서 내세관이고 모든 생명은 윤회한다는 사상입니다.
1)힌두교는 불멸의 영혼이 윤회한다고 생각합니다.
2)불교는 무명(無明=깨달음이 없으니 어둠임)이 윤회의 근본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통하여(유명有明) 윤회에서 벗어나는(해탈) 교리입니다.
3)기독교에서는 기독교 자체에서는 이년적인 사상에 의하여 부정되지만 성경에서는 많은 윤회적 사상이 내제되어
있습니다. 불멸의 영혼이 윤회를 하는 것으로 그 윤회과정을 통하여 빛과 흑암으로 함께 내재하던 우리심령이 육이
윤회할 때마다 도를 이루어 빛으로 온전한자가 이루어져 감으로 종국에는 신일합일이 완선됨으로 신에까지 이르러
그 영혼이 바로 육체를 입고 천국을 이루는 요체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기독교적 측면)
1. 표면적으로는,
1)영혼사상은 기독교와 천주교가 유사하다고 봅니다
2)윤회사상은 불교, 힌두교, 기독교가 모두 유사하다고 봅니다.
2. 내면적으로는,
본질적으로 영혼 및 윤회사상이 기독교 사상과 다 다릅니다.
1)영혼에 있어서는 창조주적인 창조개념이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윤회에 있어서는 영생과 영벌의 방법이 다르고 또 인간과(두종교) 신의(기독교) 개념의 차이에서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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