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특징

작성자박재걸|작성시간04.06.28|조회수205 목록 댓글 5

                                                        불교(佛敎)의 특성

 

 

                                                                            일련정종(日蓮正宗)
                                                                            水島公正 師

 

  불교와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1. 석존의 생애

 

  불교는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에 인도에서 출현하신 석존에 의해 설해졌습니다. 석존께서는 네팔의 남부에 있는 ‘가비라위국’의 왕자로서 태어나 19세에 출가하시어 30세에 깨달음을 열어 불타(佛陀)가 되시어 50년간 법을 설하시고 80세로 입멸(入滅)하셨습니다.
  50년의 설법 가운데 앞의 42년간은 법화경으로 인도(引導)하기 위한 임시의 가르침을 설하시고 마지막 8년은 진실의 가르침인 법화경을 설하셨습니다.

 

 〔의문(依文)〕


 『무량의경(無量義經) 설법품(說法品)』에
「종종설법(種種說法) 이방편력(以方便力) 사십여년(四十餘年) 미현진실(未顯眞實)」
 (여러 가지의 법을 설했지만 방편으로 하였으며 40여 년에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음)

 

 『법화경 방편품(方便品) 제 2』에
  「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 단설무상도(但說無上道)」
   (방편을 버리고 정직하게 다만 무상도를 설함)

 

     2. 사문출유(四門出遊)

 

  여기에서 석존의 에피소드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석존께서 왕자였을 때, 왕성(王城)의 동문(東門)에서 교외로 나와 보니 허리는 꾸부러지고 몸이 쇠약하고 추한 노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남문(南門)을 나와서는 아파서 고통받는 병자를 보았습니다. 서문(西門)에서는 죽은 사람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늙고, 병들어서, 죽는다는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해결하는 길은 없는 것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북문(北門)에서 교외로 나왔을 때, 몸도 마음도 청정한 출가자〔사문/沙門〕을 보고, 석존은 출가의 결의를 굳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불교의 기본적 자세와 특징을 알려 주는 중요한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가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현실을 주시하고 그 위에서 해결방법을 밝힌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요점은 불타(佛陀)께서 인간으로서 사회 속에 출현하시어 법을 설했다는 사실입니다.

 

     3. 타종교의 신(神)

 

  전 세계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종교로는 기독교, 이슬람교가 있고 아시아에서 발생한 종교로는 인도의 힌두교와 중국의 유교, 도교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근본으로 떠받드는 본존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神) 혹은 절대자라고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신(神)은 진리이며, 중생의 어버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는 진리를 깨달은 성자(聖者)이며 중생의 어버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4. 부처와 신(神)의 다른 점

 

  이렇듯 언어만으로의 설명으로는 불교의 부처도 타종교의 신(神)도 내용은 똑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실체에 있어서는 부처와 신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여기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부처는 실제로 이 세상에 출현했지만 기독교의 신(神)인 하나님과 이슬람교의신(神)인 알라는 지구상에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 신(神)의 자식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출현하였고, 신(神)의 사자로서 마호멧드가 출현한 것 뿐입니다.
  만일 하나님과 알라가 정말로 사람들을 구제하는 어버이라면 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자식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일까요?
  이렇게 냉혹하고 애정이 없는 신(神)은 어버이의 자격이 없습니다. 확실히 말하자면 이러한 신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상의 산물(産物)인 것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신(神)을 억지로 믿게 하려는 종교야말로 무자비하고 오만(傲慢)한 종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5. 「태초(太初)에 신(神)이 계셨다」의 모순

 

