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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국어교사모임과 함께 한 고흥문학기행

작성자조경선|작성시간10.02.02|조회수756 목록 댓글 2

  http://blog.naver.com/jksksh1018

 

 (경선이의 블로그에 글과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은 박호민 선배님이 허락하셔서 썼습니다.아래 사진은 제가 찍었구요. )

 

 

경기국어교사모임 '열정'과 함께 한 고흥문학기행

 

글 조경선

 

고흥에서 국어교사로 살면서 김태철샘이 주축으로 있는 경기국어교사모임 '열정' 활동에 자극을 받곤 했다.  꾸준히 함께 모여 작품을 읽고 토론한 후 가을에는 작가를 초대해 사람들을 문학 속으로 불러 들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벌교를 둘러 보다

 

 

열정모임의 경기샘들 7명이 1월30일, 벌교에 도착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을 둘러보며 대작가의 집필 과정을 느끼게 되었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라는 문장이 큰 울림을 준다. 문학 역시도 대학입시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교육현실 속에서도 문학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점심은 문학관 안에 있는 꼬막정식 식당에서 먹었다. 나는 방학임에도 보충수업 5시간을 해치우고 달려갔다. 꼬막을 삶고, 회로 무치고, 전을 부치고, 된장국을 풀어 넣는 등 꼬막이 진수성찬이다. 벌교는 이제 꼬막식당 말고는 다른 음식점을 찾기 어려워졌다.

 

승려였던 시조시인 조정래의 아버지 조종현이 바로 고흥사람이다. 일제가 황국화의 일환으로 대처승 제도를 만드는 바람에 아버지는 선암사에서 결혼식을 올린 최초의 승려가 되었단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고, 일본의 은혜에 감사하듯 『아리랑』을 썼다. 인생살이는 이렇게 얄궂고, 미묘하다.” 라며 조정래를 회고하기도 했다고 최경필 시인이 설명해 줬다.

 현부자집에 들어서서 바라보니 벌교의 들판이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고흥의 첨산이 보인다. 소설에는 '문필봉'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바로 그 아래 시인의 고향인 동강면 노동리가 있고, 좀 더 가서는 송수권 시인의 고향인 두원면 학림이 있다.

 

 

 

문학관을 나와 소설의 시작인 중도방죽으로 갔다. 일본인 중도 나카시마의 이름을 따 붙여진 간척지 방죽이다. 뻘밭에다 방죽을 쌓는 부역이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철도다리가 옆에 있는데 이 곳은 벌교 주먹을 다투던 염상구를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철교 아래에서 칼부림을 하다가 일본 선원을 찔러 죽이고 도망치던 이야기가 있다. 해방이 되자 이런 경력을 들어 독립투사였다고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는.

 

 우리는 소화다리로 옮겨 갔다. 최경필 시인은 현재 광남일보 기자인데 조정래 작가와 함께 태백산맥 문학기행을 하는 등 다년간의 취재 경험을 통해 쌓은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순사건에 연루되었거나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집단 학살을 당했다고 한다. 소화다리에서 총에 맞으면 그대로 다리 아래로 떨어져 바다로 흘러 내려갔다고 한다. 박호민 시인의 어머니도 처형을 당할 뻔 했으나 외가의 힘으로 가까스로 죽음 직전에 살게 되었다는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주릿재를 지나 율어에 다다랐다.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쌓여 해방구가 되었던 곳이다. 염상진과 소작농들이 꿈꾸던 세상이 율어를 통해 조그맣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됐을까.

 

 

부용산 노래 앞에 서다

 

우리는 부용산 노래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벌교가 한눈에 보였다. '부용산'은 박기동(1917년~)이라는 교사가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부용산에 묻으며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함께 근무한 안성현이라는 음악 교사가 곡을 붙였는데, 그가 월북했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 일명 '빨치산의 노래'로 불려졌기에도 금기시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7~80년대는 민중가요로 널리 불려졌다고 하면서 서 박호민 시인이 직접 애절하게 불러주었다.

