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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 /겸재謙齋 정선鄭敾

작성자이호준|작성시간11.01.17|조회수873 목록 댓글 2

 

     

겸재 정선(謙齋 鄭敾),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영조 31년)
종이에 담채, 27.4cm x 27.4cm, 60대 중반, 간송미술관소장

갑자기 이 그림을 보다 보니 좋아 올려본다.

 

인곡유거(仁谷幽居)는 겸재 정선이 살던 집의 이름이다. 겸재도 자신이 52세 부터 살기 시작해 84세로 돌아갈 때 까지 살았던 인왕산 골짜기의 자기 집 이름을 인곡유거仁谷幽居 또는 인곡정사 仁谷精舍라고 불렀다.

 
유거幽居라는 것은 마을과 멀리 떨어진 외딴 집이란 의미이고, 정사精舍는 심신을 연마하며 학문을 전수하는 집이란 뜻이다. 모두 학문 연구를 궁극의 목표로 삼던 사대부들이 붙일 만한 집의 이름이다. 그래서 도심속에 있으면서도 즐겨 유거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겸재의 스승인 삼연 김창흡이 태어난 집도 악록유거(岳麓幽居)였다.삼연의 증조부 청음 김상헌이 붙인 이름이다. 인곡유거는 지금 신교동과 옥인동을 나눠 놓는 세심대(洗心臺) 산봉우리를 등지고 남쪽을 향해 있었던 것 같다. 그 집을 동쪽에서 내려다 보고 그린 것이 이 그림이다. 바깥 사랑방 동쪽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앉아 있는 겸재 자신의 모습을 표현해 인곡유거인 것을 나타냈지만 사실 이 그림을 그린 의도는 사랑채 앞 정원과 그 남쪽으로 전개되는 필운대(弼雲臺) 일대의 인왕산 자락이 어우러지는 그윽한 자연미의 표출일 것이다.
 
인왕산 한쪽 자락에 널찍이 자리잡은 겸재의 집 마당에는 버드나무와 오동나무가 그늘을 넓게 드리우고, 버드나무를 타고 오른 넝쿨이 조선정원의 자연스런 멋을 한껏 자아내고 있다.울타리로 삼은 관목들이 화면의 앞을 장식하여 그림은 더욱 아늑하고 깊이감 있게 느껴진다. 그런 가운데 창밖을 바라 보고 있는 겸재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여유로워 그림 전체에 평온과 문기(文氣)가 가득한다. 어쩌면 이때가 겸재로서는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인왕산 아래 자신의 집 풍경을 그린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중 하나랄까. 실제로 보면 가로 세로 각각 30cm도 채 되지 않는다. 겸재는 말년을 이 인왕산 자락에서 보냈다. 현재 종로구 옥인동  군인 아파트 부근이라고 한다. 정적인 가운데 시선을 흩어놓는 재미를 선사하는 포도덩굴이 너무 운치 있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향해 있는 저 선비가 바로 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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謙齋 鄭敾: 조선 후기의 화가.처음에는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하였으나 30세를 전후하여 조선 산수화(山水畵)의 독자적 특징을 살린 사생(寫生)의 진경화(眞景畵)로 전환하였으며 여행을 즐겨 전국의 명승을 찾아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심사정.조영석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리었다. 강한 농담(濃淡)의 대조위에 청색을 주조로 하여 암벽의 면과 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단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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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신희천 | 작성시간 11.01.17 이 엄동설한에 마음 차분해지는 그림과 글을 올려주시어 훈훈한 마음으로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 작성자이영성 | 작성시간 11.01.18 겸재 정선은 한때 제가 살고 있는 서울 강서구 염창동(옛 경기도 양천현)의 현감을 역임했더랬습니다. 그래서 '겸재기념관'이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머지 않습니다. 그래서 겸재의 실경산수첩에 강서구의 개화산, 궁산 등의 풍경이 많이 남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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