  여러 분은 중세에 유럽에 있어서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돈다라는 천동설(天動說)과 지구가 태양이 주의를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의 논쟁의 역사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비롯한 당시의 과학자들은 교회에  의해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많은 박해를 당했습니다.
  왜 그러한 비극이 일어났는가 하면 성서(聖書)의 「창세기(創世記)」에「신(神)은 처음에 지구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어 이 천동설을 고집한 기독교 교회는 과학적으로 차차 증명되어 가던 지동설을 탄압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또 최근에 인구가 급증하는  지역에서는 산아제한이 제창되고 있는데 기독교 교회는  인간의 의지로 산아제한을 하는 것은 신(神)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오랜 기간 이것을 인장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슬람교는 마호멧드가 신(神)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모아 만든 코란을 성전(聖典)으로 삼아 이 코란에 근거하여 이슬람법이라는 엄한 법률을 제정하였습니다.
  이슬람의 국가에서는 여성은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베일로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든가, 신자는 반드시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만 이러한 규칙은 현대 국제교류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마호멧드를 인간적인 시점에서 소설화한 외국인에 대해 이란의 호메이니가 이슬람의 규율에 의해 사형을 선고하여 전 세계들을 놀라게 한 일도 있습니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규율을 법률로 제정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는 그 폐쇄적,  독선적인 체질
때문에 점점 더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많은 시민이 살해되고 있는 중근동(中近東)이 분쟁은 이슬람교가 초래한 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태초(太初)에 신(神)이 계셨다」고 하여 인간에게 신의 말씀을 강요하기만 하는 종교는 현실에서 동 떨어진 교리(敎理) 때문에 과학의 발전 및 시대의 변화와 서로 어긋납니다.
  이러한 가공(架空)의 가르침을 믿는다면 인격도, 생활도 공허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편 불교는 인간의 현실상을 대상으로 하여 설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과학문명의 발전에 의하여 교의(敎義)와 현실이 어긋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6. 불교에서 설하는 고(苦)의 원인

 

  다음으로  교의(敎義)의 내용 면에서 고찰해 보면 불교에서는 우리들의 현재의 행불행(幸不幸)의 모습은 과거의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이며, 미래의 과보(果報)는 현재의 행(行)이 그 원인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고통이라든가 번민(煩悶)의 원인은 자기자신의 번뇌에 있습니다. 번뇌에 관하여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 감정적인 번뇌, 잘못된 사상(思想)에 의한  번뇌, 성불을 방해하는 번뇌 등 백팔(百八)이라고도, 팔만 사천이라고도 하는 범ㄴ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많은 번뇌는 탐 진 치(貪 瞋 癡)의 삼독(三毒)이 그 근본인 것입니다. 그 번뇌가 악업(惡業)을 불러오고 그 과보(果報)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또 불교에서는「인연(因緣)」을 설하고 있습니다.
  인연(因緣)의 인(因)이란 결과를 낳는 직접적인 내적 원인을 말하고, 연(緣)이란 외부에서 조성하는 조건, 즉 간접적인 원인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식물의 씨는 그대로 놓아두면 싹이 트지 못하지만 일정한 온도와  수분을 주면 발아(發芽)되고 드디어 꽃을 피워 과실을 맺는 것처럼 인(因)에 연(緣)이 작용하여 과(果)를 낳는 것입니다.

 

  우리들 인간에게는 누구라도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계의 육도(六道),그리고 성문, 연각, 보살, 부처의 사성도(四聖道)라는 십계(十界)가 갖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십계는 외연(外緣)에 의해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마음과 올바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행(善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만 올바른 마음은 진실한 종교를 신앙하지 않으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마음을 더럽히는 악연(惡緣)과 가공의 종교를 믿는다면 더러운 마음에서 악업을 낳고 고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마는 것 입니다.

 

     7. 인도의 외도(外道)

 

  석존의 재세 당시, 인도에는 바라문교와 95파의 외도(外道)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바라문의 사상은 후에 힌두교가 되었습니다.
  그 가르침은 우주의 진리인 브라만과 소우주인 개인의 진리, 아트만과는 본래 동일한 것인데 우주의 진리와 개인의 아(我)가 합치하는 것을 이상(理想)으로 하는 것입니다.
  또 95파의 외도 중에는 어떤 자는 인간은 죽으면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대요소로 돌아갈 뿐으로 사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하고, 어떤 자는 인간의 고락(苦樂)의 양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노력을 해도 헛수고라고 설하며, 어떤 자는 남을 도와주어도 사람을 살해하여도 그 과보 따위는 전혀 없다고 설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에 대해 석존께서는 아함경에 다음의 세 가지를 들어 파절하였습니다.

 

  (1). 운명론(運命論)

 

  첫째로 외도에서는 인간의 운불운(運不運)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운명론(運命論)」이라고 합니다.
  세간에서도 「운(運)이 없는 사람은 어떠한 노력을 해도 헛수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이러한 것 등도 일종의 운명론입니다.