 

 

 

고흥의 대표적 시인, 송수권 시인을 찾아서

 

 태백산맥 답사를 끝내고, 순천 시내에 살고 계시는 송수권 시인댁으로 갔다. 경기샘들은 사전에 송수권시인의 시집을 읽고, 토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 속에서 궁금한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셨다. 작년 수능시험에도 나온 '지리산 뻐꾹새'는 구례중학교 시절 지리산 노고단을 오르면서 본 뻐꾹새를 보며 쓴 시라고 했다. 시구 중에 '석 석 삼년' 은 9년을 말하는데,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오랜 세월을 뜻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셨다. 어떤 문학참고서에는  밑줄을 그어 친절하게 27년이라고 해설해 놓기도 했는데, 헛웃음이 났다.

  요즘은 '지리산' 서사시를 쓸 계획으로 빨치산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고 하신다.  본인은 서사와 서정을 넘나드는 시를 써왔다고 하시면서. 고향인 고흥을 잘 드러내는 시는 '시골길 또는 술통' 이라고 하시고, 동생의 자살을 슬퍼하며 쓴 '산문에 기대어' 가 1975년 서른다섯살 때 세상에 나온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사랑의 몸시학' 이라는 책을 모두 한 권씩 나누어 주시면서 사인도 해주셨다. 이제 노년의 시인이 온 힘을 다해 서사시를 찾아 써내려 가고 있다.  시 창작의 정신을 몸으로 보여주시고 있는 모습에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송수권 시인은 가을에 경기도에서 열릴 '열정' 강연에 갈 수 있겠다는 약속도 해주셨다.

 작가를 초대해서 강의실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이렇게 소수가 직접 그의 공간을 찾아가 만나는 것이 정말 좋은 문학적 체험과 추억일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고흥의 문예 사랑방, 도화헌 미술관에서 머물다

 

  맥주와 마른안주, 과일을 사가지고 도화헌미술관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박성환 관장님과 김혜경선생님이 푸근하게 맞아 주셨다. 경기 선생님들은 2009년 고흥작가회에서 발간한 '세월 그 후'의 시 속에서 남선현, 박호민, 최경필 시인과 나의 시를 한 편씩 골라 돌아가면서 낭송해 주었다. 특히 김태철샘은 박호민 시인의 '강아지풀' 을 즉석 노래로 부르고, 그 속에 담긴 삶과 철학의 의미를 해석해 보였다.

 박호민 시인은 '나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는 벗을 만났다' 며 행복해 하였다. 김태철샘은 대학 때부터 오랜 세월 문예 운동을 한 분이라 정중하고도 예리했다. '평생 창작의 벗' 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둘은 이 밤 통했다. 태철샘은 나의 시가 중앙 무대로 가려면 (^^;;) 더 곰삭을 수 있도록 고흥 작가회 선배 시인들이 잘 이끌어 줘야 한다는 정말 고마운 말도 해주셨다.

 

 

 

귀농한 이웃 아저씨가 박노해와 함께 사노맹 활동가였다는....

 

 이튿날, 포두면 마복산 아래에서 귀농해 흙집을 직접 짓고 사는 김동관 아저씨 댁으로 향했다. 연차를 마시면서 80년대 택시 운전을 하면서 박노해를 만나고, 그와 사노맹 활동을 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고흥에서 생태모임을 함께 한 적도 있었던 이 분을 안 지 5년이 넘었지만 나 역시 이런 숨은 이야기를 처음 들어 깜짝 놀랐다. 주방에서 홍합을 삶고 계시며 이곳으로의 귀농을 준비한다는 아주머니는 노동소설 '마침내 전선에 서다'를 쓴 김미영씨라고 소개해 주셔서 다시 한 번 놀랐다.

 

 86년 박노해는 '노동의 새벽'을 한 권 주면서 그냥 읽어 보라고 하였단다. 누가 쓴 것인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내심 기평이가 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는 김동관 아저씨. 그 시집을 처음 읽고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시집을 본 많은 지식인들이 충격에 휩싸였다는 반응과 대조적이다. 특히 '시다의 꿈'이라는 시는 지금도 눈물 나서 읽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교실 급훈에 당당히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탈래' 라는 문구를 건 교사의 머릿속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박노해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에게 '미싱을 타는 것' 은 꿈이기도 했었는데.....

