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 사이로 흐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배경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서 고대를 잇다
김성렬(독문73)
고대교우회 유럽총연합회장
사막의 한밤중, 선배들이 구워준 양갈비 한 점의 온기를 그는 아직도 기억한다. 낯선 타국에서 건네받은 고대인의 정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 유럽 교우사회를 잇는 힘이 됐다. 실크로드의 종착지 이스탄불에서 무역인으로, 유럽총연합회장으로 살아가는 김성렬 교우를 만났다.
글. 이현화 선임기자
실크로드의 끝에서 한국을 알리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는 김성렬(독문73) 교우. 그가 이스탄불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 2월, 효성물산의 튀르키예 초대 지점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 당시 그는 화학섬유 원사부터 직물까지 수출했는데, 소위 ‘인조실크’라 불리며 대히트를 쳤다. 동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수도이자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던 이스탄불에서 거둔 성과였기에 의미는 더욱 남달랐다.
“마치 15세기에 중단된 실크로드가 다시 부활한 것 같았죠. 지금 생각해도 신이 납니다.”
김 교우는 해외 진출의 최전선에서 젊음을 불태웠다. 당시만 해도 ‘메이드 인 코리아’는 저가 공산품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오늘날 한국은 첨단 기술과 문화, 산업 전반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로 성장했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 그가 있었다.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산제품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30년째 이스탄불을 떠나질 못했나 봅니다, 하하.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물빛을 바라보며 이스탄불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김 교우.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색을 바꾸며 동서양이 만나는 도시의 풍경을 완성한다.
사막에서 만난 고대인의 정
김 교우는 1989년, 쿠웨이트로 첫 해외 발령을 나갔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 5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모든 것이 낯설고 막막했다. 그때 오아시스처럼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모교 선배들이었다.
“한밤중, 쌀쌀한 걸프만 바닷가에 오손도손 둘러앉아 작은 바비큐파티를 열었어요. 그때 선배들이 구워주신 양갈비 맛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타국에서 만난 고대인의 정은 훗날 그가 교우회 활동에 헌신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선배들에게 받았던 온기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자연스런 마음이었다.
2009년 4월 1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린트 호텔에서 유럽교우회총연합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이기수 당시 모교총장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독일·영국·프랑스 등 각국 교우회가 뜻을 모아 유럽총연합이 공식 출범했다. 초대 회장은 양해경(경영66) 교우가 맡았다.
이후 유럽총연합은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을 순회하며 총회를 개최했다. 각 지역 교우회 소속 교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모교 사랑을 나누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장이었다. 양해경 초대 회장에 이어 임시창(철학69) 영국교우회장이 제2대 회장을 맡아 조직의 기반을 다졌고, 현재는 김성렬 회장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사막에서 선배들에게 받았던 따뜻한 격려는 이제 국경을 넘어 유럽 전역의 교우들을 잇는 힘이 됐다.
이제는 내가 다리를 놓을 차례
“이제 해외 교우회는 단순한 친목 모임을 넘어 글로벌 고대의 네트워크로 발전해야 합니다.”
김성렬 교우는 ‘지속가능한 해외 교우회’를 앞으로의 과제로 꼽았다. 유럽교우회 상당수가 주재원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구성원의 교체가 잦아 조직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모교의 국제화가 가속화되는 만큼 외국인 교우들과의 연대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적은 달라도 모두 고대인입니다. 해외 각지의 외국인 교우들이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이어갈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최근 총교우회와 모교의 유럽 방문도 반갑게 지켜보고 있다. 해외 교우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모교와 현지 교우들을 다시 이어주는 계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말미, 그는 세계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사람 사는 곳은 결국 같습니다. 교문을 나설 때마다 ‘이제는 세계를 향해서’라는 생각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1989년 쿠웨이트의 사막에서 선배들의 따뜻한 격려를 받았던 젊은 주재원은 어느덧 유럽 교우사회를 이끄는 회장이 됐다. 타국에서 받았던 온기를 잊지 않았기에, 이제는 그 온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려 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처럼, 김성렬 교우 역시 오늘도 세계 곳곳의 고대인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있다.
튀르키예 교우들과 함께한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
돌고래들의 에스코트 속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