  또 운명론을 이용한 것으로 점(占)이 있습니다. 점(占) 가운데에는 사람의 행불행을 판단하는 수단으로서 별의 운행에 의한 것과 가옥의 방향에 의한 것 등이 있습니다.
  인간이 미래를 알고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할 때에 하나의 시사(암시)를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원망(바람)입니다만 어떠한 점(占)도 믿기에는 부족한  미신입니다.
  우리들 장래의 행불행은 자신의 마음에 의한 인(因)과 환경과 조연(助緣)에 의해 일어나는 선악의 행위가 결과를 낳아 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개인의 행불행이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2). 천지창조론(天地創造論)

 

  둘째로 외도에서는 신(神)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했다고 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까 기독교를 예를 들어 말씀 드렸습니다만 지구의 발생과 인간의 발상은 현대의 천문학과 생물학의 연구에 의해 차츰 해명되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과학이 발달되어 모든 사물의 인과간계가 명확하게 밝혀질수록 천지창조의 신(神)은 공상의 산물이며 그와 같은 종교는 많은 사람들을 오랜 시간 기만하여 왔다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지구와 인간의 발생에 관해서 어떻게 설하고 있는가 하면 불교는 인간 개개인이 구제를 목적으로 설해진 것으로 거기에 따르는 교리로서 수미산(須彌山) 등의 세계관과 법화경에서 밝힌 구원(久遠) 등의 시간론이 설해져 있습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처의 깨달음의 세계를 나타낸 것이고 자연현상의 세계를 논구하는 것은 불교의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 개개의 구제를 위해서 인간 고뇌의 현실과 그 인과관계의 근본 바탕을 궁구(窮究)하는 불교야말로 항구적인 진실된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인과론(因果論)

 

  셋째로 외도에서는 인과(因果)의 도리가 설해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신(神)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기독교의 신(神)인 하나님은 언제, 누가 만든 것일까요?
이슬람의 신(神)인 알라는 언제, 어떻게 하여 신이 된 것일까요?
  신으로서 존재하는 한 반드시 그 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에 관하여 성경과 코란은 물론 후대의 해설책에도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예수그리스도는 신(神)의 아들이며, 모하멧드는 신(神)의 사도(使徒)라고 합니다만 그들이 틀림없이 신의 아들, 신의 사자라고 하는 증거는 아무 곳도 없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교조(敎祖)가 어느 날, 갑자기「나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칭하며 창시한 종교는 천리교(天理敎), 대본교(大本敎), PL교 등 많이 있습니다.
  신의 계시(啓示)를 받은 사람이 여기, 저기 몇 명이라도 존재하고, 게다가 계시의 내용이 들린다는 사실은 신(神)의 계시, 그 자체가 지극히 의심스럽다는 증거입니다.
  현대의 정신의학에서는 이러한 천계(天啓)의 상태(하늘의 계시를 받은 상태)는 대개의 경우는 일종의 정신이상을 초래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종교에서는 빈번하게「기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기적이란 상식적으로 원인을 짐작할 수 없는 사건을 말합니다.
  고대인은 일식과 월식을 기적 혹은 신의 노여움이라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그 원인이 밝혀진 현대에서는 일식, 월식은 기적도 신의 노여움도 아니라는 것은 누구든지 다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적」을 설하는 종교는 인과(因果)의 이법(二法)을 알지 못하는 저급한 사교(邪敎)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러한 종교에는 인간 개개의 인과에 관해서도 명확한 교의는 없고 인간은 현생에 한해서 살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난 자식에게 건강과 병약, 부유와 빈곤, 장수와 단명의 차별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거기에는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그 원인은 전세 혹은 과거세에 있다고설하고 있는데, 과거세, 현재세, 미래세의 삼세(三世)를 설하지 않는 종교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8.일본의 신도(神道)와 제천선신(諸天善神)

 

  다음으로 일본의 신도(神道)에 관해서 간단히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일본이 신도는 고대 사람들이 자연의 힘에 대해서 외경(畏敬)의 염을 지니고 그것들을 신으로 숭배하는 습관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과는 달리 저해진 개창자는 없고 정해진 교의도 없습니다.
  신체(神體)라고 불리는 본존도 신사(神社)에 따라 다릅니다. 하늘에 사는 신을 모시는 신사도 있는가 하면 신화(神話) 속에 나타난 신을 모시는 신사, 역사상의 인간을 모시는 신사, 특정한 지역부락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사 등 여러 가지입니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일본 고래의 신은 본래 법화경을 믿는 사람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어본존 속에도 천조대신, 팔번대보살의 이름이 쓰여 있고 근해의 초좌의 관념문에도 대일천왕, 대월천왕의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다만 현재의 신사에는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악귀신이 있을 뿐으로 참된 수호신은 없습니다.
  또 일본의 신도(神道)는 일본의 독자적인 종교이며 일본의 신을 숭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국만을 존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일본의 군부는 국민에게 신도를 신앙하도록 강요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와 천황절대주의의 사상을 부식(扶植)시켜, 저  비참하고 혐오스러운 전쟁에 돌진했던 것입니다.
  불법의 눈으로 보면 저 전쟁의 비극은 일본의 신도의 잘못된 사상과 신사(神社)의 마력(魔力)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9. 불교간의 승렬(勝劣)

 

  이상 말씀 드린 것 처럼 불교는 타 종교와 비교해서 가장 도리에 맞는 올바른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불교 가운데에서도 성문, 연각의 성자가 되는 목적으로 하여 계율로써 인간을 규제하는 소승교(小乘敎)와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성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승교(大乘敎)의 차이가 있습니다.

