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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염창동 증미산에 꾀꼬리가 살고 있다.

작성자이영성|작성시간10.05.30|조회수238 목록 댓글 0

염창동 증미산에 꾀꼬리가 살고 있다/ 이영성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뒤로 백여 걸음 떨어진 곳에 나지막한 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증미산(曾米山)이다. 서울전철역 9호선을 타고 가다보면 강서구 등촌역과 가양역 사이에 증미역이 있으니 역에서 빠져나와 한강 쪽으로 100여 미터 걸어가면 닿게 되는 산이다. 건설교통부 기준에 따르면 표고 200m 이상이 되어야 산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증미산은 높이가 55m밖에 되지 않으니 언덕이라 불러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겠다. 게다가 산의 전체 넓이가 11만 2천 평방미터밖에 되지 않으니 만약 군사시설이 없었더라면 개발로 인해 이미 없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옛 문헌에 의하면 조선조 때 가을걷이가 끝나면 세곡(稅穀)을 실은 배들이 강화도 하구에서 한강을 통해 마포로 가던 도중 물살이 급한 증미산 근처에서 좌초하는 일들이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물에 빠진 세곡을 건져내던 곳이라 하여 건질 증(拯)자와 쌀 미(米)자를 쓰는 증미산(拯米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증미산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일찍 증(曾)자로 슬그머니 바뀌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소금 염(鹽)자와 창고 창(倉)자를 쓰는 염창산(鹽倉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는 서해와 남해에서 만든 소금을 이곳 산 아래에 있는 창고에 보관했다가 김장철이 되면 일제히 한양 성내로 날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한강물이 산자락을 휘감고 흘렀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증미산과 한강 사이에 ‘88도로’가 지나가고 있어 옛 모습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증미산은 물길로 서해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한강변에 있다. 그러므로 한강에 연해 있는 강서의 개화산, 궁산, 쥐산과 더불어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한강 쪽의 산기슭에는 군 작전용 콘크리트 진지 몇 개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진지 보호를 위해 쳐놓은 군 철조망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산꼭대기에는 무덤 삼십여 기가 있는데 그들 가운데 몇 기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손길이 끊긴지 이미 오래되어 봉분이 무너져 내렸거나 잡초가 무성하다.

 

 

엊그제 산책 삼아 증미산을 올랐더니 은수원사시나무와 아까시나무가 우거진 수풀 사이로 꾀꼬리가 날아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꾀꼬리는 깃털이 샛노랗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 처음에 꾀꼬리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숲 속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살펴보니 얼룩무늬 모자와 옷으로 치장한 사람이 갈참나무 속에 몸을 숨긴 채 꾀꼬리가 날아간 숲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흔 살 쯤 돼 보이는 그 사람은 줌렌즈가 부착된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물어보니 새의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란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몇 시간 째 그곳에서 숨죽인 채 쪼그리고 앉아 있다고 했다. 망원경을 들고 꾀꼬리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그의 집중력이 대단했다. 꾀꼬리가 사랑을 나누는 사진을 찍기 위해 며칠 째 그 곳에 잠복하고 있단다. 그의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니 여러 자태의 예쁜 꾀꼬리 사진으로 가득했다.

 

 

그래, 염창동 증미산에 꾀꼬리가 살고 있다.

 

 

<증미산 산책로>

 

<아마추어 사진작가. 이름을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사진작가의 뷰파인더에서 리캡쳐한 꾀꼬리 사진>

 

<증미산 산기슭에 각시원추리 두 송이가 예쁘게 피어 있다>

 

<증미산에는 지금 아까시나무 꽃이 한창이다>

 

 <산꼭대기에 사람의 발길이 끊긴 무덤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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