 

 사도 포구 앞에서

 

 우리는 영남면 능정리 사도구 포구로 향했다. 박호민 시인은 이곳이 호수 같은 바다같아 정말 좋다며 안내해 주었다. 고흥을 구경온 사람들은 이곳을 모르고 지나친다고 했다. 그리고, 6천원짜리 해물짬뽕을 시켜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이런 숨은 풍경, 숨은 맛집을 어떻게 알았겠냐며 감탄해 하였다.

 

 

 

 

근현대사의 역사와 문학의 섬, 소록도를 찾아서

 

 

 

 소설 '당신들의 천국' 의 배경이 된 오마도 간척지에 들른 후 소록도에 도착했다. 우리는 수탄장을 걸어들어갔다. 이곳은 환자인 부모와 미감아 수용소에서 격리된 자녀들이 한 달에 한 번 멀찍이서 만나 면회했던 곳이라고 한다. 전염을 우려해 부모는 바람을 등지고 멀리서 눈물  흐르는 눈으로만 보아야 했던 곳이다.

 

6살에 소록도로 들어와 이제 68이 되신 한센인 한 분이 우리를 맞아 주셨다. 중앙공원 안에 있는 한하운 시비에 얽힌 이야기도 들었다. 이 돌을 강제로 완도에서 가지고 오느라 엄청난 고통과 희생이 있었다고 했다. 시를 낭송해 주시면서 한 구절 한 구절 해설도 해주었다 . 특히 '인환의 거리' 라는 구절은 '문둥이' 를 보면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쑥덕거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4대 원장인 일본의 수호원장이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 참배를 강요하며 환자들을 학대하여 당시 환자였던 이춘상이 살해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공원 곳곳에 심어진 나무에 얽힌 이야기와 일본황제만세라고 적혔던 비석자리도 보여주었다.

 

 전시실에는 이청준의 서명이 들어있는 소설 '당신들의 천국'과 한하운 시집 등이 있었다. 소록도를 배경으로 인간의 서러운 삶과 역사에 대한 성찰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제로 만들어진 감금실과 시술실 벽에 걸린 환자들의 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4대 원장 시절 그의 명령을 거부한 벌로 감금실에서 갇혔다 풀려나면서 강제로 단종 수술을 받은 환자였던 이동의 시가 눈에 띤다. 박호민 시인은 그의 시를 보아 지식인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녹동항에서 문학기행의 마침표를 찍다

 

빠듯한 1박2일의 일정을 마감하며 녹동항으로 갔다. 최경필 시인이 회를 푸짐하게 떠왔고, 우리는 식당에서 지는 해를 벗삼아 마무리를 했다.

" 최고의 여행은 사람 여행이다. 그것을 느끼게 해 준 행복한 문학기행이었다. 고흥에 와서 시를 찾으라는 남선현  시인의 말을 충분히 알겠다. 고흥작가회에서 이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 고 했다. 나는 전국의 국어교사모임이 연결되면 찾아가는 문학기행을 내실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고흥작가회가 고흥 문학에 대해 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고흥에 온지 이제 12년째다. 나 역시 이번에 벌교와 고흥 문학기행을 통해 의미있는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과연 '열정'적인 경기샘들, 바쁜 일정에도 1박2일 일정을 기꺼이 내준 남선현, 박호민, 최경필 선배님이 새삼 고마웠다.

 

 참 정이 가는 곳, '가도 가도 황토길' 남도 고흥에서 이렇게 나는 살아가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 다.

 

 

출처] 경기국어교사모임 '열정'과 함께 한 고흥문학기행|작성자 조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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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평윤지사 | 작성시간 10.02.03 부지런도 하셔라.....고흥군과 보성군의 협조를 얻어 <벌교에서 소록도까지>, <태백산맥과 당신들의 천국을 찾아서> 등등 문학여행(개인적으로 기행이란 말은 안맞는 말이서 잘 안쓰는 거라서...나중에 설명할께요) 코스를 만들어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그리고 이춘상이 맞고, 최용갑씨도 그냥 한센인이나 한센장애우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듯 하네요..
  • 답댓글 작성자조경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2.03 아! 이름이 틀렸군요. 역시 사람이름 쓸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해... 기행과 여행의 차이..담에 의야기해요 ^^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가 해야할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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