  또  대승교 가운데에서도 42년 간의 경전에 의거하는  염불종은 아미타여래를  본존으로 하고 , 진언종은 대일여래를 본존으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처는 이 세상에 출현한 적이 없습니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제종문답초(諸宗問答抄)』에서
 「진언종의 대일여래는 누구를 부모로 하고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죽었는지 경문에는 한 마디도 없다. 대일여래는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가공의 부처이다.」(신 37p)
라고 파절하셨습니다.

 

     10. 외도(外道) 이하의 사교(邪敎)  창가학회 (SGI)

 

  또 불교의 이름을 빌린 사종교단(邪宗敎團)으로 창가학회 (SGI)가 있습니다. SGI가 파문 이전부터 회원을 지도하여 왔던 것 중에「본존님에게 창제하는 목적은 南無妙法 蓮華經라는 우주의 리듬에 우리들 생명의 리듬을 합치시키는 일이다.」
라는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케다 다이사쿠(池田犬作)도 늘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 방식은 교의에는 없을 뿐만 아니라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가르침에도 없습니다.
  이것은 인도의 바라문 외도(外道)의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과 같은 것입니다.

  또 창가학회 (SGI)는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가르침과 혈맥상승(血脈相承)의 지남(指南)보다도 이케다 다이사쿠(池田犬作)의 말을 최상으로 생각하고 이케다의 야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비열한 수단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 실체는 불교와는 전혀 거리가  먼 외도,  아니 그 이하의 광신집단, 범죄단체입니다. 이러한 악질적인 집단이 횡행한다면 그 해독은 많은 불행과 재해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교(邪敎) 창가학회 (SGI)를 어디에서라도 파절하고 규탄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11. 말법의 본불(本佛)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

 

  석존께서는 『대집경(大集經)』에서
「사람이 서로 다투고, 세상이 혼란한 시대, 곧 말법시대(末法時代)에 접어들면 불교는 힘을  잃는다.」
고 설하셨습니다.

 

  말법에 출현하신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석존의  법화경에서 그 출현과 행동의 일체가  예증되신 법화경의 행자이시며 말법의 본불(本佛)이십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는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죄없는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난민이 기아(饑餓)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도 근본은 저급한 종교, 사종교의 해독이 그 원인인 것입니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당체의초(當體義抄)』에서
 「南無妙法 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은 번뇌, 업, 고(煩惱, 業, 苦)의 삼도(三道)가  법신(法身), 반야(般若), 해탈(解脫)의 삼덕(三德)으로 변하여   (중략)  그 사람이 머무는 곳은 상적광토(常寂光土)이니라.」(신 694p)
라고 설하셨습니다.

 

  정법을 호지할 수 있는 우리들은 자기자신의 깊은 불연(佛緣)과 커다란 사명을 자각하고 어법주상인님의 지남을 마음 깊이 새겨 진지한 근행창제를 실천하여 번뇌, 업, 고(煩惱, 業, 苦)의 몸을 법신(法身), 반야(般若), 해탈(解脫)의 삼덕(三德)으로 바꿔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아가 우리들은 이 세계를 불국토로 만들기 위해서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묘법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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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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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향이양숙 | 작성시간 04.06.07 이 글 치신다구....손가락에 쥐났겟어요....읽는데도 한참이나 걸리는데.....넘~~수고가 많으시다요...
  • 작성자조삼촌 | 작성시간 04.06.07 너무 너무 고마워요 .머리가 완전 정리되고 ,신심에 확신이 콱 밀려오네요 copy해서 (내일, 집에는 복사기가 없거든요)읽고 또 읽고, 다른 사람에게도 주어야지!!
  • 작성자박재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6.08 손가락 지 아픈거 하고, 내 마음하고는 별개입니다.
  • 작성자임쌍수 | 작성시간 04.06.08 박 부회장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 잃고 질문 할 내용이 있어 질문 코너에 글 을 올리겠습니다.
  • 작성자정경옥 | 작성시간 04.06.13 항상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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